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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장흥·강진 80코스 제2부
진목1저수지-덕촌방조제-동신마을-서신마을-오성금방조제-마량방조제-마량항
20220607
제1부에서 이어짐
1.고금도의 이순신 장군과 마량 까막섬 상록수림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진목1저수지에서 남파랑길 80코스를 이어간다. 바람이 거세지고 빗발이 굵어진다. 논에서 써레질하는 농부들은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내기 전의 써레질 작업에 열중이다. 길손의 마음에 미안함이 깃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우주 삼라만상의 각 생명체는 각자의 몫이 있는 것, 쓸데없는 먹물로 자신을 위로하며 내달린다.
덕촌방조제는 동쪽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삭금마을에서 서쪽 장흥군 대덕읍 가학리와 잠두리를 잇는 긴 방조제로 득량만 서쪽 끝지점의 해안을 뒤바꾸어 놓았다. 광활한 덕촌간척지들을 가로질러 남파랑길은 덕촌방조제로 이어진다. 그 길에서 계속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꽁지산이라 부르고 싶은 공지산이 장삼 자락을 날리며 득량만으로 날아가는 형상이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조약도의 삼문산 능선이 고원처럼 펼쳐지면서 맨 뒤쪽에서 득량만을 내려보고 있다. 그리고 대덕읍 옹암리의 장흥반도는 조약도와는 다르게 길게 동쪽으로 벋어나오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섬과 그 반도 앞에 섬들이 멀리 또는 가까이서 형제남매처럼 다정히 바다에 앉아 있다. 득량만의 동쪽 끝은 조망이 되지 않지만 고흥반도와 이어지는 소록도와 거금도가 동쪽에 가늠되었다.
북쪽 내륙으로 눈을 돌리면 역시 낭중지추, 장흥의 명산 천관산이 형상을 드러낸다. 다만 날씨 탓에 천관산은 연대봉과 그 능선을 운무에 가린 채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럼에도 늠름하고 넉넉한 품새다. 그래서 천관산은 낭중지추의 뾰족함이 아닌 둥그스름한 곡선의 수묵화를 그려준다.
이 바다와 이 산줄기 사이에서 사람들이 해안에 변화를 준 덕촌간척지들은 강인한 삶의 생명력, 먹고 살기 위한 1차적 농산물 생산을 위한 간절한 소망처럼 비쳐졌다. 이 간척농토에 기대어 삶의 꿈과 희망을 일구는 농민들의 뜨거운 열정이 비바람을 물리치고 써레질 농사를 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땅의 참사람, 아니 대지의 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간척지들에 변화를 주는 것은 냇물, 폭 넓은 물길로 유장하게 흘러오는 대덕천이 바다와 인간의 경계를 풀고 보듬으며 도닥여 주는 형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바다와 간척지들 사이에서 대덕천은 아름다운 갈대습지를 형성하여 경계를 이루는 듯 풀어주는 듯 화합의 꿈으로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대덕천 배수갑문을 건너 득량만과 작별하였다. 장흥군 대덕읍 신리로 넘어가 남해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장흥반도를 형성해 놓은 신리 앞 해안으로 나갔다. 대덕읍 옹암리 장흥반도는 동쪽으로 길게 뻗쳐있고 신리 해안은 서북쪽으로 큰 굴곡을 이루어 대덕읍 동신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갔을텐데, 이곳에 방조제를 건설하여 그 굴곡을 없애서 대덕읍 신리 동신마을 앞은 바닷물이 아닌 간척지들이 드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 간척지들 농로를 따라서 장흥대로로 나가면 대덕읍 신리 동신마을과 서신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방조제가 생겨나기 전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을 때 전통 고기잡이 개매기 방식으로 고기를 잡았나 보다. 그래서 동신마을 벽화에는 신리 개매기체험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개매기체험을 원하는 탐방객들을 위해 방조제 앞 갯벌에 개매기체험장을 조성해 놓은 것 같다.
