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구간(태안-서산-)-첫째 날(7월 26일, 일) 흐리고 비.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어영부영 하다보니 20일이나 지났다. 이러다가는 8월이 다 가도 끝내기가 어렵겠다. 서울이 가까우니 이제는 틈나는대로 걸어야겠다. 9시, 태안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32번 국도를 따라 서산으로 출발했다. 국도 옆의 드문드문 남아있는 토막난 옛길을 찾아 걸으며 10:20, 인평교차로에 도착했다. 인평의 태안군 관광안내소는 간판만 요란하고 문이 잠긴 채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 요즈음 여름휴가철이어서 관광객이 많을텐데 더구나 오늘은 일요일이 아닌가?
인평교차로부터는 부석사로 가는 지방도를 따라 걷는다. 국도를 떠나 교통량이 적은 한적한 길을 걸으니 한결 아늑하다. 공기도 맑고 아무도 거슬리지 않으니 오랜만에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이 맛에 사실 걷는 거다. 인평저수지에는 낚시꾼들이 아주 많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꾼들이 작정하고 나섰나보다.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그래서 다행히 햇살이 따갑지 않아 좋다. 비가 오려나?
11:40. 가시리 버스정거장에서 늙은 부인을 만났다. 서산으로 언니 문병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린단다. 날더러 몇살이냐고 물어서 65세하고 했더니 자기보다 겨우 한살 적은데 자기는 너무 일을 많이해서 겉늙었다고 한숨이다. 아직 아주 곱다고 했더니 그 나이에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다. 젊을 때는 살자고 따라다니는 동네총각도 여럿이었단다. 지금 자기 영감은 병이 들어 골골하고 들어누워서 일도 못하고 있다며 예전의 그 동네총각에게 시집갔더라면 지금 호의호식하고 살텐데 그때는 '그냥 무서바서 도망만 댕겼다'며 호호 웃는다. 잠시나마 옛날 처녀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아줌마가 너무 예쁘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카메라을 들이대니 주지도 않을 시진은 왜 찍느냐며 '분단장도 안 했는디...'하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다. 나이가 들어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예쁘다는 칭찬에 부끄러워 몸을 비비 꼬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시절의 열아홉 처녀다. 서산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더니 '더 젊은 여자도 많을틴디...'하고는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오른다.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까?
노부인과 헤어지고 1:00, 풍전교차로에 도착했다. 점심때가 다 지나도록 가게도 없고 식당도 없어서 쉬지도 못하고 계속 걷는다. 시장하고 다리도 아프다. 1:50. 다시 32번 국도로 들어서서 공림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는 식당이 많다. 그래서 오히려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마침 근무 중인 교통순경에게 어디가 점심을 먹기에 적당하냐고 물었더니 건너편의 '송가네 한우탕'을 일러준다. 점심이 늦어서인지 '송가네 한우탕'의 도가니 탕은 맛이 있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고 나오려는데 40대 중반의 주인 '송영헌' 씨가 '어디 분이시간?'하며 말을 건다. 사투리가 심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디에 사는 분이냐?'는 뜻이다. 내 행색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나보다. 대강 걸어온 길을 듣더니 '정말 멋있어유.'하며 박수까지 쳐서 옆자리의 사람들까지 놀라 쳐다본다. 원, 싱겁기는...
3:00, 서산시내에 들어섰다. 그냥 모텔로 들어가기는 너무 이르다. 우선 PC방에 가서 내일 갈 길을 다시 확인한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모텔을 잡고 시내를 어슬렁 거려도 식욕이 돋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녁을 걸러야 할까보다. 점심을 너무 늦게 먹은 탓인가?
※송가네 한우탕/서산 32번 국도 공림삼거리(예천동 652번지)/041-665-0028
샤모니 모텔/서산시 동문동 926-11(1호 광장 부근)/041-665-1156
오늘 걸은 길 : 태안 버스터미널-인평리-가사삼거리-풍천교차로-공림삼거리-서산. 20km.
첫댓글 이박! 정말 대단하다.어제 나랑 우이령길 등산을 하고 새벽에 다시 도보여행에 나서다니...나는 피곤하고 다리도 아프고해서 느러지게 자고 하루종일 빈둥 대고 있는데... 얼리 버드에겐 생기는 것이 있는 모양이지!?
얼리버드는 길에 떨어진 동전도 줍고 가끔은 늙은 여자도 줍지.
얼리 버드가 뭐란가요?
살곶이다리! 공부좀해라. 고명하신 MB가 얼리버드의 시범을 보여주고 있잖아!!!!
원장님 드뎌 시작하셨네요^^ 건강하게 걸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