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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말
본 글은 유동삼 시인(1925~2021) 돌아가신 지 2주기를 맞아 배인환 시인의 부탁으로 보내드린 추모 특집 원고입니다. 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와 순수 종합 문예지 《한국문학시대》 2021년 가을호 『고 유동삼 시인 추모 특집』에 실렸던 글입니다. 유동삼 시인을 추모하는 대전지역 문인 모임은 지난 7월 31일 창의문학관에서 있었습니다. 필자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고 추모 특집 원고만 보내드렸습니다. 추모의 글을 다시 읽으니 고인에 대한 존경과 문학혼, 그리고 ‘한글사랑’ 정신이 깊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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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삼 시인 추모 특집 자료(1)】
■ 윤승원 수필가 일간지 칼럼 ― ‘만년청춘’(유동삼 시인 이야기)
▲ 충청권 일간지 錦江日報 (2012년 7월 26일) / 윤승원의 세상風情
만년청춘(萬年靑春)
윤승원 논설위원
나이 든 사람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보일 때 ‘만년청춘’이라 한다. 이 시대 대표적인 ‘만년청춘’을 꼽으라고 한다면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인 송해 형(그는 고령의 호칭이 달갑지 않은 듯 ‘오빠’나 ‘형’으로 익살스럽게 불러주길 좋아하니 ‘형’이라고 칭한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27년생이니까 만 85세. 어렵고 힘든 시절이 왜 없었으랴. 비바람과 눈서리를 거뜬히 이기고 우람한 둥치로 나그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팔순 노인은 오늘도 전국을 누비며 웃음과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만년청춘’이 어디 연예인 ‘송해 형’뿐인가.
특유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최근에 TV 토크쇼에 나온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도 ‘송해 형’과 비슷한 연배인 1928년생(84세)이지만, 유창한 언변이나 밝은 안색을 보면 ‘만년청춘’ 대열의 선두그룹에 설 만하다.
그 연세에 유머 넘치는 유려한 말솜씨에다 하얗게 드러내 보이는 치아를 보면 신체 건강과 정신건강 모두를 누리는 ‘만년청춘’ 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만이 만년청춘인가? 아니다.
최근 금강일보 지면에는 충남 예산에 사는 99세 박기준 옹이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장면이 소개돼 화제가 됐다. 평생 접해본 적이 없는 PC 학과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하고, 장내 기능시험도 단 한 번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당당히 입증해 보인 것이다.
노년에 병고가 찾아와 힘들게 살아가는 어르신도 많지만,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누리면서 평소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즐기거나 해박한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만년청춘’도 많다.
충청지역 언론계의 거목으로 일선 기자들에게 존경받아 왔던 변평섭 씨가 뜻하지 않게 세종시 정무부시장에 취임하자 일부 걱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73세. 노인 축에 드는 연령을 문제 삼은 게 아니었다. 지역 사회에서 크게 추앙받는 원로 언론인이 ‘으뜸’이 아니라 ‘버금’의 뜻을 가진 ‘부(副)’자 직함이 가당찮은 일이냐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낮은 자세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데, 나이며 체통이 무슨 상관인가. 의욕적인 ‘만년청춘’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봉사정신’만큼은 박수받을 일이다.
며칠 전, 30년 전통의 ‘대전수필문학회 동인지’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올해엔 특별히 유동삼 원로회원이 미수(米壽·88세)를 맞아 특집을 마련했다. 시조 시인이자 한글 사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바쳐온 유동삼 선생의 자작시 낭송은 감동적이었다.
시조를 손수 프린트해다가 회원들에게 나눠 주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읊기 시작하는데, 흔히 들어보는 ‘시 낭송’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놀랍고도 의미 있는 ‘노랫가락’이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원로문인이지만 음정 박자도 전혀 어긋남이 없었다.
이 시조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할머니 말씀’이란 시조다. 어느 노래의 곡조에 맞춰 불러도 운율이 딱 들어맞을 만큼 부드럽고 인상적인 노랫말이었다. 원로문인은 동심으로 돌아가 이 시조를 여러 곡조에 맞춰 불렀다.
