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로 한국의 어느 한 기자가 다른 일행과 2012.2월 온주를 방문하고 돌아와 여행기를 쓴 내용을 아래 첨부하니 한번 읽어보세요. 특히 중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인 온주에서 전시회 한다니 참석하실 분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올려 봅니다. 참고하세요.
----------------------------------------------------------------------------------------------
王朝호텔에 여장 풀고 도착 첫날부터 활동 돌입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12시 50분_.
중국 동방항공 MU5042편에 몸을 싣고 중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중국 절강성 온주_. 방문 목적은 한국의 모 제조업체를 온주의 기업가와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이 업체가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한 설명과 협의를 위해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내용들을 가지고 관련자 6명의 방문단을 조직 했는데 필자는 이 방문단에서 홍보를 맡았기에 함께 동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온주까지 아직 직항로가 없기에 항주나 상해를 경유해서 가야 했다. 필자는 이날, 일행과 함께 상해를 경유지로 하고 인천공항을 정시에 이륙, 2시간 후인 현지시간 14시, 상해 푸둥 공항에 도착, 온주로 향하는 MU5510편을 상해 공항 국내선 터미널에서 기다렸다. 溫州행 비행기는 16시에 출발을 한다고 했다. 약 1시간 30분을 공항 내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대기 중 마침 필자의 옆자리에 40대의 중년여성이 있기에 호박엿 사탕 1개를 건네면서 중국어로 인사를 나누자 반갑게 대응을 해 주었다. 그녀는 한족여인으로 하얼빈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필자가 “하얼빈 도리 조선족소학교를 아느냐?”고 묻자 그녀는 “잘 안다”고 답을 했다. 이에 필자가 ‘도리조선족소학교 명예교장’이라고 밝히면서 명함을 건네주자 그녀는 더욱 더 반갑게 대했다. 그녀의 직업은 약사, 하얼빈 시내에서 산다고 했다.
16시, 상해공항을 이륙한 온주 행 비행기는 예정보다 30분 늦은 17시 30분에 온주 공항에 도착, 지난 1월 13일 서울에서 만났던 溫州大學校 田 景 교수와 溫州市 國際投資促進中心 鄭光亮 主任이 우리 일행들을 반갑게 영접을 했다. 이미 주위는 어둠이 엄습해 왔다. 그간 1994년부터 수없이 중국을 오갔지만 필자는 온주방문이 이날 처음 이였다. 숙소인 王朝호텔로 향하면서 차창을 통해 밖을 살펴보니 조용한 도시임을 느끼게 했다. 전 교수가 호텔 도착시 까지 온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溫州는 중국 절강성 남동부에 있는 항구도시라고 한다. 지구급(地區級) 市로 온주 지구의 행정중심지며 온주는 어우장 강[甌江] 입구로부터 상류 방향으로 30㎞쯤 떨어진 남쪽 기슭에 있고 어우장 강 입구는 작은 섬들과 진흙 둑들로 크게 방해를 받고 있으나, 1,000t급 선박을 이용하면 원저우 항구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어우장 강은 산지가 많은 절강성 남동부의 동맥 구실을 하는 수송로로, 상류지역의 주요 농산물 집산지인 리수이[麗水]에서 정크를 타고 항행할 수 있다고 한다. 더 멀리 떨어진 내지와의 교통은 거의 전적으로 진화[金華:온주에서 북서쪽으로 약 160㎞ 지점]까지 놓여 있는 간선도로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 교수가 설명을 했다.
인구 750만의 항구도시로 중국내 부자들 가장 많아
한대(漢代)인 BC 2세기에 이 지역 온주는 동해공(東海公)의 봉토인 동구(東甌) 왕국이었는데 얼마 후 회계군(會稽郡:지금의 사오싱[紹興])에 편입되었다. 동진(東晉:317~420) 때인 323년부터 융자 군의 군청 소재지였으나, 수(隋)나라가 남방을 통일한 581년 이후 폐지 되었다가 이후 당(唐:618~907) 초기에 이 지역에서 상당히 큰 반란이 일어났고 온주라는 이름은 이 도시가 마침내 주(州)가 된 675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한다. 명대(明代:1368~1644)와 청대(淸代:1644~1911)에는 溫州府로 승격되었다가 1912년 府가 폐지되고 공식적으로는 융자 현으로 다시 격하되었다고 한다.
