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臨 溪 面 ) ◈
Ⅰ. 연 혁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때 9주로 확정,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고려(1018년) 때에는 강릉군에 속하였고, 조선시대 고종 43년(1906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선군에 이관되어 정선군 임계면으로 칭하게 되었다. 1910년 일제 침략으로 면 행정구역을 11개리로 개편하였고, 1973년 7월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삼척군 하장면 도전리와 가목리를 임계면에 편입, 13개리가 되었으나, 1989년 1월 봉정리를 북면으로 이관하여 현재 12개리이다.
1975년 12월 건설부고시 제207호로 북평산업기지개발구역 지정수몰지구로 고시되었으며, 1985년 1월 건설부훈령 제81호로 임계댐 고시가 해제되었다. 1987년 9월 건설부고시 제87-112호로 임계도시계획 결정 및 지적승인이 났다. 조직 구성은 지도와 같다.
Ⅱ. 일반 현황
1. 임계면 현황
1) 가구 및 인구
구분 |
가 구 수 |
인 구 수 |
비고 |
계 |
농가 |
비농가 |
계 |
남 |
여 |
임계면 |
1,806 |
934 |
872 |
4,895 |
2,474 |
2,421 |
|
2) 면 적 (단위:㎢)
구분 |
총면적 |
농경지 |
임야 |
대지 |
도로 |
하천 |
잡종 |
공장 |
계 |
전 |
답 |
임계면 |
244.19 |
21.21 |
17.25 |
3.96 |
212.29 |
0.63 |
1.84 |
5.00 |
0.05 |
0.02 |
3) 행정구역
구분 |
리 |
반 |
자연마을 |
비고 |
법정리 |
행정리 |
임계면 |
12 |
32 |
110 |
85 |
|
4) 공공기관 및 유관기관
기 관 명 |
주 소 |
대표전화 |
임계파출소 |
임계면 송계6리 |
562-6112 |
임계우체국 |
임계면 송계6리 |
562-6001 |
임계농업협동조합 |
임계면 송계6리 |
562-6021 |
정선축협임계지소 |
임계면 송계6리 |
562-0774 |
임계중․고등학교 |
임계면 봉산1리 |
562-6221 |
임계초등학교 |
임계면 송계8리 |
562-6165 |
동부지방산림관리청 정선국유림
사업소 임계경영2팀 |
임계면 봉산1리 |
562-6031 |
동부지방신림청 정선양묘사업소 |
임계면 봉산2리 |
562-6037 |
한국전력임계서비스센터 |
임계면 송계4리 |
562-6006 |
예비군임계면대 |
임계면 송계6리 |
563-9113 |
임계면 보건지소 |
임계면 송계6리 |
563-1396 |
5) 사회단체
기 관 명 |
주 소 |
대표전화 |
주민자치위원회 |
임계면 송계6리 |
563-6655 |
임계면새마을협의회 |
임계면 송계7리 |
562-4632 |
임계면사마을부녀회 |
임계면 송계6리 |
562-6841 |
임계면번영회 |
임계면 골지1리 |
562-6689 |
임계면자율방범대 |
임계면 송계6리 |
562-1717 |
임계면의용소방대 |
임계면 송계4리 |
562-9993 |
임계면청년회 |
임계면 송계3리 |
562-4747 |
임계면노인회 |
임계면 송계2리 |
562-6148 |
임계면백합회 |
임계면 낙천3리 |
562-5339 |
임계면 생활개선회 |
임계면 봉산1리 |
563-6241 |
임계농협농가주부모임 |
임계면 낙천2리 |
562-5353 |
임계면농촌지도자회 |
임계면 골지2리 |
562-6800 |
임계면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
임계면 반천1리 |
562-6397 |
한우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송계6리 |
562-7887 |
시설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낙천3리 |
562-5342 |
원우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임계3리 |
562-4939 |
문래산자연유기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골지2리 |
562-6704 |
양돈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봉산3리 |
562-5062 |
청옥산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도전2리 |
562-0351 |
백봉령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가목리 |
563-8880 |
임계유통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송계6리 |
562-6245 |
21세기영농조합법인 |
임계면 송계6리 |
562-5990 |
6) 종교단체
기 관 명 |
주 소 |
대표전화 |
기 관 명 |
주 소 |
대표전화 |
천주교임계공소 |
송계4리 |
562-6112 |
동산교회 |
가목리 |
562-6112 |
중앙교회 |
송계3리 |
562-6001 |
감리교회 |
송계2리 |
562-6001 |
낙천교회 |
낙천2리 |
562-6021 |
제일교회 |
임계1리 |
562-6021 |
용산교회 |
용산1리 |
562-0774 |
성결교회 |
봉산1리 |
562-0774 |
반천교회 |
반천1리 |
562-6221 |
안식교 |
송계6리 |
562-6221 |
도전교회 |
직원1리 |
562-6165 |
통일교 |
송계4리 |
562-6165 |
고양교회 |
고양리 |
562-6037 |
천태종구인사 |
임계2리 |
562-6037 |
송계교회 |
송계1리 |
562-6006 |
태고종수덕사 |
송계8리 |
562-6006 |
문래교회 |
골지1리 |
563-1396 |
법화종태경암 |
봉산1리 |
563-1396 |
2. 리별 현황
1) 가목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가목리 |
46 |
125 |
최종길 |
562-5786 |
2) 도전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도전1리 |
40 |
105 |
김태경 |
562-9921 |
도전2리 |
28 |
66 |
변승구 |
562-4625 |
3) 직원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직원1리 |
31 |
78 |
이성규 |
562-5334 |
직원2리 |
43 |
113 |
이용범 |
562-7915 |
4) 임계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임계1리 |
51 |
130 |
김일영 |
562-3995 |
임계2리 |
45 |
121 |
김명성 |
562-4674 |
임계3리 |
53 |
152 |
조상원 |
563-6996 |
임계4리 |
24 |
55 |
박변홍 |
563-2512 |
5) 송계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송계1리 |
28 |
114 |
최광섭 |
562-8033 |
송계2리 |
53 |
155 |
김종구 |
563-5300 |
송계3리 |
80 |
220 |
김종훈 |
562-6235 |
송계4리 |
114 |
318 |
이영삼 |
562-6328 |
송계5리 |
66 |
182 |
김상섭 |
562-0345 |
송계6리 |
132 |
393 |
고상호 |
562-7840 |
송계7리 |
46 |
137 |
정경배 |
562-6330 |
송계8리 |
58 |
181 |
박용신 |
562-6335 |
6) 봉산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봉산1리 |
143 |
424 |
김종학 |
563-1539 |
봉산2리 |
68 |
186 |
이장열 |
562-9725 |
봉산3리 |
26 |
76 |
이주열 |
562-9750 |
7) 낙천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낙천1리 |
46 |
147 |
오봉록 |
562-6091 |
낙천2리 |
71 |
180 |
이동재 |
562-0315 |
낙천3리 |
48 |
150 |
김승태 |
562-8818 |
8) 용산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용산1리 |
71 |
191 |
박원경 |
562-0366 |
용산2리 |
59 |
136 |
윤증갑 |
562-6897 |
9) 골지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골지1리 |
54 |
145 |
남진달 |
562-6749 |
골지2리 |
41 |
102 |
이운학 |
562-6762 |
골지3리 |
38 |
104 |
김인수 |
562-6811 |
10) 덕암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덕암리 |
40 |
83 |
전남표 |
562-6683 |
11) 반천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반천1리 |
65 |
142 |
배문환 |
562-6480 |
반천2리 |
53 |
127 |
심진석 |
562-3285 |
12) 고양리
구분 |
현 황 |
이장 |
전화번호 |
가구 |
인구 |
고양리 |
45 |
97 |
이강학 |
562-6529 |
Ⅲ. 지명유래
1. 가목리(柯木里)
원래 삼척군 도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삼척군 하장면에 이관되어 가목리로 부르다가 1973년 7월 1일자로 도전리와 같이 정선군 임계면에 이속되었다. 가목리라 칭한 것은 이 지방에 가목(물푸래나무, An ash tree)이 다른 수종에 비해 많아 가나무정이라 부른 것에 연유한다.
자연부락은 다음과 같이 분포한다.
1) 가목 2) 군대 3) 명주목이 4) 구부렁골 5) 부수베리 6) 마상골 7) 수붕어터골 8) 배나무골 9) 과금골 10) 마흔골 11) 진골 12) 베리골 13) 개병골 14) 사골 15) 칠마니골 16) 두례골 17) 새목골
1) 가나무정(柯木) : 옛부터 이 지대에는 가나무정이 산재하여 성장하고 있음으로 가나무정을 가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2) 군대(軍垈洞) : 연대 미상에 삼척과 임계를 연결하는 백복령을 지나 임계면 봉산2리에 있는 장찬성지를 침범하던 군사들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군대동이라 부른다.
3) 명주목이 : 교통이 불편했던 옛 사람들이 생활 필수품을 사러 삼척 지방으로 오고 갈 때 지나가던 더바지령을 넘어가는 길목으로서, 계곡이 명주실 같이 매우 좁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4) 구부렁골 : 이골 저골 마다 가는 길이 구불구불 돌아야하는 지형에서 유래되어 구부렁골이라 한다.
5) 부수베리(火石舃洞) : 옛 사람들이 일상생활용품으로 오늘날의 성냥 대신 돌과 돌로 마찰시켜 담배불로 이용하던 부싯돌이 생산되던 곳으로 부수베리골이라 부르고 있다.
6) 마상골(馬上谷) : 옛날에 전쟁 시 기마병을 위한 군마(軍馬)를 사육, 훈련시키던 곳이다.
7) 수붕어터골 : 군대동과 직원리 경계 지역에 있는 골
8) 배나무골 : 백복령 42번 국도변 우측에 있는 골
9) 과금골 : 강릉시 명주군 옥계면 생계리쪽에 위치한 골임
10) 마흔골 : 옛날 40호의 가구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1) 진골 : 도전리에서 가목리와 경계 지역으로 골이 정말 길다는 뜻
12) 베리골 : 벼루돌(베리는 벼루의 사투리) 및 숫돌 등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3) 개병골 : 개병산으로 가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14) 사골 : 동해시 신흥리로 가는 골로 네 집이 살았다는 뜻이다.
15) 칠마니골 : 산삼을 캐는 심마니 일곱 사람이 살았다는 뜻이다.
16) 두례골 : 동해시로 삼화로 가는 골(일명 더바지령)로 모든 지역을 두루(두례는 두루의 사투리) 거쳐 간다는 뜻임
17) 새목골 : 새목재로 가는 골임
2. 도전리(道田里)
원래 삼척군 도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하장면에 이관되어 도전리로 부르다가,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정선군 임계면에 이속되었다.
도전리는 옛날 돈전, 승전이라고 불리어 왔는데 삼척군 하장면에 이관될 때는 도전리로 개편되었고, 자연 부락은 아래와 같다.
1) 외도전 2) 내도전 3) 광석동 4) 형틀거리 5) 장아리 6) 응암동 7) 상두전 8) 점구비 9) 기추목이 10) 은전구비 11) 천패랭굴 12) 나무골 13) 뒤골 14) 아우라지 15) 절골 16) 버드내 17) 방아다리 18) 상장바우골 19) 하묵골 20) 사실내골
1) 외도전(外道田) : 바깥쪽에 있는 부락이다.
2) 내도전(內道田) : 안쪽에 있는 지역이란 뜻이다.
3) 너래골(廣石洞) : 하천변에 너래 바위(넓고 납작한 바위)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4) 형틀거리 : 옛날 병사들이 전장에서 군법을 준수치 않아 처형당할 때 사용하던 형틀이 설치되었던 부락이어서 위와 같이 부른다.
5) 장아리(士實洞) : 옛날 국난으로 인하여 어지러운 세상을 비관,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와 살던 충신 선비들이 떳떳하고 바르게 살아왔음을 기려 후세 사람들이 장아리(藏雅里) 또는 사실동이라 한다.