동기간 한 몸같이 아끼며 보살피며
준 것은 잊더라도 받은 은혜 잊지 말고
서로가 도와 가면서 한결같이 지내라
하루 종일 놀더라도 논 표는 아니 나고
도막 시간 책 읽으면 공부한 표 금방 난다
하물며 매일 힘쓰면 뛰어나게 되는 법
남의 것은 짚 검불도 어려운 것이란다
폐 안되게 살아가기 쉬운 일 아니란다
신세를 지는 것보다 보태주며 살아라
나 하고 싶은 일은 암만해도 표 안 나고
남 위해 하는 일은 작은 것도 표가 난다
남들을 이롭게 하면 나도 빛이 나는 법
- 유동삼 / ‘할머니 말씀’ 전문 -
노시인이 연세도 잊은 채, 힘차게 노래 부를 때마다 회원들도 모두 합창하듯 따라 불렀다. 축사(祝辭) 순서에서 내게도 마이크가 주어지기에 한 말씀드렸다.
“창작에는 정년이 없다더니, 시와 수필을 쓰시는 분들은 겉모습은 늙어가도 정신연령은 ‘만년청춘’입니다. 올해 미수를 맞으신 유동삼 선생님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여 ‘할머니 말씀’을 부르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감동입니다.”
그러고 보면 ‘만년청춘’이란 그냥 붙여주는 덕담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평소 몸과 마음을 고집스럽게 잘 관리해야 가능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나친 노욕(老慾)을 버려야 ‘만년 아름다운 청춘’이 될 수 있다. ■ 충청권 일간지 錦江日報 2012년 7월 26일 / 윤승원의 세상風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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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삼 시인 추모 특집 자료(2)】
【유동삼 시인 추모 에세이 - 《한국문학시대》 2021년 가을호】
반듯한 가르침 주고 가신 유동삼 시인을 추억하며
― 『할머니 말씀』을 노랫가락으로 만들어 부른 원로 시인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유동삼 시인(1925~2021)의 부음(訃音)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두 가지였다. <만년청춘(萬年靑春)>과 <할머니 말씀>.
<만년청춘>은 내가 그 어른을 주인공으로 쓴 일간지 칼럼 제목이고, <할머니 말씀>은 그 어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조 제목이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 고인의 사진과 프로필을 졸고 에세이에 넣으려고 찾아보았다. 오래된 자료지만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대전문학선집》에서 작품 분위기와 걸맞은 반듯한 사진을 찾았다. 젊은 시절 사진으로 보인다. (1995년 2월 20일 발행 《대전문학선집》 51쪽 시조시인 편에서)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일화가 많지만 지면 관계상 한 가지만 소개한다. 2012년 여름이었다. 대전수필문학회 연간 동인지 《수필예술》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유동삼 원로문인에게 축사를 부탁하자, 말씀 대신 노래를 불렀다.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 시인이었지만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시인은 <할머니 말씀>이란 자작 시에 노랫가락 형식으로 자작 곡을 붙여 구성지게 불렀다. 이 노래의 ‘버전’은 여러 가지 형태였다. 기존의 어느 곡조에 가사를 붙여 불러도 운율이 딱딱 들어맞았다.
동인지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유동삼 시인이 선창 하면 수필문학회원들도 함께 따라 불렀다. 흥겹고 재미있는 노랫말이었다. 분위기가 다소 엄숙하게 느껴지는 원로문인들끼리 손뼉을 치며 크게 합창하니, 웃음도 절로 나왔다.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시골 할머니처럼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자상하게 느껴지는 노랫말에서 풍기는 묘한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날 원로 시인의 정정한 모습과 신명 나게 부르는 흥겨운 노랫가락이 인상 깊어 칼럼을 썼다. 졸고 칼럼 <만년청춘> (2012) 한 대목이다.
