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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톰.바이욘사원.앙코르왓 여행기
20010년 3월 9일~12일(2박4일)
코스 : 왕코르톰 - 바이욘사원 - 바푸욘사원 - 코끼리테라스 - 타프롬사원-앙코르왓사원-프놈바켕-톤레샵호수-수상촌마을-킬링필드 왓트마이 사원
누구와? : 청우회 멤버부부 18명
날씨는? : 2박4일동안 맑음
이 아이의 평화롭고 천진난만하고도 해맑은 눈망울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어 쉽게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개요 : 사실 이번 여행에서 절실히 느낀건 캄보디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떠난게 여행내내 후회가 되었다
떠나기전에 일정표를 보고 캄보디아에 대해서....앙코르왓에 대해서 검색이라도 좀 해보고 떠났다면 좀더 많은 의미있는 여행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에 내 가슴을 쳐야했다
8세기부터 13세기초까지 아시아 전체를 호령하며 흥성했던 거대한 왕코르제국은 어렴풋이 사원일거라는 생각만 하고 떠났을뿐이었던 내 무지가 거대하고도 위대한 제국의 역사 앞에서 너무도 초라하고 창피했다
궁금한것이 있으면 가이드에게 물어보곤 했지만 그걸로 내 궁금증에 대한 욕구는 해소되질 않았다
캄보디아의 땅을 밟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건 더럽고 궁핍하고 곤궁하게 살아가는 초라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눈망울은 너무나 아름답고 빛이났다
크메르제국 시절 아시아를 호령했던 나라가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1200만의 인구가 오랜 내전으로 인해 남자는 거의 죽고 여자들이 득세하고 생활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지만 그것은 우리의 시각일뿐....
작고 왜소한 체구에 머리통이 작다보니 얼굴 전체가 내 주먹만한 사람들....
평균수명이 59세이다 보니 조혼의 풍습으로 여자고 남자고 15세정도면 시집장가를 가서 30세가 넘으면 손자 손녀를 보는나라....
남자가 모자라는데다가 남자가 장가를 가려면 여자집에 줘야할 지참금이 없어 장가도 못가게 되니 더욱더 여자를 데려갈 남자가 없어 평생 시집도 못가고 늙어죽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들처럼 탐욕이 없으니 근심걱정이 없어 행복지수가 세계 8위인 나라....
우선 캄보디아를 이해할려면 캄보디의의 근대사를 알아보자.
1968년에 있었던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있었던 전쟁속에서 미국은 베트남의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법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방법을 찾지못하고 허둥대게 된다.
캄보디아는 이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국경이 산악(정글)지대였으며 이것을 베트콩이 게릴라 전법으로 이용하면서 미국이 큰 타격을 입게 되자 미국 입장에서는 이 국경 지역을 초토화 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 당시 캄보디아를 장악하고 있었던 사람은 미국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론놀 장군이었으며, 과거 '시아누크' 국왕을 몰아내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4년째 통치를 하고 있었다.
미국과는 친분이 있어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당시 닉슨대통령 아래에 안보장관을 하고 있었던 '헨리 키신저'는 캄보디아 론놀 정권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게 된다.
현재 지원하고 있는 경제적인 혜택을 주는 댓가로 캄보디아 (베트남쪽) 국경 일부에 폭탄을 투하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그래도 영토에 폭탄을 던지는 것을 허락한 론놀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약속을 어기고 100배의 폭탄을 쏟아 부은 미국측 '헨리 키신저'와 이를 승인.방관한 '닉슨대통령'도 역사적인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훗날 키신저는 노벨평화상을 받는다..쳇...)
폭탄의 분량은 일본(히로시마)에 던진 16만톤의 3배인 약53만톤을 쏟아 부었고 거의 4년동안 이어졌으며, 닉슨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나서야 멈추게 되었다.
그 융단폭격 및 막강한 고엽제로 인하여 캄보디아에 무고한 국민들 80만명이 사망하게 되었고, 부상자는 훨씬 많았다.