6) 매바우(鷹岩洞) : 바위 형태가 마치 매 모양으로 되었다 하여 응암이라 부르며, 이곳의 형국에 매가 엎드린 묘자리가 있다 하여 응암동이라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7) 상두전(相頭게) : 바위 밑에 있는 게가 서로 마주보는 형국이라 하여 상두게 부락이라 전한다.
8) 점구비 : 옛적 사람들이 쇠을 녹여 밭을 갈던 기구인 보섭을 만들던 부락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9) 기추목이 : 지금의 군사훈련소와 같이 이곳에서 천군만마를 훈련시켰던 데서 이 지명이 생겼다.
10) 은점구비(銀店洞) : 은광(銀鑛)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고, 속칭 은전터, 은점구비라 부른다.
11) 천패랭굴 : 옛날 전시에 패랭이를 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동굴 안에서 피난하였다 하여 천패랭굴이라 말한다.
12) 나무골 : 석회선 광산이 있으며 농가에서 나무를 가장 많이 하러 다니던 골짜기에서 유래하였다.
13) 뒤골 : 도전초등학교 뒤편 저수지가 있는 골임
14) 아우라지 : 도전 1,2리 계곡의 물이 합치는 지점임.
15) 절골 : 하장면 유천리 가는 곳으로서 옛날 절터임
16) 버드내 : 버드나무가 많은 냇가라는 뜻에서 지음(柳川)
17) 방아다리 : 디딜방아 다리처럼 두 갈래 골로 나누어졌다 하여 부른다.
18) 상장바우골
19) 하묵골 : 아우라지 아래 물구바골임
20) 사실내골 (새시내골)
21) 도전 외도전 아래 마을로 본 부락을 말함
22) 선바위(섬바위) : 먼 곳에서 보면 마치 곡식을 넣어 쌓아올린 가마(섬) 같이 보인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3. 직원리(稷院里)
원래 강릉군 임계면 지역으로서 피원이란 원(院)이 있었으므로 피원, 또는 직원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정선군에 편입되었다.
자연 부락은 다음과 같다. 1) 구룡동 2) 노직동 3) 군대동 4) 영두촌 5) 화전촌 6) 밭땟 7) 덧골 8) 움우골 9) 살인골 10) 사태골 11) 작은아밭골 12) 부돼지골 13) 새이골 14) 뚝과리골 15) 스무골 16) 골말 17) 당두 18) 관터
1) 구룡동(九龍洞) :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에 따라 구룡동이라고 한다.
2) 노직동(老稷洞) : 노근동이라고도 하며 ‘늙은 피’라고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장찬성을 축조한 후 노병(老兵)을 배치하여 수비를 맡겼는데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 군율에 의해 처형당하면서 노병이 피를 흘리고 죽었다하여 늘은 피(늙은피의 사투리)라고 한다.
3) 군대동(軍垈洞) : 가목리의 군대동과 경계하며 이곳 역시 군인의 주둔지라 하여 군대동이라 부르고 있다.
4) 영두촌 : 불모의 땅이었던 황무지를 개간하여 독가옥(獨家屋)을 건축, 이주시킨 부락으로 방우리 버덩(방우리는 방울, 버덩은 들판의 사투리로 방울 같이 생긴 들판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5) 화절촌(꽃재골) : 부락 간에 조그마한 고개가 연결되어 있는 마을로 꽃이 많이 피어 화절촌 또는 꽃재골이라 부르고 있다.
6) 밭땟(道田洞) : 도전리와 하천을 사이에 둔 자연부락으로 현재 직원리 또는 밭땟이라고 한다.
7) 덧골 : 산짐승을 잡는 덧틀을 많이 놓았다는 골
8) 음무골 : 위에 있다 하여 위에골(윗골의 사투리, 上谷)을 움무골 로 발음하게 된 것이다.
9) 살인골 : 살인 사건이 있던 골로 살인골이라 부른다 한다
10) 사태골 : 네 쌍둥이(四胎)를 낳았다는 동네에서 유래하였다.
11) 작은아밭골 : 작은 아들에게 살림을 내주면서 이 곳에 있던 밭을 주었다는 뜻이다.
12) 부돼지골 : 산돼지가 많이 있다는 뜻이다.
13) 새이골 : 두 마을 사이(새이는 사이의 사투리)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14) 뚝다리골 : 두 마을 사이에 조그만 다리를 놓고 다닌다는 마을
15) 스무골 : 20호의 가구가 살았다는 마을
16) 골말 : 마을 극변으로 골이 깊은 마을
17) 당두 : 지금은 국유림으로 큰 분지가 되어 있으며 초지 조성 및 목축지로 적합하고 옛 상계령 좌편에 있는 골 이름
18) 관터 : 관원이 살았다하여 관터라 함. 조선시대 광무 시절 지금 리를 원이라 하였음
19) 큰피원 : 직원리 본 마을을 말함
20) 작은피원 : 노직동 또는 노근동을 말함
4. 임계리(臨溪里)
강릉군에 속해 있던 임계면이 1906년 정선군으로 이관됨에 따라 이 때부터 상임계라고도 부르며, 옛날 관촌으로 지금도 초석과 기와 등의 잔해가 많이 있다고 한다.
1973년 7월 1일자 행정구역 개편으로 3개리로 분구되었으며, 자연 부락은 다음과 같이 분포되어 있다.
1) 관촌 2) 관두곡 3) 점촌 4) 검무동 5) 귀새 6) 태봉안 7) 가실피 8) 도진동 9) 화천동 10) 금방동 11) 웃수골 12) 두전동 13) 큰골 14) 평양말 15) 노루마당 16) 장성거리 17) 월대골 18) 송이밭골 19) 절골 20) 늘목이골 21) 실리골 22) 나근터골 23) 밤나무골 24) 자장골 25) 물방아골 26) 한사리골 27) 땔나무골 28) 거지골 29) 통노골 30) 우고내 31) 기르마동 32) 계루마동 33)독호 34) 불당골 35) 도톨고지
1) 관말(官村) : 상임계(上臨溪)로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옛날에 행정기관이 있던 곳이며 지금도 관터에 토석․기와 같은 잔해가 나온다 하여 그 지명을 관말(관이 있던 마을)이라고 부른다.
2) 관두골(官後谷) : 이 부락은 관마을의 뒤 쪽에 있다 하여 관두골(관뒷골의 사투리)이라 부른다.
3) 점촌(店村) : 점토질로 옹기 그릇을 만들던 곳이라 점촌이라 부르고 있다.
4) 안금(釗舞洞) : 연대 미상 장찬(張贊)이란 장수가 허수아비를 세운 것이 칼춤을 추었다고 하여 검무동(일명 안금)이라 한다. 송계5리의 검무평과 이웃하였고, 원래는 같은 동네로 불렸거나, 안금(원래 안검일 것으로 추정)의 지명에서 보듯이 검무평의 안쪽 마을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 아닌가 추정한다.
5) 귀새 : 논 농사를 짓기 위해 좋은 소나무로 수통을 파서 연결하여 도수로를 이용한 마을로 귀새(수통 이름)라고 한다.
6) 태봉안(泰封洞) : 고려 공민왕 때 (궁예가) 이곳을 태봉 예정지로 정하였다고 하며 지금 부락 입구 산봉우리에 태봉 터 자리가 있어 이 마을 지명을 태봉안이라 한다. 일설에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태를 묻은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7) 가실피(歌瑟琵) : 옛적 사람들이 관촌으로 오는 여정에 쉼터로 피로를 달래며 노래를 불러 보던 곳이라 한다.
8) 도진(道眞) : 왕산면 고단리와 임계면 임계리의 경계에 위치하며 면계 및 군계로 지정된 부락이다.
9) 고내(花川) : 심산계곡 청계천변에 아름다운 꽃이 만발함을 의미, 그 마을 지명을 화천(꽃내)이라 지은 것이 보통 부르기를 ' 고내 '라 한다.
10) 금방동(近方洞) : 석병산 아래 명당 묘지라 갈마음수형이 근방에 있으리라 하여 금방동이라 말한다.
11) 올소골(嗚沼洞) : 석병산을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 물이 절벽에서 폭포수가 되어 흐르며 소에서 소리가 들린다 하여 올소골이라 한다.
12) 팥밭골(豆田洞) : 그 지형이 남방향으로 오곡물 중 콩, 팥 등의 곡식이 잘 된다하여 두전동이라 칭한다.
13) 큰골(大谷) : 석병산 아래 깊은 갈마늪이 있는데 그중 지형이 제일 넓다 하여 큰골이라 한다.
14) 평양말(平壤村) : 광산 김씨 중시조가 사화(史禍) 시 평양에서 피신하여 이곳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하여 평양마을(일명 피양말) 이라 부른다.
15) 노루마당(獐坪) : 석병산 아래 명당 묘자리인 주장탈망형이 있다 하여 노루마당이라 한다.
16) 장성거리(長城洞) : 그 지역의 안녕을 빌고 재앙을 추방하여 이정표 역할을 하는 장승을 세운 곳이라 하여 장승거리라 부르고 있다.
17) 월대골 : 도룸산 북쪽에 위치한 골 이름
18) 송이밭골 : 송이가 생산되는 골 이름
19) 절골 : 예전 사찰지임
20) 늘목이골 : 임계리에서 왕산면 고단리 부락으로 다니던 경계지골 이름
21) 살피골 : 눈이 많이 내릴 때 살피(雪彼의 사투리)를 신고 사냥하던 골
22) 나근터골 : 근방 도마을로 가는 좌편 골 이름으로서 이광익이 살던 집 골
23) 밤나무골 : 밤나무가 있었다 하여 밤나무골이라 함
24) 가장골 : 농기구 만드는 대장간이 있던 곳
25) 물방아골 : 물레방아가 있던 곳
26) 한사리골 : 칡넝쿨을 한 사리 두 사리 뜨던 골 이름임
27) 땔나무골 : 부락에서 땔나무를 많이 하러 다니던 골 이름
28) 거지골 : 밥을 빌어먹던 거지들이 모여 있던 곳
29) 통노골 : 장성거리에서 직원리로 가는 길로 외골 길이란 뜻임
30) 우고내 : 화성동을 고내라고 하며 아랫고내의 금방동으로 가는 지역을 우고내(윗고내라는 뜻)라고 한다.
31) 기르마동 : 명당의 묘지가 있다 하여 이곳을 살피기 위해 말을 머물게 했다는 뜻임
32) 계루마동 : 석병산 아래 갈마음수형의 묘지가 있어 지관들이 말을 머물게 했다는 뜻임
33) 독호 : 점촌 윗쪽의 고래마루 부락으로 옛날에 한 집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34) 불당골 :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35) 도톨고지 : 온 산이 모두 도토리나무로 덮여 주민들이 도토리를 따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5. 송계리(松溪里)
원래 임계면 하임계로서 현재는 임계면사무소 소재지이며, 충주, 북평 간 동서(東西)로 연결되는 42번 국도와 강릉, 태백 간 35번 국도의 사통팔달지로 500고지 이상의 고원지대로 대체적으로 토질이 비옥하고 주위가 아름다우며 유순한 산세로 주변 임상이 거의 소나무로 구성되어, 우리나라 임상 자원이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남한강 상류인 송계천이 구비 구비 중심으로 흐름에 따라, 울창한 송림과 맑은 시냇물을 의미하여 송계리라 칭한 것이다. 수 차에 걸친 행정구역 개편으로 8개리로 구성되었고, 자연 부락은 다음과 같다.
1) 본동 2) 뒷말 3) 신연동 4) 송원동 5) 소매골 6) 옹기장골 7) 문둥이골 8) 도수장골 9) 전골 10) 공동묘지골 11) 송원골 12) 검무평
1) 본동(本洞, 松溪洞) : 임계면 소재지로 북은 강릉, 남은 태백, 동은 삼척과 동해시, 서는 정선으로 연결되어 대체적으로 교통이 편리하며, 내륙 지방과 연해안 지역이 연결되어 주민 생활권이 강릉권에 인접하였고, 비옥한 문전옥답은 우리 군내에서 대표적이다.
