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2.추상적 보편에서 구체적 보편으로
3.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문제점과 지양
4.참된 사회화의 길
가.자본주의적 주식회사를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로 대체
나.모든 지대를 조세로 환수하여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다.실업률 제로를 지향한다.
라.시장을 기초로 하는 민주적 참여적 게획경제
마.노동이 생존의 조건에서 삶의 제 일의 욕구가 되는 사회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하여 민중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고 고통스럽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역국가에 대하여 포용과 배제의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포용되는 나라는 금융자본의 주도아래 금융적 착취를 당하고 이라크처럼 배제하는 나라엔 무장한 세계화로 직접 침략하여 멸망시키고 있다.
민중은 아무런 대안이 없어 현실에서 고통받을 뿐아니라 미래의 이상과 희망마저 박탈당하고 몸부림치고 있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마지막 단계이고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선포되었다.
급기야 한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화가 곧 진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사회주의 몰락후 사상이론가들이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 성찰을 포기하고 유럽사회민주주의자들은 독일의 신중도니 토니블레어의 제3의 길이니 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사회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포장 각색한 사회자유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
토니블레어가 이라크침략에 가담한 것을 보면 제 3의 길이라는 것이 사회민주주의로 포장한 신자유주의의 아류임을 알수 있다.
이 글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조명해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시론적 성격을 갖는다.
국가사회주의의 오류라면 전체주의, 민주주의의 부재, 일당독재,국유화, 개인소유폐지등이 있을 것이고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라면 사회화로의 이행전망 부재, 이론적 기초의 부재,제국주의로의 포섭등이 있을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은 복지국가였으나 지방자치,세계적 기구등에 의해 국가가 이중으로 해체되고 있어 복지국가는 위기를 맞아 점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 소련몰락이후 자본은 더욱 노골적으로 복지국가를 공격하고 있다. 기든스가 제 3의 길에서 대안으로 복지사회를 주장하고 있으나 생산적 복지등이 실상 자본에 의한 국민부역, 자본에 의한 강제노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2,추상적 보편에서 구체적 보편으로 !
더욱더 개성적으로 ,더욱더 인류적으로
실천이 한계에 가로막혔을 때 우리는 보다 더 깊은 철학적 성찰과 그간의 실천에 대한 반성으로 사상과 실천의 한계를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간 사회주의 실천에 있어서 3대 핵심적 오류는 보편과 소유 그리고 프로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형식논리적 기계적 이해로 인한 즉자적 기계적 실천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
즉 보편을 형식논리적 보편인 추상적 보편으로 이해하여 개개인의 자유 ,인격성, 개성과 특수성을 사상하는 전체주의를 사회주의로 착각하였으며,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폐지에 대한 쁘띠부르조아적 관점으로 인하여 생산수단에 대한 공동점유에 기초한 개인소유를 확립하지 못하고 일반적 사적소유로서 국유화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프로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몰개념적 왜곡과 속류화로 인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일당독재 국가를 만들었다.
변증법적 논리에서는 보편을 형식논리적인 추상적 보편과 변증법적인 보편인 구체적 보편으로 구분한다.
추상적 보편은 형식논리상의 표상과 같은 것인데 개별에서 보편으로는 있지만 그 역인 보편에서 개별으로는 없다. 보편과 특수의 관계는 내포와 외연의 반비례의 법칙에 의해 파악된다. 즉 개별자는 외연은 좁지만 내포는 풍부하고 보편이 될 수록 외연은 확대되지만 내포는 빈약해진다. 가령 식물의 경우 소나무, 장미,벼등 여러 종류가 있어서 각기 특수성이 서로 다른 것이지만 이 특수성(차이성)을 버리고(사상하고)그 들에게 공통적인 것을(동일성) 고정하여 뽑아냄(추상)함으로써 식물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식물은 장미보다 외연은 넓으나 내포는 풍부하지 않고 장미는 식물보다 외연은 좁으나 내포는 풍부한 것이다.변증법적 논리에서는 식물 일반이라는 보편자는 구체적으로 현존하지 않는 추상적 보편자로서 개념이라기 보다는 추상적 표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 집 동물같은 것을 개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Hegel에 의하면,단순한 규정을 가진 추상적 표상에 불과하다. 그런 추상물은 개념으로부터 오직 보편적 계기만을 추상하고 특수와 개별을 사상한 것이요 ,따라서 그 자신에 있어서 발전하지 못하고 바로 올바른 개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추상은 생명,정신,신,그리고 순수개념을 파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추상은 개별성 즉 개체성과 인격성의 원리를 배제하고 생명없으며 정신없는 ,따라서 무색하며 내용없는 보편성에 도달하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박종홍,변증법적 논리,박영사,p208)
그러나 존재하는 것, 생명이 있는 것은 특수와 대립되는 추상적 보편이 아니라 특수를 포함하는 보편 즉 구체적 보편으로 있다.
헤겔은 구체적 보편을 구체적 존재에 내재하는 혼이요 존재의 다양성이나 상이성에 있어서 자기 동일적인 것이요 생성에 의해 혼탁됨이 없이 면면히 있는 불변, 불면의 자기 보존의 힘이라고 한다.(헤겔,대논리학3,임석진역,P58)
"헤겔에 의하면 규정적인 것이 보편으로 귀환하는데 두가지 방도가 있다. 하나는 그 특수를 버리고 보다 또는 가장 높은 유로 올라가는 추상에 의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규정이 완결되는 개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길이다. 그러나 특수를 버리고 그저 올라만 가는 추상적 보편은 무내용한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에 대하여 그 추상에 의하여 버림을 받은 개별성이야 말로 심저(Tiefe)인 것이요 ,거기에 있어서 개념은 자기자신을 파악하며 개념으로서 정립되는 것이다. 개별은 보편의 부정이 아니요 오히려 그속에 가능적으로 내재하였던 것의 실현이다. 개별은 현실적인 보편이다.그러므로 개별성이 개별성으로서의 심화의 도를 관철하면 할수록 보편성으로 귀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종홍,위의책,p207)
구체적 보편자는 특수자와 대립하여 특수를 사상하고 올라가는 추상이 아니라 수많은 개발대상들안에 현존한다. 즉 구체적 보편자는 특수자들 속에서, 특수자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구체적 보편자를 예를들면 줄기, 뿌리, 잎등 개별과 특수를 자기안에 함유하는 씨알 즉 배이다.구체적 보편은 내포와 외연의 반비례의 법칙이 아니라 내포적 심화이면서 동시에 외연적 확대이다. 인덕천리요 난향천리이다.개인의 사상이론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외연적 연대와 활동의 범위가 넓어진다.즉 사상이론성이 철저하여 사물의 뿌리에 다았을 때,래디칼 할 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이론의 물질화가 가능한 것이다. .
변증법적 보편에 있어서 개별이란 보편의 특수화가 완결되는 동시에 그 모든 규정이 거기에 정립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이상 다시 더 특수화할 수 없는 개체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것이 구체적 보편을 표현하는 말이다.
