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동백자가마터 (壯安洞白磁窯址)- 지정명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0호
- 지정일자 2001.6.27
- 위치 서구 장안동 산56, 281, 281-5
장태산휴양림 입구에 소재한 백자가마터로 2000년 충남발전연구원에 의해 발굴된 이 가마는 마을 주민이 묘소를 정비하기 위해 잡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었고 조사를 통해 1기의 가마유구와 퇴적이 확인되었다.
전체적인 상태는 완벽하지 않으나, 아궁이로부터 굴뚝부까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전체 형태는 부채살을 펼친 모습으로 아래보다 위쪽의 소성실(燒成室)이 더 넓은 구조이다. 소성실 중간에는 불꽃조절과 천장을 받치기 위한 시설로 칸막이를 설치하였고, 칸막이에는 8∼9개의 불창살이 촘촘히 박혀 있다.
확인된 가마의 규모는 총길이 16.6m, 내벽폭은 소성실 하단부가 1.8m, 상단부가 3.2m이며 바닥경사도는 15°를 이룬다. 규모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가마는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역사다리골형의 평면을 갖고 있고 측면출입구가 있는 곳은 측면이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있어 누에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벌없이 한번에 유약을 발라 포개구이법으로 소성한 생산품은 백자대접과 접시·종지 등 전형적인 생활용기가 중심을 이룬다. 일부 굽을 별도 제작하여 부착한 예가 확인되고, 초화문(草花文) 등의 철화(鐵畵) 제품도 생산되었다.
장안동 백자가마터의 시기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로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춘 가마로서 대전 서남부일대의 수요층을 염두에 둔 지방백자의 한 유형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백자는 관요(官窯) 중심의 생산체제와 지방백자라는 두 개의 큰 줄기로 제작양상이 전개되는데, 임진왜란 이후 생산체제가 와해되면서 질적 향상보다 대량 생산에 관심이 집중되어 지방에서 소규모 가마가 많이 운영되었다. 장안동백자가마도 질적 향상보다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춘 가마로 보이며, 당시 대전 서남부일대의 수요층을 겨냥한 지방백자의 전형이다. 장안동가마의 구조와 유물에서 유사한 성격을 보이는 예는 전남 승주군 송광면 후곡리 백자가마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까지 대전·충남지역에서 확인된 17세기 가마터로는 첫 예가 된다.
문화재청, 대전광역시 서구 문화축제관광 참조
이하, 대전문화유산울림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