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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인주인공 중심의 집단대립과 단선적 구성
구한말에서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일제 강점기에 친일세력과 그 세력에 대항하는 민중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새재」는 돌배가 주인공이자 중심인물이 되어 사건을 전개하여 나갑니다. 주인공인 돌배는 친구들과 봉건적 질곡과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항거를 하나 투쟁은 실패로 끝나고 효수를 당하게 됩니다. 화자인 '나'로 등장하는 주인공인 돌배, 모질이, 근배, 팔배, 어머니와 연이 등이 민중계급의 인물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인물로는 정 참판, 왜놈 기사, 양반네, 정 참판 네 하인, 왜헌병, 헌병 보조원, 양반 병력, 마님, 큰애기씨, 서방님 등으로 설정됩니다. 시인은 역사적 질곡을 체험하는 인물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지요.
돌배 어머니는 “떡함지를 이고 내리면서" 떡을 팔러 다니며 생계를 잇는 인물입니다. 복여울 나루 근처 장터에는 국밥집을 하는 외팔이네가 있는데 연이라는 처녀가 살고 있습니다. 돌배와 연이는 연인 사이입니다. 주인공인 돌배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어머니는 내가 두렵다 한다
내 이 억센 힘이 두렵다 한다.
한밤중에 뛰쳐나와
강변을 한바퀴씩 휘돌아치는
내 미친 짓이 두렵다 한다.
먼 산을 향해 늑대처럼 짖는
내 울음이 두렵다 한다.
-12쪽.
아기장수 설화에서 동기를 얻은 듯한 이 장면은 '억센 힘', '뛰쳐나와', '휘돌아치는', '미친 짓', '늑대처럼 짖는' 등 강한 행동어를 사용하여 주인공이 상당히 역동적 인물이며 앞으로 역동적 사건이 진행되어 나갈 것임을 암시합니다. 주인공의 출생 배경을 보면 "아버지는 나이든 떠돌이" 였으며, “진눈깨비 치는 날/ 방물짐을 지고 들어왔다/문득 이른봄에 떠" (12쪽)난 떠돌이였습니다. 돌배의 신분은 복여울나루, 개치나루, 목계창, 가흥창을 배로 돌며 장짐을 나르는 사공입니다. 그러다 한밤중에 강가에 나와서 "승천 못한 이무기처럼"웁니다. 돌배의 두 형은 돌림병에도 살아남았는데 물난리에 "정 참판집 첩 세간 건지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주인공에게는 근팽이, 모질이, 팔배라는 세 친구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들과 목계, 가흥, 입장, 안반내 등 “열 고을 스무 장터 떠돌이”가 되어 애기씨름과 중씨름을 쓸고 “공중제비하고 땅 재주넘고/ 쌀짝을 둘러메고 장마당을 돌고"(13쪽) "남의 꽹과리를 빼앗아 치고 치면서 쇠전 닭전을 돌고/ 본바닥 장정들과 싸움질을 벌”(13~14쪽)입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장터로 가는 배 속에서
나라를 도둑 맞았다
사람들은 수군댔으나,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란 무엇인가.
-14쪽.
위 부분에서 "나라를 도둑맞았다"라는 표현을 보면, 이 시의 역사적 시기가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 전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술국치는 일본에 행정, 경찰, 외교권을 모두 빼앗기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라란 빼앗기만 하는 곳/ 땅에서 쫓아내고 집을 빼앗는 곳/ 지아비를 빼앗아가고 지 에미를 짓밟는 곳."(14쪽)일 뿐입니다. 주인공이 이런 국가 허무주의 의식을 갖게 된 것은 국가가 법률과 규율로 민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착취하고 억압하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창작자의 국가관이 투영된 것입니다. 그 착취의 풍경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웃음소리 높은 담
기왓집 속에서만 들리고
사람들은 허기진 배 움켜안고
기왓집 눈치만 본다.
-17쪽.
