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의 회상: 두만강에서 중앙아까지 ⑦
모든 것이 상품, 교수 면담료
당시 가격이야기를 쓰다 보니 90년대 초 러시아 여행할 때의 일화가 생각난다. 개방 초기이었기 때문에 환전 얘기는 어디나 비슷했다.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변하는 시기였기에 불법 환전상들은 공안보다는 마피아가 더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쌌다. 특히 책값과 술값은 헐값이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몇 달러이고 비싸보았자 10달러 미만이었다. 또 각종 수입 포도주도 한 병에 불과 1, 2 달러 정도 이었다. 상상도 못하는 싼 가격이었다. 아마도 국영 가격제도를 실시하던 시절의 가격으로 그냥 팔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우리 관광일행은 대부분 교수들이었으므로 캠퍼스 투어나 경상대 교수를 만나고 싶어서 가는 곳 마다 일정에 넣었었다. 그런데 참 재미있었던 것은 캠퍼스에 들어가려면 만날 사람과의 약속은 필수적인 것이고, 교내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어야 했다. 그것에 덧붙여서 교수를 만나고 싶으면, 물론 총장이나 학장, 학과장 급에 따라 직급에 따라(?) 교수 면담료를 내어야 했다. 세상에 사회주의가 그런가 보다. 아니면 자본주의를 잘 못 적용해서 그랬었나? 어쨌든 중국여행 초기에 그렇게 했었다. 기억에 생생한 것은 베트남 개방 초기에 하노이 대학 방문할 때에 있었던 일이다. 여행사의 경비에는 그런 비용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가이더가 교내입장료와 교수 면담료를 내어야 한다니 참으로 난감하였다. 일행들과 면담료 추가비용에 대해 토론한 결과 내고서라도 만나고 가는 것이 의미가 있단다. 그런데 사전에 그런 얘기가 없었으니 단장인 내가 내어야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협조하지 않고 단장이 책임을 지란다. 참 어쩔 수 없이 내가 1000 달러를 달달 털어서 내고 면담을 하였다. 귀국 시에 빈손이어서 호치민 공항에서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고, 일행은 면세점 쇼핑이 바쁜데 J 교수가 슬그머니 100달러 주머니에 넣어주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경제체제를 양분하면 대체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경제제도는 그렇게 깔끔하게 양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복잡한 것은 그냥 두 체제가 혼합되어 있는 혼합경제체제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다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좌우간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제체제이든 교환과 거래는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한다. 봉건시대의 신분, 자본주의에서의 자본과 지대, 사회주의에서의 신분과 계급 등등이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나 혼합적으로나 거래와 교환은 존재한다. 돈이든 권력이든 거래수단과 방법은 수없이 존재한다. 다만 그러한 채널이 공개적이냐 폐쇄적이냐, 한시적이나 상시적이냐, 한정적이냐 무한이냐, 전쟁이냐, 반란이냐, 정쟁이냐 내분이냐 등 다양한 수단과 방법이 무한이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개방 초기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바가 너무나 강렬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체제전환 당시 공산당 중견간부가 “일체가 상품이다.”라는 일갈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지당한 말씀이지만 생소하게 느껴진 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인식이 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나의 얄팍한 지식이 조롱당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사랑, 명예, 권력, 신분, 신체, 관계, 지식, 지혜, 장끼, 술수, 감정, 표정 상상할 수 있는 유형, 무형의 일체가 자산이고 상품이란 생각이 체제에 상관없이 거래 대상이라 하니 역사 앞에 숙연해 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지인한테 처음 들었던 말로 나의 느낌을 대신한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차례 포즈를 수정하고 요구할 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에이, 표정 낭비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