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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호주국립대학[ANU] 온라인 학술저널 New Mandala 2012-4-5 (번역) 크메르의 세계
[컬럼] 마녀사냥 : "태국에서는 튀지 마라!"
Don’t stand out in Thailand

객원 기고가 : Jack Radcliffe
필자는 태국의 군주가 어떤 방식으로 태국 내에서 헤게모니의 성격을 지닌 '단결'에 관한 담론을 대변하게 되었는지를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것은 다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복종은 장려되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당한다.
주로 교육과 미디어들을 통해 이뤄진 '통일된 형태의 태국다움'(unitary form of Thainess)을 지닌 타산적이지(=이 문제에 관한 자각이 없는) 않은 대중들 속에서, 국가의 역할이라든가 혹은 그 주민들에게 숨막힐듯한 모습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왕실모독 처벌법>에 관해서, <뉴 만달라>(New Mandala)의 독자들에게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해볼만한 흥미로운 초점은, 외형적으로는 독립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페이스북 상에서 활동하는] '소셜 생션'(Social Sanction: 직역하면 '사회적 제재') 같은 단체들이 '태국다움'을 적절하게 보여주지 않는 이들을 '레드셔츠'(UDD)라고 폭로하면서 마녀사냥(witch hunting)을 조직해나가는 방식이다. 페이스북 상에서 활동하는 '소셜 생션'은 2만명 이상의 회원을 갖고 있고, 이들은 태국의 군주를 모독했다고 고발된 레드셔츠 성향 인물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공개적으로 게시한다.
최근에 진행된 사이버 마녀사냥은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린 네티즌 '조스 스틱'(Joss Stick) 사태나, [왕실모독법 개정운동 법학자 모임인] '니띠랏'(Nitirat) 회원인 워라쩻 파키랏(Worachet Pakeerat) 교수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다가, 누군가의 성공적인 경력 역시 적절한 수준의 [군주에 대한] 숭상을 보이는 가운데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가장 명확한 실례 중 하나가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AF'의 출연자였던 막(Mark)의 경우일 것이다. 그는 2010년에 페이스북에 왕당파인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총리를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가 마녀사냥을 당했다. 게다가 그가 "언제쯤이면 가가호호마다 걸려있는 사진(=푸미폰 국왕 초상화)이 떼어질 것인가?"라고 질문한 것은 더욱 도발적인 것이었다.
막은 해당 쇼에서 탈퇴하면서 회한에 찬 사죄를 했다. 그는 동포인 태국인들에게 "우리의 정치적 차이점을 미뤄두고, 국왕 폐하의 기쁨을 위해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정치적 노선을 발로 비벼끄면서, 튀는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경력에 미칠 수 있는 여파를 최소화시키려 노력했다.
2010년에 '레드셔츠 도당'이라고 고발된 또 다른 연예인으로는 통차이 '벗' 맥인따이(Thongchai Bird McIntyre)가 있다. 그는 '붉은' 연예인들을 "비난"할 목적의 페이스북 사이트에 등재됐다. 아마도 그러한 비난이 벗 통차이로 하여금 "나에게는 색깔이 없고, 국왕께 대한 충성심만 있다"고 주장토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가 [자신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국왕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만화영화에 참여하게 된 일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애니매이션은 태국의 어린이들에게 "국왕의 은덕에 감사"하도록 가르치는 내용을 갖고 있다. 자신의 진정한 신념을 무시하면서, 불충에 대한 고발을 피해나가는 좋은 방법으로서, 이 장로(=국왕)의 뒤로 자신의 자리를 옮겨가는 것은 현명한 경력관리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러한 역할을 제공해준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 될 것이다.
유명한 벗 통차이의 사건은 수많은 매체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고려해볼만한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충성의 정치가 직장 내에서 작용하는 방식이다. 가령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 집안 사람들의 사진과 같은 반항적 상징들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국왕의 사진을 놓아두는 사람들의 동기는 무엇일까? 그 사진이 일상생활 속에서, 마치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 상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로 하여금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일까? 아니면 의심이 횡행하는 이러한 시기에 자신의 복종심을 공공연히 보여주는 일이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확실한 해답을 갖고 있진 못하다. 하지만 어떠한 논평에 대해서도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측면에서든 은유적 측면에서든, 마녀사냥의 역사는 항상 주류적인 정치적 계층의 관점에 순응토록 하기 위한 시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가 주도하던 중세에도 동일하여, 약초를 파는 미혼의 시골 여성을 '마녀들'(witches)이라 불렀다. 미국 매카시즘(McCarthyist) 시대의 마녀사냥은 당시 미국에 유포되던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운동을 제지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런가 하면 소련의 공산당은 정치적 반대파들을 획일화시키고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마녀사냥의 목적은 단일한 주류적 세계관을 주입시키기 위한 것이며, 벌을 받는 사람들도 주류세력과는 약간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시골지역에서 점차로 정치적 의식이 성장하면서, 일단 기호학적 관점에서 명목적인 수장 하에서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시점에서, 향후 수년간 보다 다원화된 '태국다움'이 등장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다. 그때까지는 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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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근히..
재밌는 글이네요... ^ ^
제가 좋아하는 벗 통차이 이야기도 나오고요...
푸미폰 국왕이 태국의 단결에 상징적 존재이자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란 말씀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