[前略] 30년 전통의 ‘대전수필문학회 동인지’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올해엔 특별히 유동삼 원로회원이 미수(米壽·88세)를 맞아 특집을 마련했다. 시조 시인이자 한글 사랑에도 남다른 열정을 바쳐온 유동삼 선생의 자작시 낭송은 감동적이었다. 시조를 손수 프린트해다가 회원들에게 나눠 주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읊기 시작하는데, 흔히 들어보는 ‘시 낭송’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놀랍고도 의미 있는 ‘노랫가락’이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원로문인이지만 음정 박자도 전혀 어긋남이 없었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할머니 말씀’이란 시조다. 어느 노래의 곡조에 맞춰 불러도 운율이 딱 들어맞을 만큼 부드럽고 인상적인 노랫말이었다. 원로문인은 동심으로 돌아가 이 시조를 여러 곡조에 맞춰 불렀다. 동기간 한 몸같이 아끼며 보살피며 준 것은 잊더라도 받은 은혜 잊지 말고 서로가 도와 가면서 한결같이 지내라 하루 종일 놀더라도 논 표는 아니 나고 도막 시간 책 읽으면 공부한 표 금방 난다 하물며 매일 힘쓰면 뛰어나게 되는 법 남의 것은 짚 검불도 어려운 것이란다 폐 안되게 살아가기 쉬운 일 아니란다 신세를 지는 것보다 보태주며 살아라 나 하고 싶은 일은 암만해도 표 안 나고 남 위해 하는 일은 작은 것도 표가 난다 남들을 이롭게 하면 나도 빛이 나는 법 - 유동삼 / ‘할머니 말씀’ 전문 - 노시인이 연세도 잊은 채, 힘차게 노래 부를 때마다 회원들도 모두 합창하듯 따라 불렀다. 축사(祝辭)순서에서 내게도 마이크가 주어지기에 한 말씀 드렸다. “창작에는 정년이 없다더니, 시와 수필을 쓰시는 분들은 겉모습은 늙어가도 정신연령은 ‘만년청춘’입니다. 올해 미수를 맞으신 유동삼 선생님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여 ‘할머니 말씀’을 부르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감동입니다.” 그러고 보면 ‘만년청춘’이란 그냥 붙여주는 덕담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평소 몸과 마음을 고집스럽게 잘 관리해야 가능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나친 노욕(老慾)을 버려야 ‘만년 아름다운 청춘’이 될 수 있다. (2012년 7월 26일자 금강일보 ‘윤승원의 世上風情’ <만년청춘> 일부) |
일간지에 ‘만년청춘’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나가자 어느 잡지사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유동삼 원로 시인과 인터뷰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 시인이지만, 새로운 뉴스 가치를 찾는 기자에겐 나의 칼럼 한 대목이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신선했던 모양이다. 구순의 원로문인이 산처럼 쌓인 많고 많은 문학적 식견을 담은 축사 대신 자신의 시조에 곡조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은 수필 문단에서 두고두고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됐다.
교육자이자 시인, 수필가로서 주옥같은 많은 글을 남겼지만, 돌아가신 후에 세상 사람들이 고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로 뒷모습을 기억해 줄까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책장 깊숙이 스크랩북 속에 잠들어 있는 졸고 칼럼 <만년청춘>을 찾아낸 소이(所以)이다. 이 글을 추모의 정으로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면서 고인의 문학 세계와 인품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
교육자 시인의 반듯한 가르침을 담은 명품 옥고 <할머니 말씀>을 가족 채팅방에도 올려 공유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니, 시인은 저세상으로 떠난 게 아니었다. 영원히 우리 곁에 친근한 이미지로 우뚝 서 계신 ‘동화 같은 선생님’이란 생각이 든다. ■
2021년 8월 1일
고 유동삼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윤승원 記
--- 순수 문예지 《한국문학시대》 2021년 가을호 / 고 유동삼 시인 추모 특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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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삼 시인 추모 특집 자료(3)】
【윤승원 감상 소감 / 평론】
재미있고 맛있는 시를 읽는 즐거움
― 색 바랜 『서구문학』 ‘창간호’에서 발견한 반가운 문인들
― 숨어 있는 ‘보석’을 캐내는 기분으로 문학작품을 읽다
윤 승 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전 금강일보 논설위원
시가 어려워야 할 이유가 없다. 재미있고, 맛있고, 즐겁게 읽히는 시가 명시(名詩)다. 문단 경력 33년 필자가 읽은 시에 대한 소감이다. 좋은 시에 대한 나름의 정의이자 나누고 싶은 서평(書評)이다.
등잔 밑이 어두운가, 내 정보력이 부족한 탓인가. 전국 단위 또는 광역시 단위 문학단체는 잘 알고 작품으로도 참여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사는 ‘구(區) 단위 지역 문학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새삼 알았다.
