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이여 또다시 울려퍼져라
<명동>
“더 이상 참지 말자”
최루가스와 땅, 눈물 그리고 허기로 검게 탄
얼굴들이
명동의 언덕을 숨가쁘게 행진할 때
붉은 피의 뜨거움이
전민중의 가슴에 흘렀던
그날 6월 10일
독재자의 꼭두각시 폭력 경찰들아
민주주의의 부로하살으 보고 있느냐
타오르는 불꽃이 보이느냐
시민들이여 횃불을 들고 어굼을 밝혀라.
청년학도여 시민들이여 돌과 하염병을
들어라.
물러서지 말고 불서지지 말고
가자.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꽃피는 눈내리기 어언 43년“
43년 압제의 한가운데
피어오른 함성
서울에선 명동으로
퇴계로에서 을지로에서 종로에서
명동으로 명동으로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고
전국에서 투쟁의 불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던 그 날
강물처럼 밀려드는 시민들의 박수와 지지를 받으며
전국으로 독재타도의 불을 붙게 했던
명동의 6월 10일
이 땅 민주투쟁의 선봉이 도었던 6월 10일
명동의 거리
<전라선>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올 때쯤
퍼뜩 조상님도 생각나고
기골에 계시는 삼촌 생각이 나던 걸
자식들꿈지락 꿈지락 자라는 걸 보면서
담배 꼬나물고 일자리 찾아 헤매지만
모두들 시원찮아
전라선을 타고
못내 들여놓지 못할 발걸음에
두 눈 부라리고 내쫓을 줄 알았던
삼촌이 그래도 반겨 주셨지
벌써 머리가 허옇게
올 가을걷이 대충 마쳤지만
풀로질 하는 앞마당
나락섬 훝어 보아도
쩝절한 입맛에 막걸리나 들이키시던 걸
추곡 수매가 올려준다고 하지만
그놈의 것이
똥구녘 밑닦을 종이값이나 될른지
소값도 한번 서리맞은 뒤로 영 글렀지
내 나라 소많이 키우는 데도
미국소 들여 놓는 놈들
벼락 맞르 놈들
막걸리 두어잔에 건들어진
신세타령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되돌렸지
내 고향 삼촌댁도
조합빚은 깍일 날이 없이 쌓이고
농어가 부채 경감대책도
언발에 오줌누기 식이었던 걸
<일당 삼천원>
돌을 들지 않고는 복장터져
못살겠다는 동네 형이
오늘은 술에 잔뜩 취해
나를 찾았다
세상 살기 위운 일이 아닌줄 알지만
일당 3,000원 본봉에
잔업치레 합해봐야 기십만원
고등학교 졸업한 자존심에도
허락지 않을 월급으로는
도통 세상 살 일 못된다며
사장과 다투어 기어이
해고되었다 한다.
다방 일하는 나에게
종종 기천원씩 쥐어주며 용돈하라던
형과 함께 그날 만큼은
밤새껏 같이 울었다.
<종철아 잘가그래이!>
“올해는 꼭 무슨 일이 있을껴
꼭 일을 거구만”
경찰의 모진 고문에
차가운 시신이 된 종철이의 소식을 들으며
한 해를 예언하시던 아버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아이러니처럼
욕탕수조에 두 번 틀어박으니 죽었다는 말도
손가락과 사타구니 상처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스런
여운을 남기고
종철잉는 끝내 죽었다
어야디여 상사디여
2월 7일
어야디여 어화널
3월 3일
“종철아 잘 가그래이
경찰이 자주 나를 찾아왔다만
너를 두 번 죽인 이 애비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2월 7일과 3월 3일
전국 곳곳에서
모두의 가슴에 분노의 칼을 갈게하며
상여곡이 울려퍼졌다
모두의 가슴에 박힌
언젠가는 터뜨리고야말
익어가는 상처의 한을
달래이며 달래이며
<민주여 민주여>
1987년의 또다른 봄이 왔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온
김만철 일가족이 있었다.
그들이 알았던 것은 고작
독재만이 자유롭게 판치는
자유의 나라 민주의 나라였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박종철은 누구도 모르게 죽어갔고
백주대낮에 정치깡패 용팔이
동원하는
폭력의 나라, 방화의 나라, 살인의 나라
여기서 쓰러지고 저기서 쓰러지고
남는 것은 독재의 총칼뿐인 곳
또 한 명이 쓰러졌다.
젊은 가슴 뛰는 맥박
또 하나 인간적인 오침이
쓰러져 갔다.
그러나 여기
너어지고 깨어지고도 살아남은 자들은
외친다
독재타도 민주쟁취
이땅에 살아남은 유일하게 진실한
목소리로 외쳐본다
민주여, 민주여.
<한형 형 보아요>
형
밤이면 형의 얼굴이 보여요
다시는 못볼 형
행여나 잡을까 뛰면
전투경찰 기동대, 총소리 그리고
피투성이 최루탄과 시체가
6월의 꿈을 가위눌러 오곤해요
그런 밤이면
뒷동산 등성이 올라 도시의 불빛위에
재어보던 분노, 슬픔
세월을 흥청이며 술잔 돌려
취했던 후배에게
6월 밤의 가위눌린 꿈의 무게가
이토록 숨찰 수가
형
고등학교적 늘 후배의 작은 가슴에
선망을 주던 호령소리의 상징보다
무겁고도 엄하게
우리의 다짐을 강요해 대며
6월 별보다도 뜨거운 금남로의 거리로
손짓하는 군요
형
이제 부끄럽던 술잔보다
끝없이 거리로 대열을 잇는 사람들과
깃발, 피켓을 든
형의 후배들을 보아요
우리는 이길거예요
못다한 꿈 못다한 젊음
형의 뒤를 이어
우리는 끝내 이길거예요.