2) 뒷말(後洞) : 본동 뒷편에 있다 하여 뒷말이라 부르며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동네로서 그 곳에 서면 면소재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3) 새벼리(新硯洞) : 이 부락은 마을 뒷편에는 칠성바위가 있으며, 옛적에는 샛별(曉星)마을로 부르다가 사투리가 섞여 차츰 변하면서 새벼리라고 부른다.
4) 소란(松院洞) : 노추산 줄기인 큰 너그니재 밑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원님 터가 있다 하여 송원동 또는 소탄이라 부르기도 하며, 분교 이름은 소란분교라 하고, 현재는 대부분 사람이 소란으로 부른다.
5) 소메기골 : 노추산 줄기로 주위에 명당자리인 와우형 묘자리가 있다 하여 소매골또는 소메기골이라 부르고 있다.
6) 옹기장골 : 덕우산 아래 현 송계2리 끝 마을이며 국도 35번 좌측편에 속한 골짜기로서 옹기쟁이가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7) 문둥이골 : 옛날 관원들이 출장을 다닐 때 관에서 일찍 출발하여 이곳에 왔을 때 먼동이 터 밝아진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나, 그 후 문동이골로 되었다가 문둥이골로 되어 마치 나병환자가 살던 곳처럼 되었으나 이는 잘못이며 원래 먼동골이다.
8) 도수장골 : 도수장을 설치, 도축하던 곳으로 10여년 전까지 있었으나 현재 없어졌고, 현 송계8리 서편에 있으며 42번 국도변 우측에 있고, 입구에 산머루집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9) 진골 : 소란 삼거리 예전 성황당 입구부터 작은 너그니재 밑까지를 길이 길다고 하여 진골이라 함
10) 공동묘지골 : 옛날에는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동묘지만 있다. 강릉으로 가는 버들고개로 가다가 왼쪽 골이다.
11) 송원골 : 지금의 소란 본동을 말함
12) 검무평(劍舞坪) : 송계5리에 위치하였고 안그무와 냇물을 경계로 한 지역이다. 임진왜란 때 왜병이 동해에서 밀려올 것에 대비하여 현재의 검무들에 허수아비를 수 천 개 만들어 갑옷과 투구를 입히고 활과 창을 무장시켰으며, 왜병이 백복령을 넘어 쳐들어오면 허수아비를 연결한 줄을 움직여 허수아비가 마치 군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검무를 추는 것처럼 보였다 하여 검무평이라 한다.
6. 봉산리(蓬山里)
임계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요지로써 옛날에는 황무지가 많고 인가가 극히 적으며 잡초만 무성하였던 곳으로 그 중 쑥이 가장 많으므로 봉산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자연 부락은 다음과 같다.
1) 본동 2) 바위안 3) 송촌 4) 등붕골 5) 장찬 6) 점구비 7) 말루 8) 가랭이 9) 안산 10) 구미정
1) 본동(本洞) : 봉산리 본부락을 말하며 수고당이 있는 마을로서 배산임수의 전형적 구조를 띄고 있고, 덕수이씨들이 많이 산다.
2) 바위안(岩內洞) : 주위 산세가 암석과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골지천과 임계천이 합하여 앞으로 흐르며 남향으로서 아늑한 마을이다. 몇 년 전 다리가 개통되기 전까지 물을 막은 보 위로 다녀 교통이 매우 불편하였고, 토지가 매우 비옥하다. 속칭 바워니 또는 바암니라고도 부르나 정확한 명칭은 바위안리이다.
3) 송촌(松村) : 마산봉 아래 있는 부락으로 노송이 우거지고 주위에 방풍림 소나무가 가득한 곳으로 송림에 싸인 마을이라 송촌이라 지칭한 것인데 지금은 방풍림을 전부 벌채하여 논으로 개답하였고, 수고당 집안에서 학교 부지를 기증하여 임계중․고등학교가 터를 잡고 있다.
4) 등붕골(登鵬洞) : 주위의 산세는 절벽으로 아름답고 수목이 울창하며 시냇물이 맑게 흐르고 계곡이 협소하여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보라매, 독수리 등 큰새가 하늘 높이 자주 날고 있음을 표현하여 표현등붕골이라 한다. 둔봉골이라고 함은 잘못이다.
5) 장찬동(張贊洞) : 장천성지 아래 있는 마을이라 장찬골이라 부른다.
6) 점구비(店洞) : 무쇠를 녹여 밭갈이 농기구인 보섭을 만들던 곳이라서 점무리 또는 점구비라고 한다.
7) 말루(斗縷) : 산 정상에 인가가 있는 곳으로, 주위에서 보면 무인지경 같아 보이는 곳이다. 옛적에는 피난지라 하였으며, 형상이 마치 높은 곳에 누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8) 가랭이 : 말루 부락 산 밑의 강변에 있는 구미정의 상류에 위치한 곳으로 주위 절경이 매우 아름다우며, 산 밑 바른쪽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일명 가양(佳陽)이라 하였던바, 그 후 사투리가 섞여 가양리가 가랑이 또는 가랑이(이 곳 사람들은 가래이로 더 많이 부름, 가를 길게 소리 내고, 래이를 짧게 발음)로 부르게 되었다.
9) 안산(案山) : 임계면 소재지 앞의 임계천 건너 편에 있는 마을로서 난포정이 있는 마을이다. 풍수지리상 임계면 소재지의 안산이라 하며 민가는 거의 철거되고 밭에서 여러 가지 농산물을 생산한다.
10) 구미정(九美亭) : 조선시대 숙종시 이조판서 이자 씨가 당파 싸움에 환멸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봉산리에 은거지로 정하고, 봉산리로부터 약 4粁 떨어진 곳에 휴양처로 建坪 12坪의 목조건물 정자를 건립. 이 亭子 주위에는 아홉 가지 特色의 絶景이 있어 九美亭이라 이름 지은 것이고, 부근에 십팔경의 名勝이 있어 九美十八景이라 부른다. 구미정 앞에는 몇 년 전에 철제 구름다리를 설치하여 사을기와 연결토록 하였다가 2002년 홍수에 떠내려갔다.
만을 열거하여 본다.
① 전주(田疇) : 구미정 뒷편의 전원 부락에 있는 밭을 말함
② 석지(石池) : 구미정 뒷편의 자연적으로 생긴 돌 연못을 말한다. 토사가 쌓이고 갈대가 우거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최근 토사를 치워 형태가 뚜렷이 나타난 것은 좋으나 시멘트로 물을 고이게 만들어 놓은 것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③ 어량(魚梁) : 정자 아래편에 두 갈래 홈이 져서 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 홈을 장찬나무로 걸쳐 막으면 그 위로 고기가 뛰어넘어 간다는 뜻으로 魚梁이라 말한다. 지금도 나무를 걸쳐 놓은 어량에 족대나 그릇을 받치고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④ 평암(平岩) : 정자 앞 냇물 바닥에 있는 평평한 암반을 말한다.
⑤ 반서(盤藇) : 홍수 시에 정자 앞 평암의 높은 곳이 좌우 양편으로 갈라져 물이 흐르므로 마치 섬 모양으로 보인다 하여 반서라고 한다.
⑥ 층대(層臺) : 정자 앞 산의 석회암 층이 첩첩이 층을 쌓아 올라간 것과 같이 보여 층대라 한다
⑦ 취벽(翠壁) : 병풍처럼 둘러 싼 정자 앞 산을 바라보노라면 그 절경이 병풍을 보는 것같이 매우 아름다워 취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봄에 진달래꽃이 피면 더욱 절경이다.
⑧ 증담(澄潭) : 정자 아래 깊고 맑은 沼를 말한다.
⑨ 열수(列峀) : 구미정 앞의 나직한 산봉우리가 마치 줄을 서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임을 말한다.
7. 낙천리(樂川里)
강릉군 임계면에 속하였다가 고종 32년 (1895)에 정선군에 편입되고, 190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낙천리라 불렀는데, 1973년 행정구역 재편으로 3개리로 나누고, 자연부락은 다음과 같이 분포되어 있다.
1) 역두루 2) 테골 3) 설내 4) 오누골 5) 조개골 6) 삼박골 7) 탑거리 8) 서류 9) 석동거리 10) 늪밭골 11) 오목골 12) 미륵이 13) 사을기 14) 지름골 5) 골말 16) 버덩말 17) 탑거리 18) 움골 19) 칠구잡골 20) 샘물웅덩이 21) 뒤버당
1) 역두루(歷坪) : 옛적에 관원이 통행하는 마필을 관장하던 찰방(察訪)이 있던 역촌(驛村)이란 뜻이 변하여 역두루라 부르고 있다.
2) 테골(基谷) : 옛날 장재 터가 있었다 하여 터골이라고 하였는데 그 후 테골이라 더 칭하고 있다.
3) 설내(穴川) : 이곳은 노인봉을 안산으로 하여 구비구비 흐르는 골치천이 서로 조화되어 절경이고, 문전옥토는 이 고장에서 으뜸가는 곳이다. 옛날 빈민 구제를 하던 창이 있었던 창촌(倉村)으로서 지형이 아담한 마을로 뒷산이 석회암 지대로 자연동굴이 발생, 석천수가 용출되어 이 물로 현천 - 역평 마을의 수 만 평 논에 관개수로 이용하며, 수온이 양어장 적지라 양어를 하는 천혜의 부락이다. 전에는 마을 강변을 휘돌아 가는 나무 수로가 겨울이 되면 고드름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4) 오누골(嗚谷) : 위령산 아래 있는 계곡 마을로 입구는 같으나 조금 들어가면 두 골로 나뉘어 한 곳은 고양리 하승두로 가는 길이며, 다른 한 곳은 조개골 미륵재로 가는 부락으로 두 골이 같다고 하여 오누(이) 골이라 한다.
5) 조개골 : 문래산 자락의 협소한 계곡 부락으로 천지개벽 시 산 중턱에 조개껍질이 있었다 하여 조개골이라 한다.
6) 삼박골 : 부락 입구는 하나인데 세 갈래로 계곡이 형성되었다 하여 삼박골이다.
7) 탑거리 : 부락 입구에 오고 가던 나그네들이 돌로 탑을 모았다 하여 탑거리라 부른다. 지금은 무인촌이다. 낙천2리의 탑거리와 다르다.
8) 세루(細樓) : 봉산리 장찬동에서 용산리와 경계지이다.
9) 석동거리(三洞里) : 부락형태가 위․중간․아래로 세 갈래 부락으로 나누어졌다 하여 석동거리라 불렀다.
10) 늪밭골 : 중봉산(中峯山) 아래의 오지 부락으로서 매우 습한 곳이어서 늪이 많아 늪밭골이라 하며 지금은 무인촌이다.
11) 오무골 : 중봉산 아래에 첩첩산중인 오지부락으로서 다섯째 부락 중 한 부락이라 하여 오무골이라 부른다.
12) 미락이(美樂洞) : 단봉산 아래 아담한 마을로 전답이 비옥하고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서, 이곳은 옛날 불교 전성기의 절터(寺止)이며 지금도 곳곳에 기와장이 땅속에서 발견되고 사찰 우물터도 부락 중심지에 위치하여 샘물이 끊이지 않았으나 최근 우물을 덮고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있다. 수 십 년 전에 홍수가 났을 때 부락 입구의 탑거리에서 유실되었던 탑의 옥개부가 발견되어 근처 인가에서 보관 중이며, 마을 안쪽의 바위 형태가 미륵불과 같다 하여 미륵이라고 부르던 것을 별 뜻이 없는 미락동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다시 세부적으로 골말, 지름골, 객동, 탑거리, 버덩말 등으로 부르고 있다
13) 사을기(寺乙基) : 이 부락은 현 낙천2리에 속한 부락으로서 뒤로는 단봉산을, 앞으로는 구미십팔경을 자랑하는 구미정이 위치한 마을이다. 역시 사찰 자리로서 단봉산 중턱 절터 끝이라 부르며 여름철 강변 유원지로서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이다.