희생자 대부분은 정보에 취악한 가난한 농부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고,그 사람들은 대피명령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영문도 모른채 죽어야 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첫째 미국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둘째 미국세력에 지원을 받은 론놀정권과 그 아래에서 안전하게 생존한 지식인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집권한 사람이 바로 폴포트였는데 폴포트는 당시 불란서에서 유학하며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폴포트는 당시 미약했던 공산주의 세력을 반미감정을 이용하여 크게 늘려서 크메르루즈군 이라는 붉은 군대를 창설하여 1975년 4월에 중국의 지원을 받아 론놀정권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권좌에 않게 된다,
크메르루즈의 폴포트는 급진적 공산주의로 사회 개조작업을 서드르며 민주 캄보디아를 표방하고 모택동식 협동농장으로의 전환을 위해서 외부세계를 전면 차단해 버리고 화폐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이는 앙코르 시대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제방공사나 앙코르의 토목공사에 참여시킨켰던 역사와 비교되어 흥미롭다
도시사람들은 농촌으로 강제동원되어 극심한 노동에 내몰렸으며 이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즉시 처형되었다
론놀정권하에서 협력했던 관리들은 물론이고 학생.교수.안경쓴 사람.외국어를 아는사람.심지어 손바닥이 말랑말랑 하여 굳은살이 없다는 이유 등등으로 처형되고 고문에 의해 죽은 사람이 당시 캄보디아 인구 870만명 중에서 300만명이이 된다
또한 이과정에서 캄보디아의 거의 모든사원들이 파괴되었고 87만여명의 승려들까지 처형 되었으며 크메르루즈에 협력해서 살아남은 승려가 겨우 500명이었다고 한다
이 크메르루즈군의 처참하고 잔혹한 행태가 알려지면서 또다른 킬링필드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고.미국의 폭격에 의해서 자행된 테러가 1차 킹링필드였다면, 크메르 루즈에 의해서 발생한 살인잔치가 바로 2차 킹링필드인 것이다.
1차때는 아무 죄없이 죽음을 당했다면, 폴포트에 의한 2차때는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온갖 고문과 캄보디아 전역이 킬링필드화 되어서 지금도 어느곳을 파해쳐도 해골이 나오고 있으며 그때에 나라를 이끌어갈 지식인과 인재들이 모두 사라져 국력이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군은 그동안 적대적 관계였던 베트남을 자기들의 옛 영토를 찾는다는 구실하에 침공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미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통일국가를 이룬 베트남은 단숨에 크메르루즈군을 함몰시켜 버리고 1년반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하게 되지만 때마침 고르바쵸프의 개방정책으로 인한 세계의 탈냉전 분위기로 인한 서방세계들의 반발로 베트남군이 철수하고 시아누크왕이 귀국을 하게 되지만 이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미국을 등에 업은 훈센총리가 실권을 장악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산악 밀림지대로 도망쳤던 폴포트는 질병에 시달리며 크메르루즈군의 잔당들과 저항을 계속 했지만 1998년 가택연금 상태에서 89세의 나이로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밀림속에 남아있던 크메르루즈군의 잔당들도 이제는 모두 투항을 해서 지금은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접목시켜서 경제적 발전도 도모하고 있다
또한 이 지구상의 마지막 지하자원의 보고인 베트남과 캄보디에에 우리나라가 많은 공을들여 현지의 국민들도 한국인을 무척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다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9일 오후3시10분 베트남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의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치고는 우리나라 고속터미널만도 못하고 시골의 작은 간이역 같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도 비행기 티켓에 도장을 찍을때 급행료라는게 남아있어 1인당 25불씩을 공식적으로 주어야 하고 티켓 체크인때 공항 직원이 눈짓으로 1불을 달라고 요구하면 슬며시 얹어놓곤 나온다
우리가 이틀동안 묵을 호텔인데 씨엠립은 대전의 유성처럼 관광특구로 지정이 되어 있어 비교적 깨끗한 건물들이 많다
호텔의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인데 관광특구인만큼 현지사람들이 사는집은 거의 없고 외국인.특히 한국 사람들이 투자하고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앙코르왓의 옛 전통춤인 압살라를 관람하며 식사를 할수있는 압살라 전통 디너 식당인데 메뉴가 80여가지가 나오지만 한국식 입맛에 젖어있는 나에겐 먹을만한게 별로 없었다
바이욘 사원에 가면 바위기둥에 새겨져 있는 압살라춤을 무희들이 추고있는 모습이다
크메르 왕국의 옛수도인 앙콜르톰의 입구....앙코르톰은 크메르왕조가 무너지기 직전인 서기1200년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지어진 캄보디아 사원중 최후이며 이 도성안에 100만의 인구가 살았던 옛 영화는 사라지고 우중충한 기념비만이 그때의 화려함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앙코르톰이나 앙코르왓의 곳곳에 이렇게 코브라뱀의 머리모양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석가모니가 왕위와 가족을 버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새로운 해탈을 위해 수행할때에 뱀들이 석가모니 주위를 막아서 온갖 악귀들을 물리쳐 주었다는 유래에서 비롯된다
이곳은 바이욘 사원을 들어가는 입구인데 저 앞의 세개의 부처님상 앞으로 108개의 각기 다른신들을 양쪽으로 도열해 놓았는데 원래는 뱀의 몸통을 모두가 잡고 잇는 모습인데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파괴되고 흔적만 있었다
앙코르톰은 들어가는 문의 좌우로 거대한 호수를 파 놓았는데 이것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짓기 위함이라고...
