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왕」캐주얼 시크 황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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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 가장 쿨한 디자이너 브랜드 | |
새로운 패션 스타들이 몰려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재편된 세계 패션지도는 다시 새로운 주자들의 틈새를 만들었다. 그동안 권력을 누려온 럭셔리 브랜드들, 하이엔드 디자이너 브랜드들, 그리고 그 수혜를 한동안 나눠먹던 매스티지 브랜드들, 초대형 메가 브랜드들의 거품을 걷어내고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유연하고도 파격적인 주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 패션을 급격히 동질화시키는 글로벌 빅 SPA 브랜드들 사이에서 이들의 부상은 놀랍고 아름답다.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기존과 다르다’는 점, 변화한 소비자들을 정확히 읽고 있다는 점이다. 음악 미술 영화 등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통된 문화를 향유하고 그 속도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거침없이 전파되는 지금.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브랜딩하는 선배 브랜드들을 이들은 비웃기라고 하듯 말이다.
26세라는 놀라운 나이에 뉴욕에서 가장 쿨한 디자이너로 칭송받는 알렉산더 왕. 그는 그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디자인적 감각은 물론 비즈니스 감각까지 함께 지닌 디자이너로 최근 가장 핫한 디자이너로 뜨고 있다. 게다가 각종 콜래보레이션은 물론 “소비자가 나의 여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소비자 지향적이다. 럭셔리와 하이엔드라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깨고 컨템포러리로 다시 태어난 「헬무트랭」, 역시 링크띠어리로 M&A된 이후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있다.
분명히 달라진 점은 가격도, 디자인도 어포더블(고객들이 접근 가능)하다는 점. 런던의 뉴라이징 스타는 단연 「잭윌스」다. 전통적인 브리티시와 프레피룩을 신소비자층의 라이프 변화에 맞춰 훨씬 젊고 경쾌한 뉴브리티시를 창조해냈다는 점이다. 게다가 패션에 음악, 파티 등 최근 젊은이들의 귀족라이프를 접목해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파리의 뉴 러너는? 자타공인 「더쿠플스」다. 이들은 혼성 동성의 시크한 커플룩이라는 기상천외한 컨셉으로 출발했으며 스트리트룩이라는 컨셉 위에 남성복 라인과 여성복 라인을 동등하게 스타일링했다. 게다가 길거리 캐스팅된 혼성 동성커플을 등장시킨 광고사진이 파리 전역을 도배한 쇼킹한 방법도 런칭 당시 이목을 끄는 데 성공요인. 본지 패션비즈는 창간 24주년을 맞아 뉴욕, 런던, 파리에서 새롭게 부상한 새로운 강자들을 함께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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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 가장 쿨한 디자이너 브랜드 「알렉산더 왕」, 캐주얼 시크 황제로!
최근 뉴욕에서 가장 쿨한 디자이너, 젊은 나이에 성공한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6)을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2011년은 알렉산더 왕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Q 패션어워드의 ‘남성복 부문 최고 디자이너상’을 수상했고 지난 3월 초에는 처음으로 뉴욕 맨해튼 소호에 직영매장을 열었다. 파슨스대학(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을 2학년 때 중퇴한 패션신동 알렉산더 왕은 2007년 2월, 23세의 나이로 뉴욕 컬렉션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첫 쇼부터 홈런이었다.