14) 지름골 : 미락동 단봉산 아래 옥녀 즉 금형의 명당자리가 있다는 전설과 함께 지름골이라고 한다.
15) 골말 : 낙천 2리에서 고양리로 가는 미륵재 깊은 골인데 미륵바위가 입구 우편에 있었으나 지금은 깨져 일부만 남아 있다.
16) 버덩말 : 낙천 2리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논과 밭이 많으며 버덩말 또는 버당말(말은 마을을 뜻함)이라 한다.
17) 탑거리 : 미락동(낙천2리) 입구이며 예전 사찰지로서 부락 입구에 탑을 쌓아 탑거리라 한다. 탑거리를 물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 흐르므로 유원지로 각광을 받고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수 십 년 전부터 교회가 자리잡고 있으며, 장마가 나면 탑거리 전체가 물에 잠긴다.
18) 움골 :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처럼 집을 짓고 농사지으며 살던 곳인데, 일제 치하에 금․은광을 개발하여 20맥의 갱도가 있었기에 지금은 20맥골이라 한다.
19) 칠구집골 : 현 낙천 3리 조개골이란 부락에 안칠구란 사람이 살았다 하여 칠구집골이라 한다.
20) 샘물웅덩이 : 낙천3리 현천 부락으로서 샘물이 동굴 속에서 나온다하여 샘물웅덩이라 한다.
21) 뒤버당 : 낙천 3리의 논을 개간한 지역이다.
8. 용산리(龍山里)
우령산 아래 고양리에 접하고 있으며 혈천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한강 상류인 골지천이 마을 중심을 구비구비 흐르며 구한국 시대부터 월탄과 용동 2개 부락이 용산리로 되어 있다가 1973년 7월 1일자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용산1리, 용산2리로 분구된 마을로서 자연부락은 다음과 같이 형성되었다.
1) 달탄 2) 중구평 3) 우령이 4) 범정골 5) 햇곳 6) 세류 7) 바리골 8) 돈들 9) 용동 10) 싸근다리 11) 너무싸근다리 12) 햇골 13) 오작골 14) 오묵골 15) 명당바위 16) 장기바위 17) 광대바위 18) 갈매바위 19) 암자궁 20) 황창골 21) 배둔지소
1) 달탄(月灘) : 마을 모양이 반달형으로 되어 있다 하여 월탄 또는 달탄이라 부른다.
2) 중구평(中邱坪) : 논으로 된 평지 들판과 밭으로 된 경사가 진 언덕 들판으로 마치 계단식처럼 형성되었는데, 옛날에는 들판 중간의 언덕 기슭으로 지나다니게 되었으므로 들판 사이에 길이 나 있다는 말이다.
3) 우령이(雨靈) : 이 부락은 위령산 이름을 따서 우령이라 부르며 음지마을로 뒷산 산록 8부 능선에 석천수가 있으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건강과 재앙을 없애 달라고 치성을 올리던 산당이 있다.
4) 범정골 : 중봉리의 청옥산 낙맥으로 산이 높고 계곡이 깊으며 옛날 호랑이가 나다녔다 하여 범정골이라 한다.
5) 햇골 : 중봉리 청옥산 낙맥으로 첩첩산중으로서 집이 없었으나 극빈자들이 화전을 개간,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햇골이라 부른다.
6) 세루(細樓) : 청옥산 낙맥으로 심산계곡으로서 오지에 인가에 있어서 마치 조그마한 누각이 있는 듯 하다 하여 세루골이라 부른다.
7) 돈들(錢坪) : 문래산이 안산으로 자리 잡아 절경이며 토질이 기름지고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풍요로운 들이란 뜻과 마치 지형이 옛날 돈 모양으로 골지천이 휘어 돌아 돈들이라고 한다.
8) 용골(龍洞) : 예전에 이 마을에 큰 못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동이란 말이 전하여 오고 있다.
9) 싸근다리 : 싸리나무가 많았다 하여 싸근다리라 하여 35번 국도변 우측이다.
11) 너무싸근다리 : 싸근다리에서 조금 돌아온 곳을 너무싸근다리라 한다.
12) 오작골 : 햇골에서 갈림골을 오작골이라 한다.
13) 오묵골 : 다섯 집이 살았다 하여 오묵골이다.
14) 명당바위 : 명당자리가 있다 하여 명당바위라 한다.
15) 장기바위 : 옛 사람들이 장기놀이를 하였다 한다.
16) 광대바위 : 위령산 밑 강변에 있으며 광대가 놀던 곳이라 한다.
17) 갈매바위 : 갈매기가 많이 놀던 곳이다.
18) 암자궁 : 예전에 절과 암자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없다.
19) 황창골 : 황철나무가 많았으며 민가는 철거되고 없다.
20) 배둔지골 : 선비가 뱃놀이를 하며 놀던 곳이라 함. 지금의 용산 솔밭가든 아래 소(沼)를 말한다.
21) 정기바위 : 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술을 마시며 뱃놀이를 하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큰 바위 밑에 긴 수염을 가진 메기가 있었는데 메기 수염을 보면 그 해 큰 홍수가 났다고 하며, 어느 때인가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 큰 메기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22) 바리골 : 골지리 가는 덧재 아래에 있던 골로 해마다 농사가 잘되어 추수할 때는 바리(소나 말의 등짐)로 곡식을 운반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23) 째기골 : 바리골로 가다가 절골 사이에 생긴 골을 말한다.
9. 골지리(骨只里)
문래산이 주산이 되고 중봉산에서 시작되는 골지천이 마을 앞을 회류하여 그 아름다운 절경과 기름진 문전옥토는 우리 군내에서도 손꼽히며, 구한국 시대에는 문래 또는 고계(高溪里), 골개로 칭하여 오다가 한일합방 당시 번역이 잘못되어 골지리로 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자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하여 지금은 3개리로 분구 되었으며 자연 부락은 다음과 같이 형성되어 있다.
1) 음지마을 2) 양지마을 3) 장터거리 4) 마태골 5) 석둔 6) 세루골 7) 버섯바위골 8) 갈버덩이 9) 하촌 10) 말미버당 11) 뒤골 12) 독장골 13) 병두골 14) 새목이 15) 골거리 16) 개금벌 17) 문래주골 18) 절골
1) 음지마을(陰村) : 문래산 아래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
2) 양지마을(陽村) : 문래산 아래 있으며 비옥한 농토에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이다.
3) 하촌(下村) : 임계면 내에서 밭농사 지대로는 제일 큰 들판으로 형성된 아래 마을이란 말이다.
4) 장터거리(三巨里) : 위치가 삼거리로 되어 있으며 오고 가던 나그네들이 운집하던 곳으로 한때 은 광산이 개발되어 시장을 이룰만큼 복잡하였던 거리를 말한 것이다.
5) 마태골(馬駄谷) : 구한국 시절에 관원이 있어, 오고 가던 관원들에게 마필을 배정하던 곳으로 지금의 우정 사무 책임자가 있던 곳이다.
6) 석둔(石屯) : 전란시 돌을 모아 방어 태세를 갖추어 놓은 곳이라 하며 돌무더기가 많아 유래 되었다.
7) 세루골(細樓谷) : 산자수려한 계곡으로 협소한 마을을 뜻한다.
8) 버섯바위골 : 이 마을 뒷산에 석유버섯(바위에서 돋는 버섯)이 난다 하여 버섯바위골이라 부르고 있다.
9) 갈버덩이 : 골지리 하동 뒷산 버덩이를 개간하여 사람이 살고 있는 습지로써, 갈무렁이라고도 부르나 갈버덩이라 많이 부르고 있다.
10) 말미버당 : 골지 음지마을 위편에 있으며 예전에 옛길로 많은 말이 다니던 길목이란 뜻이다.
11) 뒤골 : 골지리 하동마을 뒷편 골 이름
12) 독장골
13) 병두골 : 골지리 음지 마을이며 山 모양이 옛날 병 모양 같다고 하여 병두골이라 한다.
14) 새목이 : 용산리와 골지리의 경계 지점이다
15) 골거리 : 덕암리 자근소래골로 가는 작은 골이며 옛날 절터가 있었고 마지막 골이란 뜻이다
16) 개금벌 : 골지리 하동(벌판) 논벌을 開金坪이라 한다
17) 문래주골 : 문래산 아래 있으며 지금 민가는 없다.
18) 절골 : 문래주골 안쪽에 절이 있었다 하여 부른다.
10. 덕암리(德岩里)
옛날에는 수출리라 부르던 것이 지금은 덕암리라 부른다. 덕암리 중간 지점에 덕바위 산이 있는데 그 산 이름을 따서 덕암이라 칭하고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1) 작은 소래 2) 큰 소래 3) 새이말 4) 벳둔골 5) 구용동 6) 무내골 7) 동무지 8) 삼배곡 9) 버실이 10) 위밀이골 11) 송이재 12) 장강촌 13) 공전리가 있다.
1) 작은 소래(小所羅) : 동면 북동리와 경계 지역으로서 전체가 석회암 지대로서 세계적인 고품위 석회가 발견되며 한국의 대표적 석회암 지대를 이루는 곳이다.
2) 큰 소래(大所羅) : 고냉지 소채 생산지로서 동면 북동리와 경계임.
3) 새이골(말) : 덕암리 입구 지점에 있는 부락으로 뱃둔골과 소래골 사이 지점에 위치한 자연부락임
4) 뱃둔골 : 구용골 입구의 자연부락으로 형국이 배 모양의 형상에서 유래됨
5) 구용골(九用谷) : 자연부락이 많으며 동(銅)광산이 개발되어 채광 하였던 곳이다.
6) 무낼골(水出谷) : 계절에 구애 없이 많은 샘물이 솟는다 하여 유래되었으며 이 물을 이용, 현재 송어 양식장으로 이용하고 있음
7) 동무지(童舞地) : 산자수려한 깊은 계곡이라 하여 장강촌이라고도 부른다.
8) 삼배골(三培谷) : 장강촌 입구에 있는 부락이다.
9) 버실리(代門) : 동면 화표동과 경계 지역으로 버실리재가 종점인 지역이다.
10) 위밀이골(牛尾谷) : 옛날에 장재(큰 부잣집)가 살고 있던 마을로 장수대가 두 개 있었는데, 덕암리 쪽 장수대는 파손되고, 동면 지역에 위치한 장수대는 파손되지 않았다고 한다.
11) 송이재 : 덕암리 마지막 자연부락으로 동면 건천리와 경계한 부락이다.
12) 장강촌(長江村) : 별다른 지명 유래가 없이 동무지로부터 벌문 위 미리골까지 연결 합수된 계곡 강물이 흐르던 곳으로 장강촌이라 부르는 듯함
13) 공전리(公田里) : 하장면의 공전리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원래 같은 마을인데 행정구역이 나뉜 것으로 보인다.
14) 소라어구 : 큰소래, 작은소래로 들어가는 입구를 말한다.
11. 반천리(盤川里)
원래 어전리와 성북리로써 강릉군 임계면에 속해 있다가 고종 32년(1895) 정선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천리가 되었다. 또 1973년 7월 1일자 행정구역 개편으로 2개리로 분구하였으며, 자연부락은, 1) 성북 2) 노일 3) 도장골 4) 어전 5) 월루(여우쇠) 6)산성 7) 덕시 9) 여우쇠 10) 용두둑 11) 덕시 12) 안터, 13) 몰아우골 14) 성북
1) 재운(城北) : 예전에는 자운동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재운이라 하며 다시 분류하여 양지말, 새이말, 아래재운이라 부른다.
2) 노일(魯逸) : 반천리 중심 부락으로서 봉정리와 고양리로 가는 길목이며, 산천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은 선유에 으뜸가는 곳으로 보아 옛 선비나 나그네들이 그 절경에 도취되어 어리석은 사람처럼 그날 그날을 편하고 한가롭게 보내던 시절을 상기, 노일이라 칭한 것이다.