아쉽지만 그냥 지나쳤다. 시간에 쫓겨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단체 트레킹의 단점이지만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단체 트레킹을 따라가는 탐방객으로서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풍년식당, 옛 정취가 그윽하게 솔솔 풍기는 풍년식당에서 주모가 내놓는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길동무 송다래님과 함께 풍년식당을 지나쳐서 아쉬움을 털어냈다.
장흥대로 북쪽 언덕에 평산 신씨 세장지가 넓게 자리한 것을 보며 조금 걸어나가면 오성금삼거리, 다시 간척지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오른쪽 산 아래를 흐르는 상흥천을 경계로 하여 왼쪽 간척농토지는 장흥군 대덕읍 신리, 오른쪽은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로 구분된다. 간척농토 끝에 오성금방조제가 있으며 맞은편에 고금도가 보인다. 상흥천 둑방길을 따라가면 오성금방조제에 이른다.
오성금방조제는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와 장흥군 대덕읍 신리 사이의 바다를 가로막아 장흥군 대덕읍 신리에 광활한 간척농토를 선물하였다. 상흥천 역시 간척지들에 갈대습지를 형성하여 냇물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방조제를 지나면서는 고금도가 전체를 지배하는 형국 같다. 완도군 고금면 고금도는 강진만의 동쪽 끝이라 할 수 있다. 고금도는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로 조약도와 연결되는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진린 장수와 만나고 명량으로 출정한 묘당도는 조약도를 마주보고 있는 곳이라고 추정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여 시신을 아산으로 운구할 때 명량해전으로 출정한 역사적인 장소 고금도에 이순신 장군의 시신을 잠시 가매장하여 추모하였다. 고금도에는 그러한 연유로 이순신 장군 사당 충무사가 세워져 있다.
고금대교를 바라보면 마량방조제를 걷는다. 남파랑길 80코스는 방조제와 드넓은 간척농토를 가로지르는데 마량방조제는 간척지들로 나가지 않고 방조제길을 통과할 뿐이다. 남파랑길 80코스의 방조제를 세어볼까? 순흥방조제, 덕촌방조제, 신리방조제, 오성금방조제, 마량방조제, 이중 가장 광활한 것은 덕촌방조제라고 생각한다.
마량(馬良)항으로 나갔다. 마량항에는 방파제가 네 개 있다고 한다. 상중하방파제와 동방파제, 상방파제는 남파랑길 80코스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하방파제의 조형물 마량의 보배, '인마지교人馬之交(인마지교)' 설명안내판에 마량항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마량(馬良)은 조선시대에 국가에 바쳐지던 제주말이 한양으로 이동하는 대표적인 해상 관문으로 육지에 도착한 말들은 마량에서 육지 적응 기간을 보냈다. 현대에는 말을 매개로 하여 제주도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량(馬良/馬梁량)은 말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제주말을 한양으로 보낼 때 잠시 도착한 말들을 일정 기간 육지 적응을 시켜 보냈던 곳이 마량이며, 마량에는 숙마(宿馬)마을, 신마(新馬)마을, 원마(元馬)마을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숙마(宿馬)마을은 말이 잠자던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것이라 한다.
중방파제 전망대로 올라갔다. 마량항 여객터미널 위쪽에 마량의 명물 까막섬이 떠있다. 아름답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섬을 푸르게 감싼 상록수림이 멋지다. 까막섬 뒤로는 왼쪽에 해남의 명산 두륜산이, 그 오른쪽에 주작산과 덕룡산의 암릉들이 이어진다. 두륜산이 운무에 덮여 있어서 운무를 걷어낸 예전의 두륜산 그림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벅차다. 고금도 뒤 오른쪽으로 살짝 모습을 보이는 섬은 완도일 터, 완도의 상왕산이 예전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 또한 벅차다.
제1부에서 이어짐
2.걸은 과정
둑방길 왼쪽으로 내려가 가학회진로로 이어간다.
