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아닌 경찰이 최근 집회시위 안전관리 대책으로 내놓은 전ㆍ의경의 진압복에 개인명찰을 달도록 하는 방안과 관련된 공방인데요. 찬반이 엇갈린다고는 하지만 무게 중심은 반대쪽으로 쏠리는 것 같습니다.
반대 주장의 핵심은 “그게 무슨 폭력시위를 막는 대책이냐”, “전ㆍ의경의 인권은 누가 보호하느냐”, “경찰만 봉이냐” 등 입니다. 덧붙여 폭력시위를 일삼는 무리(?)들은 여전히 준동하고 있는데 왜 그들에겐 이름표를 달고 복면을 벗으라는 요구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제 짧은 생각엔 “전ㆍ의경 인권 보호 외면” 주장을 제외하곤 대부분 감정적인 반응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사소한, 혹은 집회시위 안전관리 대책이라는 큰 틀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될듯한 ‘명찰 달기’가 왜 이토록 여러 사람의 공분을 자아내는 것일까요, 왜 찬반논란으로 확대되는 것일까요?
더구나 이 방안은 경찰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경찰 스스로 ‘혁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발표한 방안이지요. 담당부서도 경찰혁신기획단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 내부, 특히 명찰을 달아야 할 입장에 놓인 전ㆍ의경의 반발이 심하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억하심정으로 죄 없는 전ㆍ의경의 이름을 인터넷에 올리기라도 하면 ‘사이버 마녀사냥’을 버티어 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이쯤해서 6년 전 겪은 제가 직접 겪은 사건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2000년 겨울로 기억됩니다. 당시 대학로에선 도심집회가 열렸죠. 행진을 하던 시위대가 ‘경찰의 장벽’에 막히자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일몰 시간이 임박한 시점이라 경찰 입장에선 더 이상의 행진을 용인할 수 없었죠.
저는 취재를 위해 그 아수라장 틈바구니에 끼어 들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취재를 했을 법한데 당시는 기자가 된지 1년도 안된 터라 의욕이 앞섰던 것이죠. 그런데 순식간에 시위대의 대오가 무너졌습니다. 전경들이 시위대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졌죠. 시위대가 아니므로 달아날 이유가 없어 옷을 툭툭 털고 일어서는데 곤봉이 머리로 날아듭니다. 다시 쓰러질 밖에요. 그 짧은 순간에도 ‘아, 전경들이 날 시위대로 오인했나 보다. 기자임을 밝혀야지’ 하는 생각에 일어서면서 호주머니에서 기자 신분증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더 많은 곤봉이 날아듭니다. 공포였습니다. “기자에요, 기자라니까!” 아무리 외쳐도 집단구타는 그칠 줄 모릅니다. 고통보다 황당함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안경이 깨지고 휴대폰이 박살이 나고 소지품은 사라졌습니다. 화가 치밀었습니다.
가까스로 수습이 된 뒤에 저를 때린 전경을 찾았습니다. 맞는 와중에 본 것은 모자에 적힌 ‘2’라는 숫자였습니다. 2중대를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이번에 날아온 것은 욕설뿐이었습니다.
경찰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경찰 내부 감찰이 벌어진 지 이틀 만에 저를 때렸다고 자백한 전경 한명이 용서를 빌기 위해 저를 찾아왔습니다.
사설이 길어졌습니다만. 그때 제가 물었습니다. “내 신분을 밝힌 뒤에도 때린 이유가 머냐?” 답은 이랬습니다. “당시엔 정신이 없었고 누가 그러는(때리는) 줄 모를 줄 알고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요. 만약 당시 그 전경이 명찰을 달고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제 신분이 기자이기에 망정이지 아마 우연히 그 지경을 당한 시민이었다면 누가 때렸는지 찾지도 못했을 겁니다. 실제 당시 시위에서 무고한 시민들도 여럿 전경들에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이렇게 묻는 분도 있을 겁니다. “바보같이 시위현장엔 왜 있었느냐?” 네, 그렇습니다. 제 잘못도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 때문에 ‘제 신분을 밝힌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타를 한 전경을 찾았던 것이죠.
저를 때린 전경은 손에 붕대를 감고 왔는데 다른 시위를 막다가 부상당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도 들고 전경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론 조심하라”고 말한 뒤 용서를 해줬습니다만.
제가 겪은 사건의 알맹이는 그 전경이 말한 “정신이 없어서” “누가 그런지 모를 것 같아서” 입니다.
경찰이 ‘명찰 달기’ 방안을 내놓은 이유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찰은 “시위진압과정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유지하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익명의 그늘에 숨어 있기 때문에 과잉진압이 많다”고 했고요.
그런데도 이 방안이 무시당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매도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물론 전ㆍ의경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은 개선해야 하겠지요.
꼭 이름표가 아니더라도 필리핀처럼 번호표로 해도 되고요. 필리핀은 시위진압 경찰에게 번호표를 달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고 하네요.
명찰 달기의 핵심은 전경의 이름이 뭐냐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 시키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공권력을 행사하게 될 전경 개개인의 책임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그 대가, 혹은 선행조건으로 시위대 개개인에게 명찰이나 이름표를 달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은 경찰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이고요.
물론 이 방안이 실제 시위현장에서 얼마만큼의 실효성이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시위문화를 개선할 것이라는 전망도 설익은 것이지만 폭력시위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 역시 이른 것이죠.
