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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30. 공감5시
제목: 원포리 화상암
1. 오늘은 양양군 원포리 화상암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어디에 있는 어떤 바위인가요?
이 바위는 강릉시 주문진에서 양양군으로 가는 경계를 막 지나면 7번국도 바로 옆에 있습니다. 주소는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라 하고요. 이곳에는 몇 개의 마을이 합하여 수동골이라는 긴 골짜기를 이루고 같은 생활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바로 그 수동골을 이루는 강물이 있는데 이를 화상천이라 합니다. 화상천은 월천리라는 곳에서 시작하여 원포리 바닷가에 이르러 끝납니다. 바로 화상천이 끝나는 바닷가 부근에 화상암이 암수로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수 화상암은 엄청 크고요, 암 화상암은 사람 정도의 크기입니다.
2. 강의 이름으로 쓰일 정도면 이 골짜기와도 깊은 인연이 있을 것 같고 마을의 상징적인 바위일 것 같은데요?
수동골에 있는 마을들은 모두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특징과 관련해서 언제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수동팔경이라 해서 읊은 글귀가 있습니다. 제가 번역을 해 봤는데요. 여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설명을 하면 길기 때문에 그냥 있는 대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水洞八景(수동팔경)>
月川瀑布(월천폭포): 달내에는 아름다운 화동폭포가 있고
遠浦歸帆(원포귀범): 머주개 앞바다에는 돛단배가 돌아오네
笠岩長川(입암장천): 갓바위 앞에는 유유히 화상천이 흐르고
池村濤聲(지촌도성): 방축말 앞에는 파도소리 힘차도다
雲岩暮鐘(운암모종): 서운암의 저녁 예불종소리 들리자
和尙初月(화상초월): 화상암 앞에서는 달이 떠오르는 구나
湖亭釣臺(호정조대): 임호정에서 한가히 낚시를 드리웠는데
望峰落照(망봉낙조): 바루봉에는 벌써 해가 넘어 가네(양양의 땅이름)
3. 수동골의 풍경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눈에 선하게 만드는 글귀입니다.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울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이곳에서도 화상암이 등장하는데, 화상암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화상암에 얽힌 전설이 강원도지와 양주지에 같은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화상암의 유래>
현남면 원포리에 있는 암석으로 약 300여 년 전 답경(踏耕) 최운우(崔雲遇)가 어린 시절에 외가에 와서 자랄 때 여러 아이들이 냇가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노는데, 다른 아이들이 잡은 고기를 답경은 도로 물에 넣어 주었다고 한다. 이때 지나가던 도승이 그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그 이유를 물은 즉 “고기가 활발히 살아가는 모양이 보기 좋아서 도로 물에 넣어 주었다.”고 대답하였다. 도승은 그 아이를 바위에 올려놓고 합장배례를 하고, 장례에 귀하고 어진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축원하고 갔다. 그래서 이 바위를 도승의 이름을 따서 화상암(和尙岩)이라 부른다.
답경 최운우의 묘지는 현남면 원포리에 있어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이곳을 지나갈 때는 배례를 하고 지난다고 한다.(양주지)
화상암이라 할 때 화상은 스님을 달리 표현하는 용어이지만, 실제로 바위의 모양도 보면 스님이 바랑을 메고 앉아 있는 모양과 흡사합니다. 나중에 최운우는 과거에 급제해서 횡성현감을 하게 되고,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과도 교류를 하게 됩니다.
4. 화상암에는 다른 이야기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먼저 마을사람들이 자식을 기원하는 바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바위>라는 다른 명칭도 있습니다. 제가 2009년도에 이곳에 들러 그 마을에 사시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들바위>화상바위는 사람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화상바위라 했어요.
화상바위에는 옛날에 치성을 드리고 그랬어요. 옛날에 아들을 못 낳아서 그런 양반들도. 우리 외삼촌도. 우리 외할머니가 저 밑에서 살았는데 딸만 서이 낳고 아들을 못 낳아 가지고 거서 치성 드리고 아들을 낳았어요.
우리 할머니 보면 내가 봤는데. 사월 초파일 날. 옛날에 상아라고 목걸이를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있었어요. 거기 쌀을. 메만 해가지고 돌미나리 파서 삶아서. 내가 같이 우리 할머니하고 같이 새벽에 거기 가서 했어요. 그래 같이 갔다가 왔는데요. 새벽 한 너덧 시 됐을 거예요. 깜깜한데서 촛불 켜놓고 빌고는 소지를 올렸어요. 우리 할머니가 그랬어요. 그렇게 빌고 나서는 아들을 낳았어요. 요즘에도 누가 와서 치성을 드리고 그래요. 옛날부터 화상바위가 명(이름 있는)바위에요.(2009.7.30.)
