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이대로 세월이 흘러간다 해도, 그때와 변함없는 당신과 내가 있는 한, 우리들은 다시 만날 거야. 만나고 싶어지면 만나면 돼. 그걸로 좋아. 그때, 우리들은 마치 그날과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우리들은 아톰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86년 시작된 일본의 창작 뮤지컬로서 18년간 40만 관객들이 보았다고 하는 작품입니다. 특이한 건 7명의 배우들로만 공연을 이끌어 가는데, 더블도 언더도 없다는 점입니다. 오로지 7명의 배우들이 18년간 공연을 해왔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러다가 그들에게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우리나라 배우들이 오디션을 거쳐서 새로운 멤버들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군요. 일본 연출가께서 우리 배우들에게 숨겨진 재능을 알아본 것이겠죠... ^^
콘보이 쇼는 큰 얼개 안에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번에 보여 지는 공연은 24번째 버전인 ‘아톰(ATOM)’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공연 할 때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버전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아톰'은 가장 파워 풀한 버전으로 꼽힌다고 하구요. '아톰'은 만화 주인공 아톰을 뜻하면서, 동시에 원자화된 현대사회의 개인을 의미하면서, 파편화된 삶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성찰을 담고 있다고 하는군요..
스타는커녕 어느 정도 알만한 배우조차 없는데다가, 국내에 처음 들여오는 공연이고 퍼포먼스의 개념이 더 강한 거 같은 작품에 선뜻 칠 만원이나 하는 돈을 투자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공연장에 도착해서도 ‘기대’보다는 ‘모험’을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았던 게 사실이구요.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저는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어 졌습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지불하는 돈의 의미가 효용성의 가치를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두 시간여 동안 무대를 꽉 채우는 일곱 배우들의 에너지만으로 전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니깐 말이죠... 매체에서는 보이 밴드의 쇼 뮤지컬이라고 해서 알타 보이즈와 비교를 많이들 하더라구요. 저는 알타 보이즈를 두 번이나 보았고 충분히 즐기면서 보았지만, 솔직히 알타 보이즈보다 콘보이 쇼가 쪼~~금 더 재미있었답니다.. ㅋ
무대는 철제구조로 된 계단과 여기 저기 쌓여 있는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허름한 창고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언젠가 책이나 영화속에서 보았던 비밀스런 아지트 같아 보였죠. 한밤중에 몇몇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비밀스런 모임인 ‘한밤중의 시인의 모임’을 하기 위해서 창고에 모여듭니다. 이들은 각각 소크라테스, 사르트르, 다윈, 플라톤, 칸트, 프로이드라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등장할 한명은 사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구요. 이들은 자신의 이름에 맞는 철학자들의 이론에 따라 행동을 하고 대사를 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표현합니다.
초반에 이들이 지각한 한 멤버를 두고 열전을 벌이는 대화 내용부터, 아주 현란하답니다. 그런데... 분명히 철학적인 내용들인 것 같긴 한데 전혀 무겁지도 어렵지도 않게 툭툭 상황 속에서 흡수되고, 그 속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 또한 아주 기발하답니다... ㅋㅋㅋ
처음 소개되는 작품일 경우에,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끌어 가는 힘이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극을 보면서 다음 장면이 뭘까 궁금해지게 되고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작품이란 반 이상은 성공한 거라고 생각하구요. 이 작품은 내용부터 캐릭터들의 성격, 대사들 모두 굉장히 독특합니다. 그러니 장면 속에서 대사들과 인물들이 빚어내는 조화 또한 독특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관객들의 재미를 유발시킬 수밖에 없는 거 것이죠.
억지로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서 웃음을 강조하지 않고, 말도 안되는 장면들을 만들면서 감동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지겨운 걸 억지로 참아가면서 시간 아깝게 만드는 공연도 아닙니다. 아톰머리 모양을 한 소품을 쓰고 나와도,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를 부르면서 정말 표범의 꼬리와 머리 모양을 하고 나와도 전혀 유치하기는커녕 유쾌하게만 보이니 뭐 말 다했죠... ㅋㅋㅋ
당신은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그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무언가를 당신은 품에 안고 있습니다. 살짝 가슴에 품고 소중히 간직하며, 멈추지 말고 노력하세요. 언젠가는 훌륭한 열매를 맺을 겁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요.
이들 일곱 명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본다면 그리 별 볼일 없는 배우들일지도 모릅니다. 대사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듯이 이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구요. 그런데... 그다지 특별하지 않는 배우들이 모여서 특별한 공연을 만들어냅니다. 배우들의 실제 프로필이 이야기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데, 그 또한 절묘하게 캐릭터를 이해시키는데 일조를 하거든요. 배우들은 키가 크다거나, 잘생겼다거나, 혹은 인기 스타이지도 않은데, 이 작품 속에서 이들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무엇이 평범한 그들을 멋지게 만드는 건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ㅎㅎㅎ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춤.... 발레와 탭댄스, 재즈 댄스까지 응용된 안무들은 춤에 문외한인 관객들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하나하나가 단순히 흉내를 내는 듯한 느낌이 아니라 뭐랄까... 전문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들은 모두 오랜 기간동안 이 공연만을 준비해왔다는 듯한 몸짓들이었거든요... ‘내러티브로 전달할 수 없는 상상력의 공간’이었다는 어느 기사의 한 대목처럼 이들은 춤으로 스토리를 표현해냅니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에 시와 노래 가사를 춤으로 형상화 시켜서 만들어내는 대목에 이르면, 그전까지 박수한번 제대로 치지 않으면서 보던 관객이 있었더라도 박수를 치고 말게 만든답니다. 저렇게 무대 위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서 표현하는 배우들을 어느 누가 감히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두 손 모아 가득 가득 박수를 그들에게 보내 주었답니다... 이들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비주얼은 일반적으로 외모에서 빚어내는 것들과는 분명히 성격이 다릅니다. 이들 몸으로 빚어내는 비주얼은 철학적인 대사들과 묘하게 얽혀져서 치밀하게 구조를 만들면서, 작품 전체의 나사를 단단히 조여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구요. ^^
공연이 끝나고선 공연장을 나오다가 공연을 같이 봤던 지인이 갑자기 멈춰서는 막 웃기 시작하더라구요. 깜짝 놀라서 물었죠... 야.. 너 왜 그래?? 그러자 친구 왈, 이거 너무 재미있다... 어떻해.... 그러면서 한참을 웃는 겁니다... ㅋㅋㅋㅋ 생각할수록 재미있다는 것이죠... 공연이 막 끝나고 나오면서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이니... 공연이 어떠했을지 대충 짐작이 가시죠? ^^
이 작품을 보면서 관객들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의 절대치는 물론 ‘감동’보다는 ‘재미’입니다. 하지만 그 ‘재미’란 것이 보편적인 ‘감동’ 못지않으니 그리 나쁘진 않죠? ㅎㅎ 공연기간이 이번 달 20일까지라서 좀 짧게만 볼 수 있으니, 놓치시지 마시고 꼬옥 챙겨 보시길... 안보고 넘어가면 분명 후회하실꺼라고 장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