오른쪽 뒤 쌍용석재산업의 채석장이 걸어온 길의 증표가 되어 준다. 그 맞은편 공지산 능선을 왼쪽으로 따라와 미백길을 걸어 진목마을과 이청준 생가를 들렀다. 진목마을에서 덕촌간척지들로 나와 진목1저수지 둑방길로 진행했다.
둑방 왼쪽으로 내려와 가학회진로로 나왔다.
덕촌간척지들 오른쪽 중앙 남북농로를 따라 이어간다.
덕촌방조제에 의해 간척된 덕촌간척지들 중앙 남북농로를 따라가다가 중앙 동서농로와의 교차지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맞은편에 보이는 섬은 완도군 약산면 조약도이다.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내린다. 긴 장삼 자락을 휘날리는 공지산이 득량만으로 내리벋고, 간척농토에서는 모내기 준비작업으로 농기계를 이용해 써레질을 하고 있다. 농기계가 제대로 써레질을 못한 흙을 농부가 농기구로 잘게 부순다.
진목1저수지 앞에서 덕촌간척지들의 중앙 남북농로를 따라왔다. 오른쪽 뒤에 증표가 되는 채석장, 왼쪽 뒤에 이청준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이 보인다. 중앙 남북농로와 중앙 동서농로의 교차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중앙 동서농로를 따라 서쪽 대덕읍 가학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공지산 아래 오른쪽 득량만 해안에는 진목리 삭금마을, 왼쪽 내륙 쪽에는 안삭금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남파랑길은 바라보는 동쪽 방향의 중앙 동서농로 반대쪽인 서쪽 대덕읍 가학리 방향으로 중앙 동서농로를 따라 이어진다.
덕촌간척지들 동서농로를 따라 서쪽 대덕읍 가학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꺾어 덕촌방조제로 올라간다.
덕촌간척지들 동서농로에서 남쪽으로 꺾어 덕촌방조제 방향으로 진행한다. 앞쪽에 보이는 산은 조약도의 삼문산이다. 조약도는 완도군 약산면에 속하며 오른쪽 뒤에 있는 완도군 고금면의 고금도와 연도교로 이어진다.
앞에는 장삼 자락을 펼친 듯, 학이 날개를 펼친 듯 공지산이 우뚝하다. 이 수로는 회진면 진목리와 대덕읍 가학리를 가로막은 덕촌방조제에 의하여 내륙에서 흘러오는 모든 물을 받아 형성된 수로인데 갈대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쪽에서는 진목리 삭금마을 앞 수문이, 동쪽에서는 대덕천이 남해로 흘러드는 덕촌방조제 덕촌수문이 물길을 조절하고 있다.
수로의 물은 대덕천 방향으로 흐르는데, 대덕천이 덕촌수문에 막혀 서쪽에서 동쪽으로 물이 올라와 있는 상태이다.
덕촌방조제로 올라와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에서 대덕읍 가학리로 넘어왔다. 왼쪽은 장흥반도가 남해 남동쪽으로 길게 뻗쳐나와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에 속한다.
공지산은 득량만으로 벋어 내려 남해 바다에 빠지고, 그 앞에는 작은 섬 소대구도가 떠있다. 멀리 왼쪽 뒤 작은 섬은 고흥의 소록도, 그 오른쪽은 거금도일 것이라 가늠한다.
지도를 살피며 섬의 위치를 확인하면, 공기산 앞 바다의 작은 섬 소대구도와 그 오른쪽의 대대구도, 그 오른쪽은 조약도, 그 왼쪽 뒤는 생일도인 듯. 대대구도 왼쪽 뒤는 금당도, 맨뒤 왼쪽은 소록도, 그 오른쪽은 거금도인 듯.
맨 왼쪽에 대대구도, 그 오른쪽에 길게 뻗친 조약도, 그 사이 뒤로 금당도, 맨 뒤에 생일도의 백운산이 동그랗게 솟아 있다. 조약도 앞의 작은 섬은 대죽도와 소죽도인 듯.
