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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배우 트로이카의 계보 |
<김두호의 별들의 고향> 이월화, 김지미, 정윤희, 이미숙, 최진실 그리고 김태희까지 |
작성일:2007-11-30 |
[인터뷰365 김두호] 연예인의 활동을 소개하고 연예관련 뉴스나 정보를 다루는 매체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중 월간 잡지로부터 유래된다. ‘아리랑’ ‘명랑’ 등이 이를테면 성공한 대표적인 초기 연예 잡지의 이름들이다. 그후 주로 영화 음악잡지를 비롯해 여성월간지와 청소년 학생잡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연예기사들이 잡지의 주요 컨텐츠가 됐다. 1960년대 말부터는 주간지들이 연예매체의 중심에 섰고, 198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연예 일간지들이 연예정보의 붐을 이끌었다. 또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연예기사를 외면했던 종합일간지들까지 지면을 대폭 할애해 왔고 지금은 인터넷 매체까지 포함, 연예기사가 젊은 독자(네티즌)층의 가장 인기있는 컨텐츠로 떠올랐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각종 연예 정보의 바다에서 떠다니고 있다. 연예정보의 주인공은 연예인들이다. 모든 젊은이들의 꿈과 생활 속에 연예인이 있다. 이를테면 스타라는 것도 그들이 만들어낸다. 연예 매체는 그들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궁금해 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연예인을 주로 소개하거나 활동 정보를 알려준다. 우리 연예 인물사를 돌아보면 ‘톱스타’란 말과 ‘트로이카’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경쟁자가 없는 정상의 스타라는 의미를 ‘톱스타’에 부여한다면 여자 연예인 중에 그 칭호를 붙일만한 인물은 없었다. ‘트로이카’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름 앞머리에 톱스타를 올려도 손색이 없는 배우(또는 가수)라면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의 탁월한 활동 능력, 작품의 관객반응과 평가, 경쟁 영화제 등에서의 수상 경력 등을 통해 자타가 인정할 만한 정상의 위치에 올라야 한다. 지금은 톱스타보다 ‘국민배우’‘국민가수’라는 말이 출현했지만 모두가 매체에서 만들어낸 거품이 들어 있다. 그렇게 부른다고 나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경쟁자들에게는 불공정하고 비위를 상하게 하는 말이다. 인기 있는 사람을 ‘스타’로 부른 것은 ‘실락원’의 시인 밀턴이 가장 먼저였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은 분야를 안가리고 스프츠맨이나 정치인도 유명해지면 ‘스타’로 부른다. 우리나라의 ‘스타’ 유래는 은막에서 시작되었고, 여배우 스타 1호는 1923년 개봉된 윤백남감독의 ‘월하의 맹세’의 이월하로 꼽힌다. 매우 섹슈얼한 몸매와 교태 넘치는 얼굴로 당시 영화팬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인물이다.
무성영화시대를 지나 1950년대 이후부터 그야말로 별처럼 많은 스타들이 나타나고 사라져 갔다. 황정순 조미령 이민자 윤인자 노경희 전옥 이빈화 김혜정 최지희 주증녀 이경희 도금봉 문정숙 최은희 김지미 엄앵란 태현실 등이 모두 스타소리를 들었고 작품이 히트하면 톱스타 소리를 들었다. 그들 중에 최은희나 김지미 엄앵란 등의 배우들이 이름 앞에 ‘톱스타’란 칭호를 달고 다녔으나 누구도 군계일학으로는 볼 수 없었다.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에는 최은희 김지미를 비롯해 주증녀 문정숙 등이 스타시스템을 주도 했고 , 후반기 청춘영화 바람을 타고 말 그대로 톱스타였던 신성일과 그의 콤비로 엄앵란의 인기가 절정을 누렸다. 그 열기가 실제 사랑으로 이어져 ‘남녀 톱스타의 결혼’이라는 화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즐겁게 만들었다. 이 무렵 신성일에 대한 ‘톱스타’의 칭호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었지만 엄앵란은 경쟁관계의 선후배와 또래 스타들이 더러 있었다.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의 등장과 함께 처음으로 트로이카라는 말이 등장했다. 트로이카 1세대로 꼽는 이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데뷔해 나이 출연경력 연기성향 등에서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갯마을’로 떠오른 고은아도 있었고 김지미 엄앵란 문정숙 최지희 태현실 김혜정 도금봉 전계현 등 선배들도 시퍼렇게 살아 있었지만 한창 물오른 청춘배우로 고만고만한 세 여배우의 등장은 트로이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받아들여졌다. 러시아말로 3두마차(썰매)를 뜻하는 ‘트로이카’란 말은 연예기자들이 만들어서 띄운 이름이다. 경쟁을 부추기고 눈길을 모으게 하는 말로 매우 재미있고 신선한 용어였다.
