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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茶食 좀 주소!
차를 좋아하니 만나는 사람들도 역시 차를 좋아해서 가는 곳마다 찻자리가 벌어진다. 일정에 쫓겨 변변한 식사도 못하고 지친 몸으로 찾아든 객은 곧바로 다실로 안내된다. 은은한 다향이 코끝으로 전해지니 온몸의 세포가 일시에 살아나기 시작한다. 찻상 앞에 앉으니 어떤 차를 마시게 될지, 기대감으로 조바심이 일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이루어질 아름다운 사귐을 생각하며 미리 즐거워한다. 이윽고 정성껏 우려진 한 잔의 차가 앞에 놓인다. 그런데 차 이외에는 그 어떤 먹을 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뿔싸! 뭐라도 좀 먹고 올걸.
1. 다식이란 무엇인가?
어떤 경우에도 찻자리를 마다하는 법이 없고 잘 만들어진 차라면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마실 수 있지만 시장기를 느끼는 상황에서 허기진 뱃속에 차를 부어넣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 술안주로나 어울릴법한 견과류나 어린아이 간식거리정도의 과자부스러기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를 다식이라 할 수는 없다. 공식적인 다회에 참석하면 다식이라고 불리는 여러 가지 음식을 접할 수 있지만 다식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이 많다. 차와 어울릴만한 것이 간혹 눈에 띄기도 하지만 맛이 전혀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방앗간이 있는 찻집 다미재’를 운영하는 전통요리연구가 장향진 씨는 본지(本紙)에 ‘차와 다식’을 연재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느 해인가 화창한 봄날 고궁에서 열렸던, 차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행사에서 보았던 다식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듯해 옵니다. 육포 대추편포 대구포 등으로 채워진 구절판은 찻잔을 술잔으로 바꾸었으면 어울리겠다 싶었고 샌드위치 카나페 쿠키 등 홍차에나 어울릴법한 음식들도 있었습니다. 고물이 떨어질까 손으로 받치고 재빨리 입속에 우겨넣어야 하는 시루떡, 기름투성이에 시럽이 뚝뚝 떨어져서 먹는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화전, 이에 들러붙은 검정깨를 보며 치미는 웃음을 삼키게 만드는 흑임자강정, 색감은 좋은데 신맛 때문에 도무지 차 맛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과편........ 다식은 차와 어울리고 외형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물론 예법을 방해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되어야 합니다.” (본지 2005. 4 『행사용 다식』)
차 생활에 있어서 다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차를 마실 때 다식을 함께 먹으면 위를 보호할 수 있고 영양이 공급되어 차로 인한 대사기능(代謝機能) 활성화에 따른 효능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또한 다식은 차의 맛과 향을 즐기는데 도움을 주며 장시간에 걸쳐 많은 양의 차를 마실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품격 있는 다식은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정성을 표하는 최고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차 문화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다식은 의복이나 다구 등 다른 것에 비해 너무 많이 소외되어 왔다. 대학교마다 차 관련 학과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식은 거의 발전이 없다. 얼마 전 오랜만에 다녀온 비교적 큰 규모의 다회에서 접한 다식도 별반 달라진 것 없었다. 화과자. 송편, 쿠키 등 시제품이 많이 보였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다식은 눈에 거슬릴 정도로 색상이 진한 설기떡이었다. 가끔은 차문화행사장 한편에 전시된 다식을 볼 수 있지만 눈길을 끌만한 것은 거의 없다. 학생들이 담당교수의 지도를 받아서 만들었다는 다식 중에는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은 수준을 드러내는 것도 있어서 보는 이의 얼굴을 뜨듯하게 한다. 이처럼 부끄러운 현실의 이면에는 예법에 치우쳐서 음차(飮茶)라는 본질을 잃어버린 우리의 차 문화가 있다. 그리고 본질을 잃어버린 다인들이 다식을 고작 다례를 행하는데 필요한 소품 정도로 취급해 왔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연구 자료도 부족하기 이를 데 없어서 고작해야 옛 기록을 간략하게 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빈약한 자료에도 불구하고 다식의 역사는 분명하다.『다식에 대한 오래된 기록으로는 고려 말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이색(1328-96)이 읊은 ‘종덕 부추가 팔관 개복과 다식을 보내다.’(種德副樞送八關改服茶食)라는 시가 있는데 그 내용 중에 ‘잘게 씹으니 단맛이 이와 혀에서 감도네.’