5. 또 다른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나요?
화암상 앞에는 화상천이란 강이 흐르는데, 강과 화상암 사이에는 평평하게 흙이 덮인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흙속에 자연적으로 이뤄진 석불이 누워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누워있는 부처라 해서 와불(臥佛)이라합니다. 형상은 관세음보살인데, 2002년 태풍 루사가 왔을 때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땅속에 묻혔답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그 와불이 마을의 재앙을 막아준다고 하더라고요. 크기는 약 7m정도이고요, 화상암이 그 와불을 향해 읍하는 형상을 하고 있답니다.
6. 화상암에 기대는 마을사람들의 의지가 상당함을 볼 수 있군요. 그럼 마을에서는 이곳에서 마을행사도 할 것 아네요?
원포리 마을에서 화상암은 마을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들 개개인의 기원은 물론 마을공동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바위에서 행해지니까요. 그 중 현재 가장 큰 행사는 섣달그믐날부터 설날 새벽까지 진행되는 <해돋이 축제>와 여름에 행하는 해수욕장 개장제입니다. 두 행사가 모두 이곳에서 행해집니다.
먼저 해돋이축제는 마을주민 모두 화상암 옆 해변 솔숲으로 나와 진행합니다. 이 날은 마을에서 이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떡국을 무료로 제공하고, 꽁치를 구워먹을 수 있게 합니다. 다만 커피만 천원을 받고 판매를 하였습니다. 마을 농악대가 나와서 한바탕 노는 것은 당연하고요. 장작으로 불을 밝혀 섣달그믐날부터 밤을 새워 가면서 해돋이를 봅니다. 이때 해가 돋을 때쯤이면 마을에서는 제물을 준비해서 화상암으로 가서 제사를 지냅니다. 축문도 읊고, 소지도 올리면서 마을공동체가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개인 소지까지 올리면서 개인의 소원도 축원합니다. 그러고 나서 멋진 일출을 감상하게 됩니다.
또 마을에서 행하는 행사는 해수욕장개장을 기해서 지내는 제사입니다. 이날은 바닷가에서 지내는 용왕제, 화상암에서 지내는 화상암제, 바닷가 솔숲에서 산신께 지내는 산신제가 함께 진행됩니다. 같은 공간이지만 공간을 조금씩 달리해서 순서대로 제사를 지냅니다. 모두 해수욕장의 무사고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행위입니다. 문제는 해수욕장개장을 하면서도 화상암에서 제사를 올리는 것을 꼭 한다는 겁니다.
7. 화상암이 원포리마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런데 해수욕장도 마을에서 개장을 한다고 했는데, 그 풍광은 어떤가요?
아주 아름답습니다. 바다와 솔숲이 어우러져서 멋진 풍광을 만듭니다. 솔숲에서는 야영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놓았고요. 화장실이면 샤워장도 잘 갖춰져 있고요. 화상암 옆에는 멋진 정자까지 지어놓아서 바다와 화상천을 함께 조망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서 수동골쪽으로 조그만 들어가면 각종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요. 무엇보다 먹거리가 아주 일품입니다. 막국수가 유명한 집이 있고요. 산에서 방목을 하는 흑돼지의 수육도 맛볼 수 있습니다.
<2010년 해맞이 축제>
필자는 2010년 1월 1일 원포리 해맞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춘천에서 아침 4시에 출발했다.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예상 외로 많은 차량들이 있었다. 특히, 인제를 지나는 국도에서는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도로가 꽉 찼다. 혹시 늦는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인제군 한계리 갈림길에 이르자 대부분의 차량은 고성과 속초 방면으로 향하고 한계령 방면은 의외로 한산했다. 그래도 평상시 보다는 많은 차량이 있어서 한계령휴게소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원포리에 도착한 시간은 6시 40분경이었다. 벌써 마을사람들과 일부 관광객들이 나와서 불을 피워놓고 떡국을 먹고 있었다. 마을이장이 여름에 만난 적이 있다고 필자를 먼저 알아보았다. 제사를 주관하는 장재천 제보자는 제를 지낼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6시 57분 경 제사를 차리기 시작하였다. 제사를 바닷가에서 지내는 줄 알고 있었는데, 제물을
들고 모두들 화상암 쪽으로 갔다. 화상암에 이르자 각자 들고 온 돗자리며 제상이며 제물을 화상암 앞에 차렸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서 깜깜했다.