음양의 변증법인 주역은 건괘에서 개별과 보편이 통일된 구체적 보편을 하나의 용이 수령으로 우뚝서는 것이 아니라 뭇용이 함께 머리를 숙이고 있는 군용무수의 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뭇용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라 , 천덕은 머리를 들어서는 안된다.(見群龍無首 天德不可爲首也 )
모든 개인이 다 주체가 있고 자주성이 강한 용으로 있지만 또한 서로가 상호인정하고 연결되어 있는 구체적 보편의 상이다.전태일 열사가 말하듯이 덩어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스러기도 존재하지 않아 모두가 다 용해되어 있는 멋있는 상태인 것이다.
"모순율을 궁극적 원리로하는 분별지의 오성은 헤겔의 소위 추상적 보편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 추상적 보편의 본성은 특수를 그 속에 내포하지 못하고 특수밖에 마치 특수와는 대립하고 있는 보편인데 있다. 이미 특수와 대립되어 있는 것은 원리적으로 또 하나의 특수가 아닐 수 없는 이상 ,특수와 대립하고 있는 보편 즉 추상적 보편은 사실인즉 한 개의 특수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그러므로 참된 보편은 본래가 특수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수를 자기의 한정으로서 성립시키는 지반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구체적 보편인 것이요 긍정적 이성 즉 사변의 계기인 것이다.
또 분별적 오성은 절대를 절대이기 때문에 상대가 아닌 것으로서 상대와 대립시켜서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와 대립하는 절대는 이미 절대가 아니요 상대일 것이다. 도대체 대립한다는 것이 본래 상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절대는 상대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대가 그에 의하여 상대구실을 할 수 있는 것 즉 모든 상대를 자기속에 내포하여 그들로하여금 자기의 한정으로서 성립시키는 절대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참된 절대는 구체적 보편 그것이며 역시 긍정적 이성 즉 사변의 계기인 것이다.
또 분별적 오성은 무한을 유한 아닌 것으로서 유한과 대립시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한은 유한과 대립하는 의미에 있어서 이미 하나의 한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므로 그 역시 일종의 유한이 아닐 수없다. 참된 무한은 유한과 대립하여서는 안되고 오히려 유한을 자기속에 내포하는 것이어야 될 것이다. 보통으로 무한은 한정된 유한과 대립되는 의미에 있어서 한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한과 대립 분별되는 의미에 있어서 벌써 유한적 무한 즉 분별적 오성으로 파악한 무한이요 헤겔의 이른바 악무한인 것이다. 참된 무한은 일면 유한과 대립하면서도 타면 유한을 자기속에 내포하는 무한이다. 다시말하면 유한과의 부정적 대립을 매개하여 그것을 지양한 무한이다. 이것이 긍정적 이성 즉 사변적 계기임은 물론이다. "(박종홍,위의 책,P52)
국가 사회주의자들은 형식논리의 관점에서 보편을 추상적 보편으로 오해하였다.
그로인해서 개별과 특수를 사상하는 전체주의를 사회주의로 오해하였다..
구체적 보편은 특수성의 강화와 개별성의 심화를 관철하는 방법으로 참다운 보편성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개체성과 인격성의 원리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키는 것이다.
주역의 표현을 빌린다면
추상적 보편은 획일성은 있으나 소통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요 구체적보편은 획일성은 없으나 소통하고 어울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개인과 인류가 소통하고 어울리는 진정으로 통일된 인류적 연대이다.
이는 각인이 각자의 악기로 연주하는 교향악같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 보편이라는 철학적 원리에 입각한 사회주의 사상과 실천은 "더욱더 개성적으로 , 더욱더 인류적으로 "라는 슬로건으로 압축될 수 있다.
보다 성찰적이고 보다 개방적인 ,더 깊이있고 보다 넓은 다원성속에서 통일을 추구하는 구체적 보편은 사회주의의 철학적 기초이다
구체적 보편이라는 철학적 원리에 의하여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사회,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사회를 우리는 민중사회라고 이름한다.
이후 더 좋은 이름이 있다면 논의하여 수용하면 될 것이다.
3.소련식 국가 사회주의의 문제점과 지양
진리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과학적 반영이며
진리의 검증기준은 역사적 실천이다.
추상적 보편성으로서 전체주의를 추구한 소련식 국가 사회주의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표현한 공동체가 아님이 실천적으로 검증되었다.
1884년 창건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은 소련민중과 함께 1917년 2월 짜르전제를 타도하고 1917년 10월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1991년 8월 보수세력의 쿠데타이후 공산당은 해체되었고 레닌의 동상이 짓밟히고 착취와 억압의 상징이었던 제정러시아의 짜르깃발이 다시 휘날리는 등 소연방은 해체되었다. 또한 동유럽 루마니아 차우세스크 정권이 민중봉기에 의해 몰락하였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 통일되었다. 국가사회주의의 세기적 실험이 막을 내린 것이다.
소련몰락의 원인으로 소련이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전한 난숙한 단계에서가 아니라 낮은 생산력을 기초로 제국주의의 약한고리에서 사회주의로 조기전화하고 제국주의의 간섭과 포위라는 악조건에서 생산력 수준을 상회하는 군비경쟁으로 잉여노동을 낭비하여 경제발전에 재투자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 몰락의 객관적 원인을 사회주의로 조기전화와 제국주의의 포위간섭이라는 외적조건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그 내부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자본, 종교, 국가권력은 소외된 인간본질이다. 그래서 참다운 보편성은 자본, 종교, 국가권력의 강화, 완성이 아니라 약화, 사멸에 의해서 실현된다. 구소련등 국가사회주의는 자본의 완성이었고, 권력의 강화였으며, 당의 무오류성, 전지전능을 주장하는등 당은 종교가 되고 맑스레닌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교리가 되어버렸다.
국가사회주의는 자본의 해체가 아니라,자본의 국가로 집중, 자본의 완성이었다. 즉 재벌이 해체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자본으로 일반적 사적소유로 완성된 형태이다. 국가사회주의에서 국유화는 마르크스가 경제철학 초고 조야한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듯이 사적소유의 지양으로서 사회적 소유가 아니라 사적소유의 일반화요 완성에 불과한 일반적 사적소유이다. 국가의 인격화는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당관료와 수령이다. 당과 수령이 전체인민들을 노동자로 사용하였고 노동자들이 사용당하였다. 그래서 노동자는 해방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으로 확대되었다.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주장한대로 모든 인민들이 전국적 단일 신디케이트의 고용원이나 노동자가 되었다.
국가는 강제노동의 공동체에 불과하고 평등이란 급료의 평등, 그것도 저임금의 평등에 불과 하였다. 도처에서 나의 인격과 개성이 부정되는, 민주주의가 부정되는 야만적 악평등이다. 국가는 일반적 사적소유자로서 자본가이며 자본의 인격화는 당 관료와 수령의 권력으로 나타난다.국유화가 일당독재의 물질적 기초이다.
1936년 소련의 모든 사적소유 우클라드 철폐는 생산수단에 대한 변증법적 지양으로서 지양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부정으로서 소극적 폐기였다.
이는 생산수단의 적극적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것었다.