(細嚼微甘生齒舌) 라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후대의 기록으로는 이익의 성호사설에 “제사의 예전에는 다식이 있다. 쌀가루를 꿀에 개어서 나무통 속에 넣고 둥근 떡을 빚는데 사람들은 그 이름과 뜻을 알지 못한다.”고 했고 정약용의 아언각비에 “인단(印團)을 속어로 다식이라 일컫는다. 마른 밤, 깨, 솔꽃가루를 내어 꿀에 개어 목함(木陷)에 넣고 떡을 빚는데 꽃잎, 물고기, 나비 모양으로 박아낸다.”고 했다. 또한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베푼 진찬을 행한 기록인 진찬의궤에 녹말다식, 흑임자다식 등의 기록이 있고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 빙어각 이씨의 규합총서,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도 다식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김영배. 「다도학」)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무관심 속에서도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다식을 연구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랜 차 생활의 경험과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 숙달되고 섬세한 기술을 두루 갖춘 장향진 씨는 그 일에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다식이란 재료를 가루 내어 꿀로 반죽하여 다식판으로 찍어 낸 과자’를 말하는데 그 종류에는 콩다식 흑임자다식 송화다식 오미자다식 녹말다식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 있어서 다식이란 차와 잘 어울려서 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모든 음식을 말합니다. 옛날 궁중에서는 철따라 나오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떡, 유과, 정과, 다식 등 차와 잘 어울리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미각을 돋우고 몸을 이롭게 했습니다. 다식은 그 재료의 맛과 향이 좋으면서도 차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맛과 향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고 몸에 이로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차가 지닌 독특한 맛 즉 떫고 쓴 맛과 조화를 이루어 차 맛을 더욱 좋게 할 뿐 아니라 영양을 고려한 간식으로서의 기능도 갖추어야 합니다. 씹을 때 소리가 요란하게 나거나 먹을 때 가루가 많이 떨어지거나 즙이 흘러나오는 것들 은 다식으로 적합지 않습니다. 너무 딱딱해서도 안 되며 자극적인 맛이나 향이 있어도 안 됩니다. 다식은 부드럽고 적당히 단 맛이 있으며 재료가 가진 천연의 맛과 향이 은은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모양과 색이 잘 어울리고 보기 좋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본지 2005. 2 『녹차와 어울리는 다식』)
2. 다식의 필요성
동의대 식품영양학과 최성희 교수(한국차학회 부회장)는 "공복에 녹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속이 쓰리고 소화를 방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한두 잔은 괜찮다. 하지만 그 이상 마시면 산성물질인 녹차의 '타닌'성분이 빈 위장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위궤양 같은 위장병이 있는 사람은 타닌의 위 수축작용이 부담을 줄 수 있다.(조선일보 2005. 7. 19) 찻잎은 소화를 돕고 지방을 제거하는 효능을 갖고 있다.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병에 걸렸거나 위산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환자들이 차를 마시면 좋지 않다. 정상적인 상태의 위 안에는 인산효소라는 물질이 있어 위벽세포에서 위산을 분비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러나 찻잎 중의 디오필린은 인산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 그것이 억제되면 위벽세포에서는 다량의 위산을 분비하게 되는 것이다. 위산이 많아지면 궤양병이 치료되는데 영향을 주며 병이 더 악화되고 통증이 생긴다. 그러므로 궤양이 있는 사람들은 연한 차를 마셔야 한다. 차에 우유나 설탕을 넣으면 위산분비를 저하시키는 역할을 한다.(위준문 외 『차치료처방』)