아이들은 물찌똥 곱똥을 싸고
힘없이 자릿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들어서 삼십리 나서 삼십리
이 고장은 모두 정 참판네 땅
-18쪽.
봉당에 들마루에
티끌이 날려 오고 쌓이고
꽃잎이 살구꽃잎이 날려와 덮이고,
흰 나비를 먼저 본 아이들
주린 배 안고
오줌독 옆에 수심에 잠겨 섰는데
안골정 참판댁
열두겹 깊은 담 안
여인네들 웃옷 벗고
머리감는 삼월 삼짓날
강남새가 오는 것도 나는 역겹네
-15쪽.
아이들이 "주린 배 안고/ 오줌독 옆에 수심에 잠겨"서 있는 것과 "안골 정참판댁/ 열두 겹 깊은 담 안"에서 여인네들이 머리를 감는 모습을 통해 민중의 참상과 지배층의 여유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거기다 "나는 역겹네"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의 지배계급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중 화자를 내세운 창작자의 계급관일 수도 있습니다. 작중화자의 지배계급에 대한 혐오는 다음 대목에서도 계속됩니다.
안인심 후하다는 큰마님
그 웃음이 나는 싫네.
백옥 같은 흰 살결
벌레 보듯 나를 보는
삼단같은 머리채라
큰애기씨 나는 싫네
-16쪽.
화자는 인심이 후하다고 소문난 정 참판댁의 큰마님의 웃음이 싫다고 합니다. 백옥 같은 흰 피부를 가지고 삼단처럼 아름다운 머리채를 가진 큰 애기씨도 싫다고 합니다. 화자를 벌레 보듯" 보는 지배계급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 참판의 성격 역시 다음과 같이 서술됩니다.
인심이 좋다는 정 참판
외입질 잘하는 정 참판,
빨래바위 새우젓 장수
엉덩이 큰 둘째 딸
개똥벌레 뜬소문에
쌀 한 짝 선뜻 내어주고.
-16쪽.
인심이 좋다고 소문이 난 정 참판은 결국 외입질을 잘하며, 소문이 나면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 쉽게 해결하는 허위에 찬 인간입니다. 이러한 지배계급을 위하여 민중들은 “인분 푸고 오줌장군 지고/ 발바닥 부르트게 일"(16쪽)을 합니다. 이러한 착취 대상이 화자는 싫다고 합니다.
나는 싫네정 참판이 싫네,
마님이 싫고 작은 마님이 싫고
삼단같은 머리채라
큰애기씨 나는 싫네,
서울서 벼슬사는 서방님도 나는 싫네.
-18쪽.
이러한 반면에 여기에 대립하는 인물인 주인공 돌배와 연이, 그리고 어머니의 성격은 어떤가?
섶에살이 한 십 년에
찢기고 할퀴인 내 손등
트고 째어진 내 다리.
닳고 해어진 연이 손등.
땅에 끌리는 비단치마
큰애기씨 나는 싫네,
한 뒷박 싸래기에 눈물짓는
어머니도 나는 싫네.
-16~17쪽.
사공인 화자 자신과 국밥집에서 일하는 연이의 모습과 비단을 입고 다니는 큰애기씨의 모습을 대비하여, 착취 대상인 지배계층에 대한 미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계급적 각성과 대결을 하지 못하는 화자 자신의 어머니도 밉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물의 대비적 성격은 서사가 진행되면서 사건을 통해 대립합니다.
어머니는 장을 떠돌며 계피떡을 팔고 있으며, 모질이는 굶주리는 동생이 있는 가장입니다. 근팽이 형수는 아기를 낳다가 다리를 절고, 팥배 아범은 짚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민중의 전형입니다.
