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9(목)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개었다. 7시에 아침밥을 해결하기 위해 모텔을 나서 좀 걸으니 대국아이린호텔 뒤편 골목길 안에 아침식사를 파는 식당이 문을 열었다. 여기서 이틀 아침을 해결했는데 솔직히 맛은 별로였지만 그렇다고 멀리 가기도 뭐해서 만족하고 먹었다. 오늘 걷기로 한 7-1코스는 서귀포 신시가지의 월드컵경기장에서부터 한라산 쪽을 향해 고근산(해발 350m)을 올랐다가 다시 해안으로 내려와 외돌개에 이르는 16km 구간이다. 그러고나서도 걸을만 하면 계속해서 외돌개~월평마을의 7코스까지 진행해볼 작정이다. 모텔에서 1호 광장(중앙로터리)까지 걸어가서 120번 버스를 탔다. 월드컵경기장까지는 1,000원 요금.
7-1코스의 출발지점인 월드컵경기장 서쪽 끝에서 아침 8시 45분에 출발했다. 법환교회 옆 골목을 지나 큰 도로를 만났는데 그만 방심끝에 표지를 보지 못하고 길을 건너야 하는데도 그냥 인도를 따라 걸어버렸다. 지도를 보니 강창학경기장 옆으로 코스가 그려져 있어 멀리 보이는 경기장을 목표로 삼았던 게 실수였다. 1km는 넘게 걸었을까? 경기장 맞은 편까지 당도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같아 길가의 슈퍼에 들어가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참 지나왔단다. 그러면서 우리처럼 실수하는 올레꾼들이 많다고 하니 아까 그 갈림길에 표지판을 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나 하고 도로를 건너 맞은 편 인도를 따라 되돌아갔는데 결국 그 갈림길까지 꼬박 되돌아가야 했다. 손해봤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그만큼 더 운동을 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애썼지만, 무려 6차선 넓은 도로를 쌩쌩달리는 자동차들 옆으로 택지개발지구 공사장 앞을 지나 되돌아 걷는 길은 솔직히 고역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찾은 코스는 공사장과 낮은 저층 빌라들 사이를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이었다. 바야흐로 한라산 방향으로 오름길이 시작된 것이다. 빌라들의 대열이 끝나고나니 흙길이 이어졌다. 과수원들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니 지도상으로 4. 4km 지점에 <엉또폭포>가 있다. 여기서 다시 밀감과수원 사이로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적없는 길을 걷다 도로를 만났고, 거기서부터 <고근산>을 오르는 길이 시작되었다. 고근산은 해변의 저지대를 지나 한라산으로 오르는 중산간에 솟아있는 오름의 하나이다. 그리 높지를 않고 이미 산 입구부터 해발 고도가 꽤 높은지라 오르는데 그다지 힘들지 않다. 숲 속의 나무 계단길을 천천히 오르노라면 금방 정상에 도착한다. 7-1코스의 중간 지점쯤이다. 여기서 올라온 방향을 내려다보니 저만큼 아래에 서귀포 해안 저지대와 그 앞 바다가 드넓게 열려 있다. 공짜로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앞바다의 작은 섬(문섬?)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정상의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노라니 바람에 금새 추워져서 하산길을 재촉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이지만 바람은 제법 거세다. (고근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강창학경기장과 해안의 정경)
산굽이를 돌아 반대편으로 접어드니 그곳에는 전혀 다른 장대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한라산! 완만한 경사로 드넓게 펼쳐진 산록의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푸른 바다가 끝나는 지점부터 한라산의 영봉(?)이 서서히 덩치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정상부의 펑퍼짐한 모양은 아직 일어나는 동작이 채 끝나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막막하도록 장엄한 풍경은 앞서가던 선배가 무슨 일이 있냐고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쉬 내 발길을 놓아주지 않고 사로잡았다. 아, 이게 한라산이구나 하는 느낌을 비로소 내 가슴에 담는 순간이었다. 고근산을 내려와 서호마을, 호근마을을 거치며 4차선의 1136번 도로를 만났다. 멀리 식당이 하나 보이길래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시간은 12시가 채 안됐지만 아침식사를 일찍 해서 시장한데다 더 가봐야 식당이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신천지>라는 제법 큰 식당인데 뒤편에 민박도 겸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식(5,000원)을 먹었는데 선배는 반찬이 맛갈나다면서 저녁에도 여기 와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고근산에서 바라본 한라산)
12시 40분 경 다시 길을 나섰다. 13km쯤의 지점에서 언덕 아래로 신기한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넓은 논과 습지같은 게 펼쳐져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인데 <하논분화구>라고 하였다. 펑퍼짐한 넓은 분화구 평지에 용천수가 샘솟아 올라 제주에서는 드물게 논농사를 하는 곳인데 아래에 있는 논이라는 뜻의 ‘하논’인줄 알았더니 큰 논이라는 뜻이란다. 그 하논의 논과 농수로 둠벙 사이의 둑길을 걸어 삼매봉 입구를 지나 종착점인 외돌개로 골인했다. 이 때의 시간이 오후 2시 20분 경. 와서 가만히 표지판을 들여다보니 어제 헛갈렸던 것이 정리가 되었다. 외돌개입구는 6코스와 7-1코스의 종착점이었고 정작 외돌개 해안 산책로는 7코스의 시작이었다. 아직 해가 중천이라 7코스를 내쳐 걷기로 했다. 어제 물집 잡힌 발이 아파와서 걱정스러웠으나 걷다 힘들면 중간에 그만두면 되지 하는 심산이었다.
어제는 날씨가 흐렸던 터라 오늘 다시 보는 외돌개의 해변 풍경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어디까지가 외돌개이고 어디서부터가 돔배낭길인지는 모르지만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해변 산책로는 근 2km 이상 이어져 멋진 풍경의 퍼레이드를 보여주었다. 담배를 물고 다니는 중국 단체관광객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지만, 이 정도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명승지라 할 만하였다. 바다에 면한 길이 끝나고 마을을 거쳐 서귀포여고앞 버스 정류장까지 오니 3시 20분 가량이었다. 3km 쯤 걸었을까, 발도 아프고 해서 7코스의 나머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한다. 오늘은 중간에 헤맨 거리가 길어서 약 22km 정도를 걸었다. 7번 버스를 타고 10분도 채 안 걸려 대국아일린호텔 앞에서 내려 우리 숙소로 귀환했다.
(이것이 아마 외돌개라는 바위이지 싶다)
저녁에는 귀락모텔 사장님을 모시고 낮의 <신천지식당>을 찾아갔다. 흑돼지 오겹살을 먹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술을 못하신다는 할아버지를 옆에 두고 우리끼리만 소주를 나누면서 그의 인생 스토리를 청해 들었다. 9남매를 두었는데 장녀가 벌써 내 나이 또래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부인 속을 꽤나 썩혀드려서 요즘에는 부인을 잘 모시는 데 역점을 두고 사신다는데 며칠 보니 과연 부인께 잘 하는 것같았다. 요즘은 자식들한테서 이제 일 그만두라고 지청구를 듣는다는데 자기 건물 있겠다, 양주가 다 건강하겠다, 굳이 놀 이유가 없으니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귀락모텔을 운영하다 말그대로 ‘즐겁게 돌아갔으면’ 참 좋겠다. 이 주변 올레길을 걷는 분들에게 천지연폭포 윗동네의 인심좋은 귀락모텔에서 묵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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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영춘 BLOG 원문보기 글쓴이: 아차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