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 직후에 바람이 분 방향에 위치해 고농도로 피폭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 여아 출생이 남아 출생보다 극단적으로 적었다는 기사를 전합니다.
통계 인원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1899년 이래 남아 출생이 여아보다 적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일본의 국가통계를 크게 뒤집는 현상이라 예사롭게 보이진 않습니다.
국제적 평가가 높은 《체르노빌의 건강피해-원자로 대참사 25년 후의 기록》(IPPNW출판, 세바스찬 플루쿠바일 등 집필)에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출산과 관련한 영향으로 "유럽에서 사산과 기형아 출생이 늘었을 뿐 아니라, 남녀 출생비 불균형도 나타나 1986년 이후 여아 출생이 의미있게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다테무라에서는 반대로 남아 출생이 줄었다는데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서 남아 출생 적어 불길"
【기사 발췌】
●사고 이후, 여아의 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고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현 이다테무라에서 남아 출생률이 극단적으로 감소했다. 2011년 12월부터 2013년 1월까지의 출생률은 여아 36명에 대해 남아 18명으로 반수에 그쳤다.
●심각한 피폭을 겪은 지역에서
이다테무라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북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당시 (북서쪽으로 불었던) 풍향으로 인해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떨어졌으나, 당초 피난구역으로 지정돼있지 않았던 탓에 주민들이 심각한 피폭을 경험했다.
그러한 이다테무라에서 신생아 출생과 관련한 이상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남녀 출생비율에 극단적 편향이 나타난 것이다.
후쿠시마현이 발표하고 있는 자료를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11년 12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출생한 여아가 36명인 데 비해, 남아는 18명밖에 출생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수태에서 출생까지의 기간은 265여 일이라 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2011년 3월 14일이었으므로, 같은 해 11월 이후에 태어난 아기는 사고 후에 수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 출생비율은 1899(메이지32)년부터 2009년까지 일관되게 남아가 조금 더 많았으며, 여아가 더 많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후략)
(세금과 보험의 정보사이트 2013. 2. 28)(강혜정님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