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뜨19] 호모 파베르 -서투른 목수-

[썬샤인]

[꽁뜨19]  호모 파베르  -서투른 목수-

나는 서투른 목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1974년 11월 17일 지금의 집사람과 서른 네 살 늦깍이 결혼 후 그 동안 30년 넘게 단독 주택에 살면서 (아파트 또는 이와 비슷한 곳에서 살아 본 것은 서울 삼성동 연립에서 약 일년, 대전 문화동 기계창 아파트에서 약 5년,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서 약 반년, 그리고 경기도 벽제 허스맨션(연립)에서 약 일 년이 전부) 크고 작은 집수리를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단독 주택에 살다 보면 겨울에 보일러나 수도의 동파. 기와 또는 벽채가 새거나 하수도나 변기가 막힌다거나 하는 등, 별의 별 일이 다 생기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동네의 기술자란 사람을 불러 고치곤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인건비가 말도 못하게 높아져 걸핏하면 일 이 십만 원은 훌쩍 넘어 버린다.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불광동 집은 살림집에 가게까지 끼어 있다. 가게라야 천막지붕에 나무기둥이 다인 허름한 것이지만 계절에 따라 이걸 유지 관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이걸 일일이 남의 손에 맞기는 건 돈도 돈 이려니와 꼭 내 맘에 들게 해 놓지도 못하는 수 가 많다. 해서 하는 수 없이 웬만한 건 내가 직접 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못하나 박는 것도 쉽지 않은 게 못 박는다는 게 내 엄지손톱을 때려 손톱이 까맣게 죽고 이게 새로 나오는데 두 세 달도 더 걸린 일 도 여러 번 있었다. 또 한 번은 가게 지붕에 올라갔다가 천막이 꺼지면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 또 하나 황당한 것은 목재를 자를 때 분명히 줄자로 재어 연필로 금 긋기하고 잘랐는데도 막상 맞춰보면 안 맞는다. 좀 길면 다시 자르면 되지만 짧은 경우에는 도리가 없다.

목수 일이며 집수리 일이며 여러 가지 공구가 필요하다. 망치며 톱, 드라이버, 쇠톱, 줄톱, 뻰찌, 롱노스, 카터, 바이스, 그 밖에도 끌, 대패, 정, 송곳, 와이어스트리퍼, 줄, 수평계, 수직추, 빠루, 몽키스파나, 파이프렌치, 육각렌치, 노기스(버니어캘리퍼스),각종 붓, 롤라, 헤라(스패튤라), 직각자, 줄자, 전동 드라이버, 드릴세트, 전동카터, 홀카터, 삽, 곡갱이, 오함마, 쇠갈쿠리, 호미, 흙손이, 시리콘 건, 등등...그래서 하나씩 사 들이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공구상 못지않게 되었다. 이걸 다 장만하는데도 기 백은 족히 들은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목수일이랍시고 해놓은 것을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 가게에는 소나무 한그루와 느티나무 한그루가 가게 지붕을 뚫고 올라와 있다.(사실 엄밀히 말하면 나무가 이미 있는데 여기에 지붕을 씌운 것이지만..이걸 어쩔까 하고 궁리 궁리 끝에 스리브 베아링의 원리를 응용하여 겨우 해결하였다. 또 하나는 가게의 확장이다. 아무래도 가게가 너무 비좁아 이걸 조금 늘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기존 가게 건물에 잇대어 일곱 개의 기둥을 세우고 여기에 판자지붕을 얹어 놓은 것이다. 이 건물의 특징은 가운데 기둥을 없앤 것이다. 가운데 기둥이 있으면 아무래도 걸리적 거리게 마련이라 이걸 아예 없앤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공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건 아니라도 재료역학과 구조역학을 공부한 덕(?)일 것이다. 또 하나 여기에 채광과 환기를 위한 카노피를 설치한 것이다.

이렇게 까지 만드는데 장장 10년이 걸린 것이다. (물론 조금하고 몇 달 쉬고 또 고치고 ...해서이지만...) 또 한 가지 작년 가을 내내 거의 한 달간에 걸쳐 마무리한 것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조그만 건물의 옥상 방수와 스레트 지붕의 보수공사다. (이건 건축전문가 이현구 동문의 자문을 받고 시공--그의 말에 따르면 3w, 즉 water will win 이란다. 즉 방수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하여간 어찌 어찌하여 이것도 남의 도움 거의 안 받고 자력으로 완성했으니 얼마나 대견한가?...(자가발전 ㅋㅋㅋ...)

요지음 나의 주요 일과는 우리 가게 한 귀퉁이를 잘라 나의 아뜰리에 즉 나만의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재료는 주로 건축폐기물로 나온 각목이나 합판이며 정 모자라는 것은 할 수 없이 목재상에서 구입해 쓴다. 폐기물은 공짜지만 수고가 보통이 아니다. 즉 일일이 못을 뽑고 다듬고 하는데 하루해가 다 간다. 하긴 가진 거라곤 시간과 인격(?)뿐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재료를 준비하고 나면 나름 꽤 뿌듯한 심정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특히 힘 드는 건 지붕이나 높은데 올라가서 일하는 건데 나이 들면서 균형 감각이 떨어지고 또 전동공구를 사용할 때에는 능률은 나지만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고가 날 까봐 늘 조바심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서는 전동공구를 잘 안 쓴다.

이제 얼추 작업실의 기본 골격은 완성되었고 합판 벽면에는 바탕 페인트칠도 해 놓았으니 이제부터 슬슬 내가 좋아하는 벽화를 그릴 차례다. 무슨 그림을 그릴까?...즐거운 고민이다. 전에는 주로 우리 민화나 어린이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찾았는데 이번에는 우선은 이집트벽화에서 몇 점 골라볼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 본 아프리카 미술에서도 몇 개 골라볼 생각이다. 내 그림은 이렇게 합판위에 페인트나 칼라펜으로 그리니 투박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난 그게 좋다.

인간의 특징을 말하는 몇 가지로 호모 이렉투스(직립인간), 호모 사피엔스(예지적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인간),그리고 호모 파베르(공작인간)가 일컬어진다. 인간이 불의 발견에 이어 구석기, 신석기를 거치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인간이 다른 모든 동물을 제치고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나는 무언가 소삭거리고 만들어보고 하는 게 좋다. 호모 파베르--서툰 목수의 변명이다. 끝

[고이민현]

내가 하고싶고 내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직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거이죠.
하고있고 하고자하는 작품이 완성되면 멋지게 사진으로 보여주게나.

[無心軒]

. . . "엣센스 손자병법" - 그리고 올리시는 기술적, 정치적 정수를 담아내며
쉽게 글을 쓰시는 호모 사피엔스 - 썬 샤인님.

[썬샤인]

졸작에 과찬이십니다. 그저 심심하니까 몇자 끄적거려본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