앙코르제국은 힌두교 사원이지만 힌두교는 다양한 신들을 모시는 다신주의인데 이곳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2세는 부처님 얼굴을 새긴걸로 보아 자신을 부처님과 동일시 되고 싶은 욕망을 그려낸건 아닐는지...(실제로 당시의 왕족들은 사후에 부처님이나 그밖의 다른신들처럼 똑같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안타까운건 이 신성한 사원에 자동차를 출입시켜 차가 들어오고 나갈때 생기는 진동으로 인해 저 보물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텐데 이해가 안간다
앙코르톰과 앙코르왓은 1861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모어가 메콩강에 분포되어있는 식물들을 탐사하던중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른쪽은 오토바이를 개조시켜 만든 현지어로 톡톡이라고 하는데 쉽게말해 캄보디아의 택시다
이런곳에 자동차를 타고 드나들수 있다는건 아마도 국민위에 군림하는 관리들이 아닐런지....
이곳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된 바이욘 사원인데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돈이없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돈을 걷어서 보수를 하고 있다는 내용 같은데 일장기가 그려져 있는걸로 보아 일본이 돈깨나 내 놓은듯....
앙코르톰의 정중앙에 위치한 바이욘 사원...앙코르의 미소로도 잘알려진 사원이기도 한데 54개의 탑에 216개의 부처님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용현계곡의 마애삼존불처럼 태양의 빛의 각도에 따라서 미소가 다른형태로 보인다고 한다. 현재는 다 파괴되고 떨어져 36개만이 남아 있으며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이욘 사원의 곳곳에 새겨진 압살라인데 이것은 천상에서 압살라가 춤을추며 자신을 지지해 준다는 자야바르만 2세의 건립당시 바램이 아니었는지...압살라는 천상의 무희. 또는 춤추는 여신이라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크메르의 최대 적인 챰파족을 무찌르고 왕이 되어 국민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으나 도성 전체에 번진 역병으로 마지막까지 도성에 남아 국민들의 병을 어루만지며 죽었다고도 한다.
벽면에는 크메르왕국과 참파왕국이 톤레샵 호수에서 전쟁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그림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신성시되는 보리수나무 아래로 중국의 노예들을 끌고오는 모습을 새겨 넣었다
2층에는 다양한 방들이 많았는데 일반 승려들이 기거했고 3층에는 고승들이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내부의 천장모습을 찍었는데 우리나라 아치형 다리처럼 양쪽에서 돌을 쌓아 마지막으로 서로 버티게하는 공법이 똑같지만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섬세하질 않고 거칠다
앙코르톰은 앙코르왓과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당시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없애고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관세음 보살상을 조각해 만든 사원이다
크메르 왕국의 최전성기이며 마지막 도읍지였던 앙코르 톰은 '큰 도시'를 의미하는데 바푸온 등의 신전이 있었던 이곳 약 45만평의대지위에 자야바르만 7세가 30년에 걸쳐 축조한 거대한 왕궁이란다.
이곳의 절반은 왕궁과 신전이었고 나머지는 왕족, 귀족, 승려 그리고 그들의 종들이 살았고 일반 백성들은 성 밖에 거주했다고 하는데 최전성기의 인구는 100만명에 달했단다.
그러나 13세기초에 이 도성안에 역병(문둥병)이 돌아서 모두 죽거나 다른곳으로 떠나고 폐허가 되어 방치 되다가 훗날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모어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사진은 이번에 여행한 일행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으로 한컷 했다)
자야바르만 7세는 크메르제국 최초로 대승불교를 들여온 왕으로 자신이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이라 믿고 이러한 불교사원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파포원 사원인데 왕이 집무를 보던곳으로 전해지는데 많이 파손되어 현재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이번 앙코르톰을 여행하면서 궁금한건 사원들이 모두 올라가는 계단들이 이렇게 거의 90도에 가깝게 가파르게 지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올라가는데에도 몹시 위험하며 조심해야 한다
파포원 사원을 들어가는 다리인데 다리를 떠받치는 돌기둥이 돌을 돌려가며 깍여진 흔적들로 보아서 당시의 석조기술이 대단했었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파포원 사원을 들어가는 돌다리가 있다는건 사원둘레에 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사원을 지었다는 증거...바닥에도 물의 흔적이 보인다
사원을 떠받치는 하단부인데 수많은 돌들을 깎아맞춘 당시의 석조기술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이곳에도 물속에 잠겼던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남아있는 석조물들을 보면서 과거에 얼마나 웅장 했을까를 상상하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곳은 피메아나가스. 즉 천상의 궁전으로 자야바르만왕이 특별한 집무를 볼때에 쓰던 건물이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망울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컷 했다
이 건물 역시도 계단의 각도가 거의 수직에 가까워 올라가기가 무척 힘들다...자야바르만은 왜 이토록 올라가는 계단을 급경사로 만들어 놓았을까?...아마도 외부의 침략을 생각 해서일까?...
