자기에게는 천사의 특별한 보호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또는 악기에 맞춰 예수께 동정을 청원하는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
이교도인 남편 발레리아노는 그 천사가 어떤 것인가를 한 번 보고 싶어 심히 간청했으므로,
체칠리아는 그를 우르바노 교황께 보내어 교리를 연구케 하고 마침내는 세례를 받게 했는데,
그 후 남편 발레리아노는 기이하게도 체칠리아의 수호 천사를 뚜렷이 목격 하게 되어
한층 더 체칠리아를 존경하며 그녀의 서원에 쾌히 동의하고, 마침내는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또한 남편의 형제인 티부르티우스(Tibrutius)를 개종시키는 놀라운 열성을 보였다.
Sts Cecilia, Valerianus and Tiburtius - GENTILESCHI, Orazio
c. 1620. Oil on canvas, 350 x 218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밀라노)
발레리아누스와 티부르티우스도 그때부터 늘 자선 활동에 전념하다가 순교하였으며,
오늘날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그들이 행정관인 알마키우스(Almachius) 앞으로 끌려가
이교도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거절하자,
심한 매질을 당하고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막시무스(Maximus)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막시무스는 발레리아누스와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하였으며, 막시무스 또한 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다.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 성인들(축일 4월 14일)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었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키우스 행정관과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체칠리아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그 당시 사형수에게 적용한 방법인 목욕탕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처형법으로 결정되었다.
체칠리아가 김이 무럭무럭 나는 목욕실에 가두어진지 24시간이 지난 후,
문을 열어 보았으나 살아 있었다.
질식사 시키려던 그녀의 사형 집행이 기적적으로 중단되었을 때,
한 군인이 그녀의 목을 베도록 선발되었는데,
그가 맡은 일을 서투르게 처리해서 즉, 칼로 그녀의 목을 세 번이나 내려 쳤지만
3일 동안이나 살아 누워 있다가 우르바노 1 세 교황에게 자기 집을 교회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고
9월 16일에 운명하였다고 한다.
St. Cecilia - MADERNO, Stefano
1600. Marble, length 130 cm. Santa Cecilia in Trastevere, Rome
후에 신자들은 성녀의 유해를 정중히 매장했는데(230 ? - 235 ?),
우르바노 교황(재위 222-230)은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성녀의 집을 성전으로 축성하였고,
시신을 로마의 칼리스토 - 카타콤바에 안치하였다.
545년 비질리우스 교황은 트라스테베레에 성녀 체칠리아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고,
819년 파스칼리우스 1세 교황은 성녀의 유해를 찾아내어, 무덤을 열어 보니,
조금도 시신이 썩지 않고 살아 있는 모습이었으며, 화제의 손가락도 그대로였다 한다.
교황은 예식을 갖추어 거룩한 유해를 꿈속에 나타난 성녀의 지시를 받고
성녀에게 봉헌된 트라스테베레 성녀 체칠리아 성전 지하 묘소에 정중히 안치하였다고 한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성당에는 순례자의 줄이 끊어지지 않으며
모든 이의 존경의 표식이 되고 있다.
그녀의 묘 위에 1599년 이탈리아의 어느 유명한 조각가가 고귀한 대리석으로 성녀의
순교 당시의 모습을 조각해 모셨다.
문예 부흥기 이후 성녀는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St. Cecilia - DOMENICHINO
1617-18. Oil on canvas. Musee du Louvre, Paris (파리 루브르)
성녀 세실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은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어느 정도 추정할 수는 있다.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그녀의 결혼식 때 그녀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들을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녀의 내심으로만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성녀 체칠리아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The Ecstasy of St. Cecilia - CAVALLINO, Bernardo
1645. Oil on canvas.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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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로마에 가게되면 꼭 체칠리아 성당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