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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4구간(갈령-널재) 산행기
일을 마치고 보니 오늘 무박으로 시작하는 백두대간 산행 차비할 시간이 촉박했다. 여러 가지 일이 놓여 있다 보니 늘 마음에 여유가 없이 버텨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몇 번인가 모드 전환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산행의 홀가분함이 더 기대될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산이 그립게 된다. 그런 때 산에 시원(始原)의 힘이 태초의 평온으로 나를 변화시켜 줄 것 같기 때문이다.
10시 30분 서초구민회관으로 갔다. 이명철 대장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시에 강동역에서 일행이 타고 온 차가 잠시후 도착해 정류장에 섰다. 차 안에는 박기현회장, 최진 회장 부부, 조병섭, 강성택 건축사와 채한배 총무가 타고 있었다. 가다가 죽전 정류소에서 박정호 사장이 타서 이전 일행은 모두 8명이 되었다.
12시 42분 화서 휴게소에 도착해 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식사에 이른 시각이었지만 밤샘 산행을 해야 하는데다 내일 아침에는 통제 구간을 일찍 지나쳐야 해서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을거라고 했다. 지난번 산행때 오간 길로 가서 1시 15분 화서톨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화령재를 지나 출발지인 갈령으로 행했다. 갈령에 거의 도착할 무렵 오소리와 고라니가 길을 건너가는 것이 보였다. 기사님이 그 것들을 치지 않으려고 주의하며 천천히 가고 있었다.
1시 30분에 갈령(443m)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며 산행을 시작할 채비를 했다. 이번은 속리산이라는 큰 산에 오르는 구간이어서인지 더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암릉구간이 있어 앞으로 지날 몇 구간이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들었다. 지난 구간부터 우리는 이미 속리산 영역에 들어와 있었다. 출발지인 갈령은 해발이 높은 편이어서 지난 구간의 가장 높은 산인 봉황산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하늘에 별이 총총해 보였다. 올려다보니 머리 위에 북두칠성이 보였다. 단체 사진을 찍고 1시 38분 출발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그리 춥지는 않았다. 1시 41분 헬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걸어서 1시 48분 두꺼비 바위 옆을 지났다. 우측 아래 문경 화북면 상오리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불빛 수로 보아 20-30호쯤으로 될 것 같았다. 하기야 이 밤에 아예 불을 다 끄고 잠들어 있을 시각이어서 집작보다 많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오름 길을 걸어 올라갔다. 잠시 후 앞을 내다보니 형제봉이 멀지 않은 거리에 검게 나타나 보였다. 지난번 내려오면서 유심히 보았던터라 그 윤곽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급하던 경사길을 오르니 능선길이 완만해졌다. 좌측에도 멀리 몇개의 불빛이 보인다.
2시 9분 갈령삼거리 도착했다. 사람들이 내려갈때보다 빨리 올라왔다고 했다. 지난 구간에서 내려 올때는 갈령 삼거리에서 갈령까지 마지막 구간을 빠져 나오면서 지루한 감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오름 길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 시작 구간은 대간길이 아니어서 그런 곳을 지나며 힘이 빠지는 것을 억울하게 느끼게 되는데, 별로 힘들지 않고 올라온 느낌이어서인지 모두 기분좋게 생각했다. 갈령삼거리에서 마치 일행의 소중한 기억이 담긴 곳처럼 잠시 머물다 출발했다. 다시 형제봉 정상부가 거무스름하게 가늠되어 보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묵묵히 걷게 될 뿐 주변을 잘 의식하지 못했다.
2시 33분 형제봉 정상(832m)에 도착했다. 정상은 바위로 되어 있었다. 그 정상부에 서려면 암벽을 타듯 올라가야 했다. 앞에서 오르는 이대장 뒤로 올라가보니 정상 표지석이 있었다. 주변이 트여 보였지만 어두워 불빛 만 보였다.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뒤에 온 일행 몇 분이 다시 꼭대기에 올랐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했다. 길위에 쌓여 있던 낙엽이 바스라져 흙이 되어가고 있었다. 랜턴 불빛에 비추인 나무들이 미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피어난 생강나무 꽃이 헤드 랜턴 빛을 받아 산수유처럼 보였다. 3시 뒤로 검게 형제봉 산세가 보였다.
