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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반환 당위성 스크랩 잃어버린 우리 땅 ‘대마도’ 답사 1부
무심 최순철 추천 1 조회 125 14.01.12 11:5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잃어버린 우리 땅 ‘대마도’ 답사 1부

일자 : 2013. 6. 28(금)

 

부산항 국제여객선 터미널

이른새벽 해운대 해변과 동백섬을 한바퀴돌고 순두부백반으로 해장하고

부산항 국제여객 터미널로 버스가 이동한다.

피라밋처럼 지붕모양을 한 부산항 국제여객선 터미널이 눈 앞에 나타난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기대와 설래임으로 발걸음이 마냥가볍다.

역사책으로만 접해왔던 대마도 탐방이다.

"세계의 섬을 찾아가다" 중 한국가 일본 대마도 '대마도 조선도설을 중심으로'를

읽어 가면서 대마도는 꼭! 가 보고 싶었던 섬이 되었다.

 

최근들어 일본 우익권이 정권을 장악하자 또다시 붉은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독도문제를 비롯해 과거사를 부정하는등 역사를 왜곡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다.

그 중에도 독도문제는 유리가 영유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자주

국제사회에 거론하며서 한 일양국간 외교 관계가 심각하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고려조, 조선조부터 우리영토 속도인 대마도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과

우리영토라 주장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본론은 옛문헌과 옛지도를 통해 보는 대마도를 보면서 역사적 근거와 사실에

입각해서 재 조명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배가 부산과 대마도를 운항하는 'JR큐슈고속선 BEETEL'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승선을 위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발걸음을 옮긴다.

 JR큐슈고속선 BEETEL는 현재 가장 부산과 대마도를 가장 빠르게 운항하는 배 라고 한다.

 

2011년 10월 1일에 신규 취항한 BEETEL 대마도 까지 1시간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도착한다고 한다.

바다위의 비행기라고도 불리며 선체를 해수면에서 2m 정도 부상시켜

운항하기 때문에 파도에 의한 흔들림이 없고 안정적었다.

혹시 멀미하지 않을그러까? 勞心焦思했는데 잔잔한 바다 위를

웅~~거리 엔진소르를 내며 긴 고동소리와 함께 새하얀 포말을 뿜어내며 출발한다.

 

부산항을 뒤로하며!!

 

북항대교를 뒤로하며

영도섬이 눈앞에 보이며 가득히 들어 선 아파트가 즐비하다.

한진조선소도 보이고, 해양대학이 있는 아치섬(鳥島)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제2송도의 벼랑들을 끝으로,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제주에 살면서 배 여행 이라곤 완도와, 녹동, 우수영 그리고 추자도가 고작이다.

일본을 갈 때 비행기만 타봤지 배를 처음타고 가는기분은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엔 갈메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오륙도를 지나가며!!

 

분산항을 출발한지 40여분 대마도가 보이고 50여분 쯤이 되자 대마도 등대가 보인다.

 

콧구멍을 벌름 거리듯 한 바위 섬이 맨 처음 우리를 맞이한다.

초고속여객선이 바다위를 새하얀 포말을 일구며 물위를 마치 날듯이 달린지

1시간 조금 넘어서 히타카츠항이 보인다.

 

해안지형은 습곡을 받은 퇴적암과 그 위에 자라는 소나무가 절경을 이룬다.

우리나라 다도해를 연상케하는 온 섬은 나무가 울창하게 보인다.

히타카츠 항 인근에 도착하니 섬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일본 특유의 이층집 모습이 보인다.

 

히타카츠항에 도착 대마도 입국 수속을 기다리며!!

작은 섬이라고 그냥 출입 할 수 있는 게 아니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 심사관이 길게 늘어선 입국대기자들에게 일일이 기록사항이 빠졌는지 확인해 준다.

여권을 보여주자 전자심사기로 확인하고 양손 검지 지문등록시스템에 지문등록과

함께 얼굴 등록을 하게 되는데, 입국수속 하는데 15여분 정도 소요됐다.


 히타카츠항 관관안내소앞 관광안내문

 

 바람도 머물고 가는 고즈넉한 히타카츠항

 

 저 작은 조립식 건물이 일본법무성출입국 관리사무소다.

