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술희(朴述熙)는 혜성군(槥城郡 :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 사람이며, 아버지는 대승(大丞) 박득의(朴得宜)이다. 박술희는 천성이 용감하였으며, 육식을 좋아하여 두꺼비나 땅강아지나 개미라도 모두 먹었다.
나이 열여덟에 궁예의 호위 군사가 되었으나, 뒤에 태조를 섬기면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대광(大匡)이 되었다.
혜종이 태어나 일곱 살이 되었을 때 태조가 그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그의 어머니 오씨(吳氏)가 미천한 가문출신이어서 불가능할까 우려한 나머지, 오래된 상자에 자황포(柘黃袍)를 담아서 오씨에게 내려주었다.
오씨가 옷을 박술희에게 보이자 박술희가 태조의 의도를 짐작하고서 혜종을 세워 정윤(正胤)으로 삼기를 주청하였으니, 정윤은 바로 태자이다.
태조가 죽음에 임박해 나라 일을 부탁하면서, “경은 태자를 옹립했으니 잘 보좌해 주시오.”라고 하니, 박술희는 한결같이 유언을 받들었다.
혜종의 병이 깊어지자 박술희는 왕규(王規)와 서로 반목한 나머지 군사 1백여 명을 친히 데리고 다녔다. 정종이 그가 반역의 뜻을 가졌다고 의심하여 갑곶(甲串 : 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으로 유배하니, 왕규가 왕의 명령이라고 사칭하여 그를 죽였다.
뒤에 시호를 엄의(嚴毅)라 하였으며, 태사(太師)·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추증하고 혜종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아들은 박정원(朴精元)이다.
첫댓글 열전에 기록된 인물 중 충의로운 삶의 표상이 되는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되는 인물에 한하여 이름을 진하고 색상을 넣어 표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