3시 8분 피앗재에 당도해서 휴식을 취했다. 큰 나무에 걸어 놓은 판자로 된 표지에 천왕봉까지 5.8km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강건축사가 복분자 술을 돌렸다. 위쪽이 가느다랗게 생긴 유리병이 고급스럽게 보였다. 이대장이 안주로 삶은 계란을 돌리고 채 총무가 방울 토마토도 돌렸다. 제대로 아침을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안 때문인지 그런때마다 챙겨 먹어야 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머무는 동안 몸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3시 16분 휴식을 마치고 출발했다. 길을 오르니 바람소리 좌측 피앗재 산장으로 가는 길 쪽 끝 부분의 불빛이 보였다. 오늘은 지나오는 동안 한번도 민가를 가까이서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속세와 떨어져 붙여진 속리산의 이름이 더 실감 나게 되었다.
길을 기는 동안 바람이 불어 추위가 느껴졌다. 밤중이라 기온이 더 내려가고 있을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날밤을 새듯 산길을 걷고 있는 동안 점차 밤에 익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무박 산행이 많이 잡혀 있어서 백두대간을 다 마칠때까지 밤길을 많이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무박 산행은 시간을 아껴 긴 거리를 가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삶터로부터 먼 들머리 날머리로 이동해서 겨우 한 구간씩을 다녀가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백두대간을 하는 것이 정말 벅찬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산행 인구가 많아지면서 백두대간을 의미 있게 여기고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 추세를 느껴서인지 지자체에서 관광 상품화 하려는 움직임도 있고, 다가온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공약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자연의 신성한 기운이 훼손되는 방향으로 변할까봐 걱정이 된다. 우리가 이런 곳에 어려움을 무릅쓰고 찾아오는 것은 원초적 자연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지 관광지로써 잘 가꾸어진 곳이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요새는 대운하 문제까지 대두되어 있다. 그 일을 시행하면 우리나라의 풍토와 기후 그리고 풍속을 이루어 온 근본적인 국토 환경이 다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런 발상은 인간이 모든 자연을 다 건드려 문명지대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처럼 자연이 다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란 자연의 정화 작용을 하는 자원이 있기에 가능한 상태일 뿐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생이 유한하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지난 몇 구간을 지나는 동안은 삶터가 좀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지만 대부분은 다 오지였다. 그리고 이번 구간부터는 다시 오지인 곳을 가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자나가는 곳은 지형이 특이하게 보였다. 길 부분만 봉우리 정상처럼 봉긋 솟은 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천황봉을 가도록 닦아 놓은 길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가다 보니 앞에 큰 산 보여 천황봉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거리상으로 그렇게 바로 나타날 것 같지 않아서 그 산 너머로 나타날 것처럼 다시 생각했다. 좌측에도 큰 산 능선이 지나는 것이 검게 보였다.
3시 35분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두 그루 소나무 사이로 올랐다.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른 후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걸어 3시 41분 726고지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우측에 상오리 방향의 불빛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피앗골 방향의 불빛이 보였다. 다시 길고 느린 오름길을 걸었다. 3시 55분 급경사길이 나타났다. 그 곳을 올라 앞에 보이는 봉우리 좌로 돌아가는 길을 지났다. 3시 57분 봉우리를 지나고 나니 다시 앞 봉우리가 보였다. 내리막길을 지나 그 봉우리로 오르는 동안 다시 급한 오름길이 나타났다. 4시 2분 그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는 동안 바람이 조금 세차게 불었다. 계속해서 내리막 길을 걸었다. 흙길에 잡석, 자갈이 섞여 있어 발 디디기가 불편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추웠다. 다시 우측 아래쪽에 불빛이 보였다.
