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정성 담긴 장독대를 찾아서
세종시 뒤웅박고을
'장'과 '장독대'의 사연은 가족여행이라는 테마와 제법 잘 어울린다. 장 담그는 마을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고, 가정의 달 5월이면 꼬마들 손잡고 기억에 남을 추억여행을 떠나고픈 충동에 빠지게 된다.
세종시 뒤웅박고을은 하루쯤 우리 전통의 맛인 '장' 만드는 스토리에 젖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천여 개의 장독이 늘어서 있는 뒤웅박고을 장독대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장 담그는 아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마을은 아니다. 뒤웅박고을은 전통장류박물관이 있고, 운주산 기슭 아래 으리으리한 규모의 장독대가 있는 전통 장류 테마공원이다. 공원 안에 장을 담가놓은 옹기만 2천여 개나 된다. 이곳에서는 장독대 사이를 거닐며 손수 장을 담그시던 할머니 얘기도 들려주고, 가끔씩 손사래를 치는 아이들에게 우리 먹을거리인 장이 얼마나 좋은지도 자연스럽게 설명해줄 수 있다.
전통 장류를 찾아가는 여행이니 승용차로 쉽게 달려가기보다 싱그러운 봄 열차여행을 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뒤웅박고을은 경부선 전의역과 조치원역 사이에 있다. 전의역에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 청송1리, 청송산업단지 앞에서 내리면 큼지막한 뒤웅박고을 이정표가 외지인을 반긴다. 큰길에서 작은 오솔길을 따라 1.5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뒤웅박고을이 나온다. 오솔길 주변 밭에서 수확하는 대부분의 콩이 뒤웅박고을에서 사용된다. 뒤웅박고을의 장은 청송리 인근에서 재배에는 콩을 주원료로 하는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가고 있다.
[왼쪽/오른쪽]뒤웅박고을 이정표 / 고을 시비
[왼쪽/오른쪽]십이지신상 거리 / 어머니 장독대
빼곡하게 늘어선 천여 개의 장독
뒤웅박고을 전역은 아기자기한 테마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초입의 십이지신상 거리를 지나면 다양한 형태의 장독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장류 테마공원임을 알린다. 어머니 장독대는 설립자의 모친이 직접 사용했던 옹기 유물을 모아서 조성한 장독대로 어머니 조각상이 함께 들어서 있다.
해담뜰 장독대는 천연의 맛을 이어가는 '지킴이 장독대' 역할을 하며, 장 만들기 체험자들을 위한 가족 장독대도 있다.
이런 풋풋한 사연의 장독들이 마당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뒤웅박고을의 설립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뒤웅박고을은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정갈하게 담근 정통 장류를 보급해 건강한 참살이 식문화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뒤웅박고을의 '뒤웅박'은 추수가 끝나면 이듬해 풍농을 위해 씨앗을 보관하던 종자 보관 용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뒤웅박 장독대
[왼쪽/오른쪽]야생화와 장독 / 참살이 된장
고을 설립 취지를 되새기며 몇 계단 더 올라서면 테마공원의 자랑거리인 으리으리한 규모의 뒤웅박 장독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여 개의 장독이 한 마당에 끝없이 도열한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 장독 중 유리로 덮여 있는 것은 올봄 담근 장을 보관한 옹기다. 이곳 장은 일대에서 경작한 좋은 콩으로 메주를 쑤며, 천일염과 암반수를 이용해 예전 어머니들처럼 길일을 받아 장을 담그고 있다. 천연 발효 기법을 이용하는 장은 4월 중순까지 만들기를 마감한 상태다. 전통의 맛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독 근처는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메주비누와 옹기향초 만들기
뒤웅박고을에서는 다양한 체험 역시 눈길을 끈다. 직접 장을 담그는 체험은 이미 마감됐지만 메주 만들기 등의 약식 체험은 단체로 신청하면 가능하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옹기향초, 메주비누 만들기 등 소박하면서도 흥미로운 체험들이다. 옹기향초는 작은 옹기에 콩을 재료로 한 양초가루를 넣은 뒤 초를 만드는 것인데 장독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재미를 더한다.
"왜 장독에 새끼줄이 비스듬히 매어져 있고, 흰 버선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지 아시나요? 새끼줄이 비스듬히 처져 있어야 도깨비들이 이 집은 근본이 안 돼 장맛도 없을 것이라며 그냥 되돌아간다고 해요. 흰 버선을 거꾸로 매달아놓는 것은 벌레들이 장독 안으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에요. 날파리들이 흰색을 싫어하는 것을 감안한 거죠."
작은 옹기지만 실제로 흰 버선을 붙이며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냥 스쳐 지났던 우리네 장독과 장에 깃든 선현들의 지혜가 더욱 잔잔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옹기향초와 메주비누 만들기는 인원에 관계없이 진행되며, 주말에는 야외마당에서 체험할 수 있다.
[왼쪽/오른쪽]메주비누 / 전통 장독 이야기
[왼쪽/오른쪽]옹기향초 만들기 / 전통장류박물관
뒤웅박 장독대 뒤 한옥은 전통장류박물관으로 장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 등으로 꾸며졌다. 전통장류박물관은 세종시 1호 사립 박물관이기도 하다. 뒤웅박고을에는 이외에도 전국의 옹기들을 모아놓은 팔도장독대, 주상절리원, 전통생활풍경원 등 야외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뒤웅박고을에서 아쉬운 부분은 추억의 장맛을 현장에서 직접 맛보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뒤웅박고을 내 식당인 장항관에서 한정식을 메뉴로 내놓는데 맛은 정갈해도 주말이면 1인분에 3만 원인 음식 가격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청솔마을
[왼쪽/오른쪽]운주산 산행로 / 장항관 한정식
뒤웅박고을 관람을 마쳤으면 인근 청솔마을 산책과 운주산 산행을 즐겨도 좋다. 농촌체험마을인 청솔마을에서는 감자나 고구마 캐기, 두부 만들기 등 농촌체험이 진행되며 황토로 꾸민 숙소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뒤웅박고을에서 연결되는 산책로는 해발 460m 운주산으로 이어진다. 운주산 기슭의 운주산성은 운주산의 세 봉우리를 감싼 산성으로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뒤웅박고을 초입까지는 대중교통이 꽤 편리하게 연결된다. 801번 버스가 조치원역과 전의역 사이를 20분 간격으로 오간다. 조치원역까지는 서울 등에서 10~20분마다 열차가 운행돼 연결이 수월한 편이다. 전의역은 열차가 자주 서지는 않지만 뒤웅박고을과 가깝고 옛 역사의 분위기도 한결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