이곳이 왕이 집무를 보던곳인데 너너평정도 밖에 안되는 좁은 공간이었는데 과거엔 각종 보석으로 치장을 해서 굉장히 화려 했을텐데 모두가 망가지고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 천상의 궁전엔 한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이 건물안에는 머리가 아홉개가 달린 뱀이 살고 있었는데 밤이면 최고의 미인으로 변신을 해서 왕은 왕비나 궁녀들과 교합을 하기전 반드시 이 미인과 교합을 하고나서 해야 살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앙코르톰의 모든 궁전들은 건물 하단부엔 반드시 이렇게 화산석으로 먼저 쌓고난 위에 사암으로 정교하게 조각을 해놓을걸로 보아 이 구멍이 송송 뚫린 이화산석이 침대처럼 스프링 역할도 하고 여름 우기에 비가 많은 습기를 제거해 주기 때문에 이러한 공법을 썼지않나 생각을 해본다
이 호수는 당시의 왕이 시녀들과 목욕을 하던 요샛말로 치면 수영장쯤으로 될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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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은 동쪽에 23m의 승리의 문을 통하여 들어와 높이 3m 길이 300m의 코끼리 테라스 앞에서 사열을 받고 전승을 축하하기도 하고 외국의 귀빈도 또한 이곳 코끼리 테라스에서 맞이하기도 했는데 그때에 이문을 통해 왕이 테라스로 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왕이 승리한 군사들의 사열을 받고 승리를 자축하던 테라스이다
이 동상은 이곳 사원을 건축했던 자야바르만 7세인데 오른쪽 손이 없는건 당시 이 도성안에 역병이 돌아서 백성들이 신음할때 왕은 끝까지 도성에 남아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치료를 해주다가 손끝에난 작은 상처속으로 병균이 침투해 결국 자야바르만 왕도 역병이 걸려 손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한다
이곳은 코끼리 테라스로 알려진 신전인데 몸이 하나에 머리와 코가 세개인 이 코끼리는 번개와 구름을 관장하는 인드라신인데 아이야가타 라고 한다
코끼리 테라스의 광장 한가운데에 너무나 멋진 나무가 아름다워 한컷
왕이 사열을 받던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집 화초를 한컷 했다
이곳이 북쪽의 북문이라 불리는 승리의 문인데 크메르제국의 최대 적이었던 당시의 참파족을 톤레삽 호수에서 물리치고 이문으로 들어와 승리를 자축했다고 한다
이 승리의 문도 양쪽에 번개와 구름을 관장하는 몸이 하나에 머리와 코가 세개인 인드라신이 관세음 보살을 떠받치고 있다
이 승리의 문도 아까 들어왔던 남문과 마찬가지로 입구의 좌우에는 108개의 조각상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좌측은 신, 오른쪽은 악마란다. 이 조각상들도 코브라의 몸을 잡아 당기고 있는 형상이다
바이욘 사원을 한바퀴 돌고 이제는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했던 톰레이더라는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던 사원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나무뿌리로 인한 폐허의 대명사 타프롬 사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를 기원하기 위해 건립한 사원이다. 다른 앙코르 사원과는 달리 이곳은 수도원의 기능이 강화되어 있는 사원으로 보수를 하지 않아 자연 상태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곧게 솟은 이엥 나무와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아 버리고 거대한 뿌리가 뒤엉킨 스펑 나무가 울창한 이곳은 마치 지옥의 사원을 연상케한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스펑나무의 신기한 파괴력에 혀를 내두르는데....스펑나무는 지붕위고 바위위고 할것없이 씨앗만 내리면 거미줄 같은 뿌리가 전체를 휘감아 버린다
스펑나무는 우리나라의 뽕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생명력이 대단해서 어디든 한번 뿌리를 내리면 주면의 모든것을 파괴시켜버리는데 이곳 타프롬 사원도 역병이 돌아서 백성들이 모두 죽거나 떠나고 방치된 사원에 스펑나무가 뿌리를 내려 사원 전체를 파괴시켜 버린곳이다
이 사원을 지으며 흘렸던 백성들의 피와 땀이 한낱 나무뿌리에 의해 거대한 역사가 파괴되어 벌릴수 잇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다.스펑나무의 뿌리가 마치 악마의 손이나 발같지 않은가?...
사원의 돌조각위에 물한방울 없는곳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났을까를 고민 한다면 이곳이 4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우기철로 인해 연간 강수량이 3000mm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금방 수수께끼가 풀릴것이다
이곳 타프롬은 한마디로 자연의 힘앞에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악귀의 발톱이 따로 없을만큼 소름이 돋는다
스펑나무가 악마의 발톱이라면 이 나무는 그 스펑나무를 잡아먹어 버리는 일종의 기생 식물인데 어떤 나무이고 간에 나무 줄기에 씨앗을 틔우면 그나무의 몸통속에 뿌리를 내리고 결국 그 나무를 잡아 삼켜 버리는 나무이다.사진을 자세히 보면 뿌리 안쪽에 잡아먹힌 썩은 다른 나무 줄기가 보인다
톰레이더 라는 영화에서 저 사진 왼쪽 문으로 앤졸리나 졸리가 나가던 장면이 나온다고...이 사원은 복원보다는 이렇게 자연적인 모습으로 놔두는것이 더 우리 인간에게 교훈이 될수 있을거 같고 또 오래된 유적지 분위기가 날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사진은 아마 워낙 유명해서 다른 사진첩에서 많이 봤을것이다....세계 어느곳을 가도 이나무의 사진은 파괴의 대명사로 자주 볼수 있는 나무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사람의 흔적도 없이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 되었던 걸까?.