다시 오름길을 걸었다. 완만하게 긴 길이었다. 4시 13분 폐헬기장에 도착했다. 그 곳을 지나 좌로 굽은 내리막 길을 걸었다. 길에 바위들이 박혀 있어서 마치 산양들이 지나 다닐 것 같은 길이었다. 앞에 검게 큰 산이 보였다. 험한 암릉 길을 지나니 멀리 불빛이 보였다. 4시 21분 703봉에 도착했다. 다시 앞에 큰 산이 보였다. 천황봉일 것 같았다. 그러나 고도표에 나타난 천황봉은 더 높이가 높았는데 어림짐작으로 그만큼 높아보이지 않아서 아닐 것 같았다. 그 산 봉우리를 지나 다시 급경사길로 내려 갔다. 뒤에 걷던 박정호 사장이 또 내려가네라고 했다.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길을 계속해 걸어갔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완만해졌다. 길을 걷다 가끔 돌부리에 신발이 부딧쳤다. 전지가 닳았는지 헤드 랜턴 불빛이 점차 약해지는 느낌이었으나 갈아 끼워야 할 정도는 아닌 듯해서 그냥 걸어갔다.
오르막길을 올라 4시 29분 봉우리에 닿았다. 그리고 좌측에 우회로 같이 난 내리막을 걸어 내려갔다. 오르막 우측에 천왕봉인 듯한 산이 보였다. 일행이 쉬어 가자고 했다. 앞장 선 이대장이 바람 없는 곳에서 쉬자며 쉴 곳을 찾으며 갔다. 그러나 쉴만한 곳이 나타나지 않자 바람 없는 곳 찾다가 천왕봉까지 다 가겠다고 했다. 4시 오르막길에서 휴식을 가졌다. 경사지지만 바람 부는 방향 뒤편이어서 안온했다. 거기서 아까 남은 병의 복분자 술과 계란, 오랜지 등을 먹었다.
4시 44분 전망바위에 당도했다. 밤이라 잘 가늠되지 않지만 훤한 때는 전망이 좋을 것 같았다. 다시 그 곳을 지나 4시 51분 705봉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길게 게곡이 이어져 트여 나가고 있고 그 뒤로 불빛이 보였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은 옆으로 이어져 보였는데 그 곳에서는 트인 방향이 달라서 우리가 지나온 거리가 실감케 되었다. 그리고 지형의 국면이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5시4분 내리막 길을 걷다 발이 푹 빠지며 미끄러 넘어지고 말았으나 다친 곳은 없었다. 잠시 후 넘어진 나무가 길에 가로 놓여 있는 곳을 지났다. 그리고 우측으로 낭떠러지가 되어 있는 곳을 지나 내리막 길을 걸었다. 길을 가다 다가서 있는 천왕봉의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잠시 후 계단으로 된 부분이 나타났다. 경사가 심한 구간이 길어서 오르며 큰 산을 오를 때의 벅찬 느낌이 들었다. 희미하게 어둠이 걷히기 사작했다.
경사지에 난 험하게 느껴지는 길을 지나가니 표지판이 나타났다. 불빛을 비춰 보니 망개나무, 노란 목도리 담비, 삵 등( 모두 멸종위기 2급)의 보호를 위해 입산을 통제한다는 글이 표지판에 쓰여 있었다. 거기서 우측 위로 정상의 모습이 가까이 보였다. 몇 시간을 목표로 삼아 걸어온 오고, 상징적인 곳을 이제 머잖아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레임이 일었다.
