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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湖畔)의 도시
춘천(春川)의 소양강변을 다녀와서!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장발장은 1862년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입니다.
작자는 이 인물을 통하여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자가 한 사제(司祭)의 자비심으로
선악에 눈뜨게 되고, 사회에 항거해 가면서 고민하다가 점차
순화되고, 성화(聖化)되어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찾게 되는 영혼의 과정을 묘사하였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간 복역한 장발장이 감옥에서 나온 후부터 죽기 전까지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소설의 시대배경은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정권이 들어섰다가 무너지면서 왕정과 공화정이
엎치락 뒤치락하던 혼돈의 시대라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경제·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었는데 산업혁명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빈부
격차를 더욱 심하게 만들었는데요. 레미제라블은 산업혁명 시대
에 힘들게 살아가던 하층 계급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미리엘 신부를 통해 이런 혼란한 세상에도
정의와 관용이 존재하며, 그것이야말로 세상과 사람을 구원하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소설은 작가 빅토르 위고가 꿈꾸던
이상 세계이기도 합니다만 지금의 셰계는 선과 악의 양대 세력의
축이 갈등을 겪으면서 정의가 바로서지 못하는 사회적 혼란기가
올 것 같은 걱정이 앞섭니다...
2018년4월8일 일요일은 인터넷 카페 "5060아름다운사람들"
1947~1954년생 님들의 연합띠방모임 장소로 정한 호반의 도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시를 찾아가서 봉의산 아래 송어횟집
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눈나리는 소양강 양안(兩岸)을 걷기도
하고 식당차로 이동을 하면서 다목적으로 축조한 거대한 의암댐을
관광을 하고 댐 위 높은 산의 한 폭의 그림같은 때아닌 설경을
구경하고 차로 이동 벚꽃이 활짝폈고 강건너 산허리 솔밭에는
설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강변의 커피숍에서 원산지가
이디오피아라는 커피를 마시며 동행한 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노라니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면서 행복을 만끽(滿喫)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春川)
누구나 청춘이고 싶은 곳이 춘천이다.
봄 춘(春), 내 천(川). ‘봄이 오는 시내’란 예쁜 이름의 춘천은 단순한 지도상의 지역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청춘의 이정표 같은 상징성을 가진다. 안개 가득한 호수와 봉긋한
산들이 감싸주는 춘천은 그곳이 고향인 이들이나 한두 번 다녀온 이방인들에게도
수채화 같은 추억을 선물한다. 서정적인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박사를 수십여 명 배출한
박사마을을 비롯, 이곳을 거쳐 간 관료 중 출세한 이들이 많아 ‘입춘대길(入春大吉)’,
즉 춘천을 다녀와야 좋은 일이 생긴다는 신조어가 탄생할 만큼 행운의 도시로도 불린다.
영원한 청춘의 도시로 여겨지지만 춘천의 역사는 깊다. 옛날 맥국의 고도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6년(637) 때부터 군주를 두고 우수주라 부르다가 조선 태종 3년(1413)에 현재의
이름인 춘천으로 개편되었다. 그때에도 유난히 산과 강이 많아 봄의 기미를 빨리 느낄
수 있어 ‘춘천’ 즉 ‘봄내’라 불렸다 한다. 지난 3년 연속 언론에서 선정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대 도시’ 중 우위를 차지한 춘천은 26만여 명의 인구에 복지, 교육, 환경,
안전,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재난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산불, 가뭄, 수해, 사건 등이 끊이지 않지만 춘천만은 지난 40년간 이런
자연재해가 거의 없었고 대형범죄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마다 수해나 가뭄에 시달리
거나 납치 등으로 인심이 흉흉한 곳들과 비교하면 축복받은 곳이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 김석구기자
이중환의 <택리지>를 살펴보면 춘천의 이런 상서로운 기운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
나라의 수계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대동강 수계의 평양이고 둘째로 춘천의 소양강 수계를
들고 있으니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맥국 때 터의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택리지> 복거(卜居) 총론에는 낙토(樂土)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는데 첫째는
지리(地理)이고 둘째 생리(生利), 셋째 인심(人心), 넷째 산수(山水)로 되어 있다. 이중환이
춘천을 중심으로 한 북한강 수계를 우리나라 수계 중에서 대동강 수계인 평양 다음이라
한 평가의 기준이 바로 이 낙토 선정의 기준이다.
