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반중’(反中) 정서가 강해진 것은 “한국인이 중국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위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존 우월감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중국 언론 보도가 나왔다. 국내 언론의 편향적인 중국 관련 보도와 국제 정세 변화에 따른 정치 문제 역시 우리 국민의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진 이유라는 주장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계일보
◆한국인의 ‘부정적’ 중국 인식 강화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21일 ‘한국인의 대중국 심리는 왜 변화했나’라는 제목의 심층기획 기사에서 “설문조사 결과 중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호감도가 낮아졌고, 특히 자칭 ‘진보 성향’의 한국 젊은 세대에서 반중 정서가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07년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조사 결과를 인용해 ‘중국이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응답이 2008년 14.6%에서 2022년 44%로 크게 뛰었다고 했다. 또 중앙유럽아시아연구센터(CEIAS)의 지난해 조사에서 한국인의 81%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 혹은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20∼30대의 ‘혐중’ 감정이 가장 강했으며, 경제적 여건이 좋은 한국인일수록 ‘혐중’ 정서가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잔더빈(詹德斌) 상하이대외무역대학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한국의 중국 관련 여론조사에서 일부 문제가 매우 도발적이고 편협하며 유도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다양한 조사 결과가 비슷한 것에 경각심을 가질 만하다”고 밝혔다.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심이 미세먼지로 인해 뿌옇게 보인다. 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미세먼지·사드 등 갈등 지속…혐오감 자랐다
환구시보는 한중 양국 국민간 발생하는 각종 개인적, 국가적 갈등은 대부분 특정 문제에 의해 발생하며, 이런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거나 장기간 해결되지 않으면 이해관계가 훼손된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와 중국의 식품 위생 문제 등을 예로 들었다. 신문은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2002년 초부터 중국의 황사·미세먼지 등이 한국의 대기질에 미치는 영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한국의 초·중등학교 교재에도 ‘한국은 중국의 환경오염 피해자’라는 내용이 실렸다”면서 “한국에서 이런 논리에 반박했다가는 오히려 언론의 지탄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일부 국내 언론이 반중 정서를 강화하는 보도를 한다고 지적했다. 환구시보는 “한국 일부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이 코로나19 관련해 중국을 오해할 수 있는 명칭을 붙였다”면서 “또 일부 한국 언론은 중국에 대해 ‘한국 기술을 훔치거나 지적재산권을 표절했다’는 딱지를 붙이거나 ‘중국인의 한국 내 집 마련으로 집값이 올랐다’고 비난하며 중국인의 한국 내 범죄를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한미군이 사드 발사대 훈련 사진과 함께 공개한 패트리엇 사진. 미 국방시각정보배포 시스템 제공© 제공: 세계일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과, 해상경계선, 한중 어업분쟁 등도 대중국 인식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 역시 한국인의 대중국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신문은 봤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이 취했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적으로는 미국,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존) 정책이 미·중 관계 악화로 흔들리면서 전략적 선택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중국 인식…양국의 힘의 변화 때문”
신문은 전문가를 인용해 “한국이 중국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까닭은 한국과 중국의 실력 차이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한중 수교 직전인 1991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중국 GDP의 86%였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파로 2020년 한국의 GDP 규모는 중국의 9분의 1 수준, 중국의 광둥성과 비슷해졌다”는 잔더빈 교수의 설명을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근대 이후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발전하며 높은 민족적 자부심과 우월감을 구축했는데, 이런 가운데 일부 한국인이 중국의 부상을 ‘도전’으로 받아들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계일보
신문은 “‘한류’가 한창이던 몇년 전 한국 학자들은 ‘한류 인기에 중국이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높아지고 중국 영화·드라마·게임·SNS 플랫폼이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 한국인들의 심리가 달라진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한국동아연구원이 최근 실시한 ‘중국을 왜 부정적으로 보는가’ 설문에서 응답자의 40%가 ‘중국이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언급하면서, 이를 “한국 사회가 여전히 중국을 내려다 보거나 폄하하는 단계이며, 중국을 떠오르는 강대국으로 보는 데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한 잔더빈 교수의 견해를 전했다. 잔더빈 교수는 “특히 민주화 이후 성장한 일부 젊은이들은 이른바 ‘제도적 우위’를 자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중 정서 확산 이유는 “문화·정치 갈등 때문”
그러나 반중 정서 확산은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사회현상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전 세계 1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 68%로 나타났다. 국가별 반중 정서는 미국 82%, 한국 80%로 나타났고, 일본, 호주, 스웨덴의 반중 감정도 각각 87%, 86%, 83%로 한국보다 높았다. 반중 정서의 원인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 군사적 확대, 자국 정치에 간섭, 경제적 경쟁 등이 꼽혔다. 중국 정부 시각을 대변하는 관영 신문이 유독 한국만 두고 “달라진 중국의 경제적 문화적 위상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데 대해 국내 중국 전문가들은 최근 양국 관계에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반중 정서 확산 주요 원인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분쟁 이후 심화한 정치적, 문화적 갈등과 시진핑 체제 이후 강화된 중화사상이 주변국에 반감을 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22년 2월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치마 저고리와 댕기 머리를 등 한복 복장을 한 공연자가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전통적으로 한국인이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한 것은 그간 홍콩 시위사태, 김치·한복 등을 둘러썬 문화갈등 등을 언론을 통해 간접 경험하면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반중친미를 강화하는 정부의 시그널도 최근 반중 정서를 더욱 높였다”고 덧붙였다.
임대근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교수는 “한중수교 후 중국과 교류한 경험이 많은 4050세대는 중국에 대한 감정이 크게 나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2030세대는 부정적인 감정이 강하다”면서 “2016년 사드 이후 한한령으로 빚어진 양국관계 갈등을 두 나라가 적극 해결하지 않고 방치했고, 그 사이 중국은 시진핑 체제에 진입하면서 사회통제 강화, 국가주의·애국주의 이념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국주의, 중화주의는 외부에서 봤을 땐 매우 자기중심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반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국 교류 늘리고 협력 강화해야”
한중의 상호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류 기회를 늘려야한다는 것이 양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임 교수는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좋지만 한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라며 “관광, 학술 교류 등 일반적인 인적교류는 물론 오피니언 리더들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조정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구시보도 한중 민간교류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한 방안을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제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계일보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은 신문에 “코로나19로 지난 3년간 양국 간 교류가 현저히 줄었고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언론과 인터넷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대면 대화 등을 통해 한국 청년들에게 양국 우호 강화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잔더빈 교수도 “한·중 교류가 늘면 한국 청년들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 것”이라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업그레이드, 인공지능 바이오의약품 신에너지 신소재 분야 협력 강화, 공급망 안정, 제3자 시장 공동 개발 등 한중 정부 차원의 공동 난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이익 성장점 발굴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