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색팔색’이 무슨 말인가?
얼마 전 어느 학부모 교육 자리에 갔다. 한 어머니 말이 “우리 애는 공부라면 질색팔색하면서 펄펄 뛰니 걱정”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이제 고작 일곱 살 아이다. 한창 글자와 숫자 배우기에 마음이 절로 끌릴 나이에 어째서 그리 되었을까 싶다. 질색팔색이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일까 말밑이 궁금해졌다.
'털 달린 것'이면 '질색팔색'을 하는 어머니는 그 집을 지날 때마다 욕을 한 바가지씩 퍼부었다. (조선일보 2013. 8. 6. 29면 김윤덕의 新줌마병법 ''옆집 여자'의 위험한 고백')
우리나라 지식인은 '당파'라면 무조건 질색팔색을 해야 진짜 지식인이라고 믿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당파적 지식인'은 '계몽주의1'이 아닌 '계몽주의2'의 적자다. (한겨레신문 2013. 12. 2. 25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라는 기묘한 역설')
여기서 보듯, 몹시 싫어하거나 꺼린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 줄 알겠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질색팔색’은 아예 사전 올림말도 아니다. 대신 ‘질색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쓴다. 그러면 ‘질색팔색’은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인가? ≪소설어사전≫(김윤식, 고려대학교출판부)을 찾아보니 이렇게 풀어놓았다.
질색팔색(窒塞―) 몹시 싫거나 놀라거나 꺼림. *“오, 글쎄. 애인이란 말을 하면 순옥이가 질색팔색을 하지만 우리네 속인의 눈으루 보면 애인임에 틀림없거든. 사랑하는 이성이면 애인이라구 하는 게 이 세상 어법이 아니야?” (이광수/사랑)
‘질색팔색한다’나 ‘질색한다’나 같은 뜻 아닌가. 그러면 ‘질색’로도 될 말을 굳이 ‘팔색’을 덧붙인 까닭이 궁금하다. ‘질색’에 ‘팔색’을 더해 그만큼 더 싫어한다는 뜻을 보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의 경제성으로 보면 썩 내키지 않는 선택이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질색팔색’에서 ‘질색’은 ‘칠색’이다. 본디 말은 ‘칠색팔색(七色八色)’으로, 말에서 보듯 ‘얼굴빛이 바뀌도록 놀라며 믿지 않는다’는 뜻. ‘칠색반색한다’를 비슷한 말로 들어놓았다.
그래서 말인데, 굳이 ‘질색한다’는 말을 ‘질색팔색한다’는 잘못된 말을 써야할 까닭이 없다. ‘칠색팔색한다’하고 제대로 쓰든가 아니면 ‘질색한다’로만 쓰자. (2014.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