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2차 (화방재-수리봉-만항재-함백산-중함백-은대봉-싸리재-금대봉-비단봉-매봉산-피재)
일 시 : 2003. 8. 15 (금)
날 씨 : 구름, 비, 맑음
일 행 : 송봉환
산행시간 : 06:45-14:40 (7시간55분)
도상거리 : 21.5km (실제거리 약 27 km)
광복절 징검다리 휴일을 휴가로 처리하여 4일간의 연휴를 만들고 17일 어머님 생신날 큰댁에 도착하면 되니까 하루나 이틀의 여유가 있어 그 중 하루를 택해 대간에 나선다. 일기예보의 비 소식이 있었으나 비는 산행중반 오름 길에 잠시 내리고 짙은 안개로 먼 조망은 후반부에 잠시 보여준다. 매봉 고랭지 채소(배추) 밭은 그 규모가 대단하여 안개등 악천후 시에는 길 따르기가 무척 곤란할 것으로 판단되고 매봉 정상 배추밭 주위로 군사용 교통호로 보이는 시설이 풀 속에 크레바스 처럼 숨어있어서 위험한 구간이다. 짙은 안개 때문에 차라리 훼손의 정도가 도를 넘었다는 함백산의 처참한 모습을 보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전날 마신 술로 맑지 못한 머릿속이지만 03:30분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 영월 야식 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화방재에 도착한다.(06:45) 화방재에서 대간 들머리는 주유소 건너편 검문소 뒤 왼쪽으로 있는 두 채의 민가(길 쪽 집-파란 양철지붕-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안쪽 집-스레트 지붕-은 빈집이다) 사이로 들어가야 하는데 초입에 흔적이 많지 않고 좁아 대간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기 쉬우므로 조심해야하며 일단 집 뒤로 들어서면 뚜렷한 대간이 이어지며 다소 가파른 경사를 따르면 수리봉에 닿을 수 있다.(1214m, 07:18) 수리봉에 오르면 바로 앞에 봉우리 하나가 또 나타나 저것이 수리봉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곳은 창옥봉(1238m)으로 높이가 고만고만하다.
은근한 오름을 계속 오르면 좌측으로 이중 철망이 나타나며 방사선 피폭에 주의하라는 경고문과 함께 우주센터와 같은 국가 시설물이 나타나고(07:55) 철조망을 끼고 돌아 정문부터는 군사도로를 따라 자갈이 깔린 도로를 따라 3∼4분 정도 내려가면 굳게 닫힌 기지의 정문과 그 너머로 414번 지방도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닫혀있는 정문의 문틀사이를 허리를 구부리고 빠져나와 문에 걸린 표시판을 보니 "군사작전구역이므로 허가받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는 공군 제8231부대장 명의의 경고가 선명하다.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고개 중 국내 최고높이의 도로라는 414번 지방도로의 만항재(해발:1330M) 고갯마루에는 "아리랑의 고향 정선입니다"라고 정선군 관내임을 알리는 세로형의 대형 안내 기둥과 영월군 상동읍을 알리는 도로표시판 등이 어지럽게 서있어 이곳이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그리고 영월군이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만항재 건너편에는 휴게소가 있으나 이른 아침 이어선지 인기척이 없고 고한 방향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약200여 미터를 진행하면 함백산 등산로 표지판이 서있으며 이후 고한읍 사무소에서 붙인 표지기와 안내판이 꾸준히 있어 길을 놓칠 염려는 없으나 임도가 엉켜있어 다소 혼란스럽다. 시멘트 슬라브 폐가를 지나 함백산 오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는 도로 공사를 하느라고 대간을 뚝 끊어 놓았고 그 길을 지나던 채소 파는 1톤 트럭의 부부가 이상한 듯 쳐다보나 지나간다. 군데군데 고압 철탑을 설치했었던 구조물이 있으며 검은 프라스틱 파이프를 지나 오르는데 자동차 소음이 들린다. 검은색 무쏘 한 대가 안개 속에서 부릉거리고 있으며 주변엔 중계 탑들이 설치되어있다. 함백산 정상인 듯 하나 안개 때문에 정상석을 확인하지 못하고 중계탑 철조망을 따르다 보니 길은 내림길로 이어지므로 무쏘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서 온다. 무쏘 운전자에게 물어 정상이 바로 20여미터 위라는 것을 확인하고 오르니 정상석과 함께 크고 작은 돌탑이 많이 쌓여 있고 바람은 엄청나게 세차다. (1572.9m, 09:10)
함백산에서 내려오면 검은색 바닥의 깔끔한 헬기장을 왼쪽으로 두고 대간은 이어지고 안개에 갇힌 천년고목 주목이 태백에 못지 않은 자태로 자리잡고 있는 주목보호지를 우측으로 지나 중함백에 이르고(1505m, 09:40) 편안한 길을 내려와 사거리(10:00) 지나 은대봉(1442.3m, 10:35)에 이른다. 날씨는 계속 구름속에 나를 가두어 놓고 은대봉부터는 빗방울까지 떨어진다. 싸리재(두문동재) 까지의 내림길은 완만한 등로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잡목과 나목지대 이고 왼쪽은 풀밭이다. (싸리재, 10:50)
싸리재에는 정선 쪽으로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파는 쉼터가 있어 요기할 수 있으며 화장실 시설도 되어있다. 3년전 이곳을 아내와 자동차로 넘을 때 한 여름이었는데도 엄청난 바람으로 한기를 느꼈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제는 터널이 뚫려 한적한 길에서 쉼터에 들러 라면하나 시켜서 남은 김밥과 함께 먹기로 하고 준비한 버너와 라면은 비상으로 남겨두었다.