5시 32분 천왕봉에 올랐다. 그 곳에 오르니 이대장이 표지석을 가르키고 있었다. 나도 그것을 확인한 후 본능적으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둠속에서도 주변이 드넓게 트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펼쳐진 산세의 실루엣만으로도 그 곳의 풍경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날이 새는 시각이어서 빠르게 산세가 뚜렷해지고 있었다. 큰 산세가 넓고 크게 사방으로 겹겹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햇살에 비추인 상태가 아니어서 계절색이 느껴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속리산은 확실히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아마도 내륙의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 가운데 가장 풍치가 아름답고 장엄한 산세가 펼쳐진 곳일 것 같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천황봉은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한강, 그리고 금강, 낙동강 3파수가 되는 지점이다. 표지판에 우측 문경 쪽으로 낙동강, 그리고 보은 쪽이 한강유역 그리고 아래쪽이 금강 유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속리산은 백두대간을 잇고 있으면서 독자적으로 영역으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법주사와 유학의 도장으로써 화양구곡이 있는 정신적 도장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대찰은 산세를 살펴 자리 잡았는데 법주사는 미륵도량으로서 완주 금산사, 논산 관촉사와 함께, 후삼국시대부터 고려초까지 유행한 미륵 신앙의 주요 확산 경로이다. 그리고 속리산의 빼어난 산수를 배경으로 화양구곡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에 거처를 마련한 우암은 학자이면서 현실 참여 정치인이었다. 그는 노론의 영수로서 세력이 있었고 이 지역의 맹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한 대찰과 서원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곳의 지리적 신성함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
천왕봉의 아름다움은 8봉(峰), 8대(臺)로 대표된다. 8봉은 최고봉인 천왕문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이다. 그리고 8대는 문장대를 비롯하여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신호대를 일컽는다. 그 외에도 8석문을 꼽는데 그것은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을 말한다. 8일란 숫자를 붙여 놓은 것은 불교의 깨달으에 이르는 여덟가지 길이란 8정도의 숫자를 귀히 여겨 붙인 듯하다. 동이 터 왔다. 점차 밝아져 윤곽이 드러나 보였다. 문장대가 보였다. 그 옆에 철탑이 있어 눈에 잘 뜨였다. 그 곳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기암괴석을 보면서 스케치를 했다.
6시 천왕봉을 출발했다. 거기서 진행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모습은 지금까지 중화지구대를 오면서 보이던 풍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속리산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백두대간의 구간을 지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는 동안만큼은 백두대간 종주의 본분을 망각한 채 명산의 풍광으로 보기 뉘해 나들이 온 것처럼 착각하게 될 것 같았다. 속리산의 진경을 보게 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행의 목적은 엄연히 백두대간의 과정으로서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경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이다. 다시금 과거의 삶의 영역이 자연의 지형 조건을 바탕으로 설정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큰 산줄기는 그 만큼 삶의 영역을 확실히 나누고 있다는 것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태백산까지는 그렇게 삶터로서의 영역의 경계를 지나게 된다. 이곳은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그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된 유명세를 실감하게 되었다. 명산으로 불리는 것이 다 이유가 그만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바위들이 어우러진 장엄하고 기묘한 형상의 모습 뿐 아니라 깊고 너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점이었다. 밤에 지나온 구간과 달리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보다 속리산 특유의 지형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좌측으로 보니 마치 남한산성처럼 큰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내부의 공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둘러친 산세의 공간에 법주사가 놓여진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법주사의 절터를 잡으면서, 이러한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고려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법주사의 터는 거대한 산세의 기운이 느껴지는 터 위에 세워 놓아서 자연의 기운으로부터 도량으로서의 자연의 맑고 큰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속리산의 진경이 주 구간을 따라 펼쳐져 있는 이번 구간은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이어진 백두대간 구간중 가장 황홀한 장면일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나가는 백두대간 주 루트상에 천왕봉- 비로봉- 문수봉 -문장대가 있다. 그리고 비로봉과 문수봉 사이에 입석대, 신선대, 정업대를 지나 관음봉 묘봉으로 둘러쳐지게 된다. 그 중 우리가 가는 구간은 그 루트로 문장대에 이르러 서북측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하산 길은 깊게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되지는 않았다. 지도에도 고도차가 크지 않게 나타나 있다. 조릿대 숲길이 까만 거름길이 되어 있었다. 내려와 뒤를 바라 보니 앙상하게 빽빽히 서 있는 겨울 숲의 모습이 보였다. 경사지를 내려오니 표지판이 보였다. 천왕봉이 0.6km로 표시 되어 있다. 일행이 얼마나 갔는지 금방 보이지 않았다. 진행방향을 보니 커다란 바위들이 즐비하게 서서 봉우리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으로 보여 사진을 찍었다. 다시 우측 정상부에는 높고 길쭉한 바위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아직 햇살이 비추지 않아 사진이 거무스레 해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러한 우람한 바위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앞쪽으로 나아갈 곳을 바라보니 잡석이 급한 경사지에 구르듯 널려 있었다. 6시 17분 그 곳을 지나 능선에 올랐다. 거기서 속리산 법주사 방향을 바라보니 멀리까지 공간이 트여 보였다. 다시 길을 가다 6시 21분 천황석문이 나타났다. 그 너머로 비로봉쪽 풍경이 보였다. 석문을 빠져 나가니 능선을 넘어가도록 길이 나 있었다. 길을 오르다 뒤를 바라보니 앞쪽에 큰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조금 멀리 지나온 천황봉이 보였다. 오를 때 밤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천황봉의 봉우리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시 길을 이어갔다. 다시 앞쪽에 큰 바위가 보였다. 그 바위와 우측 진행 방향에 놓인 산줄기 와 멀리 우리가 지나온 구간의 산세들이 어어 보였다. 우측으로는 앙상한 마른 가지와 키 작은 산죽의, 겨울을 지나며 온 익은 푸른 색감이 어우러지고, 군데군데 큰 바위들이 마치 설치예술을 하듯 놓여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봉우리를 올라보니 천황봉과 함께 지난 구간의 산세들이 푸르게 이어져 보였다.