흰 티셔츠, 가죽 레깅스, 니트 스웨터, 원피스를 내세운 쇼에서 모델 레켈린 스테인지는 ‘드디어 내가 원했던 옷이 나왔다’면서 환호했고 언론은 ‘20대 Y세대가 입고 싶은 옷의 정수’ ‘캐주얼 시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보그의 패션펀드 어워드에서 1위 수상자로 선정, 지원금 20만달러(2억2000만원)를 받았다. 2009년에는 CFDA 여성복 신인 디자이너상과 스위스 텍스타일 어워드를 거머쥐었고 2010년에는 CFDA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을, 올해에는 GQ 최고 남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20대 중반에 에디터들 칭송하는 패션계 명사로
여성복 디자이너로 시작한 그는 패션의 모든 부문에서 상을 휩쓸면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올해 수상한 GQ 남성복상으로 5만달러(5500만원)와 다커스(Docker’s)와 협업할 기회, 블루밍데일즈의 멘토링을 받게 됐다. 요즘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디자이너인 것이다. 20대 중반에 이미 에디터들이 칭송하는 패션계 명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알렉산더 왕은 모델 에린 워슨과 절친으로 메간 폭스, 메리케이트 올슨, 니콜 리치, 기네스 펠트로를 고객으로 두는 등 패션디자이너가 얻을 수 있는 명예와 직업적 성공을 둘 다 획득했다. 사업도 크게 성장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 2005년 6벌의 옷을 들고 판매처를 찾아다녔던 그가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2500만달러(29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전 세계 400여개 매장(미국 220여개 포함)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의 수장이 됐다. 현재 「알렉산더 왕」과 세컨드 브랜드 「T 바이 알렉산더 왕」으로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류를 판매한다.
5년 동안 400개 매장 290억원 규모로 성장
사업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가족들이 전담한다. 중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엄마, 재무와 마케팅을 맡은 형과 누나가 함께 사업을 이끌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처음으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새로운 도약을 기약했다. 「알렉산더 맥퀸」과 「마크 제이콥스」의 유럽?중동지역 부사장을 지낸 로드리고 바잔이 사장으로 영입됐고 그 외 재무이사와 영업이사가 고용됐다. 현재 미국 내 매출이 50%를 차지하고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1/3씩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알렉산더 왕」은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부모의 나라인 중국에서 반응이 좋을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상하이와 홍콩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올 3월 초에는 드디어 맨해튼 소호에 1호점을 개점해 리테일러로 첫출발을 알렸다. 위치는 「요지 야마모토」가 폐점한 그 자리, 소호의 그랜드 스트리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패키징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왕은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8살 때 미장원에 갔을 때 알렉산더 왕은 하퍼스 바자 잡지를 보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때 뇌리에 박힌 사진은 톰 포드의 「구치」 옷을 입은 모델이었어요. 그 사진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죠.” 그때부터 알렉산더는 모델의 이름을 외우고 포토그래퍼를 기억하는 그런 패션센스의 소유자로 자라났다.
모델 사진 품고 다녔던 패셔너블한 소년
형 데니스 왕은 “알렉산더는 항상 패션세계에 존재했다”고 할 정도다. 10대가 됐을 때 알렉산더는 엄마에게 재봉틀을 선물받았고 급기야 패션에 대한 관심은 혼자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는 런던과 파리의 패션을 직접 접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마틴 칼리지 오브 아트 앤드 디자인에서 여름학기를 수강했다. 세인트마틴은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매퀸, 후세인 샬라얀, 스텔라 매카트니, 잭 포센 등 유수의 디자이너를 배출한 명문대이다. 이후 파리와 런던을 살펴보고 그가 결정한 학교는 도나 카란, 톰 포드의 모교인 뉴욕의 파슨스대학교였다.
그는 18살에 패션에 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부 뉴욕으로 갔다. 파슨스 더 뉴 스쿨 오브 디자인은 도나 카란, 안나 수이를 비롯해 톰 포드, 마크 제이콥스, 프로엔자 슐러, 타쿤, 제이슨 우, 두리 정, 프라발 구룽 등 뉴욕 패션계의 주역을 길러낸 곳이다. 그러나 2학년을 다니던 알렉산더 왕은 돌연 중퇴를 결심한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뭔가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없었던 점이었다. 대학을 들어간 첫날부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이처럼 알렉산더 왕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투철한 청년이었다. 첫 컬렉션에서 뮤즈가 누구인가라는 보그의 질문에 그는 “내 여신은 고객”이라고 말했다.