인물의 계급적 대립은 시가 진행되면서 갈등이 축적되고 마침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정 참판네에는 "왜놈 청놈"이 드나들고, 안방시렁에/ 지전 엽전이 쌓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래 백사장에 있는 "황새조차 배고파 울 정도로 먹을 게 없는데 "정 참판네 깊은 곳간에/백미 현미가 썩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정 참판네 비단금침에/ 동네 과부"가 구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화자는 "이 가난은 누구의 탓인가/ 왜 우리는 굶주려야만 하는가/이 땅이 왜 그의 것인가/ 이곳 넓은 들 논과 밭이 왜 모두 그의 것인가. (21쪽)하고 의문을 하다가 다음과 같이 깨닫게 됩니다.
벼랑에 걸린 달을 보고
그렇다 우리는 깨닫는다.
이 기름진 땅
강가의 모든 들판은
우리 것이다.
저 맑은 하늘도 별빛도
우리 것이다.
꽃도 새도 풀벌레 그 한 마리도
우리 것이다.
-21쪽.
"우리 것이다"의 반복을 통해 생산의 토대가 되는 토지와 자연 전체가 민중 집단의 공동 소유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사건은 갈등으로 치닫게 됩니다.
빼앗은 자
우리에게 이것을 빼앗는 자
누구인가, 가자.
나는 삿대를 빼어들고
모질이는 곡괭이를 메었다.
맨발이 함빡 이슬에 젖은 새벽길.
개도 배고파 짖지 않고
닭도 정 참판네 살찐 닭만 울어댄다.
가자, 몽둥이를 삽자루를 들고,
-22쪽.
정 참판네 집에 몰려간 주인공과 친구들은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열어라 대문을,
곳간을, 다락을,
산더미같이 쌓인
저 쌀섬은 우리 것이다.
일곱 색 찬란한 비단
저것도 우리 것이다.
이 기름진 땅 모두가
우리 것이다.
모여라 이웃들,
-22쪽.
그러나 이웃들은 모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계급을 각성하지 못하고 지배계급의 허위적 도덕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이웃들은 주인공 일행을 도적이나 화적 떼라고 몰아 부칩니다. 그러자 주인공 일행은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 도망을 가게 됩니다. 헌병 보조원과 헌병, 정 참판네 하인들은 주인공 일행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쫓겨다니면서 “이 땅 단물 알뜰히 빨아먹"기 위해 "사방에 길을 뚫는 공사판"을 확인합니다. 조선을 식민지로 장악하게 된 일제가 식민지를 통치할 수 있는 기구를 정비, 신설하면서 총독부를 두고 그 산하의 지방행정조직을 두기 위한 관청공사를 하는 것입니다.¹⁵⁴⁾
관청 공사판에서 일을 하며 몸을 숨기지 못하자 주인공 일행은 "충주 음성 샛간/ 철길 공사판" (29~30쪽)에 가서 일을 하게 됩니다. 철길공사는 일제가 식민지 착취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전국에 걸쳐 실시한 역점사업이었습니다.
노를 젓던 내 억센 손은
종일 구루마를 밀고,
십장의 고함소리 욕짓거리 속에
친구들은 삽질 곡괭이 질을 한다.
너희들 조선사람 짐승 같다고
너희들 조선사람 어리석다고
너희들 조선사람 게으르다고
고함치는 십장 그 또한 조선사람.
-30쪽.
직업이 뱃사공이었던 주인공은 철길 공사판 노동자로 직업을 바꾸게 됩니다. 전 국토에 달하는 식민지의 착취를 위한 철로건설이 한창이며, 십장은 비인간적인 욕지거리로 노동자들을 통제합니다. 십장은 조선사람이면서 노동자들을 '너희들 조선사람'으로 대상화하고 있습니다. 말단 노동자 관리자인 십장은 조선사람은 짐승 같고 어리석고 게으르다며 일제의 편견과 침략을 합리화 합니다. 온 산천은 "남포가 터지고 돌가루가 튀며 부서지는데도 "왜놈들은 신바람 날뛰고/ 십장들 덩달아 춤" (30쪽)을 춥니다. 십장과 노동자의 갈등이 깊게 드러납니다.
