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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을 따른 자에게 주어진 약속
누가복음 18장 28-30절 / 28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재물이 많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의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난관은 더욱 커집니다.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로 그렇게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의 재물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인하여 예수님을 따름에 있지 못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도합니다. 재물은 예수님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이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낙타를 바늘귀 속으로 통과시키려고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습니다.“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여기서“보옵소서”는‘보시는 바와 같이’,‘보시다시피’입니다. 또는‘아시는 바와 같이’,‘아시다시피’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 자신들을 부르실 때 보인 행동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는‘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모두 다 버리고(놔두고)’를 뜻합니다. 과연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것들을 모두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그들의 생업인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그리고 가정(가족) 모두를 다 놔두고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에게 속한 재산과 집, 그리고 가족 모두를 다 놔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어떤 성격의 것에서 있는 것인지는 다음의 말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57-62)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베드로가 자신들은 가진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단지 그것들을 냉담하게 무시해 버리는 것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의 상실감을 나타낸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요구들은 인간의 모든 충성들 중에서 가장 신성하고 구속력 있는 것들조차도 궁극적으로 뛰어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베드로가 왜 이러한 말을 예수께 했을까요? 앞서 한 관리는 그가 가진 재물 모두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재물이 많은 것을 인하여 심히 고민하다가 예수님에게서 떠난 것을 보시고서 예수님은 재물이 많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며 그에 대한 비유로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울 것이란 이야기를 해 주셨었습니다. 그에 비교되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모두를 버리고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인“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다”에 의한 것입니다. 곧,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로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재물이 많음으로 심한 근심에 있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한 관리에 비해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신들이 비교될 뿐이었습니다. 재물을 택하여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한 관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와는 달리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신들은 어찌될 것인가? 영생을 얻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그러기에 베드로의 질문에는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오면서 아직 주께로부터 영생이 주어졌다는 것에, 그래서 주께로부터 영생을 얻었다는 것에 이해를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란 말씀을 해 주신 것과 버금가는 말씀으로 다른 곳에서는“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게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 6:44) 라고 하셨는데, 그러한 예수님에게로 나옴에 있는“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요6:4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인지요.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생이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에서 영생이 이미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이미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 11:25-2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관리가 질문한 것에서 보게 되는 바인, 자신이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인지와 같은 생각의 울타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벗어나 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많아 부자인 한 관리가 행동한 것과는 달리 자신들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영생을 얻지 않겠느냐는 의도의 질문을 예수께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에는 아직도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예수님을 따름”=“하나님이 하신 일”=“영생”의 이해에 아직 서 있지 않은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가진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이 요구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을 따름에 있은데 따른 보상의 심리로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일에 말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한 말인 자신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한 것이 영생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서 한 것이라면, 그가 한 말은“영생+상급”의 개념을 가지고서 한 것이 되며, 그러할 경우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신들이 무엇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의도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마태의 기록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한 말은 어떤 의도에서 한 것이든지 간에 자기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신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보상(보응)을 해 주실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나타나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름으로 그들이 소유함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그들이 얻음에 있는 영생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갖게 해 주시는 말씀을 주십니다.
이에 예수님은“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1)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2)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마태와 마가의 기록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원문의 뜻은‘백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어떤 사본에는, '부모나' 아래에 '아내나'가 있음).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27-30)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현세, 곧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28-31)
이 두 곳을 보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있으니, (1) 세상이 새롭게 되어 예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그를 따르던 제자들 또한 그들을 위하여 준비 된 열두 보좌에 앉아 열 두 지파를 심판할 것임과 (2) 그들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것에는 비록 지금은 자신들에게 있는 모든 것을 잃고 빼앗김을 당할지라도 장차 백 배나 받고 (3)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 (4)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곧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여러 배’를 받고는 갑절, 또는 서 너 배 정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단어가 지닌 문자적인 번역의 뜻은‘백 배’를 받는다는 것인데, 이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의미상은 종말에 있을 축복의 풍성함을 묘사하는 데 과장법을 사용하는 전형적인 시적 용어로, 요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전에 입은 손실을 능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으로‘많은’을 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와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에서‘현세에 여러 배(백 배)를 받고’는 예수님을 따름에 의한 자발적 포기에 따른 보상을 지금 이 세상에서 받는다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오해를 갖지 않기 위해 마가는“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라고 하였는데, 이를 다른 한글성경에서는,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공동번역)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새번역성경)
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 번역이 보다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현세에서 예수님을 따름으로 포기하고, 또는 박해로 빼앗김을 당하고 등으로 잃은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와 전토는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고 그 나라를 구성하는 영적 가족을 얻는 일이 됩니다. 천국의 제자로서의 신분이 요구하는 절대적 헌신에 따르는 자기에게 속한 것의 희생은 그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을 위하여 심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름에 있은 열 두 제자들만이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 영광스런 나라이기에 열두 제자들만이 그 특권과 권세의 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름의 믿음에 있는 모든 제자로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족 관계를 이루는 영적 가족을 얻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동반하는 풍성한 축복을 향유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현세의 희생과 자기 부정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 기대입니다. 현세에서 그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행한 그 일로 예수께서 권능으로 재림하실 때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입니다. 이 약속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이 약속을 주신 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한 대로 내세에서도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풍성한 복으로서 일 것이니,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이니, 우리 중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있을 수 있겠는지요. 없습니다. 영생을 받지 못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하늘의 세계를 바라보며 참으로 굳건히 믿음으로 산 수 많은 사람들이 있어왔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으며, 우리 입으로 끄집어내어 말할 수 있는 인물들에게서 보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할 믿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할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 믿음을 떠올리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할지를 잊고 모를 때마다 그 믿음을 생각에 떠올리시고 그 믿음으로 살아감에 있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