뮤즈가 누구인가? “내 여신은 바로 고객!”
이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에서 최근 유행이 무엇인가, 웨지힐 부츠가 머스트해브 아이템인가라는 질문에 담담하게 “요새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며 “패션이란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손닿을 수 없이 멀고 제멋대로 변화하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내게 패션이란 그냥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그리고 결국에 중요한 것은 패션=판매되는 상품이란 것이다”라고 말하는 알렉산더 왕. ‘고객이 여신’이라는 그의 현실적인 대답은 패션은 상업인가 예술인가라는 오래된 질문 자체가 무색해져버리는 시원섭섭한 결론으로 이끈다. 그러나 그의 옷에는 그저 상품이라고 하기엔 깊은 감성이 녹아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캐주얼에 담긴 편안함, 섹시함, 그리고 반짝이는 위트이다. 집에서 입는 티셔츠도 되지만 클럽룩으로도 빛을 발하는 도발적인 미가 담겨 있는 것이 그의 옷이다. 똑똑한 그는 여성에 대한 미를 구현하고 환상을 창조해 내는 패션 디자이너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동시에 사업가로서 숫자를 챙기고 소비자를 연구하고 그의 ‘여신’들을 감동시킨다.
뚜렷한 비전과 동시에 비즈니스 마인드 투철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부사장 제니퍼 휠러는 “사업 초부터 그는 일에 정확했다. 품질은 한결같았고 딜리버리는 믿음직했다. 그는 말하자면 소화할 수 있는 양 이상은 씹지 않았다. 보통 젊은 디자이너들이 성공 이후 겪는 부작용이나 고통을 알렉산더 왕은 겪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형 데니스 왕 역시 “알렉산더 왕은 타고난 소비자다. 바깥에 어떤 룩이 나오고 가격대가 어떻고 하는 것을 다 꿰고 있다.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을 갖고 있으며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뚜렷한 비전을 가졌다. 우리가 생산부터 재무회계에 이르기까지 관계자를 데리고 오면 알렉산더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 즐거워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릴 적 12살 때 누나의 인테리어소품 점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그는 누나가 점포를 비운 사이 패션쇼에서 나올 만한 시끄러운 음악을 틀었고 고객들은 모두 한마디씩 불평했다. “실례하지만 집중이 안되는군요”라고. 이런 경험들은 그에게 리테일에 대해 살아 있는 지혜를 안겨줬다. 또 고등학교 때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티크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얻었고 샘플 패브릭으로 파티 드레스를 휙~ 만들어내는 등 재능을 선보였다.
「유니클로」 「케즈」 등 콜래보레이션 적극
그는 대학생 시절 마크 제이콥스에서 인턴십을 했고 그 외에도 데릭 램과 바니스 뉴욕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인턴십을 했다. “난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판매원이었다”라고 알렉산더 왕은 말한다. 그는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2008년 5월에는 「유니클로」, 2009년에는 「갭」과 옷을 디자인했고 2008년 가을에는 신발 브랜드 「케즈(Keds)」와 스니커즈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멀티숍 ‘오프닝 세리머니’와 손잡고 토트백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고 타 영역의 노하우를 간접 경험했다. 그는 빠른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만족감이 어린 나이에 성공했다고 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알렉산더 왕의 스타일 = M.O.D(model off-duty)
그는 자신의 옷을 ‘M.O.D(model off-duty)’라고 설명한다. 모델들이 집에서 쉴 때 입는 옷이라는 뜻인데 언뜻 생각하면 블랙가죽 점퍼, 티셔츠, 청바지, 부츠가 연상되는 스타일이다. 매체에서는 그를 ‘캐주얼 시크’의 대명사라고도 하고 ‘다운타운 스트리트 스타일’이라고도 하고 ‘헬무트랭’과 비슷한 스타일, 최근에는 ‘럭셔리 캐주얼’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그의 블랙 일색 고스(goth), 그런지풍(grundge)을 기억하는 매체는 ‘릭 오웬스나 다릴 K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옷은 실용적이고 입기 편한 캐주얼이면서 20대의 젊은 뉴욕 감성, 클럽룩을 좋아하는 젊은이의 시크한 캐주얼이다. 또 그는 티셔츠에 정평이 나 있는데 세컨드 브랜드 「티 바이 알렉산더 왕」의 날렵한 티셔츠, 카키팬츠, 윈드재킷은 그의 대표적인 스타일이다. “누구나 차려 입고 화려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제 옷은 보통 사람들이 쉴 때 입는 옷이고 그게 재미있는 점이다.” 알렉산더가 말한 대로 그의 옷은 캐주얼하고 프렌치 시크함이 배어 있고 때로는 가죽재킷 이미지의 펑크 로큰롤이고 때로는 자다 바로 나온 듯한 부스스한 그런지풍이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편안함 그리고 입는 사람만의 개성이다.