개인의 자유와 자주성의 기초인 개인소유가 박탈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농민은 모든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되었고, 소위 사회적 소유, 보편적 소유는 확립되지 못했다.농민들은 생산할 의욕을 잃었다.국가사회주의는 사회적 소유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모든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 배제된 무소유이다. 그래서 소외된 노동을 하였고 파업, 결사, 시위의 자유도 없었다. 이로인해 소련 노동자계급은 관료에 맞서 소극적인 태업, 사보타지로 맞섰으며 생산물의 품질은 저하되었다. 국가는 노동법을 강화하였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소련 노동자들은 마이너스 잉여가치 즉 임금보다 적은 가치를 생산하였다.
모든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상태에서 관료적 지령경제는 대중의 역동적 창조력을 경제분야에서 발휘시킬 수 없었다.노동자의 주체성, 창조성, 개성은 말살되었다. 노동대중은 커다란 철밥공장에서 수동적으로 대상화되어 즉 생산수단의 부속물이 되어 창의성 있게 일하지 않았다.
생산물은 사용가치와 가치의 모순적 통일로 존재한다.
국가사회주의에서는 새로운 사용가치 생산 즉 생산물의 품질 개선과 새로운 품질의 창조에 무관심했다. 가치측면에서도 오히려 더 많은 자원과 더 많은 노동시간을 투여해 생산물을 비싼 가격으로 공급했다.
자본주의는 개별자본가들이 상품의 사회적 가치보다 개별가치를 낮추려고 하는데 반하여 국가사회주의에서는 역으로 자원낭비와 물탄 노동으로 사회적 가치보다 개별가치를 높게 책정하였다. 자본가들은 시장의 압력에 의하여 생산성과효율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데 반하여 국가사회주의에서는 역으로 물탄 노동이 성행하였다. 이는 생산만 하면 공급이 보장되었기 때문이고 더 근원적으로는 소외된 노동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국가사회주의에서는 가공단계가 많을수록 수출채산성은 적어진다는 경제법칙이 정립되었다.
생산물의 질과 생산비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불가능하였다.
생산은 사실상 정체되어 있는데 소비는 증가함으로서 소비재 공급부족현상이 심화되었고 결국 투자가 줄어 산업설비의 노후화,토대구조의 마멸, 환경파괴등이 발생하였다.
프로독재와 감시로 인해 비판과 반비판등 공공토론은 형해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 선전에서는 지상낙원으로 선전되었고 항상 당 때문에 행복하다고 앵무새처럼 암기되었다. 처음에는 집단적으로 마취되었고 나중에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하나의 형식으로 관행처럼 굳어졌다. 강제노동법, 국내통행증, 경찰에의 의무등록제도, 강제노동수용소등 국가권력은 강화되어 공포적 테러통치를 자행하였다. 당원이 혁명과 건설의 지도에서 벗어나 특권화 관료화되어 사회외부에 기생하는 특권층 노멘클라우트라가 되었다. 프로독재는 당독재로 당독재는 일인독재로 전환되었고 인민의 정치적 경제적 제 힘은 소위 우주의 태양 스탈린에게 외화 되었다. 스탈린은 짜르보다 더한 권력을 갖게되었다. 관료주의적 당독재는 공포적 테러통치를 결합시켜 대중의 자유와 창발성을 억압하였다.생산성은 하락하여 사회는 몰락하였다.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한 반성과 자기지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혁명의 불꽃이라고 불리는 로자는 레닌의 프로독재를 전도된 브르조아독재라고 비판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 사명은 일체의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브르조아 국가는 노동자 계급 탄압의 도구이며, 사회주의 국가는 브로조아 계급 탄압의 도구라고 레닌은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된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것일 따름이다. 프로독재에 있어서는 전 국민대중의 정치훈련과 교육이 생명의 원천이며 공기이고 그것이 없으면 프로독재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 사명은 부르조아 민주주의 대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창조하는데 있으며 일체의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선거권, 언론과 집회의 자유 및 자유로운 토론을 결여할 때는 공공생활은 형해화되고 관료독선의 폐해에 빠지게 된다."
레닌도 말년에 전시공산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경제정책과 협동조합 강화노선을 주창하게 되었다. 흐루시초프는 1956년 20차 소련공산당 당대회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공식비판하고 사회주의적 법치를 실시하려고 했으며 소련사회의 지령적 관료적 관리방법을 타파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85년 고르바초프가 당서기장이 되면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나타났다. 공산당의 무오류성이라는 교조를 폐기하였고 일당독재 폐지 ,다당제 인정, 당정분리,복수공천,비밀투표등 보통선거권 보장, 사회주의적 법치,사회주의 시장경제,기업의 독립채산제 ,노동자의 자주관리. 정보의 공개와 자유토론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참된 미래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은 실패하여 소연방이 해체되었다.
4.참된 사회화를 위한 길
소유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자유의 물질적 근거로서 개인소유(individual property)와 착취적 배타적 소유를 의미하는 사적소유(private property)이다.
개인소유는 자유의 물질적 근거이자 자주성의 물질적 기초이다. 흔히 소유의 폐지를 주장하지만 이는 착취적 배타적인 사적소유인 자본가적 지주적 소유를 말함이요 개인 소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유 사용 처분하지 못하면 자유라고 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이 공동재산 , 전사회구성원의 소유로 바뀐다고해서 개인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지는 않는다.변화되는 것은 단지 소유의 사회적 성격뿐이다. 소유는 그 계급적 성격을 상실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공산당선언, 백산서당,P97)
전 민청련 상임위원장 이을호씨는 개인소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확한 철학적 규정을 하였다.
"계급이란 결국 소유자와 무소유자 사이의 투쟁이며, 투쟁을 통한 역사 발전이란 소유권의 확대, 개인소유의 확대, 자유의 확대를 통한 생산성의 확대, 이를 근거로 하는 자유의 내용적 확대일 곳이다."〔이을호, 여기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서울: 자작나무,1994)68
평등의 내용이 자유이고 자유의 형식이 평등이다. 이같은 자유의 물질적 근거가 소유이다. 사회적 소유는 모든 노동자가 모든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는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의 개인적 일반화 즉 구체적 보편으로서 보편적 소유(property in common)를 의미한다.사회적 소유는 개인소유와 대립되지 않는다. 국가사회주의에서 소유폐지는 사회적 소유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모든 소유로부터 소외되는 무소유였고 배타적 사적소유의 일반화요 완성에 불과한 일반적 사적소유로서 국유화였다.
사회주의는 한 개인이 피땀어린 노동의 결실과 저축으로 사적으로 얻은 재산, 이른바 모든 사적 자유, 행동, 자주성의 기반인 개인 소유를 보호하고 소유의 양적 차이를 인정한다.즉 개인소유의 획일적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즉 노동의 질과 양에 따른 소득분배를 통한 비례적 평등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공산주의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회의 생산물을 전유할 힘을 박탈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전유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노동을 종속시키는 힘을 박탈할 뿐이다. " . (마르크스,공산당선언,백산서당,P101)
사회주의 운동 특히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이 지향하는 것은 소유일반의 폐지나 사적소유의 폐지가 아니라 자본가적 지주적 소유의 폐지이다.
사회주의의 소유권 강령은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기초한 개인소유보장이다.
사회주의는 부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부를 약탈하여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도 아니다. 부를 평등하게 분배한다는 사상은 소부르조아의 대부르조아에 대한 저열한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소부르조아 사상이다 여전히 자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돈이 많아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자본이 없어도 사업할 수 있는 나라이다.