배부른 자와 배고픈 자의 빈부갈등도 만만치 않게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나라는 망했다 해도 배부른 자는 배부른 채/ 나라를 빼앗은 자의 편에 붙어서서/ 배곯는 자를 더욱 배곯릴 궁리를" (31쪽)하며, 양반계급이 "나라를 빼앗은 자의 편에 붙는 방법은 다시 식민지배 관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변진사네 작은 자제/ 군수 되어 나갔다더라./신학문 한 옛 현감 자제/ 더 높은 벼슬(31쪽)이 되어 이중으로 민중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계급적 인물의 성격과 대립, 갈등은 다음의 사건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나 한 아낙네
왜놈 기사가 희롱할 때,
홑적삼 찢기고 무명치마 트더질 때,
야윈 젖가슴 더러운 손 들어갈 때,
내 살점은 떨리고
몸에 소름이 돋았다.
헌병보조원 신바람 나 박장대소할 때,
십장들 빌붙느라 그 아낙네 놀려댈 때,
억센 내한 손이
기사 멱살을 잡았다.
언덕 아래 곤두박질치는 덩치 큰 기사,
그 위에 너부러지는 금니빨 십장.
밟아라 밟아라 밟아라,
삽시간에 공사판은 싸움판으로 바뀐다.
삽자루에 십장 골통이 깨지고
곡괭이에 기사들 어깻죽지가 찍힌다.
몰려드는 젊은이들 빗발치는 돌팔매,
몽둥이 괭이자루 곡괭이 쇠망치.
아우성은 아우성을 부르고
피는 피를 부른다.
배를 곯는 설움
짓밟히는 아픔
나라 빼앗긴 울분
이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되어
치고 밟고 찌르고 던진다.
저것이 내가 미워하는 모든 것이다
나를 밟고 학대하는 것이다.
왜놈패들 동네를 향해 도망치고
우리들 쫓아가며 아우성친다.
-35~37쪽.
쫓긴 '왜놈들'은 최 부잣집에 숨고, 젊은이들은 최 부자를 에워싼 뒤 노적가리에 불을 붙입니다. 지배층들은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나라가 망했어도 기강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젊은이들을 설득하지만, 젊은이들은 "너희들은 너희들의 편이다. 이 나라 지배해온 헛기침”이라며 '왜놈패들'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창작자는 젊은이들과 왜놈패들의 대립과정에서 지배계급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왜헌병이 와서 총을 쏘아대자 '맨주먹'인 젊은이들은 상황을 정리할 수 없게 되고, 주인공인 '돌배'를 쳐다봅니다. 이때 돌배는"이제 나는 나 하나 아니구나"라며 개인으로서의 돌배가 아닌 일원의 지도자로서 개인임을 각성합니다. 이들은 더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다음 기회를 보기 위해 가난하거나 억울한 사람이 모여 사는 '새 세상'을 찾아갑니다. 이들 일원은 이동을 하면서 "쉰에서 마흔 되고/ 마흔에서 스물 되게 줄어듭니다. 그러다가 의병을 만나게 됩니다.
누구인가, 우리더러
벗님네라 하는 사람,
팔 없는 사람 외눈박이
알몸뚱이에 절뚝발이
하릴없는 떼거지
바위 틈에서 튀어나오고
풀섶에서 일어나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고.
한눈에도 우리는 서로
원수가 아닌 것을 안다.
친구여, 우리가 찾아온 것은
바로 너희들이다.
-43~44쪽.