사학자와 지리학자들은 춘천 중심의 북한강 수계가 이 기준에 상당 부분 합치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 시인들은 물줄을 젖줄로 비유한다. 춘천의 물줄은 생명의 이로움을 위한
젖줄일 뿐만 아니라 문화를 전이시키는 동맥이기도 하다. 댐을 만들어 호수가 된 춘천호,
의암호, 소양호는 춘천의 자랑이자 가장 큰 볼거리다. 춘천호에서 의암호를 따라 이어지는
‘환상의 도로’는 작가 홍성유가 1980년대에 명명했다. 정서가 메마른 이들도 이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지는 춘천댐 계곡과 삿갓봉, 집다리골 휴양림의 아름다움, 아기자기한
카페촌을 본 후엔 감탄사를 연발한다.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든 의암호는 신현강 협곡을
막아 의암댐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데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야
도착하는 소양호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소양강댐과 선착장이 있어 유람선 관광도 즐길
수 있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근사한 산들로 만족시켜주는 곳이 춘천이다.
삼악산, 오봉산, 검봉산, 용화산, 부용산 등이 있는데 특히 봉의산은 춘천 어디에서나 보여
춘천을 상징하는 지표이자 얼굴이다. 역이나 터미널에 내려도 고개를 들어보면 잘 보인다.
한류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에 등장하는 준상이네 춘천집도 봉의산 남서쪽 기슭에 있다.
미래의 희망이 강물처럼 은은하게 흐른다
춘천이 고향이 아니라 춘천에 잠시 부임했던 이들은 대부분 춘천에
더 머물고 싶어 한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춘천은 비록 유명한 특산
물이나 부유한 대기업이 없지만 가장 평화롭게, 가장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선 자동차로 20분 정도만
달려가면 스키장, 산, 강 등 어느 곳에나 갈 수 있고 공원, 박물관
극단 등 문화시설과 체육시설이 풍부해 대도시처럼 북적거리지
않고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또 크기가 작은 도시인데도 한림대를 비롯 대학이 4개이고 춘천고는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합격비율이 높아 명문고로 소문났다. 서면
에 있는 박사마을을 보면 왜 춘천에서 인재가 많이 배출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은 평범한 농촌마을이지만 1968년 송병덕
(의학박사)을 시작으로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2009년 2월 현재
까지 114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서면 23개 리 중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금산리로 지금까지 22명의 박사가 나와 석사도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1999년 서면이 박사마을로 전국에 알려지자 면
주민과 관계기관이 뜻을 모아 같은 해 10월 ‘박사마을 선양탑’도
건립했다. 이곳에서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보내면 똑똑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21세기형 전설까지 만들어졌다. 마을 주변에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묘역과 오미나루터 등 다른
관광명소들도 많다.
춘천은 보장된 미래도 밝다. 2010년에는 복선전철이 완공되어
서울에서 약 한시간이면 춘천에 도착할 수 있다. 같은 해에 세계
레저총회도 열려 마임축제, 세계인형극제와 더불어 춘천은 세계적
문화도시로 도약하게 된다. 공단시설은 별로 없지만 대규모 IT회사
들이 입주해 경제 진작은 물론 일자리 창출도 늘어날 전망이어서
춘천 곳곳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은 “문화행사나
외적인 성과도 중요하지만 지난 겨울부터 공지천에 청정지역에만
산다는 빙어낚시가 가능하다”면서 “도시 한복판에서 낚시를 해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해진 춘천의 물과 공기가 바로 춘천의
현주소이자 미래”라고 강조했다. 피천득 시인이 ‘5월’이란 시에서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난 5월 속에 있다”고 노래했듯 물
맑고 공기 좋은 춘천은 누구에게나 수줍은 미소를 짓는 소녀,
가슴이 뜨거운 소년의 마음을 선물한다. 그런
도시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선물이 아닌가.
춘천:(신택리지)
춘천의암댐(衣巖dam)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있는 북한강의 댐.
높이 23m, 제방길이 273m, 총저수용량 8000만t, 시설발전용량
4만5000㎾, 유역면적 7,709㎢이다. 호수면은 너비 5㎞, 길이 8㎞
의 타원형으로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72m로 만수위 때의 수면
면적은 15㎢이고 제한수위는 70.5m이다. 중력식 콘크리트 잠언둑
으로 수문(13×14.5m)은 14개 설치되어 있으며 유효낙차는 최대
15.67m이다. 발전량은 45,000㎾이며, 연 발전량은 161Gwh이다.
의암호의 가운데에는 세개의 섬, 즉 하중도·중도·상중도가 있다.