형
부디 잘가요.
<손가락 깨물고 머리를 깍고>
최루탄 가스 연기속에서
구역질하며 엎드리며
끝까지 물러서지 말라던 사람들이
잡혀들어 갔다.
대열이 지나고 난 광장에는
그들의 잘린
머리카락 타는 냄새 진하게
퍼지고 있는데
혈서를 쓴 천조각들이
어디든 흩날리며 어지러운데
보기만 해도 답답한 가슴
숨쉬기도 힘든데
기꺼이 가위질하고 피를 뿌렸던
사람들이 끌려가고 없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나의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불러라 답답한 가슴
막힌 숨통트고 불러라
땀을 딱으라며 전경에게 건네주던
화장지와 손수건 어지럽게
널려진 거리위에 외쳐라
적이 아닌 형제들이라며
투구 벗고 웃게했던 뜨거운 사람들이
다시
배신당한 거리 위로
터벅 터벅 걸어오도록
불러라 힘껏
형제들을 두들겨 패야 하는
슬픈 땅 위에
밝은 햇살 부서지며
우리들의 함성 피어오를 때까지
불러라 노래를
한줌의 욕심도 거짓도 없이
밤새워 불러라
나의 노래여
<되살아난 오월광주>
번잡하던 골목마다
메가의 호소와
구호까라 노래따라
대열이 출렁이는 곳에는
음식물과 화장지, 순수건, 물동이가
준비되어
누가 옳은지 누가 적인지를
분명히 했던 싸움
중앙로에서, 금남로에서 충장로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민주.
우리의 소원은 해방.
저항하지 않고 자유일 수 없는 양심으로
최루가스가 온 땅을 허연
무덤으로 장식하기까지
우리는 몸부림치며 일어서리
도청앞 분수대가 해방구가 되도록
밤을 세워 날이 새도록
계속되었던 투쟁
부라!
수천만 민중의 아우성이 울음이되고
우리의 오랫소리가
포효하는 문진벌에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전투경찰과 기동대가
골목을 점령하고 눈을 부라릴 때마다
쓰레기를 퍼붓고 물을 퍼붓고
옥상이든 건물이든 가두에서든
입으로 입으로 전달되던 민주를 위해
형제여
최루탄, 총성 가스도
두렵지 않다
민주를 노래하는 곳이라면
모질게 눈이 후벼파이고
수십번 밟힌 채
거리에 버려져도
감옥에든 죽음이든 가리라.
억압과 억압사이를 뚫고
기어이 피워낼 자유를 찾으로
<끝내 이루한 승리>
높다란 사무실의 직원에서부터
가난한 노인네까지
도시에서 농총까지
쏟아지는 최루탄 속에 우리는 모두
큰 힘 큰 사랑의 물결이었다.
함께하는 거센 우리의 외침속에
불가능은 결코 있지 않는 것
미국놈들 뻔질나게
내집마냥 청화대 드나들더니
우리는 마침내
학살자의 선언속에서
우리의 뜻, 우리의 자유, 우리의 힘을 찾았다.
길고긴 나날의 싸움에서
기어이 우리는
승리하였다.
올바른 정신으로 올바른 몸짓으로
팔뚝 걷어 부치고 성난 물결이 되어
그리도 시퍼렇게 전국을 흘렀던 우리
이제는 알았다.
자유를 노래하는 새 한 마리가
결코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너무도 기나긴 세월동안
미국과 하수인 독재에게
짓밟혀만 왔던 역사에
우리의 피와 눈물을 보태어서 얻어낸 승리
대동단결의 장엄한 역사가
끝내 이룩한 승리
그 승리에게 우리는
장엄한 역사의 귀결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한평도 못되는 음모의 테이블에서
외세와 독재는
아! 얼마마 많은 피를 삼켜 왔던가?
개처럼 끌려가
어디선가 말없이 죽어갔던 형제들
우리의 종철이와 한열이가 아니더라도
서러운 꿈만을 뒤로한 채
숱하게 묻혀간 사람들
전태일, 5월 전사, 김세진, 홍기일…
외세로 절름발이된 나라의 뒷골목에서
너무도 뜨겁게 내 형제들을 사랑하고자
젊은 불기둥으로 사라졌던 사람들.
이들의 피는 보상을 받았던가
안에서나 밖에서나
압살의 원흉들은 여전히 살아
민주화 운운하며 기만의 탈을 쓰고 있는데
그렇다
결코 6월은 승리의 여름만은 아니었다.
외쳐라 다시
군부독재여, 양키 쪽바리여
영원히 가라고
6월로는 부족했기에
6월의 함성 보다 강하게
6월로는 부족했기에
6월보다 조직적으로
반외세 자주화의 투쟁은 곧
빈대 근성의 독재를 불사르는 길
어린애부터 노인네까지
노동자 농민에서부터 모두
한반도 구석 구석에
또다시 외쳐라
그 모든 억압자들에게 외쳐라
가라고
이제는 영원히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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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 30년 시 모음
<집단창작시> 함성이여 또다시 울려퍼져라 (수록문집 꺼지지 않는 통일의 함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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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2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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