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구엔 추석이 없다’는 그 악명높은 왜곡 기사로 대변되는 어느 신문의 영남 시장 공략 전략은 과거 민주화에 앞장섰던 이 신문의 정체성을 여지없이 유린하고 말았다. 영남 인구가 호남 인구의 2.5배라는 점에 주목해 영남 민심에 영합하는 마케팅 전략을 기사에 반영하면서 이 신문의 이념적 정치적 지향마저 급격히 보수화하고 말았으니 세상에 이런 비극이 없다.
7월 8일에 방영된 'PD 수첩'은 이 신문의 그런 변신을 설득력있게 잘 보여주었다. 그런 변신에 환멸을 느낀 기자들이 많나 보다. 이 신문의 노동조합지 6월 25일자 1면 머릿기사 제목은 ‘중견기자들이 떠나고 있다’이다. 이게 어찌 이 신문만의 비극일까? 지역별 인구 규모에 대한 집착은 정치판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시장 논리’가 되고 말았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은 호남 포기 전략을 썼다. 예정돼 있던 유세마저 취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호남에 들일 노력을 영남에서 반만 쏟으면 그만큼 표 나온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전주에서 발행되는 전라일보 7월 5일자에 실린 ‘한나라 호남진출이 개혁과제’라는 제목의 사설은 한나라당이 더 이상 호남 포기 전략을 쓰지 말 것을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최병렬 체제 한나라당이 무엇보다도 호남 진출과 기반 확충을 당개혁 핵심 과제로 채택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3김 정치도 이제 사라졌으며 호남에도 보수성향 유권자가 두텁게 포진하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지난 대선 때 호남의 노무현 몰표는 민주당 선호의 몰표라기 보다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영남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한 불안심리의 반사작용이었다고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총선 때 전남ㆍ북 광주 각 1명씩의 비례대표 후보를 당선권에 배치하겠다는 최 대표의 최근 발언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여전히 호남 배제 또는 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보다 적극적인 호남 보수층 공략과 기반 확충을 통한 호남 진출로 한나라당의 전국 정당화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렇다.
최병렬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쓸데없는 망언을 해댈 게 아니라 진실되고 성실한 자세로 호남 진출에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대표 경선 때 어느 후보가 “한나라당의 전국정당화를 위해 비례대표의원 정수의 60%를 호남출신 인사들에게 배려하겠다”는 공약을 한 걸 진지하게 검토해주기 바란다.
민주당과 범개혁신당 추진 세력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인물 중심의 전국정당화 시도만으론 지역주의 구도를 깨기 어렵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지금 내세우고 있는 인물의 면면을 보더라도 하나같이 지역주의에 대한 양비론자들 아닌가. 우리는 비례대표 의원의 지역할당제를 비롯하여 제도와 법 차원의 지역구도 타파 방안을 도입한 적도 없거니와 심각하게 고려하지도 않았다. 늘 정치공학적으로만 대응해왔다. 지금도 ‘인적 청산’을 내세워 ‘정서’에만 영합하는 방식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으론 안된다. ‘호남 포기’라는 시장 논리 자체를 제도적으로 깨야 한다. 영호남 갈등 구도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다른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도 ‘가슴’보다는 ‘머리’를 더 써야 할 것이다.