누리소통망[SNS]에서 우연히 ‘서구문학회’ 행사 사진을 발견했다. 잘 알고 지내는 L 수필가가 이 문학모임에 신입회원으로 가입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서재를 뒤져보았다. 과거 내가 이 문학모임에 언제까지 참여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서구문학회’에서 펴낸 책이 두 권 발견됐다. 1995년 제1호(창간호)와 1996년 제2호. 책장에 보관된 두 권의 책을 살펴보니 나의 졸고 수필도 수록됐다.
▲ 책장에서 찾아낸 『서구문학』 창간호(1995년)
▲ 『서구문학』 창간호 차례 일부
그렇다면 나는 『서구문학』 창간호에 참여했던 ‘초창기 회원’이면서 어째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을까.
아마도 일선 치안현장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직 경찰관 시절에 여러 문학단체에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란 사실상 어려웠던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누가 뭐래도 대전광역시 ‘서구 주민’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서구 탄방동 셋방살이를 시작으로 용문동, 변동, 내동을 거쳐 현재 도마동에 이르기까지 50여 년을 거주했으니 웬만큼 토박이 주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색 바랜 『西區文學』 창간호에서 맨 먼저 ‘창간사’와 ‘편집후기’를 다시 읽었다. 초대 회장인 박동규 시인(1928~2014)의 글이다. 교육자 출신 원로 문인의 품격이 느껴지는 명문 창간사였다.
“[前略] 사람의 삶이 있는 곳에 문화가 있고 문화의 한가운데에 문학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문화는 말에 의해서 창조전승(創造傳承) 되며 말은 문학에 의해서 갈고닦아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명리(名利)에 마음이 쏠리고 문학은 변두리로 몰리어 소외되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느끼고 있습니다. [後略]”(「창간사」 일부)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람도 머리가 있어야 하고 손톱이 있어야 하고 심장이 있어야 사람이라 할 수 있듯이 볼품없는 책 한 권도 구색을 갖추어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요령부득도 있었고 근본적인 문제도 있어서 번화가 사거리에서 차가 밀리듯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한 권이 책으로 엮어지게 되었다”[後略](「편집후기」에서)
짧은 문장 한 대목에서도 선비 스타일 원로 문사의 멋스러움이 풍긴다. 박동규 회장은 당시 대전수필문학회장을 맡았던 분이어서 나와의 인연도 각별했다. 한 고장의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도 다정한 친필 편지를 보내 주었다. 작품 교류도 잦았다.
모임에 참석하면 연세가 가장 높은 문단의 어르신으로서 행사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려고 우스갯소리도 즐겼다. 인자한 할아버지 웃음소리 같은 특유의 “껄껄껄”도 일품이었다. 나는 모임에 참석하면 박동규 회장의 멋과 낭만이 깃든 말씀 한마디 듣는 것만으로도 회원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창간호를 찬찬히 넘겨 보니, 고인이 된 문인들이 많다. 이 책에 실린 작품 모두 인상 깊고 감동을 주지만, 그중에서 재미있게 읽은 몇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생시에 빛나는 문학작품을 많이 남긴 임강빈 시인(1931~2016)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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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버지
任剛彬
할버지라 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 네 마디가 힘든지
그렇게 부르기로 한 녀석
그래그래 편하도록 해라
귀엽고
꾸밈이 없고
그놈은 나를 좋아해
나 또한 그놈이 좋아
의기투합 살아간다
참이란 무엇인지
바르게 산다는 것
아름다움은 또 무엇인지
사랑이란 엄두도 못 낸
그런 나약한 할버지였다.
너는 꿈을 세워라.
순수하라.
건강하라.
창조하는 인간이 되어라
사랑은 클수록 좋은 것
생각 않기로 한다.
하늘에 떠 있는 한 점 구름
어느 날의 우리들의 헤어짐
작은 손을 연신 흔들며
날 보고 할버지라 한다.
이 시를 30년 전에 처음 읽을 때는 몰랐다. 그저 한 노인이 손자를 귀엽게 바라보면서 일기처럼 쓴 글이려니 생각했다. 이제 시인의 나이쯤 돼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내게도 이 시가 유독 가슴 따뜻하게 스며든다.