왼쪽은 장흥반도 대덕읍 옹암리, 오른쪽 앞에 대덕천이 남해로 흘러든다.
완도군 약산면 조약도의 삼문산 산행의 추억이 떠오른다. 왼쪽 맨 뒤는 완도군 생일면 생일도인 듯.
덕촌배수갑문 수문교를 지나며 대덕읍 가학리에서 대덕읍 잠두리로 넘어간다.
오른쪽 삐죽 나온 곳은 장흥반도의 대덕읍 옹암리
중앙에 공지산, 맨 뒤 왼쪽에 소록도와 그 오른쪽에 거금도, 그 앞에 작은 소대구도를 가늠한다.
이 길은 정남진해안도로라고 하는데 도로명은 양하덕촌길이다. 덕촌항에서 덕촌마을 방향으로 이어오고 있다.
양하덕촌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덕촌1길로 진행한다. 덕촌마을이 이어져 있고, 맨 뒤에 천관산 능선이 운무에 덮여 있다.
동그란 숲 뒤 방파제가 보이는 덕촌항에서 빙 돌아 이곳으로 왔다. 중앙 뒤에 공지산이 보인다.
대덕읍 잠두리에서 대덕읍 신리로 넘어간다. 중앙에 보이산은 오성산, 그 동쪽 아래의 마을은 대덕읍 신리 이신마을이다.
회진면 진목리의 공지산 자락과 득량만의 다도해 섬들, 소대구도와 대대구도는 명확히 가늠된다.
썰물 때의 물 빠진 갯벌이 광활하다. 소대구도와 대대구도, 조약도의 삼문산, 그 앞의 소죽도와 대죽도, 오른쪽 끝은 장흥반도의 끝자락 대덕읍 옹암리 곶(串)이다.
오른쪽에 오성산, 그 오른쪽 아래에 대덕읍 신리 이신마을, 그리고 중앙 오른쪽 뒤에 대덕읍 신리 동신마을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방조제 앞에서 방조제 해안길을 따라가지 않고 오른쪽 농로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어 간척농지 농로를 따라간다. 오른쪽은 공성산인 듯.
간척지들 농로 이신길을 따라가다가 끝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장흥대로 지선길을 따라 진행한다.
이신길은 왼쪽 이신마을로 이어지고, 남파랑길은 오른쪽 장흥대로 지선길을 따라 이어진다.
장흥대로 지선길을 따라 장흥대로 간선도로로 나아간다.
왼쪽 끝 신리 방조제 동쪽 끝에서 농로로 들어와 중앙 동서농로 이신길을 따라오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장흥대로 지선길로 들어왔다. 왼쪽 뒤에는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의 공지산이 득량만의 증거가 된다.
장흥대로 지선길을 따라 장흥대로 간선도로와 만나는 곳으로 직진한다.
장흥대로 지선길에서 장흥대로 간선도로로 나간다.
대덕읍 신리 신리마을은 동신마을, 서신마을, 이신마을로 구분된다.
개매기는 조석간만의 차가 큰 바닷가의 갯벌 위에 그물을 친 뒤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 떼를 썰물 때 갇히도록 해서 잡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이라고 한다.
남파랑길은 장흥대로를 따라 오성금삼거리까지 이어진다.
오른쪽 장흥대로 지선길에서 장흥대로 간선도로로 나와 동신마을 입구를 거쳐왔다. 왼쪽 뒤에 공성산이 보인다.
쉼터정자와 팽나무가 있다.
오른쪽으로 개매기체험장과 대덕읍 옹암리 장흥반도로 이어진다. 옛 정취 풍기는 풍년식당에 들르지 못하고 지나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성금길을 따라 이어간다.
오성금길에서 오른쪽 농로로 진입한다.
오른쪽 산 아래를 흐르는 상흥천을 경계로 하여 간척농토지는 장흥군 대덕읍 신리, 오른쪽은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로 구분된다. 간척농토 끝에 오성금방조제가 있으며 맞은편에 고금도가 보인다.
