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81)>
문경지교(刎頸之交)
목 벨 문(刎), 목 경(頸), 문경이라 함은 ‘목을 벤다’란 뜻이고, 어조사 지(之), 사귈 교(交), 지교라 함은 ‘~과 같은 사귐’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문경지교’라 함은 “목이 베어져도 두려워하지 않는 친한 사귐”을 말한다. 그야 말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경(刎頸)이라는 한자어가 다소 어렵다. 문(刎)이란 목을 베거나 찌르는 것을 뜻한다. 자기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 것을 자문사(自刎死)라고 한다. 경(頸)이란 한자는 목덜미 부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흔히 경추부(頸椎部)라고 하면 목등뼈, 즉 척추의 가장 윗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경지교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유래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때 인상여(藺相如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 소왕에게 빼앗길 뻔 했던 명옥(明玉)을 가지고 돌아온 공적으로 종일품의 벼슬에 올랐다.
인상여의 지위가 염파(廉頗) 장군보다 더 높아지자 염파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나는 싸움터에서 목숨을 걸고 성을 빼앗고,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이 말을 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해 다녔다. 이에 실망한 부하가 작별인사를 하러오자, 인상여는 그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은 염파장군과 소왕 중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야 물론 소왕이지요”
“소왕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진나라가 쳐들어 오지 않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야. 만약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돼. 그래서 나라의 위기를 생각하고 염파장군을 피하는 거야. 이처럼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것은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개인의 원한을 뒤로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인상여를 찾아가 자기의 좁은 소견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날부터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되었다는 데서 문졍지교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서양에서도 문경지교와 같은 유명한 일화 가 있다. 옛날 로마시대에 데이먼과 피시어스의 우정이 그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피시어스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왕 디오니소스에게 고향에 있는 노모를 보고 죽겠다고 잠시 고향에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그가 속임수를 써서 도망갈 것이라고 하면서 허락하질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데이먼은 왕에게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대왕께서 피시어스가 도망갈 것이라고 의심하신다면 저를 대신 옥에 가두고 그의 소원을 들어 주소서.” 왕은 간절한 데이먼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약속한 날자가 다가왔는데도 피시어스는 돌아오질 않았다. 결국 데이먼이 사형장에 끌려나왔다. 처형장에 나온 데이먼은 그의 심정을 말했다
“피시어스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 것이다. 내가 죽는다 해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다.”
사형집행을 알리는 세 번째 북이 울리는 순간, 먼 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피시어스였다. 고향에 도착하여 노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바로 출발했다. 그러나 폭우가 쏟아져 강을 건널 수가 없어서 늦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사형집행 직전에 겨우 당도했다. 왕은 두사람의 우정과 신의에 깊은 감동을 받고, 피시어스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학창시절에 데이먼과 피시어스의 이야기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친구는 소금과 같이 귀중한 존재이다. 부모에게 말 못하는 고민도 친구에게는 머뭇거리지 않고 모두 말한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친구가 없는 세상을 황야(荒野)에 비유했다. 황야를 혼자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쓸쓸하고 처량한 모습인가. 우리는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 없는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다.
친구도 친구 나름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인생이 즐겁고 넉넉하게 된다. 그러나 좋은 친구를 갖기란 말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참된 친구는 세 손가락을 꼽기 힘들다고 했다. 문경지교와 같은 친구를 가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가 남의 참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를 이용하거나 덕을 보려는 사람은 참된 친구를 가지지 못한다. 이해관계를 떠나서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사귈 때 참된 친구가 얻어지게 된다. (2023.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