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자신의 친자식을 낳은 후궁도 죽였고 점치는 맹인도 죽였습니다. 여러 기록에 의해 객관성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만 보더라도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의 수는 오늘날 어지간한 연쇄살인범이 죽인 숫자보다 더 많습니다.
정조가 읽고는 제목을 “천유록”에서 “대천록”으로 직접 고쳐주었다는 책 속에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의 숫자가 나옵니다. - 세자가 죽인 중관, 내인, 노속이 거의 백여 명에 이르고 낙형 등이 참혹하다.(世子戕殺中官內人奴屬將至百餘 而烙刑等慘)
사도세자가 많은 사람을 죽인 희대의 살인자라는 점은 영조가 세자를 폐하며 발표한 폐세자반교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또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나경언의 고변이 있던 그날 밤 영조가 뜰에 엎드린 세자에게 소리친 그 첫마디 역시 살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 네가 왕손의 어미를 때려죽이지 않았느냐(汝搏殺王孫之母)
또, 한중록에 의하면, 세자는 어머니인 선희궁 영빈 이씨의 내인을 죽인 사실도 나오는데, 어머니를 모시는 내인을 살해한 행위는 효를 강조하는 유교국가에서 용납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일은 점점 심각해져 심지어 친여동생 화완옹주에게도 칼을 들이댔고 그 어머니조차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습니다. - 요사이 그곳에 갔다가 거의 죽을 뻔 했는데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조선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하면서 탕평책 등의 정책으로 신하들을 쥐락 펴락 했던 노회한 정치 9단 영조가 노론의 책략에 넘어가 또는 노론의 압박에 의해 자기의 친자식을 죽이는 결단을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영조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단순히 왕재를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더 이상 왕족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이코패스 살인자를 그대로 살려 둘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영조에게 세자는 크게는 사직과 작게는 가문의 수치이자 암덩이였고, 이런 세자가 보위를 잇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단순히 폐세자 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 후왕인 정조가 생부를 폐세자 상태로 두기도 어려울 것이고, 왕의 아비가 살인 행각을 벌일 경우 아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즈음 세손(후일 정조)이 성군의 자질을 보였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한편, 신하들 입장에서도 이러한 세자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왕이 되어도 그렇고 폐세자가 되어도 그렇고)
다만, 정조의 입장에서 생부가 희대의 살인마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참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즈음의 승정원 일기는 오려지고 세검정에서 씻겨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려지고 통째로 찢겨져 나간 곳이 100여 곳이 넘습니다.
승정원 일기 곳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 이 아래 한 장은 칼로 삭제되었다. 병신년 전교로 인해 세초했다.
담에 이어서~
<조선왕조실록(120)> 정조 1 - 정조 등극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 그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 없으나, 일단 지난 여러 회에서 살핀 바를 종합 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봅니다.
- 영조와 세자의 출발은 여느 왕과 세자와 다름이 없었다.
- 그러나 영조의 세자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게 컸고, 그 기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영조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실망으로 바뀌어 갔으며, 그 과정에서 세자는 정상궤도를 이탈하게 되었다.
- 결국 세자에게 정신질환이 생겼고, 세자는 그로 인해 세자 직의 유지는 물론 더 나아가 임금이 될 수도 없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 사직에 대한 부담과 절대권력에 대한 욕심이 매우 컸던 영조는 세자의 무너진 모습,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자질을 갖춘 세손의 등장에 갈등했고, 신하들은 물론 세자 본인도 이러한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했다.
- 단순히 폐세자를 해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역시, 영조도, 그 어미인 종친도, 신하들도 잘 알고 있었다.
- 영조는 드디어 결단을 하고, 어미 영빈 이씨, 장인 홍봉한 등이 다른 길이 없음을 알고, 세손 등 여럿을 보호하기 위해 이에 동조하였다.
- 당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희생양으로 세자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
아버지 사도세자의 참혹한 죽음을 목도한 열한 살 세손, 할머니가 청하고 할아버지가 명하고, 외할아버지가 도운 아비의 비극 앞에 권력이 얼마나 무섭고 비정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깨우쳤습니다.
어린 세손은 영조가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영조는 "조선에 너와 나 둘뿐이니 네 할아버지를 생각해 마음을 편히 갖도록 하라"는 전교를 했고, 세손은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영조는 세손에게 지난날의 참변은 대의에 따른 것이라는 점과 향후 이를 흔들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다짐 받았습니다.
영조는 임오화변 이후 14년을 더 살다가 1776년 52년을 재위 끝에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도세자의 아들이 25세의 나이에 등극하니, 이 사람이 바로 흔히 개혁군주라 일컬어지는 정조입니다.
담에 이어서~
2016년을 보내는군요..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해였던것 같습니다... 2017년은 조그만 더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수고들 많이 하셨읍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새해엔 온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빕니다~~
이성규 마리 엘리야 감사합니다
새해엔 더욱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역사에는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영조의 컴플렉스가 사도세자의 사이코패스적 정신질환의 원인이었다면..그로인해 조선중기의 성왕. 개혁군주 정조의 탄생을 가져온건 아닌지...요지경속으로 사라지는 병신[丙申이지만 病身같던]을 이을 丁酉는 곧은 해가 되길...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와 雲外蒼天[김수남총장의 신년사..시련뒤에 더욱 큰 희망과 발전이 온다] 기운이 넘치길 바란다..우서바 내년도 수고해줘...소사를 다루는 광무기도. ㅎ
이동훈 새벽부터 그리 무거운?부탁을 한다고라 ㅋ
암튼 올한해 수고많았어...
비록 퍼오는 글이지만 퍼올수 있는데까지 퍼와볼게 ㅋㅋ
송구영신^^
애독자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산에서보는친구가.
강홍렬 홍렬이 술잔 받은지 가물가물하다...ㅎ
강홍렬 동감이외다..
더욱 건강하고 사업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이동훈
아침부터 술 이야기로 시작하는군.
나종덕 그래야 오늘도 수울수울 수월하게 풀리면서 한해를 잘 닫겠지...ㅎ
이동훈
그려.
술술 잘 풀리기 바래.
윤우섭 조선사 새삼스레
이 잘읽었네그려..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산에서 보자구
이용복 읽어주니 감사....
송구영신 잘하시고...
산에서 즐거운 시간들 같이 보냅세...
한해동안 열심히 수고해 주어서 역사를 보는 시야를 넓혔네. 다가오는 새해에는 건강하고 멋진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Jin Gyu Lim 에구....
먼곳에서도 읽어주어 고맙다네..
새해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기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