3) 도장골(道長谷) : 마을 형태가 들판이 아니고 산기슭에 위치, 계곡과 길을 따라 깊게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4) 어전(於田 : 느랏) : 늘버밭이 → 느랏으로 옛적에는 마을 이름을 이대곡이라 하였고, 지금도 자연계곡마다 배나무골, 신배나무골, 탁배나무골로 부르고 있으며, 창촌(적곡)이 있어 면장이 춘궁기에 빈민구제사업을 하던 마을로 양곡창 건물은 예전 임계면사무소(철거한 구건물)로 이전하였으며 한일합방 후 이대곡을 어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5) 월루(月樓) : 산 높은 곳에 달과 같이 둥근 마을이 있어 달빛 아래 빛나는 누각과 같다 하여 월루라 한다.
6) 산성(山城) : 산 정상에 마을이 형성되어 인가가 성곽과 다름없다하여 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7) 덕시 : 7부 능선 산록에 부락이 있어 떡을 만든 것과 같다 하여 덕시라 부른 것이다.
9) 여우쇠 : 강변 여울목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여우쇠(쇠는 沼를 말함)라 부른다.
10) 용두둑 : 어전 저수지 윗편에 있으며, 반천리 자주 윤씨의 조상 묘와 배씨 조상 묘가 많으며 배씨 조상 묘지가 소운혈이라 하여 용두둑이라 함.
11) 덕시 : 봉산 3리 등봉동 뒤편 왕치산 8부 능선에 위치하였으며 예전에는 덕새풀이 많았던 곳이 개간 후 민가가 들어와서 살면서 변어가 되어 덕시라 함.
12) 안터 : 봉산3리 등붕동 맞은 편에 있는 부락으로서 반천리 1번지가 이곳서부터 시작되었다.
13) 몰아우골 : 등봉동 뒤편 골이며 물이 처음 나온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14) 성북동 : 옛날 자운동의 아랫재운을 말한다.
12. 고양리(高陽里)
고양산 이름을 따서 고양리라 칭하였으며, 교통이 불편하여 임계면에서 가장 혜택이 뒤떨어진 지역이었으나 근래 길이 좋아져 발전이 빠른 지역 이다. 민심히 순박하여 주민들의 협동심은 타 지역의 모범이 되고 있다. 고양산의 유래에 대하여는, 에전에 한 도승이 상좌를 거느리고 다녔는데, 하루는 “동대문 밖의 나뭇꾼이 나무를 해다 파는 나무발이 보이는가?”라고 묻자 상좌가 "과연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여 그 산을 ”과연산“이라고 하였다가 세월이 흘러 고양산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자연부락은 계곡을 따라 1) 적목동 2) 새이말 3) 덕치 4) 수기 5) 하승두 6) 고수마리 7) 하일 8) 소라곡 9) 상승두 10) 절골 11) 다래재 12) 손오거리 등으로 되어 있다.
1) 노나무골(赤木洞) : 이 마을은 고양산 아래 있는 마을로서 적목동 또는 노나무라 부르고 있고, 옛날 사찰지가 있어 1971년도 이곳에서 여래좌불상․금궤가 발굴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보물로 판명되어 박물관에 소장된 바도 있다. 절골이라 부르던 곳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적목동이라 변어된 것이라는 설이 있고, 성황당 주변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언젠가 화재가 발생하여 그 나무가 붉게 병들어 가자 적목동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2) 새이말 : 수기동과 적목동 사이에 있는 부락이라는 뜻이다.
3) 수터(水基洞) : 고양리 입구에 위치한 부락으로 심산유곡이어서 두 갈래 계곡에서 사시사철 물이 흐를 것 같으나 홍수기를 제외 하고는 항시 건천으로 되어 있으며, 홍수 때 유실된 자리라 하여 수터라 부르고 있다.
4) 하승두(下升斗) : 문래산과 고양산 사이에 위치한 부락으로 대체적으로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어 가난한 시절 소량의 식량을 나누어 먹으면서 피난살이를 하였다하여 신두곡이라고도 하였다.
5) 고수마리 : 협소한 오지마을을 새로 개척하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면서 부모형제끼리 효행심을 서로 지키고 5~6호가 살아왔다 하여 세칭 고수마리라고 정하여 온다.
6) 하일(下日) : 상신두골에서 아래 마을이란 뜻에서 부른다.
7) 소래골(所羅) : 덕암리 큰소래와 연결되는 소래재 밑에 있는 부락으로 6.25사변 때 소개(疏開) 명령 지역으로 전부 소실되어 지금은 무인가 부락이 되었다.
8) 상승두(上升斗) : 심산계곡을 개척하여 오손도손 한 말, 한 되의 식량을 나누어 먹던 가난한 시절의 신개척지를 말한 것이다.
9) 덕질(德峙) : 지금 적목동(노마무골)에 절이 있을 때 조그마한 재를 두고 왕래하며 부처님의 자비심을 수도하면서 덕행위본의 뜻을 지닌 사람이 산다 하여 덕질 마을이라 칭한 것으로 추정한다.
10) 절골 : 적목동에서 상신두재로 가는 곳을 절골이라 한다. 예전 이곳에 절터가 있었으며 1072년도 금붙이 여래좌불상을 초등학교 학생들이 발견, 강원도 문화재관리국으로 이관된 것으로 전한다.
11) 다래재 : 소래골~상신두 사이에 있는 마을로 다래재 밑에 있다 하여 아래 다래재라 함.
12) 손오거리 : 수기동과 적목동 사이에 있는 부락으로 반가운 친구나 집안 사람을 손짓으로 오라며 맞이하던 곳이라 손오거리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13) 승지골 : 수터 마을에서 하승두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Ⅳ. 볼거리, 문화재 및 경승지
1. 볼거리
1) 5일장
○ 임계 5일장은 면사무소 옆과 버스터미널 주변에서 5일마다 열리는 임계면의 전통적인 재래 시장이다. 옛날에는 규모가 컸으나 교통의 발달로 예전보다는 못 하지만 아직도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한다.
⇒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
○ 임계 장터에서는 계절별로 생산되는 농산물과 산에서 채취되는 산나물, 약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2) 임계 감자 축제 및 면민의 날
○ 매년 8월 14일과 광복절인 8월 15일 이틀 동안 벌이는 지역 최대 축제이다. 풍년과 안녕 기원제 및 면민 노래자랑 등 경축 전야제를 필두로 각종 이 대항 체육행사와 우리 고장의 대표적 농산물인 감자를 소재로 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 일시 : 매년 8월 14일 ∼ 8.15 (2일간)
○ 장소 : 임계시장터, 임계중․고등학교
○ 주최 : 임계면민의 날 및 감자축제추진위원회
○ 행사내용
▶전야제 : 감자ox퀴즈, 노래자랑
▶본행사 : 리대항 축구, 배구, 씨름, 줄다리기 등
▶감자이벤트 : 감자요리경연, 감자 쌓기, 감자 많이 먹기 등
3) 문화유적
□ 외재 이단하 의복
○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4호
○ 지정일 : 1965년 10월 14일
○ 소 재 지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216
○ 소유자 : 이 위
○ 수량 및 규모 : 대례복 1점, 중치막 1점, 누비저고리 1착, 봉대 1구, 도투락댕기 1매, 용잠 1구
○ 유 래
- 임계면 봉산리에는 외제 이단하 내외분이 입던 의복을 후손 이위 씨가 소장하고 있다.
- 이단하는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자는 계주, 호는 외재 송간, 음보로 공조좌랑이 되고 1663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평사 부교리 이조정랑을 걸쳐 1668년 교리로 경서교정청의 교정관이 되고 이듬해 훈련별대의 창설을 주청하여 시행케 하고 동부승지 대사성으로 대제학을 겸했다.
- 1674년 숙종 즉위 후 서인으로서 제2차 복상문제로 숙청당한 의례 제신의 처벌의 부당성을 상소했다가 사직 당하였다.
- 1680년(숙종 6년) 경신대출척으로 홍문관 제학이 되어 현종개수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1684년 예조판서가 되어 사창절목을 왕에게 바쳤으며, 이해 좌참찬에 올라 선묘보감을 지어 올렸고, 현재 전하는 옷은 1686년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을 때 이단하 내외분이 입었던 옷으로서 현재 이위 씨가 소장하고 있는 의복은 중치막 1착, 대례복 1착, 누비저고리 1착, 봉대 1구, 도토락댕기 1매, 용잠 1구 등이다.
- 외재 이단하 내외분 옷은 국가지정 문화재 민속자료 제4호로 1965년 10월 12일 지정되어 1995년 2월 대례복에 대한 훈증 처리 후 수고당에 보관하고 있다.
- 아쉬운 것은 수 년 전에 문화재 도둑이 들어 수고당에 보관하던 수백 권의 전적을 훔쳐 가 소재를 알 수 없는 것이다.
□ 장찬산성 및 고분군
○ 지정번호 : 도 지정기념물 제70호
○ 지정일 : 1995년 3월 9일
○ 구조 형식 : 직선형 석축성 및 토성(석성은 높이 4~7m, 내벽 50cm, 길이 400m)
○ 소재지 :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 산 80번지
○ 소유자 : 김명기 외 2인
○ 유래 및 현황
- 이 산성은 정선군 임계면 소재지인 송계리에서 동쪽으로 약 1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임계천 남쪽의 구릉을 따라 축성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임계천과 거의 수직 방향을 이루고 있으며, 성 위에서는 강릉, 동해 지역으로부터 정선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삽당령과 백복령이 한눈에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성은 가늘고 경사가 심한 구릉의 동쪽 경사면에 축성한 내탁산성으로서 비교적 일직선으로 축성하였는데, 북단은 U자형으로 구부러져 마무리하였으나 남단은 붕괴되어 끝 모습을 알 수 없다. 위도상으로는 북위 37도 28분, 동경 128도 52분에 해당한다.
- 배후는 석이암산의 험하고 가파른 지세를 이용하여 동․서․북 3면을 이용하여 쌓았다. 학계에서는 산성 축조 시기를 고분 축조 시기보다 다소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
- 이 산성은 옛 기록에는 없다가,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의 532쪽에 石築과 土築을 함께 사용하였고, 석축부는 약 2백간, 토축부는 약 150간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또한 문화공보부가 1981년에 편찬한 전국유적목록과 1977년 편찬한 문화유적총람에도 일부 나와 있다.
- 성벽은 폭 50cm 내,외의 납작한 괴석으로 정교하게 쌓았는데 높이는 4~7m로 지형에 따라 일정치 않으나 평균 5m 정도이며, 성의 상단에는 내벽이 높이 50cm 내외로 남아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어 성벽의 상단 폭은 3.6m 내,외임을 알 수 있다. 석성의 총 길이는 400m이다.
- 구릉 정상의 능선에는 남북으로 세 곳 정도의 좀 높은 대지가 있고, 이중 남단 대지에는 폭이 약 5m, 길이가 약 10m 정도로 좀 낮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이곳이 성내의 어떤 시설물의 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남쪽의 성벽이 끝난 부분(해발 630m)에서 구릉은 급격히 낮아져 다시 능선을 형성하며, 이 능선을 따라서 약 10m 간격으로 4기의 대형 고분이 남아 있다. 약 10m간격으로 4기의 석곽이 노출되어 있는데 대형고분 1기만 석곽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작은 고분은 100여 기이다. 이 고분들은 장찬산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가장 큰 대형 고분은 성쪽에서 두번째 고분으로서, 분토의 직경은 약 10m이며 석곽은 장 5.6m, 상폭 1.8m, 천정폭 1.15m, 높이 1.5m의 규모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도내의 석곽묘중 최대 규모이다. 이 고분의 형식은 세 벽을 먼저 쌓고 두께 25cm 내․외의 판석 4장을 이어 덮은 뒤 시신을 안치하고 최종적으로 남쪽으로 단벽을 막은 횡구식 석곽묘이다.