다시 팻말이 나타나 바라보니 천황봉 1.2km를 지나온 지점이었다. 그 곳을 지나 봉우리를 넘으며 보니 뒤에 가던 일행이 보였다. 능선을 넘어 나오니 내려가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전혀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산자락 너머로 어느새 해가 떠올라 있었다. 구름이 끼어 있어 일출을 보지 못했다. 다시 앞 쪽에 바위들이 어우러진 몽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6시 46분 다시 안쪽 산세방향으로 다가서게 되었다. 능선을 지나며 바라보니 멀리 법주사 앞 쪽으로 좁은 들녘이 길게 이어져 보였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속리산을 느끼기에 좋은 날씨였다. 산 봉오리를 오르면서 시야가 멀리 트여 보였다. 큰 바위 사이를 가는 동안
큰 능선의 안쪽과 바깥쪽이 번갈아 보였다. 다시 안쪽으로 경사지게 놓인 큰 바위 봉우리로 된 입석대가 나타났다. 속리산은 많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성소처럼 여겨지고 멀리 사는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별천지로 인식되어 왔다. 법주사 같은 대찰이 의지해 있어 더욱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한 곳을 지나면서 그에 힘입어 나 자신이 겪어온 삶의 황폐함도 치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가정의 우환속에 자라오면서 놓여진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긍정적으로 여겨지지 않은 채 불안감 속에서 살아오게 되었다. 그처럼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렵고 서먹한 인식은 평생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농사짓는 마을에서 자연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살아온 동안 자연과 대화하면서 지냈던 것만큼은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품안에 들 때마다 나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갖게 된다.
6시 57분 신선대에 도착했다. 그 곳은 천왕봉 쪽과 문수봉쪽 산세가 함께 펼쳐 보이는 지점이었다. 거기에서 쉬고 잇던 일행과 만났다. 내가 당도하니 막 다시 길을 나서고 있었다. 문장대에 혼자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앞서 가다보니 선두에 가던 이대장이 보였다.
문수봉을 오르는 입구에 큰 바위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점차 오르며 보니 계단도 놓여 있었다. 그 곳을 올라서니 천황봉까지 지나온 구간이 차례로 이어져 보였다. 그리고 봉우리를 넘으니 앞쪽으로 문장대 산세가 보였다. 이대장이 나머지 일행은 문장대에 오르지 않고 지나칠테니 혼자 빨리 올라갔다고 오라고 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며 앞서갔다.
7시 20분 문장대에 도착했다. 인기척이 없었다. 그 곳에 새워 놓은 표지석과 그 곳을 설명한 표지판을 보고 문장대에 올라갔다. 높은 봉우리여서 주변 산세가 다 보였다. 다시 내려왔으나 일행이 아직 다 당도하지 않아서 먼저 왔던 사람들이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오던 일행이 도착해 함께 휴식을 취하다 7시 50분 그 곳을 출발했다. 나는 가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천황봉 쪽을 보고 스케치를 하고 있다가 뒤따라 가 보니 벌써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초행길이라 접어든 입구를 알지 못한 상태여서 두리번거리다 문장대를 오르는 길 입구쪽에서 우측으로 들어서는 길을 발견하고 들어섰다. 길가에 조릿대가 푸르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아래쪽으로 시선이 펼쳐졌다. 거기서부터 지나가는 곳은 험하기로 유명한 암릉 구간이었다.
