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면 관내 서촌 6개리 중 유암리(遊岩里)를 제외한 5개리(사지원, 장발, 만종, 별방, 사이곡리)에서 대부분 출생한 우리들은 6.25 한국전쟁에 이어 4.19 의거, 5.16 혁명 등 한국역사의 극적인 격동기와 시련기를
거치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낸 다음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1963년 3월 별방초등 학교 (別芳初等學校)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6년간 우리들은 틈틈이 학교 운동장
왼쪽 구석에 설치된 대형 회전그네의 쇠줄 손잡이를 잡고 새처럼 허공에 몸을 띄우거나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열심히 학업연마와 인격도야 및 심신단련에
매진해 왔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운동장 오른쪽으로나가 사이곡천 (沙而谷川)을 건너가서 학교 옆산 절벽 밑에서 솟아나오는 굴물샘의 물로 목을 축이곤 했다.
그때 나의 고향인 사지원리(斜只院里)에서는 우리 집 바로 근처에 하원분교에서 전학 온 이국한이 살았고, 사지원천 건너편에 김인숙, 정월자와 윤영숙이 살았다. 거기서 윗동네로 올라가면 김용환과 곽창덕, 개울을건너 태쟁이 쪽으로
더 올라가면 박영옥과 여러 차례 학급 반장을 맡았고 현재 별방초교
21회 동창회 카페 공동 운영자인 임양수[임병근]가 살고 있었다. 거기서 산길를 따라 한참을 오르면
태쟁이가 나오는데 씨름과 육상 등에 출중한 실력을 보여주던 천병주와
천병연이 거기 살았으며 또 한참을 올라가다 왼쪽으로 길을 잡아 걷노라면
어은동(魚隱洞)이 나오는데 강철희와 권오준이 거기 살았다.
학교에 가고 올 때는 우리 집 근처의 친구들은 비록 멀기는 하나 신작로(新作路)를 따라 걸었지만 윗동네의 친구들은 험한 복고개를 넘어 다녔으며, 그보다 더 위에 살던 친구들은
각골 고개를 넘어서 먼길을
통학했다.
나도 친구들을 따라 하교길에 몇 번 복고개를 넘은 적이 있었는데 고개를 오를 때 지형이 아주 가파르고, 반대편으로 내려올 때는 급경사인지라 거의 뛰다시피 산을 내려와야 했다. 월자와 영숙이네만 편의점을
했을 뿐 우리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농업에 종사했기에 하교 후나 방학 때는 농삿일을 도우면서 숙제 등을 하느라고 고되고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장발리(長發里)는 오기산[옥계산, 玉鷄山; 754 m]을 경계로 하여 어상천면 율곡리와 갈라지는데 그 중 우리 마을과 가장 인접한 곳인 도방동(道傍洞)에는 나와 9년간(별방초교, 영춘중)을 동문수학한 3명의 친구들인 김완택[김용우, 현재 별방초교 21회 동창회 회장으로 작년
12.5-6, 용평 리조트에서 졸업 40주년 기념행사를 성공리에 개최했음],
마라톤을 잘 했던 안종경과 박종윤이 살았다. 거기서 서쪽으로
조금 이동하다 만나는 선돌[입석동, 立石洞]에는 도중에 타학교에서 전학온 김미경이 살았으며,
그 안쪽 마을인 소새골[소학동, 巢鶴洞]에는 6학년 때 제일 키가 크고, 출석번호
1번인 김문규가 살고 있었다.
거기서 서진을 계속하여 별방을 지나 만종리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왼쪽에 있는 배골[이곡동, 梨谷洞]에는 남학생 중 유일하게
6년 개근상을 수상했던 권재용과 허유준, 조무형이 살았으며 조금 위로 더 올라오다 좌측에 있는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원장발 (原長發)이 나오는데 거기에 이용대, 이인숙과 이춘자가 살았다.
만종리(滿宗里)에는 우리 별방초교 교가에 나오는 삼태산(三台山; 876 m)과 더불어 장발리 뒷산 옥계산과 이 삼태산을 잇는 유명한 농우재가 있다. 별방초교에서 개울을
따라 삼태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아담한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 김주동,
김주봉, 피정복이
살았으며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터골이 나오는데 거기에 허상호,
허재국, 서대원, 허순범, 김경애, 김길용 과3학년 때 타교로 전학간 후 현재
별방초교 21회 동창회 카페지기를 맡고 있는 조원희가 살았다. 조금 더 위쪽 마을에 조성환, 허종범,
유필자, 허옥남과
영춘면장을 역임한 박한규가 살았으며 삼태산 자락에 있는 돌토반[석간동, 石間洞]에는 장두익, 전경석, 이종대가 살았다. 장발리처럼 만종리에도 나와 9년간(별방초교, 제천고)을 동문수학한 김주봉과 전경석이 살았는데 우리 셋은 몇 차례 제천에서부터 도보로 어상천을 지나 그 험한 농우재를 넘어 만종리까지
함께 오기도 했다.