가.자본주의적 주식회사를 사회주의적 주식회사(자주적 사회기업)로 대체
주식회사의 의결권을
주주총회에서 노동자총회로 이관하라 !
옛날 전설적인 태평성대에 한 농부가 노동을 마치고 그늘에 쉬면서
내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니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여기에는 예속된 비자립적 노동이 아니라 자립적인 노동을 하는자로서 자부감과 당당함이 있다고 하겠다.
사회주의란 생계를 위해 강요당하는 경제적 강제로서 노동이 아니라 노동 그자체가 생산적 행위이자 예술적 행위가 되고 임금의 힘 즉 국가권력이 소멸되는 자유의왕국이라고 하겠다. 오늘날 사회주의의 승리의 관건은 노예제 농노제를 거쳐 자본주의적 예속에 착취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적 노동의 전형을 어떠한 형식과 방법으로 창출하느냐에 달려있다.
지난시기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실패는 정치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데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적 노동의 전형을 창출하지 못한데 있다. 사회주의적 노동의 조직화 실패는 자본에 대한 물신숭배와 경제의 합법칙성을 부정하는 주관주의때문이었다. 자본에 대한 물신숭배와 주관주의로 인해 생산수단에 대한 국유화 정책이 나왔다.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노동의 응결물인 죽은 노동으로서 자본이 아니라 살아있는 노동인 것이다. 그런데 겉보기에는 마치 자본이 가치를 창조하고 스스로 자기증식하는 것처럼 즉 돈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사상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적 소유폐지가 자본의 국유화로 등치되었고,국유화가 사회주의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기업을 국유화하거나 노동자가 기업을 인수한 노동자 소유기업이더라도 자본주의적 방식대로 운영한다면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소련뿐아니라 프랑스 미테랑정부의 국유화정책, 스웨덴의 임노동자 기금등 민주적 사회화 정책도 그 기저에는 자본에 대한 물신숭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울러 경제의 합법칙성을 무시하는 주관주의적 정책이었다. 즉 국유화나 노동자의 소유참여등 소유를 매개로하는 사회화 전략은 급진적인 것 같으나 역설적으로 자본 그 자체의 물신성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기회주의적인 것이며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한 것이었다.
기업의 지배권이 왜 어떤 근거로 자본과 대주주에게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전도된 것이다.기업의 지배권은 당연히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기위해서는 항상 먼저 물질적 전제가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의 물질적 전제는 자본가 측에서는 주식회사의 발달, 노동자측에서는 협동조합운동의 발전으로 형성된다.
" 주식회사에서 자본은 개인자본에 대립하는 사회자본의 형태를 취하며 이러한 자본의 기업은 개인기업에 대립하는 사회기업으로서 등장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의 한계안에서 사적소유로서의 자본을 철폐하는 것이다."〔자본론3, p536)
"현실의 기능자본가가 타인의 자본을 관리하는 단순한 관리인으로 전환하며 자본소유자는 단순한 소유자, 단순한 화폐자본가로 전환한다. 주식회사에서는 기능은 자본소유와 분리되어 있고 그리하여 노동도 생산수단과 잉여노동의 소유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최고의 발전이 낳은 이러한 결과는 자본을 생산자들의 소유 또는 직접적 사회소유로 재전환시키기 위한 필연적 통과점이다.더욱이 이러한 결과는 재생산과정에서 아직도 자본소유와 결부되어 있는 모든 기능들을 결합된 생산자들의 모든 기능으로, 사회적 기능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통과점이다." 〔자본론, p537〕
"노동자들 자신에 의해 운영되는 협동조합공장은 비록 모든 경우에 그 현재의 조직에서는 기존제도의 모든 결함을 재생산하여 또 재생산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낡은 형태 내부에서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는 최초의 실례이다. 여기에서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대립이 철폐되고 있다. 비록 우선은 다만 조합의 노동자들이 자기 자기자신의 자본가라는 형태 - 즉 그들이 자기자신의 노동을 가치 증식시키기 위하여 생산수단을 사용한다는 형태 - 로서이긴 하지만 이러한 공장들은 물질적 생산력과 그것에 대응하는 사회적 생산형태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산양식이 낡은 생산양식으로부터 자연적으로 발전하고 형성되는가를 보여준다. 협동조합공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공장제도 없이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신용제도 없이는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신용제도는 자본주의적 개인기업을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로 점차 전환시키기 위한 주요한 바탕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 기업을 다소간 국민적 규모로 점차로 확장시키기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는 협동조합공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결합된 생산양식으로의 이행형태로 간주되어야 하는데 다만 전자에서는 그 대립(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소극적으
로 철폐되고 후자에서는 적극적으로 철폐되고 있을 뿐이다." 〔자본론, p541〕
"협동조합 공장은 자본가가 생산에서의 기능자로 불필요하게 된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가 자신이 자기의 우월한 지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대토지 소유자를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본론, p140〕
"협동조합 공장에서는 감독노동의 대립적 성격이 사라진다. 왜냐하면 관리인은 노동자들에 의해서 지불되며 노동자들에 의해 대립하여 자본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론 3권, p471〕
사회주의적 노동의 전형은 자본의 물신성을 극복하여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를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로 전환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자본의 집적 집중이 강화되면서 자본의 물신성을 지양할 수 있는 계기가 나타났다.
대규모의 주식회사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통제없는 소유와 소유없는 통제가 나타났다. 주식회사에서 경영을 맡고 있는 대주주의 지분보다는 연기금등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의 지분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인플레와 저금리로 인해 가계는 단순한 은행저축자로서의 지위보다는 직접적 주식소유아니면 뮤추얼펀드나 연기금등 간접적 주식보유로서 주주로서의 이해관계를 갖게되었다. 즉 소유의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관투자가나 다수의 소액주주는 투자수익 즉 주가차익이나 배당에 주요한 관심이 있으며 의결권을 비롯한 통제권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도 은행소유지분 한도는 10%지만 의결권은 4%밖에 안된다. KT 민영화과정에서 SK 텔레콤이 인수한 KT지분 10%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의 우리사주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즉 자본의 운동과정에서 주주 곧 의결권이라는 자본주의적 미신이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오늘날 주식회사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는 기업자본의 대표성을 상실했으며 노동자뿐아니라 소액주주와도 대립한다. 즉 금융자본주의하의 대주주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대하여 다른 생산자본을 유린하거나 기업자금을 횡령하거나 분식회계 가공매출을 통한 주가조작으로 대중의 돈을 약탈하고 경제를 초토화시키는 현대판 이리떼로 전략하였다.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이나 통신회사 월드컴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은 모두 증권사와 결탁하여 노동자 중산층의 돈을 약탈한 것이다. 현대재벌은 현대증권을 앞세워 1998년 현대중공업 1882억원 현대상선 250억원을 동원하여 현대전자 주가를 14000원에서 32000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러고서는 바이코리아 펀드를 만들어 주가지수가 6000까지 간다고 대국민사기극을 자행했다. 삼성그룹 이병철의 손자 이재용은 삼성 SDS 전환사채,에버런드 전환사채를 부당하게 헐값에 매수해 4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여 대를 이어 세습경영에 나서고 있다. SK그룹은 노태우정권시절 유공과 SK텔레콤을 정경유착으로 헐값에 인수한데 이어 98년 JP모건과 1000억원의 손실을 떠안는 이면계약으로 외자유치를 하였다고 국민들에게 사기쳐 주가조작을 하였다. 오늘날 천민 재벌들의 주식사기극은 지면이 부족해 적지 못할 정도이다.소위 재벌총수들은 어떤 생산성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의 기생충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10대 재벌총수의 주식지분은 평균 2%에 불과하다.실제 98%는 무의결권 우선주나 다름없다. 즉 내용과 형식의 괴리가 발생하였다. 즉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가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 즉 자주적 사회기업으로의 전환점에 도달한 것이다. 주가조작등 부당축재를 한 재벌총수등 대주주의 지분은 몰수하여 사회복지 재원으로 적립하거나 아니면 전액 감자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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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 감독 조절등 경영노동은 노동의 고유한 속성이지 자본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지난 봉건주의시대 많은 사람들은 주권이 전제군주에게 있다고 믿었으나 사실 주권은 재민 즉 인민에게 있었다. .
