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우린 만났다
- 안동 천등산 봉정사 국화꽃축제날에
권 옥 희
시월의 마지막 밤도 보내고 11월 초입, 겨울의 시작이다.
이미 7부 능선을 다 내려온 단풍은 거리마다 색색의 불꽃을 피우며
삶에 지친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몸에 있던 물기 나무에게로 다 돌려주고 잎들은
스산한 바람 한줄기만 스쳐가도 자지러지듯 제 몸을 날려
거리는 낙엽들이 쌓여가고
우리는 빠르게 가는 시간을 잡지 못해 함께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 가라앉는 마음을 일으켜세우듯
벌써 세 번째인 우리 임동인들의 한마음 잔치
'형님요, 누님요 오셨니껴?'의 행사를
작년 우리가 나고 자란 임동 아기산의 황산사에 이어
이번에도 고향인 안동의 천등산 봉정사로 잡았다.
서울과 대구 부산, 그리고 포항의 형제 자매들이
가장 쉽게 모일 수 있는 곳은
역시 고향이다.
보리문뎅이, 아님 안동껑꺼이들의 만남은
늘 왁자지껄한 잘 있었니껴~로 시작된다.
그리고 헤어질 땐 아쉬움이 가득 차서 잘 가시데이~
그 눈매 깊은 서늘함이 멀어질 때까지,
나를 실은 버스가 한참을 달려가도
너와 나를 얼싸안았던 여운은 가시지 않아
가슴이 울렁거리곤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까페에 공지가 뜨고
각 기수별로 참석할 인원들을 점검하느라 회장, 총무는 동분서주
대구와 포항에서 버스 한 대
서울은 버스 한 대보다 인원이 넘쳐나고
우리 향우회 살림꾼이자 머슴을 자처하는 기룡인 이걸 어쩌나~
꽤 골머리를 앓았을 거다.
내 친구 옥례는 벌써부터 먼 길 달려오는 친구와 고향사람들에게
오리지날 도토리묵과 전을 맛보일려고
몇며칠 꿀밤 주우러 다닌다고 했었다.
그 덩치 큰 친구가 낭떠러지에서 굴렀는데 바지만 다 찢어지고
엉덩이만 조금 까졌다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 있다고 허허 웃지만
정말 큰일날 뻔 했다.
먹기야 쉽지만 그것을 주워서 껍질 까고 울궈내서 가루 만들기까지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드는 일인지는 옥례만 알 거다.
그렇지만 입맛이 절로 다셔질 그 알싸한 고향의 맛과
양조장을 직접 운영하는 광호가
직접 머루 엑기스 넣어서 제조한 달달한 막걸리를
기대하지 않으면 우리 임동사람이 아니지.
떠나기 전날 전화가 왔다.
''누님요, 머릿고기 배추에 싸먹을라고 메고기젓갈(멸치젓) 샀는데
양념을 어예 해야되니껴?''
''응~ 청양고추 쫑쫑 썰어넣고 마늘 많이 다지고 고춧가루 넣으년 돼.''
마침 조카 결혼식에 가느라 대충 알려줬다.
우리 46회 회장 은희는 언제나처럼
산에 올라갈 때 먹을 홍어와 묵은 김치 준비하고
버스 안에서 먹을 부침개 부치고 있다고
밴드에 떴다.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안개가 낀 걸 보니 비는 오지 않을 듯 싶다.
다행이도 전주 류씨 시제가 있어 떠나는 버스로
일찍 온 동생들이 나눠 타서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만원이 아니라 널널했다.
대구와 포항에서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들썩하게 이바구해가면서
모두 안동 서후면 천등산으로 신나게 달려오고 있을 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봉정사 국화꽃축제의 마지막 날이라니
가을 국화향기도 실컷 맡을 수 있겠다. 와우~ 신난다!
