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뒤에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의 첫 번째인 아무 희망과 욕구 없이 살아서도 안 되지만, 두 번째인 다른 사람들의 희망과 욕구를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고 살아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로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감염되어 있다는 증거이자, 당신이 당신의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이기 때문이지요.
강은교(1945~) 시인의 <사랑법>을 이런 관점에서 읽으면, 시인이 말하는 '사랑법'이 기존의 해석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읊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떠나고 싶은 자 /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 침묵할 것 // 또는 꽃에 대하여 / 또는 하늘에 대하여 / 또는 무덤에 대하여 / 서둘지 말 것 / 침묵할 것"이 무슨 뜻이겠어요? 기존의 해석에 따르면, 이 첫째 연과 둘째 셋째 연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려고 할 때 그를 붙잡지 말고, 꽃(사랑)과 하늘(희망)과 무덤(죽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보내라는 뜻입니다. 그게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법'이라는 거지요.
물론 그렇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해석한다면, 이어지는 "그대 살 속의 /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라는 구절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 그대 등뒤에 있다."라는 마지막 연은요? 나름대로 해석할 수야 있겠지만, 시를 반드시 그렇게 통상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시는 언제나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고 또 그래야 생명력을 갖습니다.
그래서 '직접성의 인간'을 경계하는 키르케고르의 관점에서 강은교시인의 <사랑법>을 다시 해석해보면, 그 의미가 아주 새롭고 더욱 풍성해집니다. 우선 첫째 연과 둘째, 셋째 연은 남들이 떠나든 잠들든 무엇을 하든 그들을 따라 행동하지 말고, 또 꽃(사랑)과 하늘(희망)과 무덤(죽음)에 대해서 그들을 따라 말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뜻이 되지요. 이어지는 "그대 살 속의 /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 흐르지 않는 강물과 /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 결코 잠깨지 않는 //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 쉽게 흐르지 말고 / 쉽게 꽃피지 말고"라는 구절들도 당신 안에 ‘오래 전에’ 굳어서 ‘흐르지 않고’. ‘누워 있고’, '잠깨지 않는‘ 당신의 자기(날개, 강물, 구름, 별)'를 쉽게 또는 가볍게 다루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하늘 (희망)은 언제나” 당신이 등 돌리고 있는 당신의 ’자기‘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지요.
자기 안에 있는 굳은 날개를 다시 펼치고, 흐르지 않는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하고 누워 있는 구름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잠자는 별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 강은교 시인이 말하는 '사랑법입니다. 곧 자기 사랑법이지요!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