경영권이 자본에게 있다는 것,대주주에게 있다는 것은 부르조아적 환상,착각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는 사회주의로 이행을 위한 필연적 통과점이다..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는 통제권이 주주총회가 아니라 노동자 총회에 있는 주식회사이다.
소유권으로서 주식의 소유와 매매는 보장된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물신성에 근거한 자본가적 소유는 폐지된다.즉 주주총회의 기업지배권이 박탈된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는 폐지되지 않지만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적 소유는 폐지된다.주주총회의 의결권이 노동자 총회로 이전된다.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는 생산수단은 노동자들이 공동점유하고 그 소유권은 개개인에게 분할된 개인소유로 존재한다.
경영권이란 점유권의 한 형태이다. 생산수단의 공동점유란 곧 공동경영을 의미한다.
주주총회는 회계의 투명성을 위한 감사파견권, 주주제안권,경영감시권등을 갖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적 주식회사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의 소유에 대한 부정의 부정을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주식회사에서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기초한 개인소유라는 자본론의 수수께끼가 풀린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는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소유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소유를 부활시키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시대의 성과---협업 및 토지의 공동점유,그리고 노동자체에 의하여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를 부활시킨다. "(자본론 제1권,김수행역,P959)
엥겔스는 반듀링론에서 국유화는 자본주의적 관계의 폐지가 아니며 그 극단으로까지 발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극단에서 그 대립물로 전화한다고 한다.
"생산력의 국가적 소유는 갈등의 해결이 아니며 그 자신안에 갈등해결의 형식적 수단과 방도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엥겔스는 그 형식적 수단과 방법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사회주의자이든 ,사회민주주의자이든
급진파이건 온건파이건 원칙론자이든 수정주의자이든 혁명파든 개량주의자이든 자본의 입장에서,소유 곧 의결이라는 자본주의적 미신에 의해 ,소유를 매개로하는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사회화를 시도한 한계를 갖는다. 진정한 사회화는 노동의 입장에서, 소유를 매개로 하지않고,노동 곧 의결이라는 과학적 근거와 ,노동자적 방법에 의한 사회화를 추진한다. 그간의 사회주의자들이 소유의 미궁에서 탈출할 수 없었던 것은 생산의 주요측면이 노동보다는 자본이었기 때문이고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라는 새로운 사회화이론이 발견된 것은 생산의 주요측면이 자본에서 노동으로 전환되고 자본이 사회화된 물질적 토대에 연유한다.
한국의 재벌들은 자본을 조달하고 기업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의결권 우선주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외환위기로 인한 부채의 출자전환시 황당하게도 무의결권 우선주를 주장하였다. 재벌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무의결권 우선주란 무덤에 우선적으로 묻힐 것이다. 모든 보통주가 무의결권 우선주의 형태를 갖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주식회사에서 자주적 사회기업으로의 전환은 경제의 합법칙성에 의거하여 이행의 객관적 조건과 시기를 주도면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즉 기업에 있어서 생산의 주요측면이 자본에서 노동으로 이미 전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부패무능력한 관료나 기생적인 재벌총수등 대주주들이 생산성 해방을 짓누르고 있을 때이다. 이럴 때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로 전환하면 생산력이 해방되어 노동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기업의 전문 경영노동자들이 이 대주주나 정부관료보다 더 뛰어난 경제경영능력을 갖출 때 가능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자가 공동경영하는 자주적 사회기업이다. 관치금융 관치경제 정경유착은 소멸될 것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낙하산이 소멸되고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전문경영노동자인 진보적인 사회기업가가 노동자총회와 평의회의 선거와 인준을 통해 이사회를 구성 기업을 운영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노동과 자본의 결합형태에 따라 즉 자본의 집중화정도 노동의 사회화정도 그리고 자본의 성격(생산자본 금융자본,유통자본)에 따라 자주적 사회기업과 협동조합 그리고 민주적 참여기업(공동결정기업 경영참여기업) 소유경영기업(중소기업 자영업자)등 다양한 범주의 기업활동을 인정한다.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는 다양한 방식과 형태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자주적인 사회기업이 생산의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물론 자주적 사회기업도 개별기업의 실리적 조합주의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는 개별과 전체의 모순으로 개별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서 경제법 노동법 사회복지법등이 필요할 것이다.
나.모든 지대를 조세로 환수하여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한다.
자본에서 가치가 형성되지 않듯이 토지에서도 가치는 생산되지 않는다.
부동산 투기이익이나 개발이익,임대료등 지대는 사회의 부를 편취한 것일 뿐이다.
사회적 노동이 생산한 잉여가치가 지대로 전환된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모든 지대를 조세로 환수하여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토지의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낮추어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해야 한다.
무주택자에게 중대형 영구임대아파트를 공급하여 주거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다.실업률 제로를 지향한다.
실업은 왜 발생하는것일까?
기술혁신과 사회적 노동생산성발달로 인하여 실업이 발생한다.
기술혁신의 성과를 일부 자본가들이 전유하다보니 실업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술혁신의 성과를 노동자들이 공동향유한다면 일자리나누기를 통하여 실업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즉 현재 실업률이 10%라면 전체 노동시간을 10%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눈다면 실업을 극복할 수 있다.
라. 시장을 기초로 하는 민주적 참여적 계획경제
사회주의는 무정부적 자유주의적 경제보다는 계획경제를 지향한다.
자본주의도 자체의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계획을 도입하였다.자본주의와 계획은 대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와 시장은 대립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와 같은 관료적 지령경제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사회주의 경제는 상품의 가치법칙에 기초하여 시장을 매개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허위보고나 묵살등 계획에있어서 계획성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
또한 계획의 지령화 관료화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적 참여적 계획경제를 도입해야 한다.
"자본관계가 생산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그 관계가 교환행위중에 그리고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상대할 때의 경제적 기본조건의 상이성중에 곧 그들의 계급관계중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 계급관계를 발생시키는 것은 화폐의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이 계급관계 때문에 화폐의 단순한 기능이 자본의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노예의 구매와 판매도 또한 그 형태에 있어서는 상품의 매매이다. 그러나 노예제가 존재하지 않는 다면 화폐는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자본론 2권, p37〕
자본관계 폐지가 본질적인 것이며 화폐관계는 부차적인 것이다.