11:30분 배불리 먹고, 해우소를 나서 차단기를 지나 금대봉을 찾아 오른다. 길은 임도로 편안하나 표지기가 귀해서 주의 깊게 진행하는데 50대 초반 부부가 내려오며 백두대간 길을 아느냐고 묻는다. 좀더 가서 오른쪽에 표지기가 없더냐고 물으니 임도 끝까지 가도 대간 길을 찾지 못해 돌아 내려오는 중이란다. 09:30분에 싸리재를 출발했다니 2시간 이상을 헤메고 있는 중이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기다리면 길을 찾은 후 연락하겠다니 같이 따라가겠단다. 태백산 당골에서 문수봉을 거쳐 태백산을 올라보니 백두대간 리본이 있어 따라 오고 있으며, 화방재에서 싸리재, 오늘은 피재까지 가볼 계획인데 초입에서 헤메는 중에 나를 만난 것이다. 200여미터를 오르니 오른 쪽에 메어 있는 대간 리본이 임도를 버리라고 한다. 그 곳으로 들어가니 부부는 그 길은 산나물꾼의 길이라며 선뜻 들어오질 않는다. 자신있는 소리로 들어오라고 하니 그제야 들어오며 한 동안 앞서가더니 배낭에서 못생긴 오이를 내어주며 먹으란다. 제대로 들어선 안도의 휴식이며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나보고 앞서 가라는데 금방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진다. (무 농약으로 길렀다는 그 오이를 허리 배낭에 넣어두었다가 비단봉 오름길에서 먹었는데 달기가 과일과 견주어 뒤쳐지지 않을 만큼 맛이 있다)
그렇게 금대봉에 오른다(1481.1m, 11:50) 싸리재(두문동재)를 가운데 두고 은대봉을 거쳐 금대봉에 오른 것이다. 금대봉에는 하얀 말목에 양강발원봉(낙동강, 한강)이라고 써 놓았고 돌탑과 감시초소가 서있다. 날씨가 맑으면 조망도 괜찮겠지만 오늘은 구름에 모두 젖어있다.
금대봉을 지나면서 완만한 능선과 부드러운 흙 길이 이어져 빠른 속도로 진행해1256봉과 1233.1봉을 가볍게 넘어서 이름도 이상한 쑤아밭령에 이르는데(12:35) 건너편에 크게 솟아 있는 뾰족한 봉우리가 보인다. 비단봉(1279m)인데 솟아있는 모습이 보통이 아니다. 경험상 대간에서 뾰족이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덩치큰 산들이 오랫동안 진을 빼는 산들이다. 정상 전의 전망대에서 오랜만에 그런대로 조망을 즐긴다. 구름모자를 쓴 태백과 함백 그 사이를 오르는 화방재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고운 비단봉(13:05)을 내려서면 엄청난 규모의 고랭지 배추밭을 만나게 되고 그늘 없고 지루한 배추밭 길을 따라 매봉산에 오르는데 표지기가 귀하므로 안개등 악천후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이 지역이 우리나라 최대의 고랭지 배추밭이지만 김치냉장고의 등장으로 재배 농가(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피재 휴게소 주인남자의 말) 매봉산은 정상 몇 평을 빼고는 모두 배추밭으로 덮여 있으며 정상에는 3미터 정도 되는 사각 웅덩이와 군 교통호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 있다. (1303.1m, 14:00) 매봉산 이후는 배추밭 옆을 따르고 또 농로를 따르며 대간 같지 않는 길을 내려와 피재에 이르게 되는데 낙동정맥 시작점(시작점이후 등로는 전혀 없어 보였다.)을 지나면 초지와 사시나무 조림지등의 울타리을 끼고 내려와 분수령 목장 정문을 지나면 정자각이 있는 삼파수(한강, 낙동강, 오십천) 피재에 이른다. (14:40) 피재 휴게소의 주인장 차를 이용해(2만원 지불) 화방재에 도착 내 차를 회수해 돌아오지만 지난 구간 열차를 이용했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백시는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으로 감싸여 있으며 높이에서 여러 기록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