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욱신 기념관(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2001년 3월 12일 미국 작가 로버트 러들럼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들은 스릴러thriller 소설로 분류된다. 〈매트록 페이퍼〉, 〈오스트먼의 주말〉, 〈본 아이덴티티〉 등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스릴러물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과 빠른 액션 장면으로 내용이 점철되어 있다는 뜻이다.
러들럼은 “나는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 등 너무 방대한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광신자들에 의해 권력이 남용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도 했다(네이버, 《해외 저자 사전》, 〈로버트 러들럼〉). 〈아마야 아키르〉의 주인공 아마야 아키르가 “모든 권력에 죽음을!” 하고 외치는 것도 그런 인식의 결과이다. 그녀는 가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대 권력에 맞서고, 마침내 그들을 응징한다.
광기의 권력 이야기는 현실에도 비일비재하다. 8세기 말 ‘미인대회’ 우승 덕분에 동로마제국 황세자비로 봉해졌던 이레나는 뒷날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가 된다. 그러나 이레나의 권력 광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이레나는 아들을 죽인 지 5년 만에 반란을 맞아 유배지 레스보스 섬에서 숨을 거둔다.
우리나라 대표 사례는 조선 세조의 칼부림이다. 그는 조카 단종은 물론 안평대군을 비롯한 여러 동생들도 죽인다. 왕권 강화에 반대해 모반을 꾀한 70여 선비들도 참살한다. 팔다리를 제각각 줄로 꽁꽁 묶은 후 그 줄을 사방으로 잡아당기는 말들에 채찍을 가해 온몸을 찢어 죽였다. 박팽년을 직접 고문해 절명시키고도 모자라 그 아버지, 세 동생, 세 아들까지 죽였다.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었던 천우신조 덕분에 박팽년의 손자 한 명이 목숨을 부지했다. 그 유적이 바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의 육신사六臣祠와 태고정太古亭이다. 그곳에 가면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마저 쫓을 건가”
라는 박팽년의 시조가 떠오른다.
금을 캘 수 있는 강이라 하여 그 강 모든 물에서 금이 나지는 않는다. 옥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권력을 민중이 따르지는 않는다. 기원전 671년 오리엔트 최초의 통일을 이룬 아시리아는 60년 만에 망했고, 기원전 221년 중국을 처음으로 제패한 진은 통일 15년 만에 사라졌다. 둘 다 권력을 난폭하게 휘둘렀다.
공자는 “폭정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고 했지만, 동시대 같은 노나라 학자 좌구명은 “여론은 쇠도 녹인다衆口鑠金”고 했다. 좌구명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무식한 정치가에게는 아마야 아키르가 찾아갈 것이다.
'보물' 태고정 :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사육신 직계 유일한 남자 후손)이 세운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