사회주의는 각기업 및 생산단위에 자주성을 주어 상품이 시장을 통한 필사적 도약을 통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시장이 각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질과 생산비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자원배분은 공급자중심의 강제배급이 아니라 시장을 통해 수요자 대중의 자주적 분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한편 북한에서는 헌법개정으로 합법적 경제활동으로 얻은 수입을 개인소유로 인정하고 개인소유에 있어서 개인의 개념을 노동자에서 보편적인 인민, 공민으로 확대하였다. 그리고 기업의 독립채산제, 원가, 가격, 수익성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시장을 인정하려 하고 있으며 여행과 거주의 자유도 일부 보장하려 하고 있다
2002.7.1일부터는 상품화폐관계를 확대하여 가격을 현실화했으며 배급제대신에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의 자원배분으로 돌아섰다. 아울러 급여도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차등지급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마. 노동이 생존의 조건에서 삶의 제 일의 욕구가 되는 사회
오래 놀다보면 일하고 싶어진다. 특히 실업자로 있게 되면 좋은 일자리를 찾아 열심히 일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노동은 그만큼 인간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계급사회에선 노동이 삶의 제 일의 욕구가 되지 못하고 경제적 강제로서 먹고 살기위한 노동 즉 생존의 조건으로서 돈벌이로서 노동이 된다.
사회주의는 노동이 생존의 조건이 아니라 생산적행위이자 에술적 행위로서 삶의 제 일의 욕구가 되는 사회아다.
사회주의는 부를 약탈하여 평등하게 분배하자는 저열한 시기와 질투의 소부르조아 사상을 넘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돈이 없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자본이 없어도 사업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혁명으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이 소멸되고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확충되어 있어야 한다.
노동이 삶의 제 일의 욕구가 되는 사회라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이상인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5.민주적 이행전략
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계급사회에서 민중사회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까?
이행기는 패배하였지만 소멸하지 않은 자본가 계급과 승리하였지만 소멸하지 않은 노동자 계급간의 과도적 투쟁기간으로 계급투쟁이 가장 첨예한 시기라고 정의된다.
이행기동안 자본가들의 파업과 태업등 반혁명쿠데타 기도는 명약관화하다.
칠레의 민중연합정권이 자본가들의 태업과 파업 그리고 군사쿠데타로 무너졌으며
1981년 프랑스 좌파연합의 미테랑정부도 자본가들의 연이은 공격에 국유화 정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국가사회주의자들은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였지만 이는 결국 관료독재와 일당독재로 귀결되어 노동자계급 자신을 억압하였고 민중사회는 없고 국유화를 통한 국가강화만 있었다.
물론 이같은 왜곡의 물질적기초는 국유화였으며 상부구조로는 전체주의적 독재였다. .
국유화에 기반한 프로독재는 프로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도된 부르조아독재로서 전체주의적 독재였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사상적 무기였던 프로독재가 통치이데올로기로 전환된 것이다.민주적 이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고하여 사회민주주의 변혁이 완수되지는 않는다.
사회민주주의 변혁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 정권수립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다양한 협동조합,노동자 소유기업, 생활협동조합,신용협동조합, 초국적 금융자본에 맞설 수 있는 노동은행 협동조합은행등 대안적 금융기관, ,IMF IBRD를 대체할 수 있는 전세계적 민중적 금융기구등이 필요하다. 사회화를 위한 전략에서 중요한 경제토대적 중심고리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맞설 수 있는 민중은행이다.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도 노동인민은행이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뉴질랜드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모든 은행이 외국자본으로 넘어간 지금 다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인민은행을 창립하려하고 있다. 민중은행을 중심으로 노동자 투자기금, 우리사주조합등이 중심이 되어 공적자금의 지원을 받아 재벌기업을 사회주의적 주식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
6.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란 브르조아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민주주의적 원리와 방식에 의해
관철하는 정치형태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란 반봉건 브르조아 해방이념으로서 양반상놈같은 신분차별 폐지와 모든 특권의 폐기를 주장한 정치사상이다. 브르조아들이 자유,평등, 박애를 주장하였지만 그들이 목표한 것은 재산이 있는 부르조아만의 자유였다. 즉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보장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도 없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노동3권과 보통선거권이 쟁취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모든 인민의 기본권으로 쟁취됨으로써 비로서 자유민주주의가 되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권으로는 보통선거권, 노동 3권,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양심과 학문의 자유, 종교의 자유, 법치국가, 법앞의 평등,저항권,집회와 결사의 자유등이다. 법은 실정법과 권리법으로 구분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법앞의 평등은 권리법도 포함한다. 실정법이 권리법을 유린하면 국민들은 저항권을 갖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이다.
즉 자유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으로 인해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그 본질상 부르조아 지배와 독재를 관철하기 위한 형식이다.
자유민주주의가 그 본성상 부르조아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형식적 자유로서 부르조아 민주주의라면 이를 지양하여 자유의 물질적 근거를 확보하고 민주주의의 내용을 확대심화시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부르조아의 한계에 갇혀있는 민주주의를 해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이 통일된 것이며 민주주의의 양질전환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폐지하는 것이지 민주주의 그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나 레닌도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며 민주주의 폐지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보통선거등 민주주의가 실시되고 있는 파리꼬뮨을 프로독재의 전형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위에서 경제공황등 자본의 축적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체의 민주주의를 박탈한 공공연한 테러독재, 즉 민주주의의 형식마저 부정한 독일의 나찌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 일본의 군국주의,박정희의 유신독재등을 파시즘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는 노동 3권이 보장되어 있지않고, 국가보안법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등이 보장되어 있지않다. 비록 선거로 집권하였지만 여전히 미국에 예속된 신식민지 파시즘이다. 그래서 현 남한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신믹민지 파시즘이 합법화 제도화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조중동같은 수구언론이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다시들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신식믹지 파쇼독재를 은폐하기 위한 기만적 주장이다. 기득권진영이 국가보안법 유지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하고도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한국사회 냉전수구진영은 냉전시대의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대중을 기만하여 민중탄압과 수탈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참된 자유민주주의라면 서독이 동독 공산당 서독지부의 활동을 합법화한 것처럼 공산당의 활동도 합법화해야 한다.
7.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모든 과학적 개념은 현실의 생성 발전 소멸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개념도 정치적 실천에 따라 생성 분화 발전 소멸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통일적으로 사용되던 사회민주주의는 세계가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양분되어 그 모순이 격화되자 각각이 처한 정치경제적 토대에 의거하여 일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코민테른을 중심으로하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인터내셔날을 중심으로 하는 개량적 수정주의적 사회민주주의로 분화되었다. 공산주의는 부르조아 혁명 단계를 거치지 못하여 봉건유제가 잔존하고 자본주의가 미발전한 ,보통선거권등 민주주의의가 결여된 소련, 동유럽 ,중국,북한,남미등 제국주의의 약한고리,반식민지,식민지등에서 주장되었다. 한편 공산주의는 스탈린의 소련식 국가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으며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 정권, 캄푸치아의 폴포트 정권은 사회주의의 이름을 빌린 살인정권이었다.공산주의는 독재와 역압으로 자유로운 인간들의 자유로운 결사체라는 사회주의 본성을 배반함으로써 몰락하였다. 소련 몰락으로 인하여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의 이론적 경계선은 무의미해졌다. 이제 사회주의자의 이론적 임무는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몰락함으로써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그게 3가지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소련과 동구권등 공산주의의 지양으로서 사회민주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의 독점자본주의에 기초한 유럽형 사회민주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칠레의 민중연합이나 브라질 노동당 같은 제 3세계형 사회민주주의이다.
