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그렇게 우연히 시작되었습니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 소파에 누워서 무심하게 올림픽 육상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말로 별 생각 없이, '이번에 교재에 니가 관심있을 만한 주제의 글이 나왔는데, 과학 저널이 온라인에 서비스되는 거랑 논문 인용지수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이야. 그거 주말에 번역연습 할 건데, 번역하면 줄께 읽어 봐' 하고 말을 꺼낸 것입니다. 남편은 직업이 과학자라서, 맨날 하는 일이 논문 써서 저널에 응모하고, 잡지사에서 다른 사람 논문 리뷰해 달라고 보내 오면 심사평 써서 보내 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용에 갑자기 흥미가 발동했는지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글을 보여달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글을 보여 주었고, 대략 30분 정도를 끙끙거리며 같이 해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수렁에 빠져들게 된 것이죠.
그 논문을 썼다는 사회학자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데이터를 산출했다는 것인지, 이코노미스트만 읽어서는 도무지 감이 안 잡혀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 보다가,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Science 지에 실린 원문을 찾아 보자'고 의기투합해서는 (남편은 Science 지의 열람권이 있습니다), 그 사회학자 이름으로 검색해서 원 논문을 읽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이구야..... 그래서 결국 무슨, 옛날옛날에 배워서 이제는 까마득한 푸와송 모델에, 이항방정식에 generalization에, 이상한 그래프들과 씨름을 하다가, 결국은 계산법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결국 그런 복잡한 수식까지는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제대로 모르고 그냥 막 쓴 거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하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나름 고등교육을 받은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헤맸을 수가....
아무튼 근 한 시간 넘게 이코노미스트와 논문을 붙들고 씨름하던 남편은 두통을 호소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저는 내용 까먹기 전에 번역 초안이나 써 볼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은 참입니다. 그래도, 전에도 그랬긴 했지만, 통번역 공부 시작하고 나서는 둘이 심심할 틈은 없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할 얘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지거든요. ^^
혹시 그 논문 궁금하시면, 제가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뭐 가급적이면 골치아프니까 이코노미스트 선에서 해결 보는 편이 낫겠지마는, 논문의 abstract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됐었거든요. 암튼 덕분에 심심치 않은 저녁 시간을 보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