- 돌방(석실) 무덤은 대부분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고, 그 밖의 돌덧널무덤은 평지와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 한편 산성과 고분의 서쪽면 구릉에 있는 밭에서는 이 산성과 고분에 필요한 관계를 갖고 있는 파수 등 토기 편이 일부 발견되었으며 이 토기 편들은 쪽편이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 산성의 축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성이 영동 지역에서 영서 지역으로 넘어오는 세력을 막을 수 있다는 입지적인 조건을 고려해 볼 때, 삼국이 대립하던 시기에 고구려가 신라의 진출을 막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함께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과 인근에서 발견된 토기편들도 축조시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 산성에는 고려 때 장찬이란 장군이 성을 쌓아 병력을 양성하고 있는데 마고할멈의 잘못으로 해를 입어 장군이 죽자 장군에게 오던 용마가 장군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인근의 마산봉(정상에 난포정이 있음)에서 죽었다고 하며 이 산성을 쌓을 돌이 없어 동해바다에서 돌팔매로 돌을 던져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또한 이 성을 쌓은 돌은 무너지면 다시 저절로 복원되고 아래로 흘러내린 흔적이 없다는 얘기가 전한다. 현재 석질이 비슷한 영월의 돌로 일부 복원을 하고 있다.
- 이 성에 대하여는 강원대 박물관 등에서 수 차례에 걸쳐 답사를 하였고, 1989년경 이 고장 출신 김영종(현 법무부 검사)가 고분군 지도를 만들어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신고, 그 해 여름에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하면서 토기, 흙으로 된 방추차, 철검 등을 수습하기도 하였다. 당시는 초기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추정하였고, 토기는 가야식과 신라식이 섞여 나왔다.
- 아직도 도굴이 행해지고 있는 곳으로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며 정밀한 발굴 후 관광자원으로 개발이 필요하다.
□ 수고당
○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216-1
○ 건립 연대 : 조선시대
○ 연혁 및 특징
- 조선 시대 숙종 때 사정 공조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 선생이 정선에 낙향하여 본인의 호를 따 지은 건물로 문서 편찬을 하던 곳이며, 후손인 이위 가옥(동막댁)의 외곽에 있는 별당 건축물이다.
- 장대석 두겹대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두고 각 기둥을 세웠으며, 굴도리의 오량과 팔작기와 지붕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축물로서 바닥은 우물 마루이고, 전면 한 칸은 퇴청 형식이며, 서고로 사용하는 석실이 지하 우측 한 칸에 있다.
- 석실은 3m×1.8m, 깊이 1.9m 크기로 천장, 벽, 바닥이 30cm 두께의 강회다짐 마감이고, 특히 바닥은 화강석 위 강회 다짐을 한 후 물매를 두어 천정의 결로에 대비하였으며, 천장은 상부를 다락으로 사용하고 있어 목재로 되어 있으나 다시 강회를 마감하여 화재에도 안전하게 되어 있다.
- 벽은 흙벽 위에 회벽 마감이고, 보와 도리는 둥글게 다듬은 목재에 장혀를 두었고, 대들보는 50cm 크기로 견실함을 보여 주고 있다.
- 창호는 상,하에 머름이 있는 네 짝 분합문이며, 북쪽은 두 짝 여닫이 올거미줄로 짜여 있다. 1987년 국비지원 사업으로 전면 해체, 보수하였다.
□ 박문언 효자각
○ 건립연대 : 1800. 9.
○ 소재지 : 임계면 임계1리 -문 중
○ 소유자 : 임계면 송계8리 김형진
○ 규격 : 목조기와 비각(3.3m×2m×3.5m)
○ 효열행 사항
- 200여 년 전 박문언과 열녀인 박하균의 처 파평 윤씨의 효행과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건립한 것이다.
- 1989년에 군비 150만 원, 후손 50만 원을 들여 부식된 목재 교체 및 기와 고르기, 단청 등을 하고, 주변을 정비하였다.
□ 함재환 효자각
○ 건립 연대 :
○ 소재지 : 임계면 골지1리
○ 소유자 : 임계면 골지1리 함흥식
○ 규격: 목조와가 비각(2m×2.3m×4m), 비석(1.4m×60cm×30cm)
○ 효열행 사항
- 함재환은 함병태의 4남매중 둘째아들로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골지리에서 출생하였다.
- 어려서부터 가난한 가정에 부친이 방탕한 생활로 허송세월을 보내자 모친과 함께 강릉을 왕래하며 날품팔이 행상 등으로 부친의 병환을 극진하게 모셔 이에 감탄한 마을 주민들이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 1991년에 문중에서 150만 원을 들여 부식된 목재를 교체하고 기와 고르기 및 단청을 하였다.
□ 최정일 효자각
○ 건립 연대 : 1700년 (조선 숙종)
○ 소재지 : 임계면 반천1리 양어장
○ 소유자 : 임계면 봉산2리 최어규
○ 규격: 목조기와 비각(1.8m×1.7m×2.8m), 비석(1.4m×60cm×30cm)
○ 효열행 사항
- 최정일은 어려서부터 소문난 효자로 부모님을 정성을 다해 극진히 모셨다.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汝朝이다. 고려시대의 慶興府院君 崔必達의 후손이며, 溟州君 漢柱의 12세손이다.
- 어느 날 부친이 병으로 누워 사경을 헤맬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생명을 연장 시켰으며,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소 옆에 움막을 지어 놓고 근신하였다.
- 이런 그의 효행을 알리고자 건립한 것이다. 최 공은 ‘효행록’질과 ‘가훙’ 12편을 남겼다고 한다
□ 이 위 가옥
○ 지정번호 : 도 유형문화재 제88호
○ 지정일 : 1985년 1월 17일
○ 구조형식 : 목조와가 □ 자형
○ 규격 : 106.5평 -수량 : 목조 건축물 3동(동)
○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216
○ 소유자 : 이위
○ 유래 및 현황
- 조선 숙종때의 상신인 외재 이단하가 이곳으로 낙향한 후 지은 집이라 전하며, 현 소유주 이위는 그의 11대손이 된다.
- 정확한 건축연대는 기록이 없으며 가옥구는 한 쪽이 뜬 □자형의 겹집으로 대문을 사이에 두고 안채, 사랑채로 구분되며, 별당인 수고당이 집 좌측에 있다.
- 안채는 전면에 안방과 부엌을 배치하고, 뒤로 도장과 뒷방을 둔 겹집으로 안방앞으로 대청마루를 놓고 마루끝에 작은 건너방을 앉혔으며, 다시 그 앞으로 뒷마루를 돌려 대청과 연결시켰다.
- 사랑채 역시 낮은 축대위에 세운 겹집으로 전면 방과 방 사이에 대청마루를 설치하고 다시 그 앞으로 뒷마루를 두어 각방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달리 이집에는 중요 민속자료 제4호인 외재 이단하 내외분의 옷이 별당인 수고당에 보존되고 있다.
□ 난포정
○ 소 재 지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 건립년대 : 1973년 7월
○ 연혁 및 특징
-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각 기와지붕 양식의 정자 건축물로써 정면의 기둥만 도리 기둥이고 그 외는 각 기둥이다.
-에 자연석 주초석을 두었고, 익공 양식의 건축물이며, 화반 소로를 두고 벽체는 없다. 천장은 우물천장, 바닥은 장마루이고, 정자 주위에는 외부를 향하여 출입구 부분을 제외하고 의자를 두고 있다.
- 임계 면민의 협찬금으로 건립되었다.
□ 구미정
○ 명칭 : 구미정
○ 축조연대 : 조선시대 숙종 때 건립
○ 구조 : 목조와가
○ 규격 : 폭 3.5m, 넓이 9.6m, 높이 3m~3.5m
○ 연혁 및 특징
- 남한강 상류인 임계천 변에 소재한 구미정은 조선조 숙종 때 사정 공조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 선생이 정선에 낙향하여 지은 건물로 집연석 주초석에 네모각 기둥을 세우고 장마루의 정자를 고적대를 바라보는 암석 위에 주변의 경치를 전망할 수 있게 3칸으로 벽체없이 건축하였으며, 정자 내부에는 2칸에 걸쳐서 온돌 바닥의 방이 있었으나 지금은 골조만 남아 있다.
- 온돌방은 천장이 고미반자이고, 아궁이와 굴뚝이 측면에 설치되어 있었다. 방의 출입문 위 상인방에 구미정 현판이 걸려있고, 방의 내부 기둥은 18cm이고 각 기둥이다. 구미정은 향락을 위한 정자가 아니고 공부를 하기 위하여 온돌방과 함께 건축되었으며, 팔작기와 지붕 양식으로 천장은 연등 천장으로 1946년 중수하였다.
- 주변 여건의 구미 18경은 지명 유래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 강릉 최 씨 열녀각
○ 건립 연대 : 1955. 9. 21
○ 소재지 : 임계면 골지1리
○ 소유자 : 임계면 골지1리 함흥식
○ 규 격: 목조와가 비각(2m×2.3m×4m), 비석(1.4m×60cm×30cm)
○ 효열행 사항
- 열녀 강릉 최 씨는 효심이 극진하여 시부모를 정성을 다해 모시던 어느 겨울, 시부모님이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엄동설한임에도 딸기를 구하려고 산속을 헤매다 탈진해 쓰러지자 그 효심에 감동한 호랑이(산신)가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 1992년 문중에서 150만 원을 들여 부식된 목재를 교체하고 기와 고르기 및 단청을 하였다.
□ 안동 김 씨 열녀각
○ 건립연대 : 1885.
○ 소재지 : 임계면 용산1리
○ 소유자 : 임계면 용산1리 박달수
○ 규 격: 목조와가 비각(2m×2.3m×4m) 비석(1m×60cm×30cm)
○ 효열행 사항
- 안동 김 씨 필원의 장녀로 동면 건천리에서 출생, 임계면 용산리 박병은과 20세에 혼인하여 시집온 지 7개월 만에 남편이 뚜렷한 병명 없이 병상에 눕자 이를 극진히 간호하나 백약이 무효. 사망하자 상복을 입고 삼 년 간 문묘하였으며, 남편 사망 후 자결코자 하였으나 시부모를 보살필 생각에 그러지 못 하다가 7, 8년 후 시동생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양자로 들여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다. 그의 행적을 고종 21년 (1884년) 사림이 연명으로 추천하여 정려를 받았다. 현재 1924년 이관하가 지은 烈女安東金召史旌閭記가 전하고 있다.
- 매년 후손이 단청 등 주변을 정비하고 있다.
□ 성황당
명 칭 |
소 재 지 |
건립년대 |
비 고 |
소 계 |
16개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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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1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도전1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임계2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임계2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임계3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임계3리 |
100년전 |
목조함석 정면1칸 |
임계4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임계4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송계8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송계8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봉산2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봉산1리 |
100년전 |
벽돌스페트 정면1칸 |
낙천2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낙천2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낙천3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낙천3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용산1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용산1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용산2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용산2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골지1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골지1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골지3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골지3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덕암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덕암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고양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고양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고양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고양리 |
100년전 |
벽돌함석 정면1칸 |
반천리성황당 |
정선군 임계면 반천2리 |
100년전 |
목조와가, 정면1칸 |
2. 기념
1) 姜慶熙 慈善記念碑
송계리에 있다. 본관은 진주이며, 문장가로 알려진 通亭의 후손이다.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천성이 효성스럽고 공손하였으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약관의 나이에 부모와 형님을 모시고 생활하였으며,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였다. 그 후 많은 소상인을 돌봐 주었으며, 인근의 산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고인의 뜻을 모아 양갑동 등 30여 인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 士人 南承烈 慈善不忘碑
골지리에 있다. 1930년 8월 소작인 25인이 건립하였다.
3) 警衛 劉在相 頌德碑
직원리 군대에 있다. 1951년 8월 건립하였다. 전투경찰 대장으로 주둔 시 김화․화천 지역에서 온 피난민의 생활 정착과 인근 마을의 미취학 아동 문맹 퇴치, 영세민 구호에 헌신적으로 봉사한 공로로 지방인 권영수 등이 건립하였다.