지난시기 로자는 레닌의 프로독재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주장하였다. 레닌도 전시공산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경제정책과 협동조합 강화노선을 주창하게 되었다. 흐루시초프는 1956년 20차 소련공산당 당대회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공식비판하고 사회주의적 법치를 실시하려고 했으며 소련사회의 지령적 관료적 관리방법을 타파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85년 고르바초프가 당서기장이 되면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나타났다. 공산당의 무오류성이라는 교조를 폐기하였고 일당독재 폐지 ,다당제 인정, 당정분리,복수공천,비밀투표등 보통선거권 보장, 사회주의적 법치,사회주의 시장경제,기업의 독립채산제 ,노동자의 자주관리,. 정보의 공개와 자유토론이 주장되었다.
몰락한 구 공산권의 공산당은 당명을 사회당으로 변경하거나 아니더라도 사회민주주의적 내용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한편 수정주의로서 사회민주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제국주의 토대와 식민지 초과이윤이라는 경제적 기초위에서 중산층의 확대, 보통선거권에 기초한 의회적 선거적 점진적 전략을 주장하였다. 카우추키와 베른슈타인등은 제국주의와 신믹민지 초과이윤에대한 분석이 부족하였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그 지도자들이 제국주의의 토대위에서 우편향을 보이거나 변질되어 사회주의 본질을 배반하였다. 즉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들이 제 2인터내셔날의 결의를 배반하고 50억마르크의 전쟁비용을 승인하고 벨기에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조아 정부에 각료로 입각하는등 제국주의의 주구로 변신하였던 것이다. 결국 자본가들의 제국주의적 전쟁에 협력하고 자본과 타협하는 등 사회민주주의 개념에 대하여 먹칠을 하였다. 그리하여 사상이론가들 사이에 사회민주주의를 자본과 타협하는 사회주의,또는 민주자본주의로 규정하거나 심지어 자유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주장하게 되었다. 자본과 타협하는 사회주의,민주자본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려 그 본질을 왜곡한 것이지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유럽형 사회민주주의는 그 사상이론과 정책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몰락과 신자유
주의의 실패로 인하여 유럽 13개국에서 집권에 성공하는 등 정치적으로 승리하기도하였다
.한편 민주적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브라질 노동당은 종속이론가인 카르도스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룰라의 당선등 정치적으로 승리하였다. 브라질 노동당은 다양한 정파와 기층대중이 기초로부터 세포회의와 예비회의등 참여민주주의적 형태로 조직되어 있으며 대의제 민주주의의 수단들을 통한 간접적 방식뿐아니라 기층대중의 직접적인 운동과 투쟁을 통해서도 개혁을 추진하는 선거정당과 기간정당의 혼합형태로 되어 있다. 브라질 노동당은 소련형 공산주의도 아니고 유럽형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정당으로 아래로부터 참여민주주의로 조직되어 대중자체의 자주적 정치실천을 가장 우선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이러한 사회주의의 다양한 전통을 계승하고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행해진 착오 오류 범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그 한계를 극복 지양하여 사회주의를 확대 심화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다양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구체적 보편이라는 철학적 원리에 토대하여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더욱더 인류적으로 더욱더 개성적으로 지양 발전시켜야 한다.
물론 사회주의의 구체적 실천방안은 각 나라의 물적토대와 상부구조의 차이에따라 달라질 것이다.
7.반제반독점 사회민주주의 정권수립을 위한 실천방안
1.합법화된 신식민지 파시즘에 파열구를 내자
한국 사회는 노동 3권이 보장되어 있지않고, 국가보안법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등이 보장되어 있지않으며 고시제도등 봉건적 사법제도로 민중을 억압하고 있다. 비록 선거로 집권하였지만 여전히 미국에 예속된 신식민지 파시즘으로 존재한다. 현 남한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신식민지 파시즘이 합법화 제도화되어있다.. 조중동같은 수구언론이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다시들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신식믹지 파쇼독재를 은폐하기 위한 기만적 주장이다. 기득권진영이 국가보안법 유지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파렴치하고 황당무계한 주장이다.
냉전시대의 반공주의,유신독재같은 군사파쇼독재를 자유민주주의라고 강변하여 대중을 기만하고 색깔론으로 민중을 수탈하고 지배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상부구조는 합법화된 제도화된 신식민지파시즘이며 그 하부 토대로는 신식민지 예속독점자본주의이다.
미국은 미군정 3년동안 군사독재를 통해 민족자주적 인사들을 제거하고 친일파 지주등과 연합하여 신식민지파시즘을 합법화 제도화하였다.
자본의 헤게모니가 절대적으로 강하여 파시즘이 합법화된 것이다.
신식민지지파시즘에서 미제와 파쇼정권의 관계에 대한 통찰이 중요하다,파쇼정권은 미제와 분리독립된 것도 아니고,또한 아무런 사회경제적 기반이 없이 미제를 주인으로 섬기는 주종관계를 나타내는 꼭두각시정권은 아니며 한미연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그 토대는 미국등 초국적 자본과 이와 연합한 예속독점자본이다.미국을 중심으로 독점재벌,지주,매판관료.수구언론이 종속적으로 연합하여 민중을 지배하고 있다. .
신식민지파시즘의 주요 물리력은 주한 미군을 중심으로하는 한미연합사등 군대,경찰 전투경찰,용역등이다.
전투경찰은 경찰의 옷을 입은 군대이고,용역은 철거현장의 용역깡패나 파업현장의 구사대 로 역할하며 경찰이 하기 힘든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전투경찰이나 용역등은 파쇼기구인데 이것이 다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래서 합법화된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내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즉 미국은 민족적 억압자인 동시에 계급적 수탈자이다. 그래서 이같은 민족적 계급적 모순의 해결을 위한 사상이론은 반제반독점사회민주주의노선이다.
민족모순은 남북간의 분단모순, 북한과 미국간의 모순,남한과 미국간의 신식믹지적 모순등이 중첩되어 있다.
남북간의 분단모순은 상호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화해협력교류하여 연합연방국가 단계를 경유하여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면된다.
북미간의 모순은 상호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불가침 및 상호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화해 협력 교류하여 상호간에 대등한 개방적 주권국가가 되면 된다.
한미간의 신식믹지적 모순은 미국을 축출하고 한미방위조약 행정협정등 신식민지적 종속관계를 청산하여 자주국가가 되면 된다.
그런데 한미간의 신식민지모순은 계급모순과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그 해결이 쉽지않다. .
즉 모든 민족구성원이 미제축출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내부에서 신식민지적 종속관계인 한미동맹에 기초하여 부를 축적하고 민중을 지배 수탈하는 재벌 지주등 착취계급이 존재한다.그래서 민족모순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이 반미자주화운동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해야만 된다. 노동자 민중이 반미자주화운동의 중심세력이 되기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계급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은 민족적 감정에 의거한 반미의식은 그 기반이 견고하지 못하다.
