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3일 안덕면 대평리와 서귀포시 예래동에 걸쳐 있는 군산(군뫼)에 올랐습니다.
1007년(목종10년)의 기록에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서산(瑞山)이 지금의 군산인 것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군산의 '군'은 '군것질', '군소리'의 '군'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더 생겨난 산이란 뜻입니다.
이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오름에 얽힌 전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마을(안덕면 창천리)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겨우 10여호가 사고 있을 정도였다. 그 중에 강(姜)씨 선생이 있었다. 그는 글을 많이 읽어 주변에서는 학식있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더구나 인품이 훌륭하여 강선생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으러 모여 들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둘러 앉히고 글을 읽는데, 문밖에서도 글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은 이상히 생각하여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방안에서, '하늘천'하면, 바로 이어 문밖에서 따라 '하늘천'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고 여기고는 밖을 살펴보았지마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별로 흉측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냥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삼년쯤 계속되던 어느날 이었다.
하루는 선생이 글 읽는 사람들을 돌려 보내고는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아마 거의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선생님 주무십니까?"
선생은 꿈속인 듯 생시인 듯 어렴풋이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구시오"
"예, 저는 저 멀리서 온 동해 용왕의 아들인데, 그 동안 선생님의 허락도 받지않고 선생님 밑에서 3년간 글을 읽었습니다. 이제 기한이 다 차서 선생님을 하직하여야 할 처지가 되어 이렇게 작별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강선생은 모든게 모르는 일이었으나, 문득 그 동안 댓돌 아래에서 들리던 그 글읽던 소리를 생각해내고는 그가 바로 이 용왕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어 그 동안 선생님께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사오니, 뭐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뢰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용왕 아들이라는 자의 청이 간절했지마는 사실 욕심과 세상 부귀영화에 관심이 없던 그에게는 뭐라고 부탁을 드릴 만한게 없었다.
"나야 뭐 젊은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게 유일한 즐거움이고, 내 생활은 모두 그네들이 도와주니 내겐 불편하다거나 필요한게 없어요. 헌데 저 냇물이 요란하여 글 읽는데 조금 시끄러운것 밖에는..."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사실 그 동네 앞을 흐르는 그 창고내가 비라도 크게 내리는 날이면 냇물 소리가 크게 들려 아이들과 글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일이 결코 선생에게 꼭 소원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용왕의 아들은 그것을 마음에 두었다.
"선생님 그 일 정도는 어떻게 해결되도록 하지요."
이렇게 대답을 하고는 "제가 돌아간 후에 며칠이 있으면 큰비와 바람이 며칠간 내리칠 것이오니 아무 걱정 마시고 그저 방문만 꼭 걸어 잠그고 지내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열어서는 안됩니다.그러다가 이레되는 날에는 문을 여십시요."
이렇게 신신당부하고 그는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떠나고 얼마 없어서 뇌성벽력이 치고 폭우가 내리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두문불출 며칠을 지내었다.
그렇게 지내기 칠일이 되는 날이었다. 밖에 비바라도 좀 잔잔해지는 것 같았다. 선생은 이제는 별일이 없으려니 하고 문틈으로 밖을 살며시 내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이상한 빛이 번쩍하니 방안으로 드리치더니 그만 선생이 아찔하고 쓰러져 버렸다.
뒷날 깨어보니 선생은 아무래도 왼쪽 눈이 이상하게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전에는 없던 산이 떡 버티어 서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언제 풍우가 몰아쳤느냐는 듯이 맑게 개어 있었다.
이 때 고려 조정에서는 제주도에 천재지변이 일어났다고 하여 관원이 그 진상을 살피러 내려왔다. 관원은 이 새로 생긴 산을 보고는 그 연유를 알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이 중국 곤륜산이 이곳으로 옮아왔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중국에 있는 서산이 옮겨온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산이라 부르다가, 그 모양이 군막과 같다고 하여 군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그 산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났다고 하여 (굴르로 생겨 났다고 하여) 군뫼(군메) 또는 군뫼오름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또한 이 군산 봉우리에는 옛부터 금장지(禁葬地)로 전해왔다. 바로 쌍선망월형(雙仙望月型)이라 해서 너무나 명당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큰 가뭄이 계속되거나 큰 장마가 계속되어 흉년이 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도 갑자기 가물기 시작하여 농사가 결단날 지경에 이른 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필시 이는 누가 금장터에 묘를 썼다고 그곳으로 몰려 갔다. 그래서 그 산꼭대기를 아무리 파헤쳐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계속 그 주위를 파헤쳐 버리자 갑자기 하늘에 비구름이 몰려 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가뭄을 면할 수 있었다.》
바닷가 가까이에 있으며 해발 334m입니다.
정상 가까이에 있는 일본군 갱도진지도 확인할 겸 고정우 단우와 동행했습니다.
날씨가 무지 더워서 제 웃도리가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ㅋ~
군산 원경
군산 봉우리
고영철
고정우 단우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과 게릴라전을 목적으로 파놓은 갱도진지. 군산 서쪽 정상 바로 밑에 있습니다.
예래동(하예동) 쪽에 있는 갱도진지
첫댓글 으아~~ 저런데 가서 살고싶네 ㅋㅋ 제주 제주 ㅋㅋ 부럽습니다~~
웃옷이 다른 물감으로 염색한것 같습니다 ㅋㅋㅋ 어휴 더워~~~ ㅎㅎ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청주의 산과 제주의 오름은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죠.
얼마 전에 만인산에서 이성계 태실 본 생각이 납니다.
두분 모습이 열정가득하여 보는 즐거움과 부러움이 있습니다.
기회되면 함께함으로 더 뜻깊은 산행이 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