중앙 뒤 오성금삼거리에서 오성금길을 잠깐 따라오다가 농로로 들어왔다.
왼쪽은 간척농토, 오른쪽은 상흥천, 상흥천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상흥천 다리를 건너 오른쪽 축사 있는 곳으로 건너간다.
상흥천 건너편은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 하분마을인 듯.
왼쪽에 상흥천, 오른쪽에 간척농토, 중앙 뒤에 오성금삼거리와 대덕읍 신리 서신마을, 맨 뒤의 산은 공성산이다.
상흥천을 건너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로 넘어왔다. 상흥천변에 녹색한우 민기농장이 위치하고 있다.
남파랑길은 상흥천 강진 둑방길을 따라 왕새우양식장 앞을 거쳐 오성금방조제 앞으로 내려간다.
건너편은 장흥군 대덕면 신리 오성금이다.
해안을 돌아나가면 마량면 상흥리에서 마량면 원포리로 넘어간다. 맞은편은 완도군 고금면 고금도이다. 득량만이 끝나고 강진만이 시작된다.
오성금방조제가 강진군 마량면 상흥리와 장흥군 대덕읍 신리 사이의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 뒤 오성금삼거리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보인다.
오성산이 우뚝하고 그 아래 대덕면 신리 오성금 선착장이 있다. 그 오른쪽 뒤부터는 대덕읍 옹암리가 되는 듯하다.
앞의 섬들은 완도군 고금면에 속하는 섬들로, 앞 오른쪽의 섬은 넙도인 듯. 왼쪽 뒤에 완도군 약산면 조약도 삼문산이 들어온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으로 출정하는 고금도의 묘당도는 중앙 뒤쪽 조약도 오른쪽에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고금도가 길게 왼쪽으로 뻗어 있고, 왼쪽 앞의 섬은 넙도인 듯. 오른쪽에 마량과 고금도를 잇는 연륙교 고금대교가 보인다.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와 완도군 고금면 가교리를 이어주는 연륙교 고금대교가 눈 앞에 있다. 해안로의 이름은 청자로.
왼쪽에 길게 나온 곳은 대덕읍 옹암리 장흥반도곶(串)이며 그 오른쪽은 초암도, 그 오른쪽은 원도라고 추정한다.
조약도 앞의 섬은 초암도(왼쪽)와 원도 그리고 맨 오른쪽 고금도 앞의 섬은 넙도인 듯.
마량면 상흥리에서 원포리로 넘어왔다. 앞에는 마량방조제와 마량천 배수갑문이 보인다. 청자로를 따라 이어간다.
청자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신마로 마량교를 건넌다.
마량방조제길 신마로를 따라 이어간다. 고금대교 아래 해안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해안길이 없다.
고금도가 길게 누워 있다. 고금도는 섬과 섬을 잇는 연도교로 조약도와 연결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진린 장수와 만나고 명량으로 출정한 묘당도는 왼쪽 뒤가 아닐까 추정한다.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잠시 묻혀 있다가 아산으로 옮겨 갔으며 이순신 장군 사당 충무사가 있는 곳이다.
왼쪽에 오성산이 솟아 있고, 중앙에 바다로 삐쳐나온 곳이 대덕읍 옹암리 장흥반도 곶(串)이며, 초암도와 원도 뒤에 완도군 약산면 조약도의 삼문산 능선이 구름에 가려 있다. 마량리 이쪽은 강진만, 장흥반도 뒤쪽은 득량만이라 할 수 있다.
왼쪽의 해안길이 이어지지 않아 남파랑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신마삼거리 방향으로 이어진다.
신마항은 신마량항을 줄인 말인데, 숙마는 무슨 뜻일까? 마량(馬良)은 조선시대에 제주 말을 한양으로 이송하는 대표적인 해상 관문으로 육지에 도착한 말들을 마량에서 일정 기간 육지 적응을 시켜 보냈던 곳이라 한다. 마량에는 숙마(宿馬)마을, 신마(新馬)마을, 원마(元馬)마을 등이 있으며, 숙마(宿馬)마을은 말이 잠자던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것이라 한다.
