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래龍來님 가시면
미나리강 건너 굽은 꽃대궁
그늘 디루고 살까
얼추얼추 춤도 못 추고
꽃대궁에 앉은
눈 먼 영혼靈魂
밤이면
무덤 속 드나들며 곰방대 털고
다 못 산 한恨
무덤가에
그늘 디루고 살까
옷을 입어도 오소소 추워오느니
오류동십오번지五柳洞十五番地
낮은 바지울
빗소리 디루고 살까.
-한기팔, ‘미나리江 건너’ 전문
눈물의 시인 박용래(1925~1980)가 타계하자 쓴 시이다. 시인 생전에 몇 번 곡진한 편지가 오가기도 했다. 1978년 봄 한기팔 시인이 두 번째 그를 대전에서 만났을 때, 그는 두툼한 오버코트에 털실로 짠 빵모자와 농구화 신발을 신고 갓 새장에서 빠져나온 새처럼 나타나, 다짜고짜 어느 허름한 술집으로 이끌었다. 그리곤 술과 눈물의 범벅. 용래와 기팔의 한 글자씩 따서 ‘용팔이 형제’가 되었다.
‘... 한그루 無花果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우리 집 뜰, 더구나 에덴의 동산도 아닌데 능금 빛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뜻밖에 받은 장거리 전화. 仁兄의 음성. 당황할 수밖에요. 그날 밤은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 가만히 눈을 감을 수밖에. 西歸浦는 먼 곳, 더 좀 가까운 곳이라면 훌훌 털고 날아갔으련만, 먼 곳이라서 兄은 손짓만 하고. 부디 안녕. 1978년 殘暑 朴龍來’
나는 한기팔 시인을 통해 박목월과 박용래를 더 가까이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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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한기팔 시인을 통해 박용래와 더 가까이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