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마당
극락 다녀온 관징 스님과 극락 가는 사람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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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관정 스님 모셨던 일을 회상하며!
굉오(명오, 청평암 주지)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었던 나는 대둔산 안심사에서 불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스님, 극락 다녀온 스님이 쓴 책이랍니다.”
대전에 사는 신도가 작은 책자를 한 권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극락세계 유람기」라는 그 책은 내용이 많지 않아 단숨에 읽어보니 참 특별한 이야기였다. 당시 우리 절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절에서 ‘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신도들을 위해서 극락을 직접 다녀오신 스님을 모셔서 법문을 들어보면 신도들이 크게 신심을 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5월 불교신문에 관정 스님이 한국에 오셔서 강진 백련사에서 크게 법회를 한다는 소식이 났다. 여기저기 연락을 해서 관정 스님의 일정을 알아냈다. 선용 스님과 상의하여 당시 도시 포교를 위해 조그마한 포교당으로 운영하던 약사암에서 처음으로 초청법회를 갖게 되었다.
관정 스님 일행은 5월 22일 강진에서 큰 법회를 갖고 광주 → 경주 → 보성 → 울산 관음암을 걸쳐 6월 12일 저녁 약사암에 도착하셨다. 일행은 굉선 스님, 굉주 스님, 굉덕 스님, 그리고 통역을 하는 강거사가 함께 오셨다. 이날 전남대학교 김지수 교수도 「화두 놓고 염불하세」라는 책이 처음 나왔다고 가지고 와서 여러 분께 널리 알리고 나에게도 한 권을 주었다. 김교수는 중국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관정 스님과 법담을 나누었다. 그날 밤 관정 스님은 나에게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굉오라는 법명을 주셨다. 굉자는 임제종 항렬자라고 한다.
다음 날인 6월 13일 열린 법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법회를 하기 전에 스님들은 개인별로 접견하였는데 그 때 오대산에서 출가한 덕행 스님이 큰스님에게 귀의하였다. 법회를 마치고 마정수기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극락에 가게 될 것이라는 수기라고 설명하시고 진지하게 모든 참석자들에게 수기를 해 주셨다. 이때 김지수 거사는 자당님을 모시고 와서 마정수기를 받았다. 저녁에 관정 스님을 지극히 따르는 수원의 두 보살이 아주 으리으리한 식당으로 스님들을 모두 초청하였다.
같은 해(2000년) 10월에 관정 스님이 다시 한국에 오셨다. 그래서 내가 불사를 하고 있던 대둔산 안심사에 다시 모셔 법회를 가졌다. 대전 관음사에서 법회를 마치신 관정 스님을 차를 가지고 가서 모셔왔다. 이때는 굉선 스님, 굉천 스님, 견성 스님과 함께 통역인 강거사가 함께 모시고 다녔다.
산사라서 많은 신도들이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신도들이 참석하여 법문을 듣고 마정수기를 받았다. 이때 나는 또 다른 곳에 토굴을 세울까 해서 땅을 보아놓은 것이 있었는데 관정 스님에게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좋은 자리라고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셨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절에서 법회를 마치고 강원도 주문진에 있는 정토사(주지: 만덕 스님)로 가신다기에 함께 모시고 갔다. 그때는 마침 가을이라 안심사에 있는 큰 감나무에 많은 감이 열려 홍시를 한 짝 싣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뒤 나는 봉정암에서 10년 가까이 수행을 하다가 2007년부터는 청평에 있는 골짜기에 터전을 잡고 말년을 보내고 있다. 젊어서부터 말년에는 해인사 같이 여럿이 모여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세암 10년, 대둔산 10년, 봉정암 10년, 30년을 산속에서만 지냈고, 한 때 지리산에서 좌탈입망한 사형의 토굴에 가서 수행하기도 했다.
내가 산에서 내려온 것은 구한말 백용성 스님같이 자급자족하는 절을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맑은 물 흐르는 꽃나무 울타리 세상으로 변한 청평암에서 살아생전 극락처럼 산다는 발원을 가지고 이곳에 극락처럼 불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려고 온힘을 다하고 있다. 장차 이 청평암 골짜기 위에는 선방, 아래는 염불당을 세워 재가 총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는 정토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내가 관정 스님을 처음 만난 2000년에 관정 스님은 지금 내 나이보다 7살이나 많았지만 전국을 돌아다니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앞을 적어도 10년은 이곳에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공동체를 세워 생활불교를 실천하는데 앞장서려고 한다. 지금 실시하고 있는 ‘군 법당 108사 순례법회’ 국내외 장학금 지급‘ 같은 것은 모두 그러한 목적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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