가다보니 지나갈 방향으로, 큰 바위 봉우리 사이에 계곡처럼 틈이 나 잇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정말로 산철죽 가지가 철망처럼 엉겨진 모습 뒤로 거대한 석문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풍경으로 감상하고 지나칠 줄 알았던 그 석문 사이를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냥 도보로 지니 칠 곳이 아니고 걸려 잇는 로프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암릉구간에서 처음으로 로프에 의지해 지났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니 우측으로 높다랗게 병풍처럼 서 있는 바위가 잇고 그 좌측 아래로 이대장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곳을 통과해 다시 능선에 오르니 관음봉 쪽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 멀리 띠 모양으로 길게 늘어진 농경지가 보였다. 다시 능선 우측으로 험한 암릉 구간이 나타났다. 거기서 우측 바위틈 새로 빠져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했다. 로프로 내려가는 길이가 10여미터나 되었다. 그 곳을 지나가니 앞서 간 이대장이 뒤로 돌아서서 일행이 빠져 나오는 것을 조심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니 밀가루 반죽에 넣은 고구마 조각과 함께 튀겨 놓은 핫도그 표면처럼 바위가 돌출된 봉우리가 보였다. 그 곳을 다가가서 다시 병풍같은 벼랑 바위 아래 우측 길로 지나갔다. 그 곳을 지나 앞에 놓인 봉우리 사이 안장 같은 계곡을 지나는 동안 우측에 기암절벽으로 이우러진 평풍 같은 산이 펼쳐 보여 스케치 했다. 다시 오름 길을 걸어가다 보니 우측에 놓인 큰 바위 가 처마처럼 놓여진 곳 아래로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을 지나니 다시 좁은 동굴 같은 곳이 나타났다. 이제 암릉구간도 다 지나갔겠지 생각하고 가다가 다시 험한 곳에 맞닥뜨려져 긴장이 되었다.
그 곳 입구는 높이가 낮아서 배낭을 벗어 놓고 지나야 했다. 앞서 간 일행이 배낭을 받아주었다. 그 곳을 빠져나가니 너른 바위가 있었다. 일행이 거기서 쉬면서 각자 조금씩 간식을 꺼내 먹고 있었다. 박기현 회장은 아예 길게 바위위에 누워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옆으로 지나온 큰 바위 우뚝 서 있었다. 거기서 일행들이 쉬며 이야기 했다.
다시 출발해 가다 보니 마치 조개가 입을 벌리듯이 위아래로 갈라져 틈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나타났다. 로프를 잡고 올라가 그 좁은 틈으로 빠져 나갈 것이 난감하게 느껴졌다. 앞서 가던 박기현 회장이 먼저 틈을 빠져 나가는 동안 앞서간 이대장과 채총무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어 내가 배낭을 한 손에 들고 기어 나갔다. 그 곳을 지나 앞을 보니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곳에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모습이 특이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 모습이 오늘 우리가 지나는 구간의 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그 곳은 넘어가지 못하고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바위 틈을 지나는 것이 아니더라도 험한 암릉 구간이라 조심스럽고 힘이 들었다. 건너와 뒤 돌아 보니 둥글둥글하게 생긴 너댓개의 거대한 바위가 봉우리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 산행 구간은 긴데다 그렇게 험난한 구간을 지나면서 점차 몸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 자체가 자연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자연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런 모습과 인간의 문명은 대조적이다. 자연의 모습에는 신비로움이 있다. 살아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문명은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것과 모든 것이 인공으로 된 것의 대비이다. 그런데 요새 친환경을 주창하면서 인위적으로 자연의 효과를 갖게 하려하고 있다. 그것은 인공적으로 자연의 가치를 함양시키려는 일이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더 많은 비용이 쓰이게 된다.
