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속낙지와 어리굴젓 섬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들를 곳이 있다. 김종희ㆍ이은자 씨 부부가 넉넉한 충청도 인심으로 꾸려가는 대산 읍내의 웅도식당(041-663-8497)이다. 첫 번째 물길이 열리는 아침에 문을 열고, 두 번째 물길이 야트막한 시멘트 길을 덮는 저녁에 문을 닫는 웅도식당은 ‘박속낙지’가 일미다. 익을수록 두툼해지고 보랏빛 국물을 내는 신선한 낙지와 주인 부부가 직접 재배한 박을 넣어 맑게 끓여낸 박속낙지의 맛이 불쑥불쑥 그리워질 때마다 다시 들러야지 했었는데, 꼬박 일년이 걸린 셈이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닮은 주인 부부의 손길이 상위를 오갈 때마다 갖가지 반찬이 올려진다. 그중 가장 입맛을 당기는 것은 바지락을 넣은 시래기무침과 햇볕에 말린 고추ㆍ밤ㆍ쪽파를 조물조물 버무린 어리굴젓이다. 어리굴젓은 특히 소금에 절이지 않아 심심한데, 그 때문에 주인 부부는 언제나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해야 하지만, 한번도 싫은 기색 없이 달라는 대로 준다. 그때쯤이면 다른 반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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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또 한번 인심이 올려지고, 드디어 보랏빛이 감도는 박속낙지가 상 중앙에 넉넉한 품새로 앉는다. 섬에서 직접 캔 바지락ㆍ청양고추ㆍ감자ㆍ양파 등과 같은 천연재료와 박의 일종이며 이뇨 및 해독에 좋은 한방 약재 ‘남과’가 주재료인 박속낙지의 맛은 청청하고 시원하다. 찌글텅한 냄비 안에 담긴 박속낙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비우고 나니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든다. 잠시 벽에 기대어 노곤해진 몸을 쉬는 동안 주인 부부는 마지막 상을 치우며 서둘러 식당을 정리한다. 이제 곧 열렸던 물길이 다시 잠기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오며 섬에서 살아오고 있는 주인부부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 지기로 한다. 섬에는 마땅히 민박할 곳이 없는 까닭이다. 해서 섬에서 하룻밤 지내고 싶을 때는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섬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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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위로 수십 대의 소달구지 행렬이 이어지는 섬 섬의 아침은 소달구지 행렬과 함께 시작된다. 굴뚝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밥 짓는 연기가 점점이 가는 가닥으로 바뀔 무렵, 집집마다 주인과 한나절 먹을 여물을 실은 소달구지들이 논과 밭이 도란도란 어우러진 길을 따라 마을공동어장으로 향한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소달구지 행렬은 참으로 평화롭다. 저벅저벅 걸으며 나른한 하품을 하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 위해 잠시 서기도 하고, 가끔씩 착하기 이를 데 없는 큰 눈으로 주인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그 모습이 객에게는 진풍경일지 몰라도 섬사람들에게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마을공동어장에 도착한 소들은 신통하게도 저희들끼리 알아서 갯벌로 들어선다. 수백 번, 수천 번 오가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3km쯤 걸었을까. 갯벌 위로 말뚝들이 박아지고, 소들은 한나절 그 자리에서 주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수건을 덧댄 모자를 눌러 써 햇볕을 가리고, 비닐 옷과 장화로 무장을 한 주인들은 그 한나절 동안 빠른 손놀림으로 바지락을 캔다. 섬이 너무 좋아 섬으로 시집을 왔다는 아주머니, 서울대학교 다니는 손주 자랑을 하는 할아버지, 고작 대산읍이 가장 먼 외출 길인 할머니… 외지 사람들에게 경계없이 마음을 터놓은 섬사람들은 평생을 갯벌에서 캐낸 바지락으로 자식들 대학 공부시키고, 기와 지붕도 얹었다. 그 덕에 손목이 시리고, 밤마다 아픈 허리 때문에 시달려야 하지만 섬사람들에게 섬은 고마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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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가까워지자 그물 바구니에 바지락이 가득가득 채워진다. 눈짐작으로 하루 성과량인 60kg이 된다 싶으면 섬사람들은 갯벌을 되돌아 나온다. 이때 소달구지 위에는 바지락만 실려있다. 혹여 소가 무게에 눌려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배려에서다. 다시 소달구지 행렬을 이뤄 마을공동어장에 이르면 설치된 계량소에서 무게를 달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다. 간혹 무게가 덜 나가는 이에게는 조금 넉넉히 캐낸 오래된 이웃이 자기 것을 보태주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섬사람들은 갯벌을 바라보며 남은 바지락으로 술안주를 삼는다. 그 맛을 어떻게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는지….
섬사람들과 뽀얗게 국물이 우러난 바지락탕을 먹으며 나는 섬의 느긋함과 더딤이 소중함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행복의 가치를 달리 해본다. 자연과 공생할 줄 아는 지혜, 그것은 곧 은혜의 섭리를 지켜 가는 것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이 섬을 가당찮게도 좋아하기로 한다. 아직까지 세상의 화려한 소리에 어떤 일렁임도 보이지 않는 바다와 늘 한 박자 늦게 반응하며 살아가도 걱정 없는 섬사람들과 아침이면 몽환적 풍경을 이루는 소달구지의 행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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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도가는 길 1.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송학IC로 나와 38번 국도를 탄다. 성문방조제와 대호방조제를 지나 29번 국도를 따라 대산읍에 이른다. 이곳에서 오지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3km 달리면‘웅도분교’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3km 남짓 산길을 달리면 몽환의 섬 웅도와 마주한다. 이 길이 가장 빠르고 쉽다. 2.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해미IC로 나와 해미읍성을 지나 서산방면 29번를 타고 대산읍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좌회전을 해야 오지리 방면과 만날 수 있다. 이 길에는 개심사, 서산 마애삼존불, 삼화목장, 덕산온천, 가야산, 수덕사 등의 명승지가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시간이 여유롭다면 이 길을 택하는 것도 좋다. 3.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대산읍에서 웅도까지 하루 세 차례(6, 15, 18시) 시내버스가 운행되므로 시간을 잘 맞춰 도착하도록 한다.
* 웅도 여행정보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있는 형태와 같다는 웅도에 소달구지 행렬이 시작된 것은 30여년 전이다. 갯벌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동네어른들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는데, 웅도의 생산물이 유달리 맛좋기로 유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귀한 삶의 방식이 있는 웅도는 이른 아침에 한 번, 느지막한 오후에 한 번 세상과의 만남을 꾀한다. 규모는 작지만 여기저기 둘러볼 곳이 많으므로 아침 첫 물이 열릴 때 들어가서 저녁나절 나오는 것이 적당하다.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웅도 내에 민박집이라고는 이장댁(문의 : 041-663-8903) 단 한 곳뿐이어서 잠을 청하려면 대산읍이나 벌천포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식당이나 구멍가게가 없으므로 간단한 비상식량을 미리 준비해 가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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