이상의 견해에 의하면 공복에 차를 마시는 것은 삼가야 한다. 위가 비면 시장기를 느낀다. 따라서 시장기가 돌 때는 반드시 다식을 함께 먹어서 위를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다식은 영양 공급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다. 법제(法製)된 차를 마시면 기가 하강하여 단전에 모이고 단전에 모인 기가 몸 전체로 운행되면서 혈(血)의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진다. 이렇게 되면 머리와 눈이 맑아지고, 몸이 따듯해지고, 체내의 독소나 독기가 배출되고, 온몸의 구석까지 영양이 공급되면서 피로가 풀리고 심신이 편안해 진다. 이 같은 대사(代謝) 활동에 있어서 간의 역할은 중요하다. 간은 혈액이나 에너지원을 저장 공급하고 각종 독성 물질을 변화시켜 쉽게 배설되는 물질로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의 효능으로 인하여 기혈의 순환이 원활해지고 간의 활발한 활동이 요구되면 당연히 필요해 지는 것이 에너지요 영양소이다. 그런데 공복에 차를 마시게 되면 필요한 에너지원의 신속한 조달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대사 활동의 균형이 깨지고 심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법제되지 않은 차를 마실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 다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다식의 재료는 주로 곡물가루와 꿀이었다. 그렇다면 단백질이나 지방이 다량으로 함유된 육류를 사용하지 않고 왜 하필 곡물가루와 꿀을 사용했을까? 그 해답은 탄수화물이라는 영양소의 특수성에 있다. 꿀에는 단당류 탄수화물인 포도당과 과당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가장 신속하게 흡수되어 사용이 가능한 에너지원이다. 또한 곡물가루에 들어 있는 다당류 탄수화물은 다른 영양소에 비해 빠르게 분해되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준다. 따라서 전통적인 다식은 차의 효능으로 인한 대사활동을 신속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지원해줌으로써 생리활성을 돕는데 가장 효과적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꿀은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기를 도우며 비위를 편안하게 하며 귀와 눈을 밝게 한다.’고 했고 쌀을 비롯한 대다수의 곡물은 ‘오장을 고루 보한다.’고 하여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공복에 차를 마시면 차의 성질이 폐에 들어가 비위(脾胃)를 차게 하므로 '승냥이를 집안에 몰아온 격이다.” 혹은 “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공심차(空心茶)를 마시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이는 웬만큼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에는 표현이 너무나 으스스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매우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 건강을 위해서라도 다식은 매우 중요하다.
다식은 찻자리의 분위기를 화목하게 만든다. 단맛이 있는 다식은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을 부드럽게 해주고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어쩐지 불편하게 생각되는 사람과 찻자리를 함께해야할 때는 정성껏 만든 달콤한 맛의 다식을 내놓으면 좋다. 상대방은 먼저 그 모양과 색감에 배어 있는 정성에 감동할 것이요 다음으로는 입안에서 감도는 단맛으로 인해 그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질 것이다.
다식은 차의 맛과 향을 더욱 좋게 한다. 아니 좋게 한다기보다 더욱 잘 느끼게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초탕을 마시고 맛과 향을 충분히 음미한 후 다식을 먹으면 입 안에 남아 있는 쓴 맛이나 떫은맛이 중화되고 미각과 후각이 재탕을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탕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차를 마시는 목적이 여유와 멋 그리고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함이라면 다식은 꼭 필요하다.
빈속에 차를 마셔야하는 위기상황을 고려해서 언제부터인가 길을 나설 때는 선물을 겸해서 다식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준비해 간 다식은 애초의 목적을 뛰어넘어서 찻자리의 품격을 높이고 흥취를 돋우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 찻상 위에 놓인 약간의 다식은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옛날 사대부가의 다과상이 부럽지 않게 해주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고 즐겁게 만들었다. 적은 양의 다식이 찻자리의 분위기에 이토록 영향을 끼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정성껏 만든 다식은, 검덕(儉德)을 실천하는 다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豪奢)다.
3. 다식의 재료와 종류
다식의 재료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은 재료의 성질이다. 한의서나 다서(茶書)가 전하는 차의 성질은 대체로 '고감미한(苦甘微寒)' 즉 ‘차는 그 맛이 쓰고 단맛이 있으며 성질은 조금 차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식은 평하거나 따듯한 성질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쌀, 옥수수, 고구마, 완두, 흑두, 팥, 황두, 흑임자, 땅콩, 무화과, 꿀, 호박씨, 수수, 찹쌀, 호박, 밤, 대추, 호도, 잣 등이다.