4) 警監 金東興 功德碑
송계리 임계초등학교 뒤에 있다. 1953년 6월 임계면민의 이름으로 건립하였고, 강원도 전투경잘 제216부대장이던 김동흥의 공덕을 기렸고, 공덕비가 있는 근처의 묘를 순사묘라고 한다.
3. 즐길거리
1) 산
□ 괘병산(掛屛山, 1201.5m)
○ 수병산(樹屛山)이라고도 하며, 도전리와 가목리 일원에 있으며, 원시림이 있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정상에서는 가목리와 동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정상에는 공룡 발자국 모양의 샘이 여러 개가 있고, 또한 바다 조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 억 년 전 바다가 융기되면서 생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 전설에 의하면 인근 주민들이 가장 신성시한 산으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형상을 하였다 하여 괘병산이라 하며, 암벽이 흰색으로 변하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내도전에서는 150분이 소요되며, 부수베리 계곡에서는 90분 가량 소요되는데, 이곳은 2004년도까지 자연휴식년제 지역으로 고시되어 출입은 금지된다.
□ 고적대(高積臺, 1353.9m)
○ 우리 면 도전리와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고적산(高積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 신라 고승 의상이 대(臺)를 짓고 수도한 곳이라 전해지며, 삼지구엽초, 당귀, 더덕 등과 같은 약초가 많이 난다. 등산로는 내도전에서 괘병산 등산로를 따라 가다 삼거리 분기점에서 동남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 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 중봉산(中峰山, 1283.5m)
도전2리(내도전)와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 석병산(石屛山, 1055.3m)
○ 강릉시 옥계면과 우리 면 임계4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산으로 동쪽으로는 동해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 등산로는 백복령에서 자병산→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종주의 주 능선이다.
□ 고양산(高陽山, 1150.7m)
우리면에서도 가장 오지인 고양리와 정선군 북면 고양리 접경지에 위치한 산이다.
□ 문래산(文來山, 1081.5m)
우리면 골지리, 용산리, 고양리에 걸쳐 있는 오지의 산이다. 임계초등학교 골지분교 서쪽의 골지천 너머로 길게 늘어진 산으로 정상에서는 고양산을 희미하게 관찰할 수 있다.
□ 석이암산(石耳岩山, 970.4m)
송계5리 새벼리 마을 뒤쪽에 위치한 산으로 우측에는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는 장찬골이 위치해 있다.
□ 덕우산(德牛山, 1009.3m)
우리면 송계1리와 강릉시 왕산면 고단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2) 유원지
□ 구미정(九美亭) 마을관리 휴양지
○ 봉산3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우리 면의 최대 관광지이기도 하다. 총면적 43,616㎡으로 오토 캠핑장, 주차장, 급수시설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며, 9미18경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주변 경관에 매료되어 매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 청소비
- 징수기간 : 하절기(7월-8월)
-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
□ 탑거리숲 마을관리 휴양지
낙천2리(미륵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 십 년생 느티나무 숲으로 펼쳐진 대자연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총면적 22,370㎡로 화장실, 급수 시설, 야영장 등 편의시설과 씨름장 및 족구장 등 소규모 체육시설도 조성되어 있어 가족단위 휴양객들에게 권장할만한 휴양지이다.
□ 바위안 자연발생 유원지
봉산2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위로 둘러 쳐진 마을 안이라고 하여 암내동(岩內洞)이라 부르기도 한다.
□ 송계 솔밭 자연발생 유원지
송계5리(샛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고송 (古松) 들이 인상적 이다. 이곳은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등 동네 체육시설물이 조성되어 있고, 장찬성 입구가 있어 아침 산책로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 골지강변 자연발생 유원지
삼척시 하장면과 경계를 이루며, 골지3리에 위치하고 있고,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맑은 강은 찾는 이로 하여금 신선감을 준다.
□ 도전 아우라지 자연발생 유원지
내도전(도전2리)에서 발원하는 물과 가목리 부수베리 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이 만나는 곳으로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다.
□ 반천강변 자연발생 유원지
골지천 물이 흘러 반천리 일원을 휘돌아 생긴 유원지로 강 주위로 펼쳐진 기암괴석과 가을이면 오색단장을 한 절경을 보면 다시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 백복령 군대 썰매장
○ 위치 : 임계면 가목리
○ 총면적 : 10,000평 (슬로프 2,500평)
○ 운영기간 : 매년 12월중순부터 2월까지(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 입장료 : 1인당 5,000원 (단체20%할인), 6세이하 무료
○ 전화번호 : 562-0687
○ 기타 : 주차장 및 향토음식점등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어 겨울철 가족단위 놀이 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다.
4. 마을 신앙
1) 고양리 동제(洞祭)
○ 마을 제당은 함석 지붕에 목조 1칸이다. 내부는 한지를 매달아 놓았고, 위패는 城隍地神之位라고 쓴 것을 세 개나 나란히 제단 위에 세워 놓았다. 이 것은 특이한 형태이며, 제사는 음력 설날 아침에 주과포, 시루떡 등을 제물로 차려 놓고 각자의 소지를 올리고 안녕을 기원한다. 전에는 이 마을에 ‘삼대세우기’라는 풍속이 있었는데, 튼튼한 삼대를 정월 대보름날 세우고 호미 등의 물건을 걸어둔 다음, 음력 3월 삼짇날 삼대를 넘겨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에 액이 낀다고 하였다.
○ 이는 삼척시 근덕 지방의 ‘살대 세우기’와 유사하다.
2) 낙천2리 동제(洞祭)
○ 제당은 목조로 만들었고, 주변에는 참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내부에는 土地之神之位와 여역지신지위라고 한자로 쓴 종이 위패를 걸어 놓았으며, 오래된 신격의 화상이 함께 걸려있다. 화상의 모습은 민화풍으로 남녀 신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앞에는 마부가 두 마리의 말을 끄는 모습이다.
○ 제사일은 음력 정월 초이튿날 저녁에 지내며, 제물은 주과포, 시루떡 등이다.
3) 도전1리 동제(洞祭)
마을 제당은 마을 입구 엄나무 숲 속에 있고 함석 지붕에 미닫이 문이다. 제사는 음력 정월 초4일날 새벽 1시 무렵에 지낸다. 마을에서 부정이 없는 사람 중에 골라서 제관을 삼는데 10여 명이 참여한다. 강릉대학교 장정룡 교수에 의하면, 전에는 제당 안에 쇠로 만든 말이 4기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4) 반천1리 도장골 동제(洞祭)
○ 마을 제당은 300여 년 된 것이 불에 타 새로 지었다. 목조 한 칸 집이며, 주변은 돌담을 쌓고 전나무가 있다. 이 마을은 성황제 축문과 洞中會記를 보관하고 있다.
○ 매년 음력 4월 8일과 10월 8일 두 차례 성황제를 지낸다.
5) 반천2리 어전 동제(洞祭)
○ 마을 제당은 200여 년이 되었다고 하며, 이 마을의 윤 씨들 중시조인 윤중근 씨가 240여 년 전에 금강산에 공부하러 갔다가 연을 띄웠는데 그 것이 떨어진 자리에 제당을 지었다고 한다.
○ 이 제당은 특이하게 石像을 모시고 있다. 외부에는 금줄을 쳐 놓았고, 고깔을 만들어 석상을 씌웠다. 이 마을의 성황신은 ‘중서낭’이므로 제물로 고기를 쓰지 않고 과일 종류만 놓는다고 한다. 제사일은 매년 음력 4월 8일과 10월 8일 아침 8시경에 지낸다.
6) 봉산2리 동제(洞祭)
마을 제당은 2리의 2반과 3반에 하나씩 있다. 모두 음력 정월 첫째 정일날 제사를 지낸다. 제관은 생기를 맞는 사람으로 정하고, 매년 다른 사람이 맡는다.
7) 송계리 동제(洞祭)
○ 송계6리의 제당은 목조 건물이다. 위패는 없고 화상만 걸려있다. 부채를 든 남자 신격과 한복을 입은 여신이 그려져 있다. 상량을 보면 1956년에 지은 건물로 보인다. 마을 이장의 주관 하에 음력 9월 중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 송계5리 2반의 성황당은 현재 제를 지내고 있으며 당고사라고 한다. 제일은 매년 음력 동짇달 초순이다.
8) 용산리 동제(洞祭)
마을 제당은 2리 1반과 1리 2반에 있다. 2리 1반은 매년 정월 8일 대낮에 제사를 지내고, 1리 2반은 정월 9일 4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예전에는 손가락만한 쇠로 만든 말이 3개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5. 먹을 거리
1) 감자옹심이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리는 감자를 갈아서 전분을 충분히 가라 앉힌 다음 알맞은 크기로 메밀국수와 함께 끓이면 쫄깃쫄깃한 또 다른 느낌의 감자 맛을 볼 수 있다.
2) 메밀국수
쫄깃쫄깃한 메밀국수를 후루룩 먹을 때 면발이 뻣뻣하여 콧등을 친다하여 일명 「콧등치기 국수」라고도 불리는 음식으로 주재료인 메밀은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저칼로리 및 알칼리성 식품으로 산성화된 현대인에게 적합하며 겨울은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해서 먹을 수 있다. 정선을 찿는 이에게 한번쯤은 권하고 싶은 향토 음식이다.
6. 살 거리
1) 메주와 첼리스트의 된장류
○ 가목리 돈연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씨가 운영하는 된장마을의 된장류는 가목리 해발 700m 고지대에서 직접 지은 햇콩으로 메주를 띄워 재래식 항아리를 이용해 제조되어 전통적인 장의 맛과 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전통간장은 가장 뛰어난 맛을 낸다는 3년이상 숙성된 제품만 판매하고 있다.
○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는 전통된장, 간장, 고추장, 쌈장외 각종 짱아찌류가 있습니다.
○ 메주와첼리스트 : 임계면 가목리 88번지10)
2) 플레스플라워(압화)
○ 농촌여성 일감갖기 사업의 일환으로 봉산1리 박옥순 생활개선회 회장이 정선에서 자생하는 야생화 및 꽃의 수분을 제거하여 눌러 말린 압화로 플레스플라워 열쇠고리, 폰걸이, 액자등 여러 가지 기념품을 제작하여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 박옥순<꽃누루미> : 임계면 송계1리 (562-6241)
3) 정선아라리 자연향
○ 임계면 생활개선회에서 여러 가지 약초를 이용하여 인공적인 향이 아닌 은은하고 부드러운 자연 그대로의 향을 느낄 수 있으며, 머리를 맑게하고 습기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어 자동차안이나, 주택실내용 방향제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 박옥순 : 임계면 송계1리 (562-6241)
4) 산나물
○ 임계면은 정선군내에서도 고산지대라 4월말에서부터 5월말까지 각종 산나물을 채취할 수 있으며, 깊은 계곡이나 높은산에서만 자생하고 있어 산나물이 연하고 향이 매우 진하다.
○ 구입은 4월말에서 5월까지 임계면 5일장 농특산물판매 장터에서 참나물, 곤드레, 곰취, 나물취, 두릅등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5) 엄나무환, 엄나무와 황기즙
○ 대영영농법인은 임계에서 자생하는 엄나무의 줄기와 잎의 추출물을 얻어 이를 이용하여 엄나무환과 엄나무와 황기를 이용한 즙을 상품화시켜 판매하고 있다.
○ 엄나무추출물에 관한 연구는 특허 신청중에 있으며, 현재 특허 출원번호 2001-11226 으로 특허출원중에 있다.
○ 엄나무의 효능으로는 관절염, 종기, 피부병의 염증질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신경통, 만성간염 같은 간장질환, 당뇨병, 신장의 기능을 튼튼하게하는 등 강장효과가 크다.
○ 대영영농법인(대표:연규동) : 임계면 임계리 394 (562-5919)
6) 황기한우
○ 임계면 고지대에서 사육되는 황기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연하며, 혈액순환과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불포화 지방산 함량이 높고, 가열 후에도 부드러운육질과 풍부한 육즙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어 고급육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황기를 혼합하여 만든 사료를 먹여 그 육질과 맛은 더욱 뛰어나다.