 

대마도 관광안내지도

대마도는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남북으로 82.km, 동서로 18km의 가늘고 긴 모양으로

땅콩 혹은 긴 고구마 또는 새우를 닮은 모양이라고 한다.

 

일본 본토인 후쿠오카와 거리는 138km, 부산에서는 49.5km로

부산에서의 거기라 훨씬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섬 전체 면적은 708로 제주도 면적(1,810)의 40%이며, 산악지형이 90%에 이른다.


대마도는 원래 하나의 섬이었으나, 1900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일본이 인공해로를 내 상(上)대마, 하(下)대마로

나뉘어 졌는데  두 섬은 만제카바시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섬들이 107개가 있다.

본섬 2개를 포함하면 109개 섬으로 이루워졌다.

 

대마도는 섬 전체가 쓰시마시(市)다. 이즈하라마치, 가미쓰시마마치 등

6개의 마치(町)로 구성돼 있는데, 마치는 우리나라의 구(區)와 같다.


현제는 우리나라 도서 지방과 마찬가지로 핵가족화 도시로 이탈 등으로 인구는 꾸준히 감소하여

현재는 4만여 명이 밑돌고 있다고 한다.

일본 내 타지방에 비해 고령인구가 많은 편이고 어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다음으로 풍부한 산림자원을 기반으로 임업(표고버섯 재배)이 주를 이루나 근대들어

부산에서 들어오는 우리나라 여행객이 증가로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이 증가하고 있다.

대마도를 찾는 관광객은 전체 95%가 한국인이다.

 

대마도가 우리땅이란 근거로는 조선 1419년(세종 1) 대마도를 정벌하기에 앞서 상왕 태종은 교유문에서

“대마도는 섬으로 본래 우리의 땅이다."라는 기록과,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가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놀기 시작했다.”고 기록 되있다.

 

옛지도로 보는 대마도

 

조선팔도총도(朝鮮八道總圖)

독도뿐만 아니라 쓰시마(對馬) 섬이 조선의 땅임을 보여주는 중국의 고지도가 발견됐다.

 

부산외국어대 김문길(金文吉·일본어과) 교수는 1488년 당시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이 황제(영종)의

명을 받아 조선 땅을 둘러본 뒤 작성한 견문록인 ‘조선부(朝鮮賦)’의 4, 5페이지에 나와 있는

‘조선팔도총도(朝鮮八道總圖)’를 공개했다.

이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당시 우산도·于山島)뿐만 아니라 쓰시마 섬이 조선의 영토로 자세히 표기돼 있다.

김 교수가 최근 일본 모 대학의 고문서실에서 발견한 ‘조선부’는 1717년 일본이 한자에

일본 음을 달아 제작한 필사본으로 밝혀졌다.

김 교수는 “독도는 물론 쓰시마 섬까지 우리 땅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고문서가 발견됐다.

출처 : 동아일보

 

조선방역지도

1530년 조선 중종 때 만든 ‘팔도총도’와 명종 때 제작된 ‘조선방역지도’ 등 여러 고지도에는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표기되있다.


1756년 일본 지리학자가 제작한 대마여지도에도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대마속국론’을 주장했으며 정약용은 이를 구체화시켰다.

 

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입법의원에 선출된 허영관 의원 등 62명은 “대마도는

조선 땅이기 때문에 환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해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가도 했다.

 

'잃어버린 조선땅 대마도'

대마도가 朝鮮國 속해 있던 屬島라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려말부터 조공을 바치고 쌀, 콩 등 곡물을 답례로 받아 가는 관계였던 대마도는 그 후 왜구의 소굴이 되어

조선조 세종 때 이종무를 보내 대마도를 정벌(己亥東征)하였는데, 그 이후에 대마도는 소오(宗)氏의

간청으로 3포를 개항하고 세사미를 내려주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이 밖에서 수 많은 관련 근거 자료가 많다.

 

자~ 지금부터 잃어버린 땅 대마도 속으로 들어가보자!! 

부산에서 합류한 가이드 송종필씨 안내로 히타카츠항에서 대기중인 버스에 탑승한다.

오늘 일정과 간단한 일본과 대마도의 역사를 설명 해 준다.

도로차선의 폭은 좁은 느낌을 주는데 우리나라 보다 20cm가량 폭이 좁다고 한다.