'빈쇠전'의 장에서는 "새재 근방 얼씬대는 왜놈들을 잡고/ 양반님네 부자집 곳간을 털자" (47쪽)며 반외세, 반계급적 대립 투쟁의 양상을 화자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들의 싸움 대상은 "연풍 청산 청안 괴산에/ 활개치는 왜놈들"(47쪽)이며 "영해 문경 풍기 가은에/ 다리 뻗고 자는 양반,/ 삼 년 가뭄 아우성에도/ 이방 찰떡에 배탈난 양반(47쪽)입니다. 이들은 "버려진 총으로 무장"하고 총질을 배우며 전투준비를 합니다. 이들은 연풍을 쳐서 쌀을 빼앗아 못 먹어서 '부황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풍기를 쳐서 헌병 셋을 죽입니다. 또 문경을 쳐서 쌀을 빼앗고 영해를 쳐서 '왜놈'을 잡고 다시 청산, 청안을 치고 괴산과 가은을 치며 전투를 벌입니다. 이런 와중에 팔배는 풍기에서 죽고 근팽이는 영해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투쟁의 대상인 양반님네들이 “새재의 큰 도둑을 치기 위해 의병을 모은다는 소문"(50쪽)이 들린다고 하여 다시 한번 대립과 긴장을 예고합니다. "바깥 도둑 접어두고 집안 도둑 치겠다"는 양반중심의 의병 속성을 폭로합니다. 이 소문을 접한 주인공은 “꿈자리가 어지럽고 어머니와 연이를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서로 다투고/ 주먹질을 하고/ 한밤중에 몰래 도망치" (51~52쪽)는 내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화자는 살아남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며 "친구들을/ 으르고 달래고 닦달"(52쪽)하지만 상황은 다르게 변하고 맙니다. 그리고 대열에서 이탈했던 사람들이 양반세력의 길잡이가 되어 주인공 일행의 근거지를 찾아옵니다.
무기를 버리는 자 살려준다 한다.
투항하는 자 전비를 묻지 않겠다 한다.
그러나 저들
기세 좋은 총소리.
투항하는 자
살려준다 한다.
무기를 버리라 한다.
우리는 서로 원수가 아니라 한다
-52~53쪽.
주인공 일행을 기습한 양반으로 구성된 의병들은 "우리는 서로 원수가/아니라" (53쪽)며 강제로 무장 해제를 요구합니다. 일단의 지도자인 주인공은 더 싸울 것을 외치지만, 친구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싸울 것을 포기합니다. 주인공은 "쏘리라 마지막 한 방까지/ 너희들이 다스리는 세상을 향해 이 뼈에 사무친 원한도 함께/ 쏘아 보내리라./ 가진자, 너희들은 너희들의 편이다." (54쪽)라며 계속 총을 쏘아댑니다.
결국 주인공 돌배는 어깨에 총을 맞고 잡힌 후 “도둑의 괴수 화적떼 두목이 되어” “이 나라의 기둥인/ 양반을 욕뵈었다" (54쪽)는 죄로 충주목 연풍고을 향회공당에 갇힙니다. 그러다 섣달 그믐날 돌바닥에 꿇어앉혀진 돌배는 목이 잘려 “소백산맥 외딴 산속 작은 읍내” “쇠전한 구석/ 높은 종대에" (56쪽) 목이 걸리면서 사건은 종결이 됩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새재」는 구한말에서 일제 점령 초기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돌배를 중심으로 한 민중계급과 지배계급의 인물 대립, 그리고 주인공의 행적을 단선적으로 따라가며 지배층에 대한 원한과 분노에 찬 투쟁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수 주인공인 돌배를 중심으로 한 집단적 대립과 사건이 주인공의 행적에 의해서 통제되는 단선적인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장편서사시「남한강」과 「쇠무지벌」을 읽고 이야기의 구성과 인물의 대립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필자의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푸른사상, 2005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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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일본은 새로운 영토를 다스리기 위한 최고기관이며 특수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두었으며, 1911년 현재 총 15,113 명의 관리를 가지고 있었다. 총독부 산하의 지방행정조직은 전국을 13도 12부 317군으로 나누고 각각 도지사, 부윤, 군수 등을 두었다. 이런 상급관리 중에는 극히 친일적인 소수의 조선인이 포함되었을 뿐 고급관청의 대다수 관리는 일본인이었다. 면단위로 내려와서야 하급실무직으로 조선인이 고용되었다.(한국민중사연구회, 『한국민중사 II』, 1986, 125-126쪽 참조)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11. 1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