○ 한우영농조합법인(대표:노현태) : 임계면 송계6리 (562-7887)
○ 양돈조합법인(대표:이연재) 임계면 송계3리 (562-8285)
7) 반천마늘
○ 임계면 반천리에서 생산되는 마늘은 6쪽마늘로 알이 굵고, 단단하며, 마늘의 주성분인 알리인이 성분이 풍부하여 맛과 향, 저장성이 뛰어나며, 수확기는 6월중순부터 7월초순까지이다.
○ 구입은 6월 중순부터 임계면 5일장(5,10) 농특산물판매 장터에서 구입할 있습니다.
8) 감 자
○ 임계면 전역에서 생산되는 감자는 칼륨,알기닌, 사포닌, 비타민C 등이 다량 함유되어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낮추어 성인병 예방에 좋고 특히 고지대 일교차가 심한 우리지역 감자는 당질이 많아,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 수확기는 8월중순부터 10월초순경까지이다.
○ 구입은 8월 중순부터 임계면 5일장 농특산물판매 장터 및 농협에서 구입할 있습니다.
○ 임계농업협동조합 : 임계면 송계6리 (562-6021)
9) 자연방사 유정란
○ 자연방사유정란은 해발 680m 백복령 골짜기 부수베리 농장에서 암 ․수탉을 혼합 방사 사육하여 수정된 알로 계란이 굵고 빛이 좋으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생산과정 및 수정률을 확인하여 품질인증을 한 제품이다.
○ 부수베리농장(임덕규) : 임계면 가목리 (562-9546)
7. 쉴 거리
1) 여 관
업소명 |
전화번호 |
주소 |
객실수 |
수용인원 |
대성장여관 |
563-3535 |
송계6리 |
23 |
55 |
청송장여관 |
562-2685 |
송계6리 |
18 |
45 |
2) 민 박
민박주 |
전화번호 |
객실수(수용인원) |
위치 |
김춘희 |
562-1393 |
4 20) |
가목리 (골짜기명성) |
권오범 |
562-6618 |
3 12) |
직원1리 |
박상하 |
562-7921 |
4 16) |
직원2리(청솔가든) |
이정대 |
562-5289 |
4 16) |
도전1리 |
안만기 |
562-6264 |
6 25) |
도전1리(아우라지식당) |
이영삼 |
562-6328 |
4 15) |
송계4리 동백주유소 앞 |
남흥기 |
563-7227 |
3 10) |
송계솔밭 인근 |
이지남 |
563-0054 |
5 20) |
송계8리(산마루터) |
남환기 |
562-6649 |
5 20) |
봉산리 바위안 (부흥민박) |
장순희 |
562-5476 |
3 12) |
봉산2리(바위안식당) |
김유도 |
563-1368 |
6 20) |
봉산3리(구미정 율곡서당) |
이유재 |
563-2235 |
3 12) |
봉산3리 |
박병규 |
562-7965 |
4 15) |
봉산3리 구미정뒤 |
최대복 |
562-0381 |
3 12) |
낙천2리 |
방성애 |
563-6665 |
3 10) |
낙천2/4 사을기 |
안금옥 |
562-6742 |
5 20) |
골지1리(금오식당) |
이기수 |
563-3424 |
3 12) |
골지1리(양지식당) |
남선자 |
562-6841 |
3 12) |
골지1리 |
정옥화 |
562-3432 |
10 (40) |
골지3리(임계산장) |
이정인 |
563-7008 |
5 (20) |
반천1리(삼거리가든) |
변상철 |
562-6532 |
5 (15) |
반천2리 (느릅나무가든) |
.
Ⅴ. 고장의 인물
1. 역대 면장 명단
○ 초대: 이병두 (1948. 7. 25 ~ 1950. 2. 10)
○ 2대: 이치억 (1950. 2. 15 ~ 1950. 10. 1) ⇒ 6.25 전쟁 때 납북
○ 3대: 원응용 (1950. 10. 5 ~ 1952. 5. 14)
○ 4대: 김영건 (1952. 5. 15 ~ 1953. 4. 20)
○ 5대: 원응용 (1953. 4. 25 ~ 1953. 7. 25)
○ 6대: 남석창 (1953. 7. 26 ~ 1956. 2. 10)
○ 7대: 김종수 (1956. 4. 10 ~ 1960. 12. 25)
○ 8대 : 김용기 (1960. 12. 26 ~ 1961. 10. 30)
○ 9대 : 지영철 (1961. 10. 31 ~ 1962. 3. 31)
○ 10대: 신재명 (1962. 3. 31 ~ 1963. 7. 20)
○ 11대: 지금달 (1963. 7. 20 ~ 1965. 4. 6)
○ 12대: 강응출 (1965. 4. 19 ~ 1970. 1. 14)
○ 13대: 김대중 (1970. 2. 15 ~ 1974. 7. 1)
○ 14대 : 서광일 (1974. 7. 1 ~ 1976. 3. 2)
○ 15대: 이지영 (1976. 3. 2 ~ 1982. 1. 10)
○ 16대: 허연봉 (1982. 1. 10 ~ 1985. 8. 5)
○ 17대: 이지영 (1985. 8. 6 ~ 1988. 3. 2)
○ 18대: 김택영 (1988. 3. 2 ~ 1990. 9. 11)
○ 19대: 이종인 (1990. 9. 12 ~ 1995. 7. 9)
○ 20대: 홍건표 (1995. 7. 10 ~ 1996. 12. 31)
○ 21대: 유인선 (1997. 1. 1 ~ 1998. 6. 31)
○ 22대 : 최종진 (1998. 10. 1 ~ 1999. 8. 1)
○ 23대: 이창하 (1999. 8. 2. ~ 현
2. 역대 부면장 명단
○ 초대: 김대중 (1966. 7. 1 ~ 1970. 2. 15)
○ 2대: 이강복 (1970. 5. 15 ~ 1973. 12. 3)
○ 3대: 김남극 (1974. 2. 1 ~ 1974. 7. 1)
○ 4대: 남진해 (1975. 1. 10 ~ 1975. 8. 1)
○ 5대: 이강복 (1975. 8. 1 ~ 1976. 2. 20)
○ 6대: 김명중 (1976. 2. 10 ~ 1976. 7. 22)
○ 7대: 고광성 (1976. 7. 22 ~ 1977. 2. 21)
○ 8대 : 이강복 (1977. 2. 21 ~ 1978. 4. 20)
○ 9대 : 황원홍 (1978. 4. 20 ~ 1979. 5. 1)
○ 10대: 허연봉 (1979. 5. 1 ~ 1979. 10. 11)
○ 11대: 유병린 (1979. 10. 11 ~ 1980. 3. 31)
○ 12대: 허연봉 (1980. 4. 1 ~ 1982. 2. 5)
○ 13대: 전제인 (1982. 2. 5 ~ 1985. 10. 2)
○ 14대 : 김인기 (1985. 8. 8 ~ 1985. 10. 2)
○ 15대: 조현주 (1985. 10. 1 ~ 1987. 7. 10)
○ 16대: 김택영 (1987. 7. 10 ~ 1988. 3. 2)
○ 17대: 최종진 (1988. 3. 2 ~ 1989. 3. 21)
○ 18대: 황하해 (1989. 3. 21 ~ 1990. 11. 3)
○ 19대: 최병식 (1990. 11. 3 ~ 1991. 10. 29)
○ 20대: 이종무 (1991. 10. 29 ~ 1996. 6. 30)
○ 21대: 이종건 (1996. 7. 1 ~ 1998. 9. 30)
※ 직제 개편으로 부면장제 폐지
3. 역대 군의원 명단
○ 초대: 강성관 (1991. 4. 15 ~ 1995. 6. 30)
○ 2대: 이정용 (1995. 7. 1 ~ 1998. 6. 30)
○ 3대: 이정용 (1998. 7. 1 ~ 2002. 6. 30)
○ 4대: 이 위 (2002. 7. 1 ~ 현 재)
4. 역대 파출소장 명단
○ 경위 이기훈 (1977. 12. 5 ~ 1979. 4. 10)
○ 경위 최형원 (1979. 4. 11 ~ 1980. 8. 4)
○ 경사 함윤호 (1980. 8. 5 ~ 1981. 11. 26)
○ 경사 허창신 (1980. 11. 26 ~ 1982. 10. 27)
○ 경위 유태열 (1982. 10. 27 ~ 1983. 7. 6)
○ 경위 김명환 (1983. 7. 6 ~ 1985. 10. 24)
○ 경사 안만기 (1985. 3. 2 ~ 1985. 5. 26)
○ 경위 권상기 (1985. 12. 24 ~ 1986. 7. 30)
○ 경위 엄기형 (1986. 8. 8 ~ 1987. 6. 23)
○ 경위 임기혁 (1987. 6. 23 ~ 1993. 2. 27)
○ 경위 김명환 (1993. 2. 27 ~ 1994. 7. 12)
○ 경사 윤두순 (1994. 7. 13 ~ 1996. 9. 9)
○ 경위 박도석 (1996. 9. 9 ~ 1998. 7. 31)
○ 경사 김재철 (1998. 7. 31 ~ 1999. 2. 25)
○ 경위 박증보 (1999. 2. 25 ~ 1999. 2. 25)
○ 경사 이강후 (1999. 6. 23 ~ 2000. 8. 18)
○ 경위 박도석 (2000. 8. 18 ~ 2001. 4. 25)
○ 경사 이대규 (2001. 4. 25 ~ 2002. 11. 2)
○ 경사 최범규 (2002. 11. 2 ~ 현 재)
5. 출향인사 현황
1) 법조인
○ 김영종 : 법무부 검찰국 검사 (사법시험 23회)
○ 함종식 : 서울지방법원 판사 (사법시험 25회)
○ 이은일 : 변호사
2) 공무원
○ 이수규 : 강원도 도의원
○ 고영태 : 강원도청 국제관광박람회 재정팀장
○ 고재균 : 강릉시 택지개발 감리단장
○ 심영섭 : 강원도청
○ 남기성 : 안양시 동구청 총무과장
○ 조순행 : 외무부 외신관
○ 남대기 : 경기도청 청소행정과장
○ 전동춘 : 육군 1군사령부 대령
○ 최규린 : 육군제3사관학교 중령
○ 김청광 : 산림청 비서실장
○ 이 홍 : 강원도청 경보통제소장
○ 박종열 : 강원도청
○ 박운철 : 주차관리공단 이사장
○ 김태호 : 소령
3) 교직
○ 김근영 : 덕성여대 학생처장
○ 최진영 : 서울대학교 교수
○ 원창원 : 충남대학교 공학박사소장
○ 김동욱 : 한림대학교 총무과 인사계장
○ 배경환 : 남평초등학교 교장
○ 최홍규 : 중앙대 영문과 교수
3) 기업인, 정치인
○ 박한영 : 임계무역(주) 회장
○ 원계환 : 동진버스(주) 전무
○ 이주암 : 한국전력공사 강원지사 기획관리실장
○ 안상기 : 미륭건설 경리이사
○ 최돈욱 : (주)노승사 전무
○ 손진철 : 국제관광여행사 대표
○ 심은섭 : 대한생명 지점장
○ 최석규 : 아세아공업사 사장
○ 김철주 : 대원 E.N.C 대표
○ 함형진 : KBS 방송국 P.D
○ 박성천 : 한진 상무이사
○ 김하중 : 동부투자금융 부사장
○ 이귀재 : 신한은행 고문
○ 최일중 : 강릉일양운수 사장
○ 김좌일 : 정당인
○ 김진표 : 한국통신기술 본부장
○ 김상수 : 도민일보 정치부장
○ 김남중 : 한국광학 부사장
○ 배일주 : (주)천지산 대표 (항암제 개발)
○ 송명호 : 농산물유통공사 중부지사장
○ 최돈세 : 직업전문학교 안성한인연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