 

좁은 길이고 좌측통행에 운전대는 오른쪽에 있어 어색하다.

도로 폭이 좁다보니 절개지 도로를 지날 때는 스칠 듯한 느낌을 준다.

산에는 빽빽하게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하여 마치 원시림을 보는 듯하다.

 

미우다 해수욕장 입구에 세웨진 비 

준비된 버스를 타고 첫 번째 답사지인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미우다 해수욕장 이용시 주의사항이 친절하게도 한글로도 적혀있다.

 

 미마우다 해수욕장 전경

미우다(三宇田) 캠핑장은 1996년 ‘일본의 해변 100선’에 뽑힌 미우다 해수욕장 안에 있으며,

아유모도시(鮎もどし) 자연공원 캠핑장은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어 대표적인 피서 장소로 꼽힌다고 한다.

섬으로 둘러쌓인 미우다 해변은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마치 호수같이 펼쳐 졌다.

 

벌써 이름모른 바위를 점령한 젊은 관광객들이 바다에 경취에 빠져있다.

가이드 송상은 저 소나무가 있는바위 앞이 사진촬영 명소란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골체(삼태기)모양으로 바다에서 바람에 날아온 모래가 쌓여 사구를 이루며,

한적하고 깨끗한 해수욕장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

대마도 전체가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지정한 공원이라고 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국립공원인 셈이다.

  

두번째 코스인 '한국전망대'로 가는 길

 

 한국전망대는 우리가 해운대에서 대마도를 볼 수 있듯이 날씨 좋은 날 이 전망대에서

 부산앞바다 밤의 불빛이 보인다고 하니 과연 가까운 이웃이라고 하겠다.

 

전망대에서 본 와니우라(王仁浦口)

 전망대 앞 우니지마(海栗島)에는 일본해상자위대 레이더 기지가 있으며,

인근에 한국이 원산지인 히토쓰바타고(이팝나무) 3천여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난자몬자가 있다.

 

이 곳에는 5월경 새하얗게 피는 이팝나무꽃이 장관이라 한다.

와니우라 히토쓰타고(이팝나무) 자생지는 인본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이팝나무꽃이 만개하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와니우라(王仁浦)

가이드 송상 말에 의하면 왕인(王仁)박사가 이곳을 지나갔다고 해서 지명이

전해온다다고 하는데 근거 자료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王仁은 백제의 근초고왕 때 학자로 일본의 초청으로 論語 10권, 千字文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유풍(儒風)을 천명하였으며, 그 해박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하여

신임을 받고 태자(太子)의 스승이 되었다.

왕인은 자손은 대대로 그곳에 살면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문화 발전에 공헌하였다.

일본의 역사책 ‘고사기(古事記)’에는 그의 이름을 ‘와니키시’라 하였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와니(王仁)라고 나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왕인이 경유 했을지도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본 와니우라 Zoo in '악어 모양을 한 해식동굴'이 기괴하다.

히타카쓰에서 북서쪽 최북단 해안에 있는 와니우라(鰐浦)란 포구다.

와니우라는 ‘악어 포구’라는 뜻이기도 하다.

악어 이빨과 같은 바위섬이 바다 한가운데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전망대 안에서 '조선통신사 이동경로도'

 

 한국전망대 옆에는 조선역관사순국비

1703년 음력 2월 5일 조선에서 파견된 역관 108명과 이들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측 역관 4명 포함 

부산항을 떠나 대마도에 입항을 하기 직전,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에 의해 그만 앞바다의

암초들에 의해 배가 좌초되면서 112명 전원이 사망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역관사순국비 뒷면

비석이 서 있는 기단 역시 이들을 기리기 위해 112개의 돌로 쌓았다고 한다.

 

 조선역관사 순국 표석

 

'조선역관사 조난비'는 바로 이때의 사고를 추념하고 당시 사고의 배경이 선린우호를 바탕으로

국제교류에 있음을 감안하여, 1991년 3월, 한 일 양국 유지들의 힘을 모아 세워진 비이다.

비에는 일본어와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러한 유래와 함께 당시 사망한 112명 역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와니우라 다리

 

와니우라

대마도 가장 북단에 위치한 와니우라는 한때 왜구의 본거지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주요 집결지로 군량을 보관하던 곳이라 한다.