신마길 신마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삼마로로 올라간다.
삼마로 길 옆 풀숲에 말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마량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말이라면 더 관심을 두어야 할 듯.
고금대교로 이어지는 고금로가 위로 달린다. 고금교 아래를 통과하여 마량항 방향으로 이어간다.
마량방조제에 의해 간척된 간척농토가 펼쳐진 모습이 보인다.
왼쪽 마량항 방향으로 이어간다.
삼마로를 따라 내려간다. 아래에서 도로명이 미항로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이순신 장군이 최후의 전투 노량해전을 위해 출정한 곳이 고금도, 그래서 충무공의 시신을 아산으로 운구할 때 고금도에서 잠시 가매장하였다가 아산으로 운구한다. 해안길을 조성하여 고금대교 아래와 마량항으로 이어지면 좋을 듯싶다.
미항로를 따라 마량항으로 향한다. 미항로 주변이 너무 지저분하다. 마량면에서 대대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작사·곡/정의송, 편곡/남기연, 노래/이수진
백련사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길위에 떨어진 동백 꽃잎은 외로움의 눈물이었나
사랑을 맹세하며 함께 걷던 이 길에/ 무심한 산새 소리만/ 아 아 아 님은 떠나고 동백꽃만 붉게 피었네
둘이서 함께걷던 가우도 출렁다리/ 저 멀리 고금대교 불빛들은 그리움의 눈물이었나
영원을 다짐했던 까막섬의 숲길에/ 애닯은 파도 소리만/ 아 아 아 돌아와 주오 내 사랑 강진 강진애
후렴)사랑을 맹세하며 함께걷던 이 길에/ 무심한 산새 소리만/ 아 아 아 돌아와주오 내사랑 강진 강진애
四野平無下牧駒 사방 평평한 들에 놓아 기르는 망아지 / 鬃如飛蝶臆雙鳧 갈기는 나비 날 듯 가슴은 쌍오리인 듯
毛皆班駁文文帍 털은 다 얼룩얼룩 무늬는 호랑이 같고 / 才莫雌雄箇箇烏 재능은 또 어슷비슷 저마다 오추마일세
歸來漠塞思豺狼 놓아주면 한나라 변방 시랑성을 생각하고 / 放自周山向䤋狐 돌아오면 주산의 누런 여우를 묻는다
萬隊裁成雲錦色 늘어선 대오는 마치 구름 비단 끊어 펼친 듯 / 經綸渠亦攷於蛛 거느리는 우두머리는 거미보다 교묘한 재주로다
작품 내용
청정자연, 아름다운 고장 마량 땅에 처음 발을 디딘 제주마를 마량의 유래와 역사성을 바탕으로 하여 정체성과 상징성을 나타낼 수 있는 말의 역동적·형태적 요소를 추출하여 조형물 디자인에 접목
상징
파도 : 마량 해안의 파도, 마량 주민들의 삶의 터전, 조선시대 해상 교통의 관문
태양 : 마량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시민들의 염원, 마량 주민들이 더불어 행복하고 밝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굳은 의지
조랑말 : 강인한 체질과 인내심을 가진 말, 보배. 마량 주민들의 근면성과 진취적인 모습
유래
마량(馬良)은 조선시대에 국가에 바쳐지던 제주말이 한양으로 이동하는 대표적인 해상 관문으로 육지에 도착한 말들은 마량에서 육지 적응 기간을 보냈다. 현대에는 말을 매개로 하여 제주도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량(馬良/馬梁량)은 말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마량항 하방파제 입구에 있다.
입구 오른쪽에 남파랑길 81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 뒤에 주작산에서 덕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까막섬 왼쪽 뒤로 해남의 두륜산이 구름에 덮여 있다.
왼쪽 뒤에 완도, 오른쪽 까막섬 뒤로 해남의 두륜산이 가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