다시 계곡으로 난 길을 걸어갔다. 암릉 구간을 지나면서 나타나 보인 숲이 평온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바위를 다 벗어나온 듯 했다. 뒤로 지나온 바위가 있는 능선이 보였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암릉을 다시 로프를 잡고 내려와야 했다. 그 곳을 지나가니 길 앞에 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핀 것은 생강나무와 그 꽃만 보였다. 아직 나무들은 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햇살을 받아 까칠할 때와 달리 생명의 윤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9시 8분 나무가 옆으로 비월 장애물처럼 걸쳐진 곳 옆에 생강나무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산이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숲길이 나타나 암릉 구간을 벗어난 것 같이 생각되었다.
9시 24분 앞 봉우리 위에 마치 광개토대왕 비석처럼 생긴 바위가 보였다. 9시 29분 그 입석바위를 지나 앞에 나타난 봉우리에 올랐다. 거기서 얼마 남지 않은 밤티재를 지나갈 것을 걱정하면서 모두 기분이 침울해진 상태였다. 백두대간을 지나가기만 하는데, 막아야 할 이유가 뭐냐고 했다. 9시 35분 봉우리에 머물며 상의한 끝에 가다가 마지막 봉우리에서 우회해 가기로 했다.
9시 38분 다시 출발했다. 이대장과 앞서 가다 뒤에서 전화로 불러 다시 길을 돌아서서 걸으니 뒤에서 다른 일행이 오고 있었다. 박기현 회장이 좌측으로 가라는 손짓을 했다. 이대장과 함께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얼마나 가야 될지 알 수 없었다. 낙엽이 덮인 곳을 밟다 발이 깊이 빠지기도 했다. 바위 사이에 얼기설기 쌓여 있는 곳이었다.
계곡을 건넜다. 계곡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쪽으로 가면 원래 길의 방향으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듯 했다. 그 계곡 너머로 우리가 가려는 길이 바로 나타나지 않고 산세로 연결된 계곡으로 들어가 빠져나가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도상에서 볼 때는 지나가는 도로가 표시되어 있어서 더 나가면 도로에 당도할 것으로 생각하며 10시 10분 다시 계곡방향으로 들어섰다. 잠시 걷다 뒤의 일행이 길을 잃을까봐 가다리며 돌아서 보다가 다가온 일행의 모습이 보여 다시 길을 걸었다.
계곡이 점차 물이 많아졌다. 이 대장이 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조릿대 숲을 지나갔다. 멀리 산봉우리가 보였다. 그러나 그 곳이 어떤 산인지 모른 채 도로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며 걸었다. 조금 더 가니 화장실 같은 작은 건물이 보였다. 초소처럼 보이기도 해서 긴장이 되었다. 이대장이 그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나는 뒤에서 걷다 계곡으로 빠지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 계곡으로 가니 도로가 나왔다. 10시 35분 도로로 나와 뒤를 돌아보며 기다리니 이 대장이 계곡 쪽으로 길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길 건너 언덕진 곳에 묘가 있어 그 곳에 올라가 일행을 기다렸다. 잔디가 평평하게 닦이고 빛이 잘 들어 앉아 쉬기 좋은 곳이었다. 우리 일행이 나오는 곳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었다. 바로 나타나지 않아 전화를 했다. 알겠다고 한마디 하고 하고 끊었다.
염려하며 기다리고 있는 일행에게 전화를 늦게 건 것 같았다. 바로 뒤따라오며 상황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잠시 후 일행들이 길을 건너 올라왔다. 맨 뒤에 오던 최진 회장도 도착했다. 문제가 잘 해결 된 것 같아 모두 마음이 활발해졌다. 조금 뒤로 이동하여 편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박정호 사장이 이번에도 음식을 푸짐히 준비해 와서 선지 해장국을 끓였다. 최진 회장 사모님이 잡곡밥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 강건축사는 여러가지 전을 많이 싸가지고 와서 펼쳐 놓았다. 채총무도 김찌 찌게거리를 갖고와서 끓였다. 아침을 먹는 시간이 늦게 된 터라 오랫동안 걸어오면서 지쳐 있는 상태에서 더운 국물을 먹으니 몸이 풀리는 듯 했다.
