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원료인 메주는 주로 입동 전후에 쑤고 겨우내 띄웠다. 대체로 추위가 풀리기 전인 이른 봄에 장을 담갔는데 '장 담그기 좋은날'을 정하여 고사까지 지낼 정도로 중시했다. 옛 문헌을 보면 음력 정월 말날인 오일午日 또는 그믐, 손 없는 날, 병인일 정묘일, 제길신일, 정일 등이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 하였다. 특히 우수, 입동, 춘추분, 삼복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해 돋기 전이나 해진 후에 장을 담그면 파리가 꾀지 않으며, 그믐날 얼굴을 복으로 하고 담그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수흔일(水痕日, 큰달 :1,7,11,17,23,30일, 작은달:3,7,12,26일을 말함)에 담그면 가시가 생긴다고 하였고, 신일申日에 장을 담그면 시어진다고 장 담그기를 피했다. 장담글때 금기사항 우리조상들은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고 여길 정도로 장맛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 옛날 여인네들은 장 담그기 사흘전부터 외출을 삼가고 부정이 타지 않도록 언행과 몸가짐을 특별히 조심해야 했다. 동물이나 미물을 해치지 않으며 부부관계도 삼가고, 특히 부정한 사람의 근접을 막았다. 장을 담그는 당일에는 목욕재개하고 메주 한 덩이, 소금, 고추 등을 소반에 차려 놓고 고사를 지냈다. 엄한 경우에는 여인네의 입에 창호지를 봉하여 음기를 발산하지 못하도록 했다. 만일 여자의 음기가 발산되면 장맛이 변하거나 못쓰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 또한 장을 담근 후 3일 후에도 역시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다. 흉한 곳아니 상가에는 출입을 금했으며, 해산한 여인이나 월경이 있는 여인, 잡인 등은 장독대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조선시대 선조가 정유재란을 당해 함경도로 피난할 때 신씨 성을 가진 이를 '합장사'(장을 담그는 일을 관장하는 사람)로 선임했는데 조정 대신들의 만류가 있었다. 이는 장을 담글때 금하는 날짜로 신일申日의 신申과 신辛의 성은 시어짐을 의미하므로 장을 버리게 될 염려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신申과 신辛씨의 성을 가진 집안에서는 사돈이나 친지 집에서 장을 담가 오는 풍습이 전래되었다. 이같이 다양한 장 풍습이 생겨난 까닭은 장 속 미생물에 의해 장맛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생물은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으므로 집집마다 장맛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미생물의 존재가 잘 알여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만큼 장에 관한 속설이 많았던 것이다. |
첫댓글 음전님~! 작년에는 늦어서 장을 못 얻어 먹었는데 올해도 맛나게 담그시어 부디 울집 식탁에도 오르게 해주시옵고 저희집 올 한해 먹을거 가름하셔서 담그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리브님이 누구시죠?제가 깜빡깜빡해요.
ㅎㅎㅎㅎ알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