다운타운 스트리트 스타일의 캐주얼 시크
그의 옷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캐주얼에 보일 듯 말 듯한 섹시함이 스며 있던 그의 옷은 이제 젊은층만을 위한 잇패션이 아니다. 세련된 테일러링도 추가됐고 ‘럭셔리’라는 화려함도 그의 패션코드의 일부가 됐다. 해를 거듭하면서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진 그의 패션쇼를 보면 그가 패션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세련돼 간다는 것이 보인다. 컬렉션 초기 흰 티셔츠, 찢어진 청반바지, 카키 미니스커트, 크루넥 스웨터, 회색 트레이닝 바지나 블랙 일색의 그런지풍 등 젊은 캐주얼을 선보였던 그가 2009년 가을 컬렉션에는 티에리 뮈글러, 클로드 몬타나풍의 각진 어깨의 테일러드 수트를 선보였고 그의 스타일은 점점 성숙한 여성, 직장여성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2011년 가을 컬렉션은 고급스러운 테일러 재킷 이외에도 봄버, 패딩다운 점퍼, 아노락 후드점퍼 등 캐주얼 아이템을 밍크, 가죽소재, 니트소재를 사용해 ‘럭셔리 캐주얼’을 선보였다. 그의 재능이 정점에 달한 것 같았다. “힘들었다”고 표현한 이번 쇼에 대해서 뉴욕 타임스는 최고의 뉴욕패션쇼로 선정했다. 알렉산더 왕이 최근 두각을 나타낸 알투자라(Altuzarra)와 프라발 구룽(Prabal Gurung)을 2, 3위로 제치고 패션 관계자들의 최고 쇼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올해 ‘장인정신 살아 있는 럭셔리쇼’ 평가
수많은 언론은 그의 쇼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보그는 지난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좋은 쇼를 내지 못해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알렉산더 왕이 올해에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해 최고의 디자이너가 됐고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럭셔리 쇼를 만들었다고. GQ 남성복 디자이너상과 첫 직영 점포 개점도 축하할 일이라 덧붙였다. 알렉산더 왕의 스타일은 점점 더 무르익어 가고 있다. 젊은 신인의 재기발랄한 캐주얼웨어에서 지금은 시크한 뉴욕 스타일로 성숙한 여성의 테일러링까지 섭렵하는 그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올해 선보인 니트와 가죽의 믹스패브릭으로 만든 패딩점퍼는 캐주얼, 럭셔리, 장인정신을 모두 통섭하는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줬다.
그의 옷은 비싸지 않은 컨템포러리 가격대에 있다. 하지만 퀄리티와 럭셔리 이미지, 천재적인 감성은 그의 옷의 가치를 말해준다. 그것이 바로 20대 Y세대를 열광케 하고 뉴요커를 사로잡은 캐주얼의 마법사 알렉산더 왕의 진정한 힘인 것이다. 정장을 선호했던 이들도 캐주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의 성공을 계속 지켜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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