다식으로 대표적인 것은 ‘쌀다식’이다. 쌀을 빻아 찌고 말려서 이를 다시 빻아 만든 가루를 꿀로 반죽하여 여러 가지 모양의 다식판에 박아내는 쌀다식은 누구나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다. 쌀다식은 입안에서 쉽게 부서지고 침에 녹아 부드럽게 넘어가 위를 보호하고 신속하게 에너지로 사용되어 차로 인한 대사활동을 효과적으로 돕는다. 쌀가루에 오미자, 머루, 딸기, 치자, 녹차가루, 홍삼가루 등을 넣어서 다양한 색향미(色香味)를 더할 수 있다. 또한 참깨, 흑임자, 밤, 콩, 팥 등을 이용하여 같은 방식으로 다식을 만들 수 있다.
각종 견과류로 만든 다식은 곡물로 만든 다식과 더불어 영양의 균형을 맞추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여 장시간 차를 마셔도 몸에 무리가 없도록 해준다. 호두, 잣, 땅콩 등의 견과류는 양질의 단백질과 지질, 비타민B1, B2를 다량 함유하여 영양이 풍부하고 특히 지질을 구성하는 불포화지방산은 성인병 예방과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비타민 B 군은 피로예방, 대사촉진, 면역력강화, 신경안정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견과류도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선도(鮮度)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한다는 점이다. 산패된 견과류를 먹으면 복통, 소화불량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더욱이 오래된 땅콩에는 곰팡이에 의해 ‘아플라톡신’이 발생하는데 이는 강력한 발암물질이다. 근래 들어 대량으로 수입되어 가격이 저렴해지고 계절에 관계없이 구입할 수 있어서 찻자리마다 흔히 등장하는 것이 각종 견과류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주먹씩 접시에 담겨진 견과류 중에 산패된 것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어서 먹기가 매우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견과류가 지닌 고소한 맛이 조금이라도 변했다면 절대로 먹지 말아야한다.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견과류일지라도 다식으로 사용할 때는 더욱 맛있고 보기 좋게 정성껏 조리하는 것이 좋다. 호두강정은 튀긴 후에 즙청(汁淸)하는 다른 강정과 달리 먼저 즙청하여 튀겨내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여름철에도 바삭거리는 질감을 즐길 수 있다. 달콤하고 고소한 호두강정은 견과류로 만드는 다식 중에 최고의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잣은 유밀과에 속하는 박산을 만들면 좋고 산패가 염려되는 땅콩은 강정보다는 조림을 만드는 것이 좋다.
양갱과 유사한 앙금편은 팥, 완두, 호박, 고구마, 밤 등 앙금을 낼 수 있는 모든 재료로 만들 수 있다. 각종 앙금에 색향미를 더하는 부재료를 넣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앙금편은 어떤 차와도 잘 어울리지만 가루차나 녹차에 좋다. 특히 쓴맛이 강한 차에 좋다. 혹자는 앙금편의 높은 당도를 걱정하지만 다식이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니 염려할 이유가 없고 또한 앙금을 굳히기 위해서 사용하는 한천이 열량이 없고 소화흡수를 지연시키는 작용을 하여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아주니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면 결코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약간의 포만감을 주는 다식으로는 고구마단자, 각색송편, 고치떡 등이 있다. 고구마를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고 으깨어 수분을 적절히 제거하여 앙금을 만든 후, 알사탕 모양으로 만든 찹쌀떡을 준비한 고구마앙금으로 싸서 동그랗게 빚어 표면에 잘게 부순 땅콩을 묻혀내면 고구마단자가 된다. 쌀가루에 단호박, 자색고구마, 쑥, 흑임자 등을 넣어 각각 색을 내고 쪄서 반죽한 다음 같은 재료로 만든 소를 넣어서 다양한 모양으로 빚어내면 색향미가 훌륭한 송편이 된다. 고치떡은 검은콩을 조려서 부재료로 사용하는데 치자, 백년초, 뽕잎으로 색을 내면 담백한 맛과 더불어 그 은은한 색상이 찻자리의 운치를 더한다.