양지녘이라 봄기운이 따뜻했다. 덥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행은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강성택 건축사가 이제 촉이 떨어져서 더 못가겠다고 했다. 밥을 먹으며 의견들을 들었다. 시간적으로는 아직 이른 편이었다. 대체로 가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대장이 아까 얼굴색이 창백해 보였던 최진 회장에게 힘들면 여기서 차를 타고 널재서 만나자고 하니 그도 가겠다고 했다. 콘디숀이 좋지 않던 사람들이 가겠다고 하니 모두 이의 없이 가게 되었다.
11시 33분 다시 길을 나섰다. 제 길이 아니어서 길을 찾기 위해 점차 우측으로 이동하며 올랐다. 앞서 오르다 뒤돌아보니 길이 없는 산을 올라오는 일행의 모습이 마치 특수 임무를 띠고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다시 봉우리를 오르며 뒤를 바라보니 멀리 지나온 속리산 산세가 보였다. 우리가 오르는 곳의 지대가 낮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진달래가 막 봉오리를 펼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노란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오르는 산자락은 떡갈나무 숲이 미라처럼 앙상하게 투명한 숲을 이루고 있고 아래에는 그 나무에서 떨어진 황갈색 잎이 빛을 받아 고상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홀로 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마치 따스한 햇살의 기운을 발하듯 숲을 화사하게 느껴지게 피어 있었다. 다시 올해의 한 달이 지났다. 지난주에는 기온이 낮아졌었는데 엊그제부터 기온이 많이 올라서, 오늘은 낮이 되니 덥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옥상의 싹이 움트는 것을 보면서 산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능선을 오르니 다시 지나온 속리산 구간이 희푸르게 펼쳐 보였다. 우측에 큰 바위가 엉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보였다. 경사지 숲에서 그 바위틈으로 오르니 찾고 있던 리본이 보여 무척 반가운 느낌에 안심이 되었다. 12시 2분 정상 696.2봉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이른 편인데다 이제 제 길로 접어들었으니 아무 걱정이 없게 되었다. 뒤의 일행을 가다려 12시 20분 함께 출발했다. 거기서 오늘 마칠 널재까지는 한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12시 37분 널재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밤티재로 내려오던 아까와 달리 평온한 기분으로 쉬게 되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해 내리막 길을 내려갔다. 숲 속에 생강나무가 피어 있었다. 앙상한 숲을 배경으로 핀 그것만이 생명력을 분출하고 있어서 더 눈에 띠었다. 다시 자연의 기운이 오르고 있다. 이제 얼마후부터 신록이 피어나면 산의 풍경은 빠르게 변할 것이다. 내가 지난 산행에서 산에서의 변화는 더디 찾아 올거라고 했었는데 진달래 꽃송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다음 산행 때는 많이 변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때는 나의 마음안에서 세월을 더디 느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시 34분 널재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가사님이 시원한 맥주를 준비해 놓아서 반갑게 한 캔을 마셨다. 거기서 차를 타고 바로 이동해 나왔다. 계곡 방향으로 놓인 길이 큰 높이 차이 없이 평탄한 상태로 지나고 있었다. 그 도로로 나오니 화양동 계곡이 나타났다. 유명한 계곡이 나타나자 일행이 탁족을 하고 가자고 해서 차를 잠시 길 옆에 세우고 내렸다. 나도 수건을 챙겨가지고 내려갔는데 경치가 좋아 보여서 스케치 하느라 탁족할 생각을 잊고 있다 일행들이 다시 타고 있어서 뒤따라 차에 탔다.
다시 버스가 출발했다. 모두 식사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해서 바로 서울로 향했다. 차에서 모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중간에 일어나 보니 미동도 않고 고요히 자고 있었다. 나도 금새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나 채 총무가 다왔다며 깨웠다. 주위를 보니 광진대교 근처의 강변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거기서 올림픽 경기장 옆을 빠져나가 4시 42분 삼성역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모두 피곤한 듯 평소처럼 맥주한잔 더 하자는 말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0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