우리가 찾아갈 천등산 봉정사는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했는데
스님이 바위굴에서 도를 닦을 때
그 도력에 감동한 천상의 선녀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혔다 해서 천등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 이치를 통달한 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진짜 봉황이 날아와 머물렀다 해서
봉정사(鳳停寺)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더구나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보다도
십여 년 정도 더 앞서 지은 건물이라니
그 역사가 천 년 고찰임이 명백하다.
하늘이 지붕선을 액자처럼 쓰고 있다는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글처럼
높지 않은 천등산을 뒤로 두고 봉황이 머물렀을 법도 한
그 절과 그 산을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는 회포를 풀기 위해
참새떼처럼 재잘매며 오르게 될 것이다.
부지런리 달려간 버스가 여주휴게소에 도착하자
기룡이는 멸치젓을 꺼내 양념을 하는데
아이구, 청양고추를 얼마나 많이 썰었으면 한보따리다.
저걸 써느라고 손이 얼마나 매웠을까?
군대 간 아들이 2박3일 특별휴가를 나왔다는데
아빠 얼굴도 못 보고
밥 한끼도 제대로 못 먹여서 보내게 생겼다고
아버지로서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 짠해보였다.
어느새 나이 지천명에 들어섰건만
내 집 일보다 고향 일이 우선인 저 동생을
어찌 안 이뻐할 수가 있을까~
여자들이 수두룩한데도
비린내 난다고 끝까지 제가 무치겠다고 나서더니
머리도 뼈도 안 발라낸 살 통통 붙은 통멸치젓에
마늘도 빻은 게 아니라 그냥 다진 것을 넣었는데도
배추에 머릿고기 올리고 짠 멸치젓 살짝 올렸더니
비릿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
안동 사람들이 아니면 이런 거 못 먹을 거라는 말이 맞다.
전도 배추전~ 환장하지,
고등어도 제삿상에 올리는 찐 간고등어~
그걸 무슨 맛으로 먹냐고
전주가 고향인 우리 시댁식구들은 의아해 한다.
다들 한순배 돌가가는 술잔으로 얼굴이 불콰해지고
나는 잠깐 버스에 올라와 홍보하면서 광동제약 직원이 건네준
오메가3를 간에 좋다고 해서 무려 네 알이나 먹고
진짜 얼굴이 빨개지나 안 빨개지나 실험하다가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고즈녁한 시골의 평화로운 집들과 추수 끝낸 들판에
내려앉은 단풍들을 차창으로 흘려보내면서
우리는 어느새 노란 국화꽃이 초입을 장식하고 있는
봉정사 입구에 도착했다.
환영합니다. 임동인 한마음축제~
국화꽃 축제가 막바지인 축제장에
우리 임동인들을 환영하는 현수막도 걸려 있고
가을향기 아니랄까봐 국화꽃이 뿜어내는 향기는
더욱 만남의 설레임으로 우리 마음을 자극했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의 노랫말처럼
이 가을에 우리는 떠나간 게 아니라 만났다
그 엣날 물 차오르는 고향을 눈물로 묻어두고
수몰민으로 떠난 이래 또 이렇게 웃으며 만났다.
무심한 시계바늘은 이미 가버린 어제를 돌려주지 않고
알 수 없는 내일도 미리 데려다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놓치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다들 바쁜 일상을 떨쳐버리고
너와 나를 못 잊어서 달려온 거다.
고향의 친구들은 각 기수별로
친구와 형, 아우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안동의 명랑녀 부자네는 따끈한 커피를 준비하고
배숙자동생이 만든 식혜,
그리고 우리 옥례의 도토리묵과 전은 금방 동이 났다.
힝~ 난 사진 찍느라 맛도 못 봤는데...
은희가 뜨거운 도토리전을 들고 한 점 먹으려는데
누군가 또 사진 찍자 해서
옥례가 비닐장갑 낀 손으로 ''야야, 뜨겁다 이리도~''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버스 세 대가 200여 명 가까운 우리 고향 사람들을 풀어놓자
봉정사 입구는 그야말로 알록달록한,
단풍보다 더 짙은 색색의 옷으로 장식한 우리들로 인해
부처님도 놀라 벌떡 일어설 정도였다.