찻자리가 길어지게 되면 끼니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끼니를 해결하려면 누군가 식사를 준비하든지 불러먹든지 아니면 나가서 사먹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든지 찻자리 도중에 식사를 하게 되면 잠시 찻자리를 중단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찻자리의 흐름이 단절되어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이어가기 어렵다. 더욱이 식사 중에 반주(飯酒)라도 곁들이게 되면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되찾기 어렵다. 지인 중에는 찻자리의 전이나 중간에 식사를 해야 하는 다회를 기피하는데 그 이유가 반주 때문이다. 일단 음주를 하게 되면 찻자리의 분위기가 도무지 마땅치 않아진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문제를 고려해볼 때 찻자리가 길어질 경우에는 끼니를 대신할 수 있는 차 음식이 필요하다. 찻자리를 그대로 지속하면서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차 음식으로는 팔보반, 약식, 떡샐러드, 떡냉채, 부꾸미, 상화병 등을 들 수 있다. 팔보반은 달콤하게 지은 밥을 엎어놓은 사발의 형태로 만들고 그 위에 각종 견과류를 보기 좋게 올려놓은 것인데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수 있고 영양가도 그만이다. 떡샐러드는 다식판에 박아서 모양 낸 각색 절편에 사과, 배, 감, 오이 등을 썰어 넣고 잣소스를 뿌려서 먹는 음식이다. 잣소스는 각종 과일과 야채의 냉성과 신맛을 부드럽게 하면서도 그 상큼함을 잃지 않게 하여 장시간 이어지는 찻자리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고려가요(高麗歌謠) 쌍화점(雙花店)에 등장하는 상화병은 막걸리를 넣고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어 빚어서 쪄낸 지금의 찐빵과 유사한데 여름철 차 음식으로 제격이다.
4. 다식은 차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차 문화의 본질은 음차(飮茶)요 건강한 음차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다식이다. 또한 차 문화는 전통문화다. 따라서 전통차, 전통복식(服飾), 전통예절, 전통다구와 함께 전통다식은 차 문화를 구성하는 한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다식은 그저 소품처럼 여겨져 왔다.
차는 예(禮)를 중요시 한다. 예는 정성(精誠)이다. 정성은 다례 전반에 온전히 배어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의 다례는 눈에 잘 띄는 부분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화려한 복장과 값비싼 다구와 까다로운 예법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쏟아 붓는데 비하여 정작 차 문화의 본질인 음차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음차와 더불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다식 또한 찻자리를 장식하는 다화만도 못하게 취급되어 왔다. 다식을 소홀히 여기는 증거는 분명하다. 그것은 차 생활을 수십 년씩 했다는 소위 선생이라 불리는 사람들 대부분이 색향미와 기능을 갖춘 품격 있는 다식을 만드는 일에 매우 서투르다는 사실이다.
다례는 차를 마실 때 비로소 소용이 있는 것이요 누군가를 위해 차를 대접해야할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또한 다례는 상대를 배려하며 정성껏 행해져야 하는데 그렇다면 좋은 차와 다식은 상대의 건강을 위해서 가장 먼저 배려해야할 요소이다. 더구나 다식은 차와 달리 저렴한 비용으로도 정성만 들이면 최고의 예를 표할 수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다식은 보관이 용이하고 휴대가 간편하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배움에 관심을 갖는다면 준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따라서 변명의 여지는 없다. 진정한 다인이라면 다식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인들이 다식에 관심을 쏟아야할 이유는 충분하고 명백하다. 첫째는 건강한 음차생활과 차 문화의 전통 계승 발전을 위함이요, 둘째는 다식이 간식이나 후식 혹은 선물용으로 좋다는 것을 널리 알려서 잊혀져가는 우리의 식문화를 되살리기 위함이요, 셋째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마저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드믄 현실에서 다식은 최고의 건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식의 재료로 적합한 식품을 찾아내고 다양한 조리법을 개발하는 일에 진력하여, 우리의 멋과 맛이 담긴 다양한 다식을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월간 Tea & People 2006. 12 기고)
첫댓글 다식이 그저 우리 한과의 이름으로 만 알았는데 차와 함께 먹는 음식이란것도 새로움이네요! 게다가 다양한 다식이 있다는 점도 새로운 공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