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주부백일장 가작 / 최영희
아름다운 삶
"어! 나 아파!"
"어디가 아픈데?"
작은딸과 영감님이 놀란 듯이 묻는다.
"머리도 무겁고 배도 아픈 것 같아!"
작은딸이 머리를 짚어보며
"엄마 아무래도 꾀병 같은걸!" 한다.
옆에 앉아있던 영감님은 박장대소하며 당신 아무리해도 오늘 백일장에는 나가야겠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겠는걸...
내 나이 60세하고도 몇 해가 지났다. 연필과 책을 놓은지도 수 십년. 그래도 가슴 안에 꼬깃꼬깃 감춰져있던 소녀적 감상이 순간 순간 나를 설레게 한다. 그런 감정을 눈치챈 영감님과 아이들이 무슨 게릴라전이라도 벌리듯이 똘똘 뭉쳐 나를 등 밀이한다.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하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큰딸은 이른 아침부터 도시락준비와 필기도구를 챙겨주며 덩치 큰 코 큰 사위까지 합세해서 엄마가 아프다니까 한 수 더 떠서 "마미! 침이라도 맞으시죠! (큰 덩치에 침이라면 절레절레 하면서) " 하며 서로들 눈을 찡긋한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온 가족이 응원을 보내는 일이 내 나이 두께의 보상이라도 되는 걸까? 결혼과 함께 내 삶은 없었던 것처럼 온통 가슴저리고, 외롭고 슬프기까지 했던 지난 일들.
난 남편을 많이도 미워했고, 원망했고, 너무도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날이 많았었던 것 같다. 맏이라는 이름 하에 온갖 수모와 책임과 질타가 정말 괴로웠고 바보처럼 맏이라는 이름에 순명하는 남편과 헤어지겠다고 곱씹기도 여러 번.. 지금 내 눈에 백내장이라는 것이 생겨 희뿌연 안개처럼 시야가 맑지 않은 것처럼 가물가물 해져 가는 과거 일들은 멀어만 가고, 아침이면 금마(그랜마) 금파(그랜파)를 외쳐대는 손녀와, 2층이 쩡쩡 울리도록 블랙퍼스트레리!를 외쳐대는 사위와, 씁쓰레한 커피와 버석이는 토스트지만 우리의 아침은 밝고 행복하기만 하다. 순간순간 아이들로해서 서운함이 있기도 하지만 또 한순간 아이들로 해서 감격하고 감동하는 이 기쁨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위해 인내하고 양보하며 우리가정의 행복 지켜 가려한다. 무뚝뚝으로 악명(?)높은 경상도 할아버지도 귀여운 손녀 앞에서는 위엄도 권위도 훌훌 벗어버리신다. 과거의 잘못(?)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내가 하려는 일, 하고 싶어하는 일에 전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우리 영감님과, 두 딸의 극진한 부모사랑과,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지나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살게 된 것과 성실하고 가정에 충실한 우리 사위와 건강하고 총명하게 잘 자라주는 우리 손녀와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한 일을 찾아내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 감사한 것이 행복한 삶을 누리며 가꾸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첫댓글 축하드려요. 아름다운 글이네요. 그리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