계급모순은 자본가적 지주적 소유를 폐지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하면 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자본주의는 미국의 초국적 금융자본이 지배하고 있고 .재벌은 초국적 금융자본과 예속적 동맹을 맺고 있다.즉 계급모순은 민족모순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초국적자본은 삼성전자의 5O%,국민은행의 85%,포항제철의 60%등 업종대표주를 금융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실제적 소유자이다.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위한 결정적 시점에 미국의 군사적 및 경제적 수단에 의한 총체적 반혁명적 도발이 있을 것이다.
신식민지파시즘에서 전일적 힘을갖고 있는 세력은 미국이다. 미국은 군대와 초국적 자본 정보 그리고 자신의 앞잡이로서 고위 매판관료, 수구언론등 이데올로그를 갖고 있다.
재벌 지주 매판관료 수구언론은 미국의 신식민지적 분할 구도에 의하여 제한적 힘만을 갖고 있고 서로 미제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자신의 지분을 확보한다.
이러한 구도 때문에 한국의 대통령은 전일적 권력을 갖지못한다. .
청와대마저 도청당하고 친미관료들은 청와대의 지시보다는 미국의 지침을 우선하기도 한다.
신식민지파시즘하에서 김대중정부로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미국의 지배구도에 부합한 것이었다. 포퓰리즘적인 김대중정부를 통하여 미제는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마무리했다. 신식민지파시즘은 국가보안법과 , 공무원노조 경찰노조의 금지, 노동악법등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갖은 악법으로 파시즘이 합법화되어 있고 경찰력이나 조폭수준의 용역등을 동원하여 민중에게 수시로 공공연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단순히 선거가 실시된다는 것만 가지고 민주화가 되었다는 환상을 갖어서는 안된다.
소련몰락과 탈냉전으로 인해 미국 및 한국 자본은 북한 진출을 통해 이윤을 획득하려고 한다. 북한 및 북방진출을 통해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책이 신자유주의적 햇볕정책이다. 신발 및 섬유공장 등 중소 자본가들도 북한의 경제특구에 관심이 있다.자본가들은 월 100달러 미만으로 북한 노동력을 사용하려는 기대에 차있다.이로인해서 자본의 일부 분파는 반공적 입장이지만 북한과 화해협력을 지향하고 있다.이과정에서 주도권 및 방법론적 차원에서 미국의 일부 강경파와 대립하기도 한다. 이로인해 친미반공반북의 일체성에 균열이 생기고 반미의식이 대중화될 조건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으로 반미 자주의식을 갖더라도 계급적 이해관계나 사상적 한계로 인해 반공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다면 결정적 시기에 다시 친미로 돌아설 것이다.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것은 반조선노동당 반북 관점으로는 안되며 모든 정치사상의 완전한 자유라는 포용 및 열린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서독 사민당은 1968년도 동독 공산당을 합법화하여 그 활동의 자유를 보장했다.
친미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 민중이 사회민주주의로 단결하여 완전한 사상의 자유를 쟁취할 때 가능하다.
한국의 신식민지 파시즘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나라당을 비롯한 냉전수구세력은 미제를 주인으로 섬기고 신식민지파시즘을 온존시키려하고 있다.
일부 자본가들과 열린우리당내 개혁적 인사들은 신식민지 파시즘에서 미국헤게모니하에서 예속적 자유민주주의로 이행의 전망을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강화된 경제력, 구공산권의 자본주의화,중국과 교역규모 확대,남북경협확대 등으로 인해 미국의 패권을 인정한 가운데 예속적 자유민주주의로 이행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무정부적 과잉생산공항으로 정치경제적 위기를 주기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경제는 심각한 공황이나 위기에 처한다. 한국에서도 보통 10년 주기로 정치경제적 위기가 도래했다. 4,19혁명, 10월유신, 80년5.17 쿠데타등이 일정한 경제위기를 기반으로 하여 정치경제적 재편기에 촉발되었으며 IMF 경제위기도 주기적으로 초래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토대상의 경제위기만 가지고는 변혁이 완수되지 않는다.
주체역량이 미약할 때는 오히려 민중에 대한 억압강화와 수탈강화로 자본주의적 신식민지적 재편이 강화된다. .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외환위기를 통해서 배웠다. 외환위기이후 한국 민중들은 아무런 사회변혁적 대안이 없이 사상이론적으로 무장해제되고 조중동같은 대중매체의 세뇌공작에 당하여 노사협조주의의 선전선동에 속아 넘어가고,정리해고와 비정규직등 신자유주의적인 탄압과 착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민중사회론은
신식민지파시즘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사상적 무기이다.
한국 민중운동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제반독점 사회민주주의로 무장해야 된다. 그렇지않으면 끝없는 악순환과 시지푸스의수고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2. 대중정치투쟁과 선거투쟁을 결합하자
우리는 대중정치투쟁과 선거투쟁을 통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보안법하에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없어 우리의 사상과 정책을 대중에게 선전할 수 없고 또 부르조아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이데올로기 기구 및 선거법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가 힘들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면 지난날 민족일보의 경험에서 보듯이 조중동같은 수구언론은 하루아침에 그 영향력을 상실한 것이다.. 대중정치투쟁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선거법을 개정하여 선거로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여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국가보안법폐지등 정치적 사안을 자신의 임무로 받아들여 정치적 총파업을 할 수 있을 때 국가보안법은 폐지되고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가능할 것이다.
시도때도없이 정치파업의 슬로건을 외친다고 또한 몇몇 사람이 음모적으로 지도한다고 해서 정치적 총파업투쟁이 되지는 않는다. 특정한 시점에서 계급역관계와 사회심리적 조건이 결합될 때 가능할 것이다.
우리 민중은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를 축출했으며 87년 6월항쟁으로 보통선거권 즉 직선제를 쟁취하였다.6월항쟁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권 진영과 민통련을 중심으로하는 민중운동진영이 국민운동본부란 연합조직을 결성하여 대중정치투쟁을 통하여 직선제 즉 보통선거권을 쟁취하였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도 진보정당과 민중운동단체가 연합하여
노동자의 정치적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하는 광범위한 대중정치투쟁으로
국가보안법폐지,완전한 노동3권 쟁취, 선거공영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쟁취할 때 현실화될 수 있다.
부르조아 지배기구인 의회와 선거는 의회밖 강력한 대중투쟁과 연계속에서
민중의 무기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약 1시간에 걸쳐 읽어 내려왔지만 그 정도 시간으로 이해하기는 상당히 어렵군요~ 적어도 하룻밤 정도는 토론이 필요할 듯 하네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수련회 학습으로 해도 좋을듯 합니다~~
찬찬히 읽다보면 눈이 아플까봐 인쇄를 했습니다. 함께 학습의 기회가 있으면 좋겠으며, 노마디즘(유목적인 삶)과 연계해서 토론해 봄이 효과적일듯 합니다.
대단한 인내력없이는 읽기 힘든듯....^^ (난 다 못읽었뜸당)
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나머지 반 읽으면. 의견을 말씀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