우리가 점심을 먹던 식당에 있던 꽃인데 색깔이 참 곱다.어제저녁의 과음으로 인해 오늘 아침도 안먹고 나왔더니 배가 무지 출출하다 이제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으로 왕코르왓에 들러본다
앙코르와트(앙코르라는 단어는 왕성함을 의미하며 와트는 사원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는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 초에 건립한 사원이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그들의 신과 같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앙코르톰을 자야바르만 7세가 건립했다면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아바르만 2세가 브라만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다. 앙코르왓을 들어가는 사원도 둘레엔 ㄷ자모양으로 호수를 만들어 놓아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지어 놓았다
앙코르 왕조는 890년경 야소바르만 1세가 수도를 앙코르로 옮긴 때부터 13세기초까지 앙코르의 왕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끝 부분에서 북쪽으로 윈난까지, 또 베트남에서 서쪽으로 벵골만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이곳 앙코르와트가 있는 앙코르 시는 크메르 왕조의 중심지인 이곳은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크게 번성하고 발달한 왕국이었다.
앙코르에서 위대한 건설과 축조는 300년이 넘게 계속되었는데 이들의 종교는 시바 신과 비슈누신을 섬기는 힌두교에서 점차 관세음보살신앙이 자리를 잡았다. 앙코르와트는 모두 3개의 기단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기단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새겨져 있고, 목욕탕 등이 들어서 있으며 마지막 세 번째 기단에 오르면, 각 변으로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조각무늬부터가 정교하고도 섬세함에 감탄을 하는데....
당시에 이렇게 돌을 깎아서 아름다운 형상물을 만들어 미를 창조해 냈다는데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왕코르왓은 37년동안 연인원 30만명을 동원해서 지은 건물이란다
건축물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듯 세심하고도 정교한 조각기술에 놀라울 따름인데...
이 조각은 당시의 수리야 바르만 2세의 왕비를 조각해 놓은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탑의 모양은 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연꽃 모양 또는 원뿔형으로 되어 있다. 앙코르와트는 우주의 세계를 상징하는데, 중앙탑은 신화적인 산을 상징하고 있는 메로로서 우주의 중앙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원 둘레에 있는 해자(연못)는 바다를 뜻하기도 한다.
이제 수리아 바르만 2세가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벽화로 그려놓은 남문쪽으로 들어가 본다
이 벽화들은 수리야 바르만 2세가 죽을당시 자신의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데 그아들이 너무 어려서 우선 자신의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셋째 아들이 장성을 하면 그 셋째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했으나 동생은 약속을 져버리고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 이그림들은 그 셋째아들이 왕이었던 삼촌을 몰아내고 전쟁에서 승리한 모습들을 벽화에 새겨 놓았다
왼쪽엔 벽화들이 그려져 있고 천장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옛 다리의 아치형과 똑같다
이건 연꽃이 피기전의 연밥 모양의 당초문양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명절날에 흰떡을 할때 그떡에 들어간 문양과도 똑같다
사원의 천정 모습인데 이것은 세계최초의 석조 텍스공법이란다. 돌기둥으로 사각을 만들고 그사이에 사각형의 당초문양을 넣은 돌을 얹었다
하늘에서는 압살라들이 춤을 추고있고 가운데 그림은 거대한 코브라뱀의 몸통을 잡아 당기고 잇는 모습이다
9세기 부터 14세기까지, 크메르 민족의 독특한 문화양식으로 전성기를 이룬 고대국가 앙코르....
타이의 침략으로 4백 년간이나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던 불가사의한 역사를 지닌 곳이기에 앙코르와트는 일종의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건물 곳곳엔 캄보디아에서 많이 나는 주먹만한 사파이어를 박아서 화려함을 더했는데 타이의 침공으로 자기들 것이라고 그 화려했던 보석들을 모조리 빼가 버렸는데 곳곳에 보석을 박아 놓았던 자국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곳도 앙코르톰과 마찬가지로 올라가는 계단이 모두가 거의 수직으로 가파르다
3층의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 마지막 세 번째 기단에 올랐는데 각 변으로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물이 고였던 흔적으로 보아 빗물을 받아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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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앙에 있는 탑인데 거대한 위용에 당시의 왕코르 제국에 위대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각 변마다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부처님 등뒤엔 머리가 7개달린 뱀이 부처님을 지켜주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일종의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열대밀림지역의 폐허에서 이토록 아름답고, 웅장한, 거대한 석조유적이 발견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1861년 프랑스의 앙리 모어가 발견한 이래 앙코르와트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와, 비문 해독이 이루어지면서 사라졌던 앙코르 왕국의 연대표가 완성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제 해는 서산에 뉘엇뉘엇....프놈바켕으로 올라가 일몰을 감상해보자
앙코르와트를 지나 앙코르 톰으로 가다보면 작은 언덕같은 산이 나오는데 이곳에 9세기 후반 야소바르만 1세가 시바신에게 바치는 사원으로 프놈 바켕 사원이 지어졌다.