현재도 일본의 공군과 해상 자위대가 부근에 주둔하고 있어 그 군사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와니는 백제인으로 일본에 유학을 전해준 왕인(王仁) 박사의 일본말 발음이기도 하다.

혹자는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갈 때 이곳을 거쳐 갔다고도 한다.

와니우라는 선박을 정박시키기엔 알맞지만 북쪽 포구 앞바다에는 암초가 많고

얕은 여울이 있어 조류가 제법 세다고 한다.

 

대마도에서 첫 식사 장소 '미나토 스시'

 

점심메뉴는 일본식 우동과 초밤 2개, 김밥 큰것 2개, 작은것 2개

그리고 아까방어 7조각은 네명이 나눠먹긴 턱없이 부족하고, 반찬은 달랑 단무지!!

먹고 배고플 줄 알았는데 포만감이 있다.

일본 인들은 소식한다. 그래서 배가나온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인근 상가와 주택들

 

점심먹고 에보시타게 전망대로 가는길

 

에보시타게 전망대 입구에 핀 낮달맞이

 

 낙엽수림 숲속언덕에 있는 에보시타게 전망대

 

에보시타게 전망대로 올래가는 계단 폐타이어를 이용한 탄성블럭 굿션이 좋다.

 

대마도 답사의 최고에 미학은 에보시다케 전망에서 보는 대마도 전경이다.

일본의 3대 절경 가운데 하나인 미야기현의 ‘마쓰시마’를 닮은 풍광이 시선을 압도한다.

‘쓰시마의 하롱베이’로 불리는 리아스식 해안과 섬(시마)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왜선 109척 불사른 조선 이종무장군을 떠올려본다.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는 대마도가 360°로 돌아가며 조망된다.

쓰시마의 상대마와과 하대마의 경계 부분에 위치해 있다.

 

에보시타게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

초록색으로 물감을 칠한 듯 한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에보시타게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

구불구불 산길을 차를 타고 올라와 차에서 내려 60m 정도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아소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발 176m의 에보시다케 전망대가 나온다.

까마귀모자같이 생긴 전망대라고 하는데 360도로 동서남북 사면을 모두 조망되며,

확 트인 전경과 겹겹의 산과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의 더 환상적다.

360도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보이는 아소만은 겹겹으로 이어지는 산과 바다 위에 떠있는

크고 작은 107개의 섬들이 바다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지며 리아스식 해안의

조용한 바다가 웅대하게 펼쳐져 진다.

 

에보시타게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

 

에보시타게 전망대를 내려오며!

 

전망대에서 내려오는길

올라갈때와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와 에보타게 전망대 주차장으로 나오게 된다.

 

에보시타게 전망대 주차장에 설치된 대마도 안내지도

 

에보시타게 전망대 맞은편 전망대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조망이 가능하다.

 

 이 곳으로 걸어서 내려 갈 수 있는지 가이드 송상에게 물어 보니

경사가 급해 내려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작은 전망대에서 아소만을 다시 담아보고!!

 

 와타츠미신사 가는길

와타츠미신사는 마치 정령들이 사는 숲을 지나 바다로 일직선으로

5개의 토리이가 이어져 있다.

 

삼나무 조림지 '보안림'이란 표시판이 눈에 띈다.

일본은 보안림과 경제림으로 구분하여 숲을 보호하고 있는데


보안림은 벌체를 금하고 있으며, 경계를 구분하거나 홍수를 막아주는 역할를 하고

경제림은 목제용, 펄프용이나 제지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숲길로 들어서면 신사(神社)의 문이 보인다.

 토리이위에 돌 들이 올려져 있는데, 돌을 던져 올라가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토리이는 신과 대화하는 새가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와타즈미신사 주변의 숲은 마치 원시림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백년은 넘었을 법한 삼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다.

 

우물 물을 퍼올렸던 펌프!! 많이 봐왔던 모습인데!!

 

여긴 와타츠미신사 오른쪽에 또하나의 와타츠미신사!

신사의 문은 개인이나 기업체에서 설치하게 되는데 우리식 용어로 시주자의 이름을 기둥에 적어놓았다.

 

커다란 나무가 신목인듯 그앞에 제단을 모신 모습이 제주에 있는 '당' 모습을 연상케한다.

