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3.
화순 운주사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10.7m 높이의 구층석탑이 길을 막고 선다. 걸음을 멈추고 탑 아래 받침돌부터 한 층씩 한참 동안 살펴본다. 지대석과 기단석이 없다. 갑석 위에 1층 몸돌을 놓고 지붕돌을 올려 아홉 층을 쌓았다. 옥개받침 즉, 지붕돌 받침이 없는 것으로 보아 목탑 형식이라 여겨진다. 아니다. 모르겠다. 내가 본 수많은 경주 지역의 탑과는 비교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아무리 살펴봐도 모르겠다. 전문가의 기술과 기능이 손톱만큼도 더해지지 않은 원시적인 석탑이다. 최고가 아니라도 좋다. 평범하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더군다나 보물 제796호로 지정되었다면 이미 문화유산으로 검정이 끝났다는 이야긴데 나는 왜 받아들이기조차 어려울까. 몸돌에 새겨진 마름모꼴 양각과 꽃무늬는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엉성함에 더하여 불안정한 비례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뭘 모르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것 또한 처음이다. 석조 불감은 가운데에 판석을 두고 남쪽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북쪽에는 수인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비로자나 부처님이 결가부좌 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두 분 부처님은 평면적인 넓적한 얼굴로 표현되며 볼륨 없는 몸매, 두꺼운 옷 주름의 섬세하지 못한 조각 수법 등에서 고려 불상 양식이 나타나 보인다. 구층석탑보다는 조금 발전된 기술과 기능이 보이지만 예쁘거나 불심이 솟아나는 불상은 아니다. 경주 지역에서 흔하게 보는 미남 얼굴이나 서산 운산면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에서 볼 수 있는 기분 좋아지는 백제의 미소와는 비교되지 않는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와불이다. 열반에 드신 부처님 형상을 와불로 표현한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운 부처님을 흔히 와불이라 부른다. 운주사 와불은 좌상과 입상의 자세로 누워있다. 비로자나불 좌상과 석가모니불 입상은 미완성의 불상으로 보인다. 땅에 아니 바위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12m나 되는 부처님 형상을 바위에서 떼어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합장하고 빌어본다. “벌떡 일어나시어 태평성대를 이뤄주세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을 듯하다. <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에는 천불천탑이 있다는 기록을 전한다.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석불 91구와 석탑 21기가 남아있다. 전해지는 전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힘없고 삶에 지친 백성의 애환이 느껴진다. 운주사에 산재한 석물을 보면서 추리할 수 있는 것은 아픔이다. 간절함이다.
일주문을 뒤로하며 걷노라니 왜 이리 꺼림칙한지 모르겠다. 가슴 저 아래에서 작은 아픔이 잉크 한 방울 번지듯 한다. 내가 모르는 기억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내 마음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