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배천(白川)은 황해도 남동부에 위치한 연백군(延白郡)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때 도랍현(刀臘縣) 또는 치악성(雉嶽城)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는 구택현(雊澤縣)으로 개편하여 해고군(海皐郡)가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배주(白州)로 바뀌어 개흥부·충익현·부흥군 등으로 불리우다가 의종 때 개흥부지사로 승격되었다. 1369년(공민왕 18) 다시 배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배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915년 연안군(延安郡)과 병합하여 연백군이 되었고 1953년 이후 황해도 연백군이 되었다.
성씨의 역사
배천조씨(白川趙氏)의 시조는 고려 현종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좌복야(左僕射)·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조지린(趙之遴)이다. 《배천조씨세보(白川趙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의 맏아들인 위왕(魏王) 조덕소(趙德沼)의 셋째 아들로 979년(고려 경종 4)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건너와 황해도(黃海道) 배천군(白川郡) 도태리(都台里)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가 배천에 세거의 터를 잡고 아들 조양유(趙良裕)가 고려 덕종과 정종 때 판위시승(判衛侍丞)을 거쳐 추의찬화익조공신(推義贊化翊祚功臣)·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배천군(白川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배천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세거지
경기도 여주군 가야면 금당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광평리
황해도 연백군 도촌면 마천리
평안남도 용강군 대대면 화조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배천조씨는 20,734가구 총 66,15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