임동초등학교 총동창체육대회 때만큼은 못해도
전국에서 이 많은 인원이 모이기도 쉽지 않을 거다.
모든 마음이 고향으로 쏠리고 그것이 그리움의 끝에 가 닿을 땐
이렇게 열 일을 제치고 달려오는 거다.
너와 내가 보고 싶어서, 보고 또 돌아서면 그리워져서~
인원이 많다보니 우리 철현대장도 통제가 안되어서 포기해버리고
각자 알아서 끼리끼리 천등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서울의 삐아리들은 걱정이 많다.
일행들이 다 올라간 코스를 두고 가벼운 길을 택했다가
초입부터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에 놀라
그냥 내려간다, 아니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지 않으니 그냥 가자~
아웅다웅하다 올라갔는데
가도 가도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물안개 자욱히 올라오는 천등산의
젖은 낙엽들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그 좋아하는 막걸리 한잔도 못마시고
이리갈까, 저리갈까 헤매는 산길
철현대장, 상민이, 종열이, 순희, 무은이, 사룡이, 은희, 지영이, 나
옥자와 영희는 한 살이라도 더 젊다고 잽싸게 올라가버리고
정상이라고 써진 푯말 아래서 야호는 외쳤지만
이제 어디로 가누~
종열이와 순희는 관음굴이라고 가르킨 방향대로
그곳에 갔다온다고 가버리고
내려오면서 봉정사는 꼭 들려야 한다고 했더니
안동의 무은이가 요리 가도 봉정사, 저리 가도 봉정사라고 해서
요쪽 길로 상민이하고 저만 또 가버렸다.
우리는 패잔병들처럼 저쪽 길로
조금 더 가까운 거리를 택해서 내려온 곳이
아뿔싸, 다시 우리가 처음 모였던 축제 행사장 그 자리다.
도대체 봉정사는 어딨는 거야?
내려오면서 포항팀이 한잔 하고 가라고 그렇게 부르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목소리도 들리고 사람의 모습도 어른거리는데
길을 못 찾아서 끝내 함께하지 못했다. 흑흑~
나중에 사진 보니 다른 길로 갔던 사랍들은
다 모여서 단체사진도 찍고 그랬던데
정작 사진 찍기 좋아하는 우리는
산에서 사진도 못 찍었다.
봉정사 극락전, 그리고 부처님도 뵈었어야 했는데
또 아쉬워서 흑흑~
벌써 점심때가 훨씬 지난 시간.
구수한 장국밥이 설설 끓고 있는 천막 안에서
광호동생이 국밥을 푸고 있었다.
고맙게도 박성수산우회장님이 마련한 국밥을
한 그릇 듬뿍 받아서 듬성듬성 낙엽이 깔린 풀밭에
소풍 나온 것마냥 친구들이랑 옹기종기 앉아
국화꽃 향기를 반찬삼아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어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이
행사장 마당을 가득 채우면서
오늘 '형님요, 누님요 오셨니껴?'는 절정을 이루었다.
대구에서 가져온 홍어삼합,
포항에서의 과메기, 서울에서의 머릿고기에 멸치젓
안동의 49회가 마련한 말랑말랑하고 달달한 떡 등
푸짐한 음식에 그 정겨운 맛보다도
서로를 챙겨주는 형제의 사랑이 더 좋아서
너도 나도 터져나오는 웃음은 하늘 높이 떠서
국화꽃축제장을 알리는 에드벌룬만큼이나 부풀었다.
첫댓글 권옥희님의 글 김은희님 편집 봉정사 천등산 임동인 산행 후기 참 감미롭고 가슴 설래며 감명깊게 읽어보았네요...언제나 살아숨쉬고 있는 듯한 내용의 글을 써주시는 두분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선배님 감사 드립니다.
명원이 사진 더 음미하라고
제사진은 블러그에 편집해 놓고
잠시 대기중입니다.
한번에 많이 올라오면 다른글이 묻히고
정신없을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