우리의 모교가 있는 별방리(別芳里)의 장터[주막거리]에는 주말에 장이 서면서 상공업과 도시문화가 점차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에 정규활 선생님의 따님인 정향숙, 김동열, 공수남,
허영희와 도중에 타교에서 전학온 김기자가 살았다.
별방에서 사지원의 어은동으로 넘어가는 산자락에 있는 각골에는정한섭, 권창수[권영달]가 살았다. 장터에서 모교를 지나 사이곡천을 옆에
끼고 신작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 보면 비교적 인가가 많은 동네인 원별방(原別芳)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현재 별방초교 21회 동창회 공동 운영자 및 단산중(丹山中) 16회 동창회 카페지기와 MBC TV의 기자로 맹활약
중인 허영수와 허균, 유동열,
유종열, 유재홍 그리고
현재 별방초교21회 동창회 총무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황병윤이 살았다.
끝으로 사이곡리(沙而谷里)는 원별방과 유암리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여기에는 별방초교 21회 동창회의 초창기 시절에
총무를 맡아 다방면으로 수고한 박미권, 영춘초교에서 6학년 때 전학온 단거리 육상선수 박동남과 허동주,
류봉기, 엄석룡과
이기용 선생님의 따님인 이현숙, 이춘용 선생님의 따님인 이미란과, 허미자, 유덕인[유덕윤]과여러 운동부문에 뛰어난 소질을 보이던 김옥자가 살았다.
우리가 별방초교에서 6년간의 학업을 마치고1969년 2월 졸업식에 참석한 후
별방초교(別芳初校) 제 21회졸업생으로서
정든 교문을 나설 무렵, 영춘면 관내에 있는 다른 두 초등학교인 영춘초교(永春初校) 학생들은 제 56회 졸업생으로,
동대초교(東大初校) 학생들은 제
12회 졸업생이 되어 우리들처럼 6년간 정든 교정을 떠나 중학교로 진학하거나 가사업무를
돕게 되었다. 우리들이 별방초교 21회 졸업생 카페에서 자주 만나듯이
그들도 영춘초교 56회 졸업생 카페와 동대초교 12회 졸업생 카페를
통해 자주 만나고 있다. 언제 한번 영춘면 관내 이 삼교(三校)의 1969년 2월 졸업생들끼리 서로 만나 운동이나 오락
등으로 상호간의 우의와 친목을 다짐은 물론 여러 정보나 소식을 공유하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보면서 이제 이 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정정사항이나 보충할 내용이 있으면 언제라도 우리 친구들이 댓글 등을 통해 게시판에 의견을 올려주시면
즉시 글의 내용을 수정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첫댓글형규 덕분에 동네 구석 구석을 기억나게 해서 참으로 좋고 친구 이름 하나 하나 기억을 되살려 써내려가는 정성과 노력에 감사 하며..69년 2월 졸업이후 아직 얼굴도 못 본 친구도 이마 이글을 보면 감탄 할 거란다... 멀리 캐나다에서 이런글을 올려 주니 더더욱 친구의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네..자주 와서 좋은 글 추억과 기억의 저편에 있는 친구의 정을 돈독히 하는 글 부탁 해 보면서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으로 댓글 달고 간다..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 다 잘되고 건승을 빈다.
경석, 용우, 경애!!! 별방초교 졸업 후 30여년이 지나서야 이런 공간에서 서로 만나 정답고 감회어린 댓글을 서로 주고 받게 되었으니 옛날 우리들이 공부하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 하던 일이었지. 이 글을 쓰느라 주말을 보내며 이 카페에 허영수 친구가 올려준 '우리 고향 다시보기'와 우연히 '단산중(丹山中) 16회 동창회 카페'를 발견, 제고시절 학교에서 무협지 얘기로 서로 열을 올리던 옥계산인 안대영(단산중 16회 출신) 친구의 유려한 여러 글들을 많이 참고해서 이 글을 완성했다네. 다시금 우리가 공부하며 뛰놀던 영춘면내 서촌(西村) 5개 마을의 지형적, 문화적, 사회적 위치와 중요성을 실감했다네. 위의 댓글 너무너무 고맙네.