이곳은 해발 약 150m의 사원인데 이곳도 모두가 무너지고 전쟁으로 인한 총알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어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볼수가 있었다
프놈바켕 사원은 서기 889년 야소바르만1세가 즉위한 뒤에 야소하라프라 라는 사람을 시켜 자신을 상징하는 사원으로 이 프놈바켕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산의 이름이 바켕산으로 프놈바켕사원이라 부르는데 탑의 숫자는 우주를 상징한다. 원래 109개의 탑이 메루산을 모방한 모양으로 바껭 사원을 장식하였으나 많은 탑이 훼손,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 사원 역시도 하단부분을 화산석으로 깔아서 탄력과 습기 제거를 이용해 자연재해에 대비했다
이 사원의 높이는 67m로서 위에 서면 앙코르톰과 앙코르왓의 탑들이 조망된다
이 사원은 일몰로도 유명한데 일몰직전의 앙코르 주변의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다고...
또 하루의 여정이 끝나고 호텔에서 캄보디아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마지막날의 여정이 남았다. 오늘은 수상마을이 있는 톤레삽 호수와 그외의 몇군데를 더 둘러보고 밤 11시50분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
이 사진은 일명 톡톡이라 부르는데 일종의 택시 역할을 한다. 이것 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자동차로 된 택시들의 영업이 안되어 택시를 볼수가 없다
이것은 금죽이라는 대나무인데 황금색이 난다 죽은나무인가 했으나 분명 살아있는 대나무인데 신기하다
이것은 우리 한국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거지만 위의 사진과 대비가 된다
그 옛날 수리야 바르만이 만들었다는 저수지를 와봤다...우리나라에서는 높은산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가두어 두는 저수지로만 알고 있는 나에게 이 저수지는 또다른 세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란건 아예 없고 계곡은 더더구나 없다....그런데 어떻게 저수지가 만들어졌단 말인가?...
그것은 수리야바르만 왕이 광할한 평지에 둑을 쌓아서 여름의 우기철에 내리는 빗물을 모았다가 필요한 농사철에 쓸수 있도록 거대한 축조를 해놓았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모든 농지를 경지정리를 해서 좀더 쉽게 농사를 지을수 있게 만들었다면 이 나라는 이미 7세기초에 수리야바르만 2세왕이 모든 농지를 경지정리를 해놓았다는거다
저수지의 왼쪽에 작은 사원도 하나가 보인다
이제 점심을 먹고 톤레샵 호수의 수상관광을 떠난다. 그런데 물이 온통 황톳물로 시뻘겋다
배를 타고가다 보니 둑위에 자라는 나무들의 꼭대기에 물에 떠내려온 부유물들이 잔득 얹혀 있는걸로 보아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면 저정도로 물이 찬다는걸 알수가 있다
톤레샵 호수는 세계에서 3번째이고 동양에서는 최대의 넓은 호수이다.
톤레샵 호수에는 1000여종의 물고기가 있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 중 300여 종의 물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문제는...이 물이 얼마나 더러운가이다. 톤레샵 호수에 사는 사람들은 이 물로, 밥을 짓고, 씻고, 오물을 버리기도 한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다. 보아하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꽤 많은거 같은데 똥 오줌은 어떻게 하느냐고....돌아온 답은 걱정할거 없단다...물에 대고 똥을 싸면 1분 이내로 물속의 고기들이 다 해치워 버린단다...윽....그것도 모르고 삶은 새우 안주로 맥주를 마셨어....사진을 보면 그래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다있다
인간의 감성은 누구나가 똑 같은가 보다 저렇게 집앞에 화초도 가꾸면서 살아가니 말이다
그럼 아까 바깓에 널려있는 세탁물들은 깨끗하던데 그건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이 황톳물을 커다란 도라무통에 이들정고 담아두면 황토는 밑에 가라앉고 맑은물이 위에 뜬단다...그걸로 밥도 해먹고 빨래도 한단다
톤레샵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그들은 수상가옥에 사는데, 저게 집인가 싶을 정도의 수준이다.집의 크기는 우리나라 방 하나 정도? 그 정도 수준이다.