1세대 트로이카의 활동시기는 연간 제작편수가 2백여편이 넘는 우리 영화 최전성기 였다. 문희는 1965년 이만희 감독의 '흑맥'으로 출발해 이듬해 정진우 감독의 '초우'로 스타덤에 오른 후 '위험한 청춘' '막차로 온 손님들' '한' '타인들' '미워도 다시한번' 등 화제작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남정임은 1966년 김수용 감독의 '유정'을 첫작품으로 '어느 여배우의 고백' '요화 장희빈' '분녀' '봄봄' 내생애 단한번' 등의 작품으로 인기를 이어갔고, 윤정희는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강명화' '싸리골의 신화' '육체의 길' '순애보' '감자' '내시' '장군의 수염' 등에 출연했다. 세 여배우가 움직이는 곳이 영화와 연예 뉴스의 산실이었다. 한층더 그들의 라이벌의식과 신경전이 불쏘시게 가 되어 쉬지않고 화제를 낳았다. 그 무렵 정인엽 감독이 '결혼교실'에서 톱스타 신성일과 함께 세 여배우를 한 작품에 캐스팅하는 기발한 작전을 실현해 충무로를 들쑤셔놓기도 했다. 워낙 경쟁이 날카로울 때라 출연 비중과 역할은 물론 제작 발표회장의 좌석 배치, 선전 포스터의 이름 배치문제까지 배려하는데 소동이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세 여배우의 경쟁시대가 우리 영화의 가장 행복하고 꿈같았던 황금기였다. 주인공 중 사업가와 결혼해 다복하게 살던 남정임만이 1989년 47살의 나이로 고인이 됐다. 찬란한 '트로이카의 영광'도 1971년 남정임의 결혼과 함께 빛을 잃어갔다. 그 해 10월 문희도 언론사 사주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윤정희도 1975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컬러 TV가 안방들을 차지하면서 영화배우와 탤런트의 활동 경계가 허물어지고 은막에도 TV 스타들이 몰려나왔다. 홍세미 김창숙 안인숙 김희준 선우용녀 김자옥 염복순 등 탤런트들이 영화의 주역으로 등장했으나 3명 정도가 정상에 올라 경쟁관계를 이루지는 못했다. 트로이카 2대는 70년대가 막 지나갈 무렵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이 이어갔다. 물론 영화 기자들이 어느날 그렇게 쓰기 시작하면서 세 여배우가 트로이카 관계처럼 보였지만 2대 트로이카는 트로이카 1세대와 달리 기준이 약하고 작위성이 많이 따랐다.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다. 첫 트로이카 스타들은 라이벌 관계를 의식하며 밤낮없이 새 작품의 정보를 먼저 입수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좋은 감독이나 흥행 작품을 위해서는 출연료 욕심을 비우고 서로 감독이나 제작진과 은밀하게 협상을 했다. 2대 트로이카 중 한명은 출연 작품의 흥행 결과나 TV드라마 시청률, 각종 활동 실적, 관객들의 인기도에서 다른 두 명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두 명 보다 3명을 모아 트로이카라는 이름 아래 정상급 라이벌 3각관계로 띄우면서 화제도 많이 발생했다. 때로는 그 중 한명이 다른 경쟁자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말을 해서 다른 두 사람이 발끈, 싸움이 일어나 화제의 불씨가 됐다.
2대 트로이카가 제대로 경합을 하기도 전에 이미숙 이보희 강수연 원미경 나영희 안소영 최명길 이혜영 금보라 최선아 김미숙 신혜수 김진아 김보연 황신혜 조용원 등이 등장해 주연급 별자리를 만들었다. 그 중 이보희 이미숙 원미경을 스타 3역으로 묶기도 했으나 눈길을 모으지 못했다. 90년대로 넘어가면서 초반에는 강수연 심혜진 최진실, 후반에는 심은하 전도연 고소영을 ‘톱스타’ 그룹의 트로이카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지만 영화배우 쪽의 활동이나 관객들의 인기는 심혜진 강수연 최진실 심은하 김혜수 이영애 최명길 오정해 신은경 등이 그런대로 비중이 있고 돋보인 시대였다. 그 중 최진실과 심은하가 영화와 TV드라마 양쪽에서 가장 눈부신 활동 실적을 남겼다.
김정은 전지현 손예진 임수정 하지원 문근영 이나영 박진희 김태희 등이 이 시대 여자 스타 그룹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누구도 ‘톱스타’라는 말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트로이카라는 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제 정상급 3명의 여배우가 트로이카를 만들 수 있는 시대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을 것같다. 스타의 머리수도 많아졌고 관객 반응도 한두 작품에 따라 굴곡이 심하게 나타나 인기의 숨도 짧아졌다. 관객들의 선호도가 까다롭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해 톱스타로 오르기 전에 시들어 버리는 여자 스타들이 많아졌다. 남자들에게는 연기자가 평생의 전문직이 될 수 있지만 여성들에게는 나이의 벽을 극복하지 못해 톱스타의 기회가 와도 명이 길지 못한 것은 숙명같다. 우리 영화사에서 남녀 배우들 통털어 ‘톱스타’라는 칭호를 가장 오래도록 화려하게 누린 배우로는 신성일과 안성기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
첫댓글 정윤희...그녀는..많은 배우중에서도..독보적인 존재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