그 후 1876년 조약항이 되어 대외무역이 개방되었고 이후 잠시 동안 이곳에서 상당한 양의 차(茶) 무역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이 항구는 외국과의 무역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조계(租界:외국인 거류지)도 들어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곳의 무역은 중일 전쟁중에 다시 성행을 했는데 온주항구는 1937~42년 중국인 수중에 남은 몇 안 되는 항구 가운데 하나였다가 1955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절강성 해안을 따라 진행되던 해상수송이 완전히 회복되면서 이후 빠른 속도로 복구되었다고 전 교수가 온주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전 경 교수가 설명을 해주는 동안에 호텔버스는 왕조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고 곧바로 호텔 3층에서 온주시 상무국 張妙娟(여) 부국장이 주최하는 만찬을 가졌다. 통역은 전 교수가 맡았다. 장 부국장은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면서 일일이 명함을 교환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그녀에게 중국어로 “한국의 여배우 태현실과 외모가 비슷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웃으면서 “류 선생께서 예쁘게 봐 줘서 고맙다”고 답을 해 한바탕 웃기도 했다.
다음날인 2월 27일 오전 10시, 온주시 상무국과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는 온주시 국제무역센타를 방문, 溫州國際投資促進中心의 鄭光亮 주임과 龍佳麗 부주임 등으로부터 온주시에 대한 상업, 경제와 무역에 대한 현황을 들었다.
“온주는 현재 인구 760만으로 1970년대 초, 온주와 상해를 긴밀히 연결하는 해안교통이 발달하면서 절강성 남동부에서 으뜸가는 집산지로서 다양한 종류의 곡물과 차· 황마· 목재· 종이· 백반 등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면서 온주는 또 이후 “식량가공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정미· 양조· 착유(搾油) 및 차 건조, 육류 가공, 버터 제조, 유제품 등의 산업이 발달 했고 또한 제지업의 중심지로 벽돌과 타일을 대량으로 수출하면서 농기구를 주로 제조하는 작은 엔지니어링 공장도 있으며, 다양한 수공예품도 생산을 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전기, 경공업, 방직, 화공, 도자기, 건축재료 등 산업발달
온주는 또 “절강성 남부의 제일 큰 도시로 예로부터 전통적인 수공업이 저명하며 기전, 경공업, 방직, 화공, 식품, 도자기, 건축재료 등 산업이 발전하고 있고 명반석, 화강암 잠재량이 중국 제1위로 70%이상을 생산하고 현재 중국 내에서 부자들도 가장 많고 자가용 비행기도 중국에서 제일 많다”고 말했다. 최근에 온주 부자들이 한번에 자가용 비행기를 20대나 구입한 사례가 있다고 정 주임은 밝히기도 했다. 온주는 또 기후가 변덕스러워서 태풍 피해를 중국에서 제일 많이 보는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
정 주임은 또 “온주는 중국 절강성 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해안 도시로 아열대 계절풍 지역에 속해 있으며 연평균 기온이 약 18도 정도로 신발 산업이 중국내 가장 유명하며 예로부터 중국의 온주 상인은 중국 최고의 장사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유한 상인들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온주는 중국에서는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지만 사영경제가 가장 빨리 발전된 도시로서 그 지명도가 높다”면서 “온주는 태주(台州) 온령(溫嶺) 로교(路橋) 황암(黃岩)등지를 포함해서 온주지구(溫州地區)라 불리우며 온주는 또 중국에서 개인경제가 아주 발달된 곳으로서 산업은 다양하게 이루져 있고 온주 사람들은 장사에 능하기로 중국의 유태인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설명을 했다.
현재 溫州시민의 투자 추세를 보면 “부동산, 개인사업, 예금투자 등의 3개 사업에 집중 투자를 보이고 있으며 대부분 객관적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투자자의 경우 일부 사업에 편중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상황으로 그 외 투자 항목으로는 저축성 보험투자, 대출투자, 현금투자, 기금투자, 소장품투자, 경제상품투자, 각종 증권투자, 각종 채권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투자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투자자의 73.3%는 객관적 투자를 하고 있으며 금융 및 기타 기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투자는 40%, 주위의 의견에 따른 투자 34.7%이며 TV경제 프로 및 각종 매체를 통한 투자의 경우 18.7%, 경제 신문 보도를 통한 투자는 16%, 인터넷 웹 서핑 및 정보 조사를 통한 투자는 10.7%로 정부는 거시경제 조절 원칙에 따라 부동산, 탄광, 석유산업 등의 투자에 많은 제약을 두고 있으며 투자자의 경우 객관적 투자 보다 주관적 투자를 선호하는 것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내 최고의 장사꾼과 부유한 상인들 많은 곳
또한 풍부한 투자 데이터 정보를 원하는 투자의 경우 70.7%에 달하고 금융정보 및 인터넷 매체의 도움을 바라는 투자는 41.3%로 나타났으며 전문가의 투자자문을 필요로 하는 투자자는 28%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민간 기업들이 보유한 총 자금이 6000~8000억 위안이 된다고 한다. 온주시 무역센타에 도착하기 직전인 1시간 동안은 온주시정부 청사 주변에서 기념사진 몇 컷을 남기기도 했다.