돌아다니다가 보면, 밥을 햇빛에 말리는 모습 등..정말 이 곳이 빈민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난민들이 생겼는데 두나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못해 이곳 호수위에 배에서 집을삼아 살게 된것이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토록 오랭 세월을 주민등록도 선거권도 없이 그야말로 난민으로만 살아오다가 5년전부터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국민의 주권을 받았지만 어디로 정착할 생각없이 이곳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바다위에는 없는게 없다 육지와 똑같이 슈퍼도 있고 철공소도 있으며 철물점도 잇다
사람 살아가는것은 어딜가나 똑같은것인가 보다 이집의 안에선 지금 카셋트 음악에 맞춰 술에 취한걸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묻지마 관광객들처럼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가 앙코르왓에서 영화 톰레이더를 촬영하고 이곳을 관광하던중에 이곳 난민촌에서 고아를 입양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곳은 톤레샵 호수에 떠있는 수상 카페인데 맥주와 차 그리고 그밖의 간단한 요기를 할수가 있다
그런데 관광객이 들르는 이곳 선상카페 주위에는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앵벌이들이 쫙 깔려있다
우리가 올라서자 어디서 몰려왔는지 금새 수많은 앵벌이들이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할거없이 정확하게 한국어로 원딸라를 외친다. 이들은 노동이고 뭐고 없다 그저 저렇게 앵벌이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사람들은 그래도 빈손으로 원딸라를 외치는 사람들보다는 먹지못할 바나나라도 앞에놓고 원딸라를 외친다
선상카페에서 키우는 비단 구렁이를 원딸라를 주고 모델로 빌렸는데 우리의 화초는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이렇게 금새 익숙해져 이제는 웃는 여유까지 생겼다.그런데 난 왜 선그라스를 거꾸로 끼고 있는지 모르겟다
톤레샵호수의 선상카페 2층으로 올라가면 비교적 깨끗한 전망대가 있었다.
멀리서 양푼이를 탄 어떤애가 익숙한 폼으로 부지런히 손으로 물을 저으며 다가오고 잇었는데 양은으로 만들어진 양푼이가 저렇게 배도 될수 있구나 하고 신기해 하며 바라보는데....
가까이서 보니 세상에......외팔이다....한쪽팔은 악어에게 잘려 나갔을까?....
가까이 다가와서는 원딸러를 외친다. 이곳에서 천사같은 우리 마눌님은 가지고 잇던 1달러짜리 다 나눠줘 버리고 나중엔 천원짜리 한국돈까지 모조리 있는대로 다 나눠져 버렸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계속 끝도없이 나와 울 마눌님만 따라댕기는거다....휴...진땀뺐다
그런데 신기한게 있다. 세계 지역별 삶의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 톤레샵 호수 사람들의 만족도가 5위 안으로 나타났단다.
그들은 나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왜일까?.근심걱정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만족일까?...
우리의 삶의 만족도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그렇다면 그들의 삶이 좋은 것일까?
그들은 삶의 만족을 느끼고 살고 있으므로, 그대로 살아도 좋은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자신들과 관광객의 처지가 어떻게 다른지..그것도 아직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잇을까?. 그러면 저 사람들이 과연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사진속의 원딸라를 외치는 엄마의 애절하고도 서글픈 눈망울이 지금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쉽게 지워지질 않는다.
캄캄보디아는 공장을 세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자연 및 문화자원을 보전하기 위함이다. 씨엠립도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어서 일정한 높이 이상은 건물을 지을수도 없다
그러니까..캄보디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은 농업과 관광밖에 없다는 결론인데 농업을 하던 사람들도 노동의 댓가를 알기보다 구걸이 더 쉽다는걸 알기에는 아마도 오래걸리지 않을 것이다.그럼 그 다음엔?......정말 구걸만 하고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톤레샵 호수의 수상관광을 뒤로하고 이제 작은 킬링필드라 불리는 왓트마이 사원을 찾았다. 프놈펜에 있는 킬링필드의 사원은 이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웅장하지만 이곳은 작고 아담하게 지어진 불교 사원이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3년7개월동안 크메르루즈군의 폴포트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학살 만행.....당시의 캄보디아 인구 870만 중에서 300만명의 지식인들을 죽였던 죽음의 언덕.
이러한 슬픈 역사때문에 캄보디아에서는 가족사항을 물어보는것 자체가 실례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난다...당시 론놀정권하에서 협력했던 관리부터 시작해서 안경쓴 사람.외국어를 아는사람.심지어 손에 굳은살이 없다는 이유로 이땅의 지식인들이 깡그리 말살당해 빈약한 인재들로 인해 국력이 쇠퇴해서 지금도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가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당시의 종군기자들이 남겨놓은 잔인한 사진속에서 역사의 현장들을 생생히 느낄수가 있는데 당시의 학살에 가담 햇던 인물들도 눈에 띄는데 그중에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도 있단다
돈이 많다는 이유로...부자라는 이유로...자본가라는 이유로...부농이라는 이유로...뚱뚱하다는 이유로...또 늙었다는 이유 등등...실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어간 사람들의 유골들을 일부나마 이곳에 모셔놓고 그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그런데 믿을수 없는건 당시의 학살에 가담했던 크메르루즈군이 거의가 농촌의 무지랭이 출신들로서 교육도 받지못한 소년병들로 이루어져 있어 12~16세 들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사리도 분간하지 못할 어린 아이들이 이 잔인한 학살을 하면서 어떤 목적의식이나 있었을까?.....사진은 어린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죽어간 그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불교사원이다
그렇다고 폴포트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정말 혜택을 베풀었을까?...그것도 아니란다..협동 농장이란 미명하에 무리한 노동으로 죽어간 노동자만도 그 수를 헤아릴수가 없단다...