그래서 명찰 달기에 대해 앞뒤 가리지 않고 길길이 반대하고 나서는 일부 언론의 태도를 보고 의아할 뿐입니다.
제가 보기엔 시위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에 “경찰 먼저, 집회 참가자 먼저”를 따지는 선후 논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 신문에선 명찰 달기 논란과 관련해, 경찰 수뇌부 사이에서도 마찰이 있다고 썼는데 현장에 있었던 저로선 동의할 수 없습니다. 좋은 개선책일수록 가감 없는 대화가 우선일 테니까요.
어쨌든 저는 경찰이 먼저 양보의 미덕을 보인 모습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가뜩이나 경찰의 일방적 책임론 때문에 경찰 스스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텐데 용기 있는 결단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7년 전으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1999년 봄 경찰은 먼저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을 쏘지 않겠다는 ‘무탄(無彈) 선언’을 했습니다. 당시엔 경찰이 얼마나 버틸까 말들이 많았죠. 그렇다고 시위대가 화염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비판도 있었고요. 해를 거듭하면서 몇 차례 고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후 최루탄 사용에 대한 유혹을 견디어 왔고 시위대 역시 화염병 투척을 자제해 왔습니다. 그 성과는 양측뿐 아니라 현재 국민 모두가 누리고 있습니다.
시위진압 실명제 역시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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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9510065 국가의 공권력이 화염에 휩싸이고
폭도들의 난동을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현실
서글프기 짝이 없네요
전 전경 가족도 아니고 농촌에 뿌리박고 사는사람입니다
근본적으로 폭동막을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귀한 이땅의 젊은 이들의 인권과 생명은 내 팽개쳐 져야 하는지요?
이것이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인가요?
전경을 나무라기전에 폭력적 시위를하는자들의 엄중 처벌로서
평화로운 시위문화 부터 정착 시키는게 우선이죠
참고로 나는열열 한 참여 정부 지지자입니다만 이런 문제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2006-01-18
ynkim998 참 한심한 기사거리자 주장입니다. 당신이 한번 당해봐야 할지요. 84년에서 87년까지 닦고 잔날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하루세끼 김밥한줄로 때우고 방패로 가린고 오줌싸고 그위에 다시 깔고 그냥 자빠져 자고...개돼지도 이렇게 할 수는 없지요. 군인의무복무라해도 이건 아닙니다. 화장실 한번 가려면 문 열어주는 시민들 한새끼 업습디다. 더운여름 물한잔 얻어먹으려 해도 욕이나 안하면 다행이지요. 이건 사소한 일이고, 옆에서 자던 전우가 한 둘씩 어딘가 부러져 안보이기 시작하고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온몸에 화상입고 붕대감고 나타나거나 손가락 잘리고 다리 잘리고 죽창에 눈 찔리고 ...당신 옆에서 멀정히 이렇게 당해 나가기 시작하면 겁나지 않을까요 군인이라 참아야 한다고... 2006-01-18
ynkim998 개소리 하지 마쇼...내 전우중에 다리 자른놈, 얼굴에 온몸화상으로 눈까지 먼놈, 심지어 그래서 자살한놈들 지금 어느새끼가 기억해준답니까? 군인이었기에 용감했다고...웃기는 소리마셔..보상금 하나없이 그냥 그렇게 잊혀져 갔는데...만일 당신이 내일 전투나가서 (우린 전투라합니다) 이렇게 된다고 예상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소..그냥 맞아 죽겠소 아니면 시민의 개새끼로 두둘겨 맞다가 소리없이 제대하겠소. 어느놈하나 우리 전의경들 기억해 주는지 아는가 말이오. 만일 당신 동생이 형이 조카가 아들이 방패 뺏기고 두둘겨 맞고 있어도, 다 죽어가도, 죽창에 삽자루에 괭이자루에 맞아 되져도, 이런소리 하고 앉아 있겠소...이유없이 기자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두둘겨 팼다고 억울하다고?...이유없이 군복무하러 왔다가 방패들고 개밥먹으며 두들겨 맞았다고 어느한 새끼 위로해주는 넘들 없고, 사과하느넘들 없더이다. 다들 전의경들이 먼저 쳐서 그렇다 그러지...할말 많으나 이만 해야겠소...나 84년 부터 87년까지 35개월 20일간 인천 동부 제3 기동대에서 졸라 맞다 제대한 놈이오다... 2006-01-18
chanlee1 진정 그들이 익명에 숨어서 과잉진압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해서 전의경 생활을 하는 것이고 명령에 따라 그들의 임무를 다하는 군인들입니다.
경찰 수뇌부가 내놓은 진압 실명제라는 것이 과잉진압 방지와 더불어 책임 행동이라는 명분을 내놓은 건데 이건 이전 많은 시민단체가 주장 하기도 한것임을 기자도 알고 있겠죠.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을 일선의 힘없는 전의경들에게 전가 한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진압을 지시한 경찰 수뇌부는 책임을 회피하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되겠죠.
당시 기자가 경험한 그 하나의 사실로 실명제를 정당화 하지는 마십시오.
전의경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습니까? 과연 그들이 얼마나 잘못했기에 2년여의 군복무 생활동안 자기 이름 팔면서 시위대를 막아야 하는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200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