우리 동창들 모두들 훌륭하고 똑똑하며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정많고 ...모두들 좋은 친구들이다!..형규는 훌륭한 문인으로 동창중 많이들 궁금해 했는데 늦었지만 이렇게 다시 온라인 상에서라도 만날수 있어 참 다행이다 !...올려준 글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속에 묻혀도 보고 ....형규! 그곳에서 생활하며 아름다운 풍경이나 형구 모습이 담긴 사진도 좀 올려 주시게나!...비록 가끔씩 이라도 들리다 보면 좋은글이며 그냥 일상 생활의 이야기도 좋고... 자주보고 들으면 더 자주 찾게 될테니 말일세 ...고마우이!...
양수, 사진 올리는 작업은 여러 번 독자적으로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로 돌아가서 천상 내일 1개월간의 의료봉사를 마치고 케냐에서 귀가하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네.이렇게 오랜 세월 동문수학(同門受學)한 친구들의 이름들과 마을마을을 글로써 답사해 보았지만 여러 사연과 이유로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친구들이 있어 안타까울 뿐이네. 비록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먼저 고인(故人)이 된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우정도 잊지 말고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기로 하세. 조종사로서의 삶이 늘 긴장되고 고단할텐데 안전, 점검, 그리고 건강을 철칙으로 삼아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네.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의 댓글 너무 고맙네.
첫댓글 형규 덕분에 동네 구석 구석을 기억나게 해서 참으로 좋고 친구 이름 하나 하나 기억을 되살려 써내려가는 정성과 노력에 감사 하며..69년 2월 졸업이후 아직 얼굴도 못 본 친구도 이마 이글을 보면 감탄 할 거란다...
멀리 캐나다에서 이런글을 올려 주니 더더욱 친구의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네..자주 와서 좋은 글 추억과 기억의 저편에 있는 친구의 정을 돈독히 하는 글 부탁 해 보면서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으로 댓글 달고 간다..항상 건강하고 하는 일 다 잘되고 건승을 빈다.
친구야 고맙고 감사한다 친구덕분에 잠시나마좋은 추억을 생각하게 되는구나ㅋㅋㅋㅋㅋㅋ
반갑다 찬구야 초등학교시절 공부잘하고 조용한 친구로 기억되면서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많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작가님이 되셨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주길바래
경석, 용우, 경애!!! 별방초교 졸업 후 30여년이 지나서야 이런 공간에서 서로 만나 정답고 감회어린 댓글을 서로 주고 받게 되었으니 옛날 우리들이 공부하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 하던 일이었지. 이 글을 쓰느라 주말을 보내며 이 카페에 허영수 친구가 올려준 '우리 고향 다시보기'와 우연히 '단산중(丹山中) 16회 동창회 카페'를 발견, 제고시절 학교에서 무협지 얘기로 서로 열을 올리던 옥계산인 안대영(단산중 16회 출신) 친구의 유려한 여러 글들을 많이 참고해서 이 글을 완성했다네. 다시금 우리가 공부하며 뛰놀던 영춘면내 서촌(西村) 5개 마을의 지형적, 문화적, 사회적 위치와 중요성을 실감했다네. 위의 댓글 너무너무 고맙네.
우리 동창들 모두들 훌륭하고 똑똑하며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정많고 ...모두들 좋은 친구들이다!..형규는 훌륭한 문인으로 동창중 많이들 궁금해 했는데 늦었지만 이렇게 다시 온라인 상에서라도 만날수 있어 참 다행이다 !...올려준 글 덕분에 아름다운 추억속에 묻혀도 보고 ....형규! 그곳에서 생활하며 아름다운 풍경이나 형구 모습이 담긴 사진도 좀 올려 주시게나!...비록 가끔씩 이라도 들리다 보면 좋은글이며 그냥 일상 생활의 이야기도 좋고... 자주보고 들으면 더 자주 찾게 될테니 말일세 ...고마우이!...
양수, 사진 올리는 작업은 여러 번 독자적으로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로 돌아가서 천상 내일 1개월간의 의료봉사를 마치고 케냐에서 귀가하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네.이렇게 오랜 세월 동문수학(同門受學)한 친구들의 이름들과 마을마을을 글로써 답사해 보았지만 여러 사연과 이유로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친구들이 있어 안타까울 뿐이네. 비록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먼저 고인(故人)이 된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우정도 잊지 말고 늘 기억하면서 살아가기로 하세. 조종사로서의 삶이 늘 긴장되고 고단할텐데 안전, 점검, 그리고 건강을 철칙으로 삼아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네.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내용의 댓글 너무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