온주시 무역센터 내에서 온주시 국제투자촉진센터 정광량 주임으로부터 온주에 대한 제반 설명을 들은 후 일행은 온주시 朱忠明 부시장이 주최하는 오찬에 초대를 받아 참석,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찬을 나누며 투자 및 합작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기념촬영도 했다. 朱부시장은 몇일전 부시장에 임명을 받은 후 우리 일행을 처음으로 맞아 오찬에 초대를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오후에는 이번 온주방문의 목적인 한국의 모 제조업체의 투자를 받기위한 설명회를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왕조호텔 4층에서 가졌고 관련기업과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약 20여명이 모였는데 멀리 북경, 천진에서도 참석을 했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중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가들 다수가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설명회는 필자의 시선에서는 그런대로 좋은 평가를 줄 수 있었다. 또 이런 설명회가 열리기 까지는 함께 동행안 모 인사의 노력이 그동안 꾸준히 있었기에 가능했다.
투자 설명회를 마치고 일부 참석자들이 함께 어울려 만찬을 나누고 필자는 이 자리에서 기분 좋게 바이지우(白酒)를 마시며 친교를 나누기도 했고 만찬 자리가 끝난후에는 투자를 받기위한 대책회의를 갖기도 했다. 어쨌든 한번의 설명회로 결과를 이뤄내는 것은 어렵지만 그런대로 성공을 했다는 결론을 내고 계속적인 접촉을 갖기로 온주 측 인사들과 합의를 했다.
민간기업인 투자자본 한화로 160조 확보
온주체류 3일째인 2월 28일_. 오후에는 다시 상해를 경유, 서울로 귀국을 해야할 날이다. 온주는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전 8시_.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온주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 樂淸市로 향했다. 이곳에 중국 정부에서 주시하는 산업시설이 있다기에 참관을 하기로 했고 또 합작에도 중요한 일이라 하기에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호텔에서 출발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매우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이곳 온주도 자동차가 많다보니 교통 체증이 심했다. 부자가 많기에 자동차는 보통 외제차가 많았다. 온주시내를 빠져나가면서 고속도로에 들어선 버스는 빗길을 달리는데 주변의 들판에서는 푸른 채소들을 볼 수가 있었고 그 밭 위로 전개되는 수없는 대형 광고판들이 보이는데 주로 전기관련 광고들이 많았다. 역시 광고로 인한 사업의 성공들을 이룬 것 같았다.
오전 11시에 황토물의 바다에 인접한 한 중요 산업시설을 보았는데 우리나라에 비하면 역시 기술과 수준이 한참 뒤떨어진 현장을 발견했다. 때문에 중국 측은 바로 우리의 기술전수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현장 견학을 마치자 비도 멎엇다. 이제는 다시 온주 공항으로 달려야 한다. 온주공항에서 2시에 출발하는 상해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2박3일의 일정은 아무래도 빡빡했다. 그러나 사정이 있기에 부득이 짧은 일정 속에 일을 보아야 했다.
오후 6시 30분, 무사히 온주를 출발한 일행 6명중 3명은 상해와 북경에서 볼 일이 있다하여 상해공항에서 헤어진 후 필자를 비롯 3명만이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 상해를 이륙했다. 이미 밖에는 어둠이 엄습해 오면서 피곤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한중관련 투자 및 합작에 관한 대형 프로젝트가 어쨌든 이번 방문을 통해 일단은 크게 출발을 하면서 첫 단추를 꿰었다는 중요한 현실을 만들어 낸 중요한 2박3일의 방문이었음을 느끼면서 의자에 등을 눕혔다.
<류재복 기자>
---------------------------------------------------------------
읽을 만하였나요?
|
첫댓글 저도 온주는 가보지 못해 전시회 참가겸해서 가보고 싶은데, 아직 에이전트할 아이템을 발굴하지 못해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