후기글....이번 캄보디아 여행에서는 많은것을 생각하게하는 계기를 접하게 된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 하겠다
아시아를 호령하던 크메르제국이 어떻게 소멸하고 또 그후의 캄보디아가 지도자의 잘못된 결정 하나가 얼마나 국민들을 핍박과 가난과 굶주림 속으로 떨어지게 되었는지를 눈으로 보고 느끼며 비록 우리들을 실망시키는 위정자들이 있다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앙코르톰과 앙코르왓의 빛나는 유적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캄보디아 정부가 어차피 광광으로 먹고 살려면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관리를 잘해서 관광객들의 마음을 잡아야 할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는 한번은 갔다가 올만은 하지만 두번은 갈곳이 못된다고....
톤레샵 수상촌의 더럽고 비위생적인 환경들을 제거하고 관광객들이 아무곳에서나 편히 쉴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수상촌의 그자체로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수 있을것이다
마지막으로 캄보디아 여행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여행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하는 마음으로 썼다
참고로 캄보디아 여행을 할때는 홍삼사탕을 넉넉하게 준비 해가지고 가라고 당부하고 싶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에서는 대한민국의 홍삼과 고려인삼을 최고의 보양식품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5만원짜리 홍삼이 그곳에서는 20~30만원씩 팔리고 있다....그것도 돈을 싸들고 구하고 싶어도 못구할만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현지인들에게도 우리나라 인삼의 효능이 체질과의 궁합이 최고라고 한다.
따라서 홍삼사탕만 들고가도 마사지를 받을때나 그밖의 서비스를 받을때 아주 유용하게 쓰일수가 있다
첫댓글 야 여행기 지기네요 내가 다녀온듯하고 장편소설같은 느낌이듭니다 함 꼭 가보고싶은생각이,,잘보구갑니다
이번 여행내내 자네와 함께 했었더라면....하고 생각했다네...
아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앙코르왓 그리고 하롱베이... 눈에 선하네요. 내가 첨 여행할때. 아마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해 내년 부터는
관광객을 안받는다는 얘기도 들리고 하던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다.ㄲ~ㅃ
어차피 모든 유적들이 다 파괴가 되어버렸는데 보호할게 있겠어요?...일년치 예산이 관광객들이 쓰고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던데요...
대장님 지난번에 여행기 올려야 되는디 하시드니 역시나 최고유 우짜 이리두 잘쓰셨대유 다녀오신 대장님 보다더 실감이 나유 짝짝짝 박수박수
다음에 캄보디아 여행을 갈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행기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 태어난 걸 참으로 행운이란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앙코르왓트의 옛 모습들을 보면서 웅장함과 과거의 뼈아픔 기억들..신비스러운 광경을 잘 보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어집니다 대장님 여행기 감사드려요^^
우리 천지님들과 함께 다시한번 가봤으면 좋겠어요
직접 다녀온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생생하게 맴도는군요 멋진 여행자료를 무상으로 감상을 잘 하고 갑니다
다음에 갈땐 이보다 훨씬 좋은 느낌을 가져올수 있지않을까 싶어요... 사실 이번 여행은 너무 준비를 못했거든요..
말로만듣던 그유명한 앙코르왓트사원을 다녀온 느낌이드는군요 ~~ 캄보디아 역사도 알게되고...대장님 대단하시네요~~오늘은 늦어서 대충보았는데 내일 자세히 보아야겠네요 ~~여행기작성하시느라 수고많이하셨습니다~~잘보구갑니다~~
캄보디아의 여행에서 꼭 알고가야 할것이 캄보디아의 근대사랍니다
아우대장님 캄보디아 여행 잘했읍니다 앙코르 왓트 꼭 한번 가보구 싶었는데 대장님의 세세한 설명 사진 제가 직접갔다온 느낑이에요 감솨 넘 생생한느낌 ...
9월달에 산토끼님과 함께할 화산이 기대되요....작년에 삼청산과 황산에서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어서요...
근디 조기위 대장님 앤경은 왜 거꾸로 쓰셨대유 고거이 요즘 유행인가 ㅎㅎㅎㅎㅎㅎ
ㅡ글쎄유...캄보디아에선 그게 대세인게벼~~히히히
대장님 여름빨리접하셨네요! 여행기맛나게 보구갑니다
9월에 중국 화산하고 숭산 한바리 하고 옵시다 짱구님
내가 긴~~여행을 다녀 오는 듯한 기분으로 잘 보고 갑니다.....이것을 준비하시느라 여런날 수고 하셨을텐데 난 싶게 보고 가서 죄송 합니다...
감사감사~~!! 너무감사합니다~~공부가많이됄거같아요~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