중도와 상중도는 하나의 섬인데 뱃길을 내기 위하여 운하를 파서
두 개의 섬이 되었다. 섬에서의 토지이용을 보면, 상·하중도는
조림지이고, 중도에서는 채소를 재배한다. 호반 순환도로와 관광
시설을 정비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한랭한 기후조건은
질 좋은 빙판을 형성하여 공지천의 이디오피아군 참전비가 있는
곳에는 훌륭한 스케이트장이 형성되어 전국에서 스케이트인이
모여 들어 전국동계체전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한국지지: 지방편』Ⅱ(건설부 국립지리원, 1984)
『춘주지』(춘천시·춘성군, 198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에티오피아(Ethiopia)
한국전쟁의 참전국 등 외교관계
우리나라와는 1963년 12월 23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65년 3월
상주공관을 개설하였다. 이 나라는 6·25전쟁 당시 보병 1개 대대를
파병한 바 있으며, 셀라시에 황제가 방한한 바도 있으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한국과 정치적으로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69년 5월 의료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92년
11월에 경제·기술협력 협정, 1998년 10월에 문화 협정, 2003년 4월
에 무역 협정 등을 체결하여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2015년 현재 1억 6883만 달러로 백신,
화학제품 등이 주종목이고, 수입액은 5543만 달러로 커피, 참깨 등이
주종목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경남기업, 명성병원 등이
진출해 있으며, 약 460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과는 1975년 6월 5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상호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으나, 2002년 4월 상주공관을 폐쇄하였다. 1975년 11월에
항공봉사 협정, 1985년 12월에 경제 및 기술협조협정, 2000년 5월에
문화교류 협정을 체결하고, 2008년 4월에는
보건협조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한 바 있다.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제3세계론』(신정현, 일신사, 1986)
『아프리카 아프리카』(최평규 편, 국풍, 1983)
『아프리카정치론』(하경근, 일조각, 1974)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지천(Gongjicheon, 孔之川)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삼천동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학곡리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시내를
관통한 후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이다. 하천
수계는 본류와 3개의 소하천인 신촌천과 학곡천, 후하천으로 이루
어져 있다. 하천연장은 5.6km, 유로연장은 6.73km, 유역면적은
53.67㎢이다. 하천의 경사도는 1/135~1/680으로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북한강 합류지점 주변에는 공지천유원지와
조각공원, 의암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하천 중상류부 주변을
따라 46번 국도가 있으며, 학곡천 합류점
주변으로 55번 중앙고속도로가 지난다.
낭만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에 춘천만큼 잘 어울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듣기만 해도
괜히 설레는 '봄'이란 단어처럼 춘천 역시 이유 모를 설렘을 선사한다. 소양강댐,
의암호, 청평사, 공지천처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명소들이 춘천을 낭만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겠지만, 사실 춘천 곳곳에 오밀조밀 숨어 있는 잔잔한 요소들이
춘천을 더욱 낭만적인 공간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춘천낭만시장에 이어 이제 낭만골목이 등장했다.
골목길만큼 정감 넘치고 개성 가득한 공간이 또 있을까. 세상의 모든 골목길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겠지만 여기 춘천 효자동의 골목길은 남다른 이야기와 개성을 자랑한다
. 이름하여 효자마을 낭만골목.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고 마구 걷고 싶은 욕구가 솟구
친다. 춘천의 낙후된 마을을 예술과 문화가 깃든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낭만골목 프로
젝트'라는 이름 아래 효자동 주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낭만골목 프로젝트 1호, 효자마을 낭만골목이 탄생했다.
좁은 골목이 시작되는 어귀에는 산삼을 든 청년과 아기호랑이 설치 작품이 세워져 있다
. 작품 제목은 '반희언과 새끼호랑이'. 반희언은 효자마을의 탄생과 관련된 인물이다
. 조선 중기의 효자 반희언은 중병에 걸린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3구가 있는데 그중 가운데 시체의 목을 잘라와
고아서 어머니께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반희언은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어머니께 약을 드리려고 솥뚜껑을 열어보니 시체 머리 대신 산삼이 있었다.
그리하여 노모는 목숨을 건졌다. 그해 겨울에는 노모가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또 딸기를 구하러 산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딸기를 구하지만 눈보라에 길을
잃고 헤매다 호랑이를 만났다. 하지만 호랑이는 반희언을 해치는 대신 그를 집까지
태워다주고 사라졌다. 조선 선조 41년, 반희언의 효행을 칭송하는 효자정려가 내려
졌다. 이후 마을 입구에 효자문이 세워지면서 효자문거리라 불리다가 효자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반희언과 새끼호랑이'는 바로 효자동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효자동이라는 동네를 이해한 후 골목길로 들어서보자. 골목길 입구에
자리한 '그린마트'라는 가게가 보인다. 편의점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 가게가 골목
길의 운치를 살려준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서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그린마트 바로 맞은편 벽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방긋 인사한다. 무미건조
했을 시멘트벽에 호랑이를 비롯한 십이지신 캐릭터와 효자동 풍경이 어우러진 벽화가
그려지면서 포근하고도 유쾌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제목은 '효자상 가는 길'이다.
