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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지사랑모임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스니커즈
조선시대 희귀자료 47개 모음

001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경복궁 향원정(香遠亭)경복궁 후원의 정자.
인공연못인 향원지에 작은 섬을 만들고 2층 정자를 세워
나무 구름다리 취향교(醉香橋)를 통해 건너 다니게 했다.
아래와 위층이 같은 크기이며 겹처마와 육모지붕으로 단장한
화려한 정자다. 고종 초기인 1860~70년대에 지어졌는데,
추녀마루가 모이는 곳에 탑 모양의 기와장식을 얹어 치장했다.
002 경복궁 강녕전(康寧殿)
경복궁 강녕전(康寧殿)국왕의 침전(寢殿).
정면 11칸, 측면 5칸의 큰 건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1917년 창덕궁 희정전(熙政殿)이 소실되자 강녕전을 헐어
그 재목으로 중건했다.
현재 경복궁에는 강녕전이 새로 복원됐다.
003 경복궁 집옥재(集玉齋)
경복궁 집옥재(集玉齋)경복궁이 중건된 뒤에 건립된 고종의 서재다.
중국풍 건물로 장방형의 높은 석조기단 위에 세워졌다.
중앙에 돌계단이 있다. 왼쪽의 팔각 2층 건물은 서고인 팔우정(八隅亭).
오른쪽으로 언뜻 협길당(協吉堂)이 보인다.
004 덕수궁 함녕전(咸寧殿)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일대 원래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리던
덕수궁은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퇴위하고 머물면서
궁호가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함녕전은 황제의 침전으로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환궁하며 세운 전각인데, 1904년 화재로 소실돼 중건하였다.
1919년 1월 고종은 이곳에서 승하했다.
















큰 사찰이 있던 곳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형태가 특수하고 화려함과 기교에 있어 조선시대의 석탑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021 원각사비
원각사비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 1471년에 건립된 것으로
높이 4.9m, 비신(碑身) 너비 1.3m이다. 보물 제3호.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은 대리석이다.
탑골공원에서 놀던 아이들이 사진의 모델이 되었다.
022 노량진 도선
노량진 도선노들나루라고 불린 노량진은 서울과 과천·시흥을 연결해
충청도와 전라도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1910년대 인도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야 했다.
023 관왕묘(關王廟)
관왕묘(關王廟)관우(關羽)를 받들기 위하여 건립한 묘당으로
지금의 신설동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남대문 밖에 건립되었는데,
이후 동대문 밖에도 동관왕묘가 건립되었다.
이 동관왕묘는 1602년에 완성된 것으로 중국의 관왕묘를
그대로 본떠 지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한가롭게 놀고 있다.
024 북한산 산영루
북한산 산영루 북한산 자락에 있던 누각. 현재는 주춧돌만 남았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정취를 즐기던
시인묵객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025 한강에서 얼음 깨고 낚시
한강에서 얼음 깨고 낚시추운 겨울,
한강이 얼면 강태공들은 한강에 나가 빙판에 구멍을 뚫고 낚시를 했다.
한 가족일까, 손에 쥔 물고기를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낚시가
이들의 생업임을 짐작케 한다.
026 마포 풍경
마포 풍경 마포는 용산강이 합류하는 한강 북안의 포구로,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식을 부리던 교통의 요지였다.
포구 주변의 경치가 수려해 시인묵객들이 즐겨 이곳의 경치를 예찬했다.
인근에 정자나 누각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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