제상은 접이용 밥상을 사용했고, 그 위에 시루떡을 방앗간에서 쪄온 대로 올려놓고, 양쪽에 촛불을 켜고, 앞에는 향을 피웠다. 바람이 몹시 불어 촛불이 꺼질 것을 대비해서 종이컵을 양쪽으로 씌웠다. 촛불은 소지를 거의 다 올릴 때까지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다. 시루떡 앞에는 포, 사과, 배, 감, 대추, 밤을 놓았다. 그리고 제주(祭酒)는 막걸리를 두 병 사다가 썼다. 돼지머리는 올리지 않고, 지방도 쓰지 않았다.
제물이 다 갖춰지자,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장재천 제보자가 집례를 보고, 제관은 조근행(72, 남) 노인회장이 맡았다. 제관이 술을 따르고 재배를 하였다. 술을 올리면서 원포리가 부자마을이 되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고축(告祝)을 하였다. 축은 장재천 제보자가 써 와서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경인 1월 1일 경진
리 대표 김동훈 노인회장 조근행
일출과 소원을 비는 장면(2010)
감소고우
일월성신 화상암신위
기축년이 가고 경인년 새해를 맞아 국태민안하고 원포리 주민일동 만수무강하고 소원성취 이루도록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근이청작 포과 지천우신 상
향
지난 해와 다른 점은 화상암신위라는 내용이 더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축을 할 때 한자로 된 부분은 리듬을 타고 읊고 한글로 된 부분은 읽듯이 하였다.
고축이 끝나자, 집례자가 “모두 절하세요.”라고 하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절을 하였다. 그 다음은 따로 의식을 행하지는 않고, 잔을 드리고 싶은 사람은 나와서 잔을 올리라고 하였다.
추위를 녹이며 꽁치 구워먹는 장면
두 번째 잔을 올린 사람에게는 아들 낳게 해달라고 집례가 했다.
그 다음 소지를 올렸다. 소지는 먼저 축문을 쓴 종이를 태웠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소원성취를 비는 소지입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원포리 사람들 무탈하게 소원성취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소지를 또 올렸다. 소지가 잘 오르자 모였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다음은 소지를 올리고 싶은 사람들 오라고 해서 올렸다. 정용환 등이 소지를 올렸다. 그러면서 소지가 잘 오르자, 금년에 돈 잘 벌겠다고 했다.
소지가 끝나자, 음복을 했다. 음복은 제관인 노인회장부터 했다. 음복이 끝나고는 제사가 모두 끝났다. 고수레는 하지 않았다. 제사가 끝나자 차렸던 제물을 들고, 청소를 한 다음에 자리를 떠났다.
떡국을 장만하는 장면
참가자는 모두 7명이다. 복장은 따로 갖추지 않고 평상복을 입었다.
제물을 차리는 사이에 화상암 주변을 보았더니, 개인적으로 와서 제를 지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곧, 화상암 오른쪽 갈라진 바위틈에 작은 돌을 메우고 그 위에 타다만 양초와 붉은 막대향이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요구르트가 3개 놓여 있었다.
이날 축제장에서는 떡국과 커피와 꽁치와 술을 내었다. 커피는 한 잔에 천 원씩 받았으나 나머지는 모두 무료로 제공했다. 음식 장만은 원포리 부녀회에서 했다.
마을 주민들은 새벽 3시부터 나와서 축제 준비를 했다. 해수욕장에 천막을 치고 음식 준비를 했으며, 드럼통을 몇 개 갖다놓고 장작을 넣어서 불을 피웠다. 불을 피워 난 숯불로는 꽁치를 구워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떡국을 먹고 꽁치를 구워먹으며 해가 뜰 때를 기다렸다.
한동안 해맞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꽹과리와 북을 치면서 흥을 돋웠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더니 마지막에 해가 뜰 때쯤에는 약 3,4백 명은 되었다. 해안도로로 오가는 차량도 많았는데, 날씨가 워낙 추우니 승용차 속에서 해를 맞는 사람들도 있었다.
날이 맑아서 일출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캄캄한 바다가 차차 밝아지더니, 검붉게 변했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검은 수평선을 따라 해가 솟기 시작하였다. 차차 올라오더니 금세 제 모습을 모두 드러냈다.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었고, 각자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었다.
해가 다 떠오르자, 사람들은 썰물처럼 자리를 떠났다. 파도가 세차게 소리를 내며 철썩였다. 그렇게 원포리 해맞이 축제는 끝났다.
원포리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원해 본다.