 

 와타츠미신사(和多都美神社) 

토요타마 쵸의 상징인 이 신사는 히코호호 데미노미코토와 토요타마 히메를

제사지내는 해궁으로 바다신을 모신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며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과 장보고 장군의

소가(小家)였다는 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와타츠미신사 안으로 들어 가 볼까요? 

이곳 신사 입구에는 특이하게 서로 마주보는 삽살개 석상(암컷과 수컷)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호랑이가 나타나도 도망가지 않고 대적하는

삽살개의 용맹스러움 때문에 일본 신사에 삽살개 석상을 세워져 있다.

 

와타츠미신사

 

와타츠미신사 내부 모습

 

와타츠미신사 내부 모습

 

소원을 적은 쪽지들! 이와같은 모습은 제주에 있는 당에서 찾이 볼 수 있는데 소지라고 한다.

 

소원을 적은 편백나무 이런 풍경도 사려니 숲길에서 볼 수있다.

 

토요타마마치 지방의 신화 속 용궁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와타즈미신사는

모두 5개의 토리이가 있다.

 

가이드 송상이 말로는

이곳은 천신과 해신을 모신 해궁으로 천신이 낚시를 즐기다 잃어버린 낚시 바늘을 찾기 위해,

이궁으로 내려왔다가 해신의 딸의 미모에 반해 결혼했다고 한다.

천신과 해신사이에 아기가 태어날 때 보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천신의 강한 호기심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으로 인해 이곳에 버려졌다고 전해지는 장소라고 한다.

토리이이 문(門)은 하늘을 상징함는 天을 뜻하며 백제에서 건너온 풍습이라고 한다.

 

2개의 토리이는 물속에 설치하여 밀물과 썰물 때 그 모습이 변하는 신비롭다고 한다.

이곳에 설치된 5개의 토리이는 인간의 세속 5욕(식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 성욕)으로 부터

해탈하라는 의미로 세웠다고 한다.

 

 和多都美神社 표석

 

달리는 버스에서 본 풍경

 

 만제끼바시(萬關橋) 근처 턱받이를 한 '동자상'

시멘트로 2단 제단을 만들고 좌대위에 동자상들이 있다.

좌대에 조성자의 이름을 새겨져있고, 동자상에는 턱받이가 씌워져있다.

궁금하면 못 참는 법 가이드에게 그 연유를 물어 본다.

아기영가나 영혼들은 저승으로 들어 갈 때 입에 물고 있는 음식물이나 침을 많이 흘리는데

그 이물질을 닦기 위해 턱받이를 해 준다고 어느 사찰 스님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메고시마 안내도

 

 만제끼 바시(萬關橋)

이 다리는 상대마도와 하대마도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만제키바시(萬關橋)는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사가 숨어 있는데,

1902년 영일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해 온 일본은 1904년 드디어 러일전쟁으로

기습 공격을 벌였는데 이에 대응하려는 발틱 함대가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운하를 경유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일본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마도 근처 대한해협에서 결전을 하기로 한

일본은 배를 요소요소에 숨겨놓기 좋은 대마도를 군사요충지로 삼기 위해 남?북대마도가 육지로

붙어있던 것을 파 운하를 만들어 그 당시 일본 함대가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즉 구일본해군의 군함 출입을 위해 만든 인공운하로 섬은 두 개로 나누어졌고

다시 여기에 다리를 건설함으로써 두 섬은 이어진 것이다.

결국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그 후 그 파놓은 곳에 두 섬을 잇기 위해 놓은

높은 곳에 설치된 이 다리가 바로 만제키바시(萬關橋) 인 것이다.

 

 바람이 부는 만제키바시는 높은 지형 탓인지 마치 움직이는 느껴지며

계곡과 아소만의 풍경도 아름답다.

이 인공운하는 처음 시공시 폭 25m, 깊이 3m인것을

이 곳을 지나가는 배들이 증가함에 따라 폭40m, 깊이 5m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1900년 러일전쟁(1904-1905)을 앞두고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운하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토목기술이 사용된 것이다.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게 된 쓰시마해전이 바로 이 주변에서 이루어졌고,

당시 일본해군은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완벽하게 격파하였다.

