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은 문화계 흐름이 영화로 넘어간 듯 관객 천만 시대를 열었다는 화려한 뉴스 뒤엔 출판 사상 최악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극도의 불경기를 맞았던 출판가 소식에 가슴 아픈 한 달이었습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신간 발행도 주춤한 한 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주는 이런 불경기를 털어 내려는 듯 신간 출간도 예년 수준을 회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새학기와 새봄을 맞아 출판 경기의 조심스런 경기회복도 기대해 봅니다. 지난 한 주는 해외 번역서적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지난 한 주간 언론은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한 「빈 서판 (원제 The Blank Slate)」에 주목했습니다. 이 책은 인간 본성에 관한 개념이 현대 생활에 미치는 도덕적, 정서적, 정치적 영향을 분석한 책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언어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유전과 문화의 영향을 탐구하면서 '인간의 마음은 빈 서판에서 출발한다'는 환경 결정론을 반박하면서 그 폐해에 대해 비판한 책입니다. 또한 책은 이어 정치, 폭력, 성(性), 육아, 예술과 인문학 등 인간 본성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들을 살폈습니다. 책의 제목인 ‘빈 서판(書板)’은 ‘깨끗이 닦아낸 서판’이란 뜻의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말입니다.
정보스파이들의 정보전쟁을 다룬 책 「CIA 주식회사」(수희재 刊)도 언론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미국 CIA에서 24년 간 비밀임무를 수행한 베테랑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전쟁에서 승리하는 비즈니스 첩보술을 정리했습니다. 저자는 정보수집의 온갖 방법 중에서 첩보업계 용어로 `휴민트'(HUMINT)라 부르는 인적 정보원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것을 으뜸으로 치면서 첩보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황소자리에서 출간한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는 세계사를 풍미한 10명의 남자들과 그들의 못난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서양문화사 전문가 모리시타 겐지는 이 책에서 위인과 훌륭한 아버지는 분명히 별개인 점을 말합니다. 헤밍웨이, 케네디, 고갱, 간디, 처칠 등 그들은 아들 때문에 편안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아버지를 둔 아들들도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햇빛을 받지 못한 어린잎,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세계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평전 「글로리아 스타이넘」(해냄 刊)입니다. 이 책은 컬럼비아대 영문과 교수로 역시 페미니즘 작가인 저자가 1990년부터 5년 간 스타이넘과 주변인물을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1995년 발표한 전기입니다. 스타이넘은 1963년 ‘바니걸’로 위장 취업해 플레이보이 클럽 내 성적 착취 실태를 폭로했으며 1972년에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서적에서 출간한 「나의 그림 읽기」도 언론이 주목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독서의 역사’의 저자이기도 한 망구엘이 고대 그리스의 필록세누스에서부터 티나모도티, 피카소, 아이젠만 등 한 시대의 획을 그은 화가, 건축가 11명의 예술작품을 해석한 책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이 녹아든 '그림 탐험기'라고 합니다. 그림을 통해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밖에 미국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가 20년 동안 하버드 졸업생, 빈민, 천재 여성 등 서로 다른 세 집단의 노화과정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성공적으로 늙어가는 법을 일러주는 책 「10년 일찍 늙는 법 10년 늦게 늙는 법」(나무와숲 刊), 성석제가 자신과 지나간 시간에 대해, 고향의 대지. 사람들과 오늘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글 모음 「즐겁게 춤을 추다가」(강 刊), 중국 고대 방중술 비결과 질병 치료 지침서인 소녀경 원전을 완역한 책 「원본 소녀경」(자유문고 刊), 박물관학을 전공한 저자가 유럽 각국의 박물관을 둘러 본 경험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보다 쉽게 가르쳐 주는 책’「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휴머니스트 刊), 고구려 고분 벽화를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고구려 사회의 실상을 해설하는 책 「벽화여 고구려를 말하라」(사계절 刊) 등이 뒤를 따랐습니다.
지방언론에서는 역사 드라마 '장희빈'을 다각도에서 분석한 책 「장희빈, 사극의 배반」(소나무 刊), 아동분야에서는 재일교포 작가 이경자의 장편동화로 출생의 비밀을 지켜온 어머니와 같은 반 친구 키무라를 통해 재일동포들의 고민을 이해하게 되는 미스즈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진「꽃신」(창비 刊)이 주목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