사랑꽃, 웃음꽃, 행복 노래 가득한 효자마을이 되기를 염원하고 방문객들을 환영하고자
마을을 수호하는 호랑이와 십이지신 동물들을 그려놓았다. 그 벽을 끼고 오른쪽 골목
길로 들어서면 '동일석유'라는 간판 아래 3D 낭만포토존이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효자문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이 가능하다.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한국관광공사)
춘천낭만시장(春川浪漫市場)
춘천은 북한강과 인접해 있어 예부터 주변의 물산이 모여드는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강원도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물건들을 보관했다가
봄날 강이 풀리면 북한강을 통해 수도인 한양으로 향했다. 오늘날에는
1939년 개설된 경춘선 열차와 2009년에 완공된 서울춘천고속도로까지
더해지면서 물자와 사람이 모여드는 동북부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춘천의 시장은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중심지에 있는 읍내장과 강 건너
의 샘밭장이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개설된 지 400여 년
된 샘밭장이 춘천 지역의 상권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1936년 강을
연결하는 다리가 생기고 해방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내
에 위치한 춘천낭만시장이 중심적인 전통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춘천낭만시장은 시장의 주요 통로에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현대적
시설을 갖추었으며 의류와 생활 잡화, 제수용품, 곡물과 채소, 나물,
과일 등의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 골목과 인접해 있으며 시장 안에도 곳곳에
춘천(春川)이라는 이름은 봄이 오는 시내, 또는 봄이 흐르는 시내
라는 뜻을 품고 있다. 산과 강을 많이 끼고 있는 춘천은 봄이 오는
모습을 빨리 느낄 수 있다고 해서 봄내, 즉 춘천이라고 불리었다.
춘천의 중앙시장은 이러한 지역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2010년 경춘
선 복선전철 개통 시기에 맞추어 춘천낭만시장으로 이름을 바꾸
었다. ‘낭만’이라는 주제로 시장의 특색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상인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춘천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이어온 5일장인 샘밭장은 장이
열리는 곳의 지명과 관련이 있다. 춘천의 신북면에는 강원도에서
보기 힘든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 샘이 많아서 붙여
진 ‘천전(泉田)’, 우리말로 ‘샘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들판은
과거 이 지역에 있었던 고대국가인 맥(貊)이 자리했던 옛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역사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춘천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때 ‘우두의 처녀들은 삼베 장사로 떠나고
샘밭장 처녀는 막걸리 장사로 나가네’라는 노래를 처절하게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소머리를 뜻하는 우두는
샘밭 너머에 있는 우두산을 가리킨다.
출처:(국내 시장백과)
춘천에서 가장 큰 중심가이다. 옷,신발,가방,액세서리,패스트
푸드점,극장,나이트 클럽 등 다양한 가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춘천에는 실재 명동이라는 지명이 없지만, 서울의
명동 거리를 축소해 놓은 듯 번화하다고 해서 춘천시 조양동
골목을 춘천 명동거리라 부른다.
이 쇼핑거리의 뒷골목에는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인 춘천
닭갈비를 파는 닭갈비 골목이 있다. 또한 중앙시장과 춘천지하상
가가 인접해 있는데 중앙시장은 1962년에 생긴 춘천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한복과 중년층의 옷을 파는 가게들이 주류이다.
춘천지하상가에는 옷, 가방, 신발, 음식점, 액세서리 등의 가게
들이 300여 개나 모여 있어 오히려 지상의 춘천 명동거리보다
더 활기찬 분위기다. 춘천 명동거리의 중앙에는 일렬로 트리
모양의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 모습이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배경지로 이용되었다.
춘천의 대표적인 닭갈비 골목은 3곳으로 그 대표적인 곳이 명동
닭갈비 골목이다. 춘천에서 가장 큰 중심지인 춘천 명동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인 닭갈비와 막국
수를 파는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골목을 말한다. 춘천에 닭갈비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이 지역에 예전부터 양계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춘천 닭갈비 골목의 역사는 50여 년을 넘어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들을 위한 작은 식당의 메뉴 중 하나에 불과했던 닭갈비는
1980년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3개의 음식점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많은 상점들이 생겨나 닭갈비 집이 활발하게
영업중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닭갈비는
먼저 군인,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1990년대에 들어와 외식
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닭갈비는 추억의 음식으로, 저렴하고 푸
짐한 외식 메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나아가 춘천의 명물이 되었다.
춘천 닭갈비는 크게 토막 친 닭에 고추장이 들어간 매콤한 양념장을
고루 발라 하루쯤 재워 둔 후 양배추, 양파, 고구마, 떡을 같이 넣고
무쇠철판에 구워 먹는 요리이다. 막국수는 메밀국수를 김칫국물에
말아 먹는 강원도 향토음식으로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소양강처녀(昭陽江)
반야월:작사
이 호:작곡
김태희:노래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순정
너마저몰라주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태우는 소양강 처녀
♥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가슴에
떠나고 안오시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태우는 소양강 처녀.
2018-04-0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