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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잠언서 강해(2)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 본 문 : 잠 언 1장 20절 - 33절 (구약성경 p.910)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오늘 우리는 잠언 1장 후반부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임을 말씀하면서,
“지혜 있는 자는 악한 자의 길에 함께 하지 아니한다.“ 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혜의 호소를 거부할 때, 멸망을 면치 못할 것“ 을 경고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지혜를 인격화해서 말씀하는데, 물론 이 지혜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지혜로서,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 22절입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아멘!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비밀은 착한 양심에서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15절에는 ‘양심은 우리 마음에 새긴 율법' 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여 두셨는데, 곧 양심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2절 말씀에 보면, ‘양심은 마음의 눈’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람은 눈이 없으면 볼 수 없고, 분간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실 때,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양심이 우리 인간 생활에서 하는 역할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해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우리의 양심이 말해줍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 “착한 양심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아간다.” 고,
하였습니다. 바른 양심, 착한 양심, 깨끗한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인 양심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경고하는 위험신호를 보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유혹을 받았을 때, 그의 양심이 그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재판할 때도, 그의 양심이 그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범죄 할 때에, 양심의 경고가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양심은 우리가 잘못할 때 경고하고, 범죄 했을 때에는 마음에 가책을 줍니다.
마음을 책망합니다.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어오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범했을 때,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왜 숨었습니까?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우리의 양심이 책망하고,
하나님을 무섭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범죄 한 인간의 마음이 편안 할리가 없습니다.
이조시대의 비극 가운데, 세조가 그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조카 단종이라는 임금을 그냥 두고 왕의 행세를 하려니까,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수양대군인 세조는 마침내 죽여 버렸습니다.
그렇게 조카를 죽인 세조의 마음이 평안했습니까? 아닙니다. 평안치를 못했습니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매일 밤마다 꿈에 단종의 어머니, 그러니까 세조의 형수,
곧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서 ‘너 이놈! 어린 조카 죽이고 왕이 되니 좋으냐?’ 하고,
호통을 쳐대니,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고, 너무 무서워 식은땀이 흘렀다고 합니다.
하루는 잠이 들었는데, 또 형수가 나타나 칼을 입에 물고 다가와 무서워 돌아눕는 데,
'네 이 더러운 놈아!' 하면서 침을 뱉는데, 등 뒤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세조가 등창이 생겨서 고생하다가 그 등창 때문에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맥베드’ 의 내용도 그와 비슷한 것 아닙니까?
멕베드가 뱅코우 장군을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그가 스코트랜드 왕좌에 앉으려면,
죽은 뱅코우 장군이 칼을 물고 의자에 앉아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며 소리치다가,
그만 미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양심의 가책 때문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겼을 때, 그로 말미암아 누명을 쓰게 되었고,
애굽 감옥에까지 들어가는 고생을 하게 되었지만,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 -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몸은 감옥에 있었지만, 요셉의 마음만은 너무나 화평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서 채찍을 맞고, 감옥에 갇히고, 화형을 당하는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담대하고 기뻤던 까닭은,
그 양심이 칭찬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혜인 양심은,
우리에게 선악을 분별해 주고, 잘못할 때 경고해 주고, 잘할 때 칭찬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양심도 잘못하면 타락할 수 있습니다. 병들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음성이 경고하는 데도, 책망하는 데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아니하고, 죄악 된 길로 그대로 행하면, 결국 그 양심이 더러워집니다.
이렇게 되면, 양심의 판단이 희미해지고, 불분명해 집니다. 양심이 약해지고 맙니다.
물론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양심의 소리, 하나님의 지시가 있을 때에,
거부할 수도 있고,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부하면, 그 양심이 더러워집니다.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그대로 계속해서 범죄 하게 되면, 그 양심이 타락하고,
마침내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말하자면 인면수심,
얼굴은 사람 얼굴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짐승과 같아지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아멘!
요한 1서 1장 8절에도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고 말씀하셨고, "나의 말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심과 함께, 지혜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양심을 통해서 아무리 부르고 외쳐도, 듣기를 거절하고,
끝내 항거하고 불순종 하게 되면, 비극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본문 24-30절)
오늘 본문 24절부터 30절 말씀입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아멘!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사무엘상 12장 14절 말씀에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으리라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의 열조를,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경멸하다가, 그들의 종말이,
그렇게 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사야 1장 11절에 ‘형식에 치우치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멀리 떠난 종교적인 사람들을 향해서‘ 경고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31절 말씀에서도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도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너무 당연한 진리입니다.
콩 심었으면 콩 거두고, 벼 심었으면 벼를 거둘 것입니다.
선을 심었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었으면 악을 거둘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을 심었으면 화평을 거두고, 미움을 심었으면 싸움을 거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는 퍽 교훈적입니다.
흥부가 사랑과 동정의 박씨를 심었더니, 축복이 가득 담긴 많은 박을 땄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심술보요. 욕심쟁이였던 형 놀부는 시기와 탐욕의 박씨를 심었더니,
문자 그대로 자기 꾀에 배가 부를 정도로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결론이 본문 33절에 있습니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28편 말씀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하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 순종하여,
시편 128편의 모든 축복은 물론,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성경의 모든 축복을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