또 한 분, 내가 좋아했던 유동삼 시인(1925~2021)의 시조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생시에 연치가 한 참 아래인 내게 꼭 “윤 회장님”이라고 높임말 하셨던 어른. 한글 사랑과 각종 꽃씨 사랑이 유별나셨던 멋스러운 원로 문인. ‘콩나물밥 예찬’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 ♧ ♧
콩나물 밥집
유동삼
옹솥 바닥 살코기 서너 점 깐 다음
콩나물 한 옴큼 뿌리 잘라 다독다독
그 위에 다마금 햅쌀 두 옴큼쯤 얹겠지
김 오르자 보글보글 소리 나면 불을 끄고
갖은양념 한 가지만 떠놓고 비벼도
군침이 고기보다도 더하는 분 많겠지
맛있고 값싸고 몸에 좋은 콩나물밥
정다운 말 들으면 시골의 따스함이
귀 익은 콩나물 밥집 한 번 가면 단골집
이 시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유동삼 시인의 명시 「할머니 말씀」과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시조에서 ‘옹솥’(작고 오목한 솥), ‘옴큼’(한 손으로 옴켜쥘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 ‘다마금’(多摩錦 : 벼 품종)을 요즘 밥상머리에서 이야기하면 알아들을 젊은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책장을 넘기면 역시 생시에 나와 특별히 인연 맺고 지냈던 전영관 시인(1950~2016)의 작품이 등장한다. 전영관 시인은 내가 졸저 문집을 펴낼 때마다 과분한 찬사를 보내 주었고, 나는 전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회 때마다 꼭 참석하여 소감을 칼럼으로 쓰기도 했다.
아동 문학가이기도 한 전영관 시인과의 작품 교류 인연은 끝없이 이어졌다. 2007년 대전경찰청 개청식 행사에서 나의 청탁으로 ‘축시’를 써 주었던 일도 잊을 수 없다. 전영관 시인이 내게 지어준 「고마운 경찰관 아저씨」 제목의 축시는 ‘대전 경찰 역사’에 남을 작품이다.
대전경찰청 전 직원들이 참석한 대강당에서 시인의 제자(초등학생)가 낭랑하고 예쁜 목소리로 낭송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당시 시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대전경찰청장 명의의 감사장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작품 교류뿐만 아니라 술자리도 가끔 가졌는데, 넉넉한 인품에다가 베풀기 좋아하는 천성이라 많은 문인이 격의 없이 좋아했다. 외양만 보면 우람한 몸집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답고 고운 시가 나올까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영관 시는 우선 재미가 있다.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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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
전영관
산이
떠오르는 해를
어깨너머로 가리우고 있다
산꽃이
이슬에 세수를 마칠 때까지
산새가
둥지에서 이불을 다 갤 때까지
나무들이
바람에 머리를 다 빗을 때까지
산이 떠오르는 해를
어깨너머로 가리우고 있다.
동심(童心)과 평생 함께해 온 문학박사 선생님으로서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작품에서도 천진무구함이 묻어난다. 「아침 산」,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인가. 수많은 동시집을 펴낸 아동문학가 전영관 시인이 아니고는 이렇게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은 작품을 빚어내기 어렵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셋이다. <산꽃>, <산새>, <나무>. 이 세 친구가 세수하고, 이불도 개고, 머리도 빗을 때까지 ‘떠오르는 해’를 ‘산이 가려’ 주고 있으니, 얼마나 예의가 반듯하고 마음이 너그러운가.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봉사 정신,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 따뜻한 인정과 사랑, 그리고 ‘베풂의 미학’이 시의 행간에서 정겹게 묻어난다.
마치 깊은 산속에 묻혀 있던 순도 높은 원석(原石)을 캐내는 기분으로 색 바랜 대전 『西區文學』 창간호를 다시금 꼼꼼히 살펴보았다. ♧
2023.02.22.
윤승원 소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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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시대》 카페, 《대전문총》 페이스북 그룹, 《청촌수필 블로그》 등에 소개 ----
첫댓글 감동적인 칼럼입니다.
고 유동삼 시인의 <할머니 말씀>, <콩나물밥 집>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이 담긴 추모 글입니다.
<콩나물 밥집>을 읽으면
침이 고이고
<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초등학생 손자가 생각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