<원포리 해수욕장 체험행사>
원포리 해수욕장에서는 2009년 8월 2일부터 10일까지 체험행사를 열었다. 축제의 행사안내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사안내
①동해안 명물 대북
맨손 조개잡이(대북) 체험행사
8월 1일-10일까지 2시 행사
참가비 4,000원 어린이 2,000원
8시-12시까지 접수
접수 장소 현장
맨손체험 10시-3시까지
농산물 원가 판매
②뗏목 타기 체험행사
뗏목체험참가신청 10시-3시
접수장소 현장
참가비 무료
참가자 농산물 선물증정
감자 1박스
<원포리 해수욕장 개장제사>
원포리는 마을에서 지내는 제사로 서낭제가 있었으나 2001년 산불로 인해 서낭당이 불에 타서 없어졌다. 그 이후로 서낭제는 이 마을에서 없어졌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새로운 형태의 마을제사를 지내고 있다. 곧, 원포리 해수욕장을 개장(7월 15일)하면서 지내는 제사이다. 해수욕장 개장제사에는 용왕제, 산신제, 화상암제 순으로 하루에 행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없어진 원포리 서낭제는 이 지역 어디나 그렇듯이 성황신, 토지신, 여역신이 모셔지고 있었다. 그런데 해수욕장 개장제를 지내면서 신은 다르지만 세 명의 신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3곳 다 지낸다.
그러면 이들 제사에 대해서 제보자의 얘기를 기록해 본다.
⓵ 용왕제
용왕제는 해수욕장 개장제를 지낼 때(7월 15일 오전 10시) 제일 먼저 지낸다. 장소는 원포리 해수욕장이다. 바닷가에서 상을 차려놓고 바다를 향해서 지낸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시루떡, 과일, 술을 놓는다. 제관은 이장이 되어서 초헌을 하고, 아헌은 면장이 오면 면장이 하고, 노인회장이 종헌을 한다. 축문도 읊고, 소지도 올린다. 축은 장재천(70) 제보자가 써서 읊는다. 소지는 축을 쓴 종이를 태워 올린다. 따로 소지종이를 쓰지 않는다.
제를 지내고 돼지머리는 삶아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는다.
고수레는 전체적으로 조금씩 떼어서 바다에 뿌리면서 축원을 한다.
여기 해수욕장을 개장 한지가 10년 가까이 되는데, 이 제사를 지내서 그런지 아직까지 인사(人死)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⓶ 산신제
산신제는 해수욕장에 딸린 소나무 숲에서 지낸다. 소나무 숲은 현재 야영장으로 쓰고 있는데, 바다 반대쪽 소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 돌 위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이 비석은 “監察 鄭公龍和 顯德碑(감찰 정공용화 현덕비)”라고 큰 글씨가 쓰여 있다. 큰 글씨를 제외하고는 마모되어서 읽을 수가 없다. 비석은 지금 말하면 양양군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는데 양주지 인물조에 보면 정용화라는 사람이 나온다. 이름의 한자까지 같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鄭龍和
春川農業學校를 졸업하고 공무원기술관으로 農政에 힘썼다. 襄陽郡 내무과장을 역임하다가 퇴직 후 基丁里에서 農園生活을 하다가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 내용으로 봐서는 정확히 언제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춘천농업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으니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이 사람이 비석의 사람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름의 한자와 감찰이라고 적은 것으로 봐서는 동일인일 수 있다. 이 마을에서는 이 비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이 비석 앞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곳이 산 주령이기 때문에 여기서 산신제를 지낸다. 곧, 태백산과 이어지는 곳이라 한다. 그러니 이 비석의 주인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우연히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산신제는 주과포만 제사상에 올린다.
⓷ 화상암제
화상암제는 올해(2009년)부터 시작했다. 지내게 된 계기는 현불사 스님 때문이었다.
현불사 스님이 오셔서 그동안 화상암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았느냐. 화상암 신이 스님에게 나타나서 호통을 쳐서 혼이 났다고 하였다. 스님이 와서 화상암 보존 차원에서도 그렇고 관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제보자가 알았다고 하였다. 이에 제보자가 이장하고 상의해서 술 한 잔이라도 올리자고 하니, 이장도 좋다고 했다. 그 일이 있어서 올해부터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화상암에는 떡과 주과포만 올린다. 돼지머리는 하지 않는다.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축문은 하나로 세군데 다 이름만 바꾸어서 읊는다고 한다.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썼다.
(원문)
維歲次甲申七月丁子朔二十六日丁卯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 二十一~四
庚辰年八月二十日戌時장재천山王제자
丙申年九月一日辰時한수경山王제자
敢昭告于
오대산山王大神 今爲 불손한점 용서하시옵고
앞길을 열어 소원성취 원합니다
謹以淸酌 脯果 祗薦于神尙
饗
(번역)
해가 바뀌어 갑신년 7월 26일입니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원포리 21~4번지에 사는
경신년 8월 20일 술시 생 장재천 산왕제자와
병신년 9월 1일 진시 생 한수경 산왕제자는
감히 고합니다.
오대산 산왕대신 오늘 불손한 점 용서하옵시고
앞길을 열어 소원성취를 원합니다.
삼가 맑은 술과 포와 과일을 신께 정성으로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