이로써 조선의 운명은 일본에 넘어갔던 것이다. 

 

  만제키바시(萬關橋)를 건너며!

 

구스보 메고시마 지구 및 만제키바시 안내문

이 만제키코시는 예로부터 동서의 바다를 이어주는 중요한 지점에 있다.  

구스(こす)보의 지명의 유래는 ‘こす’라는 말은 ‘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으며,

‘만제키코시’가 있었다는 설이 있는데 ‘아소만으로 넘어가는 포구’라는 뜻이라 설명한다.

 

 메고시마 지구 명소 안내지도

 

 대마도 전통 돌지붕 창고 '이시야네(石屋根)'

 

 돌지붕 창고

대마도의 돌문화를 대표하는 건물로 겨울강풍이 심한 지역을 중심으로 불과 몇 호밖에 남아있지 않는다고 한다.

이 돌지붕은 대마도에서 생산되는 판석으로 지붕을 이은 고상식(高床式)의 건물로

곡류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한다.

무거운 돌지붕을 목조기둥이 버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만제키바시(萬關橋)와 인근 전통 돌지붕 창고 이시야네高床式)의 건물을

마지막으로 답사하고 온천으로 이동한다.

일본 본토 처럼 규모는 크지 않고 제주에 해수 사우나 분위기 랄까?

어째튼 대마도 온천을 즐겨 보기로 한다.

 

온천탕으로 가는 복도

 

음료수 자판기를 중심으로 남탕과 여탕 입구가 나눠져 있다.

한시간 남짓 온천을 즐기고 밖으로 나오니 온 몸이 상쾌하다.

 

온천과 식당을 겸비한 맞은편에 그라운드 골프장이 있다.

제주에서는 주로 노인들만이 이용하는데 여기는 젊은 청소년들이 한참 라운딩 중이다.

입장료는 500엔정도면 즐기 수 있다고 한다.

 

저녁메뉴 해산물 바베규

생맥주, 병맥주, 소주는 병이나 한잔씩도 팔고있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뿔소라와 가리비, 꽁치, 관자, 닭고기와 되지고기 삼겹살, 소세지까지

야채는 양배추와 피망, 양파, 삶은 옥수수

?반찬은 달랑 단무지!! 여기에 밥과 된장국이 곁들여 나온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구어볼까요?

가리비(히오기가이)는 대마도 청정 바다에서 생산되는 선명한 색깔과 담백한 맛이 있었다.

여기에 빠질수 없는건 한라산 소주와 아사히맥주를 혼합한 소맥!! 간만에 술발이 당긴다.

낮선 얼굴들과 화기애애 이야기들을 주고 받고 서먹한 얼굴들을 익혀 간다.

한국에서 처럼 푸짐한 밥상은 아니지만 한끼 저녁으로 만족해 본다

 

오늘밤 탐문대 동료들과 함께 할 쓰시마 리조트(TSUSHIMA RESORT)

 

쓰시마 리조트(TSUSHIMA RESORT) 앞 호수같은 해안

 

해는 저물어 가고

 

여기서도 술판은 이어 간다.

발렌타인 21년산도 나오고 아사히 맥주, 그리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한라산 소주!!

늦은 밤까지 무슨 할 말이 많고 무슨 노래들이 하고 싶은지...

고요한 밤하늘에는 별빛 하나 없음에 가슴이 아리다.

찬란하게 비치는 샛별이 그리운 밤!!

 

그리고 밤 늦은 쓰시마 리조트(TSUSHIMA RESORT) 풍경!!

 

내일은 대마도에 어떤 역사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며!

잃어버린 우리 땅 ‘대마도’ 답사 2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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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1.12 11:58

    첫댓글 대마도는 우리땅 카페로 가져 갑니다우리카페 한번 들러 주세요

  • 15.12.02 04:54

    감사히 모셔갑니다 한국땅 대마도찾기 국민연합 카페로
    우리땅 대마찾기 함께응원하고 반환운동 나서요~~

  • 16.11.17 08:18

    네!!~

  • 24.08.12 15:34

    우리땅 대마도 찾기 운동이 벌써 식었나요?
    우리 젊은세대들이여 지금부터라도 이를 심각히 인지하고 우리땅 찾기운동에
    다같히 동참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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